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0화 (130/2,000)

< 132. 낭만의 캠퍼스-1- >

통상 지하철 한 칸의 적정 정원은 130명 내외.

지금처럼 출근길에 걸려 혼잡스러운 경우 최대 300~400명까지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아주 극심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아 200명까진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만 되어도 예의 바른 일본인이라면 삼보 걸을 때마다 "쓰미마셍"을 외쳐야 할 판이다.

남녀의 성비가 정확히 절반이라고 가정했을 때 현재 여자의 숫자는 대략 100명.

‘100명 중에 2번의 기회면 2%의 확률인 건가?’

아니다. 좀 더 필터링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가 성욕이 높진 않을 거다.

고등학생 이하, 경로 우대를 받는 할머니들은 우선 제외한다.

지하철의 주 고객인 급식충과 틀딱을 거르니 100명 가운데 절반이 날아갔다.

이것으로 확률은 두 배로 올랐다.

‘뭔가 제외할 수단이 한 가지 더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고민하자 거름장치가 하나 더 떠올랐다.

‘그래. 앉아있는 사람은 절대 아냐.’

[네?]

‘생각해봐. 지하철에서 추행을 기다리는 여자라면 일부러라도 의자에 앉는 것을 피하지 않겠어?’

[그렇군요!]

‘가만있자,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이···.’

눈대중으로 보니 한 칸에 들어가는 7인용 좌석은 모두 6개. 3인용이 경로석이 모두 4개로 앉을 수 있는 모든 좌석은 54석이다.

‘여자를 대충 27명 잡고, 앞서 거른 것 중에서 중복되는 인원까지 빼면···. 옳지. 대충 서른 명 남짓이구나.’

됐다. 계산 끝이다.

열차에 있는 200명 가운데에 치녀일 가능성이 농후한 대상은 모두 서른 정도. 그리고 그중 단 두 명에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키야! 주인님의 잔머리는 여전하시군요.]

‘모자라. 내가 예전처럼 아이큐만 높았어도 이런 계산, 10초면 견적 냈을걸.’

[그래도 이 정도까지 해낸 게 어딥니까? 얼른 치녀를 찾아보시죠.]

치녀.

한자로는 癡女로, 말 그대로 "치한+여자"를 의미한다.

대게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이 극심한 수치심과 공포를 느낀다면, 이런 부류는 남성의 치한 행위를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노출증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이며, 대게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가 치녀라면···

오늘은 어떤 낯선 사람이 나를 만져줄까?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어디쯤 서 있어야 할까?

어떤 차림으로 나가야, 치한에게 확실한 시그널을 줄 수 있을까?

상상한다.

지하철의 사각지대.

짧은 치마.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옷차림.

마지막으로 잔뜩 긴장된 눈빛.

눈을 떴다.

대상은 더욱 좁혀졌다.

어쩌면 저기 구석에 서 있는 젊은 여자.

가슴선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니트, 계절에 맞지 않게 유난히 짧은 가죽 치마. 한쪽 팔엔 간호학이라 써진 두툼한 대학교재를 들고 있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현재까지 발견한 사람 중에선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인다.

나는 그녀의 뒤로 파고들었다.

[확신이 스셨나요?]

‘아니 잦이가 선 것 같은데?’

[······.]

‘농담이고, 차림으로만 봐선 이 여자가 치녀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

[기회는 딱 두 번뿐 입니다.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음.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일단 한 번 찔러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젖지도 않았을 텐데요?]

‘뭔 소리야. 한 번 떠본다는 소리지.’

나는 지하철이 흔들리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 살과 살이 닿을 정도의 거리. 막 샴푸를 하고 나왔는지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흐음, 치한들이 왜 그러는 줄 알 것도 같군.’

[자중하십시오. 추행은 범죄입니다.]

‘걱정마. 설마 내가 똥오줌 분간 못 할까 봐.’

사람에겐 사적 영역이란 게 있다. 절친한 사람이라도 한 팔 거리 이상으로 침범해 오면 불편함을 느낀다. 비좁은 지하철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경계가 무너지지만, 그래도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근접한 상태.

과연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인기척을 느꼈는지 가죽 치마의 그녀가 힐끔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시선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도 미소로 화답한다.

[옷, 긍정적인 반응 인걸요? 이 여자가 치녀일까요?]

‘···아니. 얘는 아닌 것 같아.’

[왜요? 방금 주인님 보고 웃어주지 않습니까?]

‘그냥 내 얼굴에 김 묻어서 그런 거겠지.’

[김이요?]

‘잘생김.’

[······.]

‘내가 볼 땐 이건 정상적인 호감 표시일 뿐이야. 예쁘고 잘생긴 사람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게 되는 거.’

[그게 어때서요?]

‘낯선 치한의 손길을 기다리느라 두근두근하는 사람의 표정치고는 너무나 멀쩡하단 말이지.’

[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야겠어.’

[서두르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알았다고. 보채지마.’

나는 다시 위치를 옮겼다.

***

혜경에겐 자가용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차를 놔두고 지하철에 오른다.

‘하아···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기행의 시초는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그녀는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입사 면접에선 매번 물을 먹고, 남자친구에게 결별을  통보받았다. 무엇 하나 맘에 들지 않던 나날들.

그날도 혜경은 술에 취한 체 늦은 시각 지하철에 올랐다.

입에선 은근히 알콜 냄새가 올라왔다. 지하철의 진동이 속을 부대끼는 통에 몇 번이고 게워낼 뻔한 것을 참아야 했다. 집까지는 한참 남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구석에서 슬쩍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혜경은 낯선 손길을 느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그녀의 가슴을 조몰락거리고 있던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열차 칸에는 고작 두세 사람의 취객뿐이었다.

사내가 위협했다.

"소리 지를 생각 마. 옆구리에 지금 칼 있다."

"흡!"

괴한의 말처럼 옆구리에 뾰족한 감각이 느껴졌다. 혜경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감히 소리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렇지. 말 잘 듣는 아이구나. 얌전히 있어야지."

괴한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드러난 눈만 봐선 중년의 남성처럼 보였다. 혜경이 저항 못 하는 것을 본 그의 손길이 더욱 과감해졌다.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내더니 안까지 손이 들어온 것이다.

"아, 아!"

"쉿-. 조용히만 하면 해치진 않아. 난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잠든 여자를  칼로 위협해 멋대로 주무르는 사내가 하는 말치곤 너무도 궁색한 변명이었다. 평생 남자친구 말고는 가슴을 내준 적 없던 혜경은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인 혜경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때? 너도 즐겁지?"

"아, 아니에요."

"그런데 왜 꼭지가 발딱 서 있어?"

"그, 그건···."

기이한 일이었다.

땀 냄새나고 지저분한 사내는 분명 자신의 남자 취향과는 영 딴판이었다. 어디선가 막노동을 전전할 것 같은 옷차림에, 나이도 40대가 넘어 보였다. 평소라면 눈살을 찌푸리고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것 같은 추레한 중년이다.

그러나 그의 집요한 손길에 몸이 점점 달고 있었다.

유두가 단단해지고 입에선 술기운이 섞인 비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거봐? 너도 즐기고 있잖아."

가슴을 주무르던 손은 이제 치마 속까지 파고들었다. 저 거칠고 투박한 손이 자신의 팬티 위를 어루만지는 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무력감.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절망감.

그럼에도 계속 반응하는 몹쓸 몸뚱이.

"호오, 제법 축축하게 젖었는데?"

"흣!"

"가만 있어. 아저씨가 즐겁게 해줄 테니까."

손가락이 팬티를 옆으로 들추고 들어왔다.

땟국물 묻은 더러운 손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공간을 침범해 온다.

‘으으으! 세균감염 돼버릴 거 같아!’

더러웠다. 더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평소보다 훨씬 젖어버린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어째서? 어째서 내 몸이 이러지?’

혜경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마치 만지기 불편하지 말라는 듯이.

사내는 손가락은 이제 노골적으로 그녀의 구멍을 들락거렸다. 옆에서 누가 쳐다 보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찌꺽-찌꺽-

"흐흐. 무척 예민한 아이구나 너는."

"하아, 하아."

"어때? 아저씨 꺼 빨고 싶지?"

"시, 싫어."

"이렇게 젖었는데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좌우를 둘러 보더니, 다들 취해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는 혜경의 눈앞에서 지퍼를 내렸다.

"헉!"

밖으로 튀어나온 사내의 잦이에서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씻지도 않은 더러운 잦이였다. 혜경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사내가 강제로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빨아, 이년아. 죽여 버리기 전에."

"모, 못하겠어요··· 읍!"

사내는 다짜고짜 혜경의 입속에 잦이를 처박았다.

단단하고 씨알이 굵은 사내의 물건이 혜경의 입속을 가득 채웠다.

‘흐윽, 더러워.’

사내는 혜경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펠라를 시켰다. 역겨움에 토할 것 같았지만, 혜경을 차마 뱉어낼 생각을 못 했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로 돌돌 말린 물체가 여전히 들려있었다.

그는 한참 펠라를 즐기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혜경을 강제로 일으켰다.

"따라와."

"사, 살려주세요."

"따라오면 헤치지 않아."

그날 혜경은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로 끌려가 강간당했다. 사내는 거침없었고, 막무가내였다. 마치 그녀를 육변기처럼 다루었다.

두 번의 방사를 끝낸 사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떠나갔다.

좌변기 구석에 처박힌 혜경은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옷은 찢어지고 화장은 엉망이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지.’

사내가 안에다 멋대로 싸버리는 통에 긴급 피임약까지 처방받았지만, 그녀는 끝끝내 신고하지 않았다.

낯선 사내에게 강간당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자신에게 강간 패티쉬가 있다는 것을.

그 후로 혜경은 치녀가 되었다. 낯선 사내의 손길이 자신을 어루만질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이 밀려왔다.

혜경은 오늘도 치한을 기다리고 있다.

신고가 두려워 간 만보다 마는 풋내기들 말고.

진짜 ‘사내’를.

***

도훈은 그 뒤로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 위주로 탐색을 벌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접근에 물러서거나, 시큰둥한 눈치였다.

‘젠장, 이러다 미션 종료되고 말겠는데?’

[어쩌면 고정 관념이 아닐까요?]

‘뭐가?’

[치녀가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거요.]

‘그래야 만지기 수월치 않겠어?’

[하지만 치마보다 더 짧은 옷차림이라면요?]

‘응?’

로시의 조언에 도훈은 그제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났다.

이제껏 치마를 입은 사람만 뒤지느라, 그보다 짧은 옷차림을 간과했다.

‘핫팬츠!’

[그렇습니다. 이 계절에 핫팬츠인 게 되레 수상하지 않습니까?]

‘요샌 겨울에도 두꺼운 스타킹 신고 많이들 입더라고. 근데 확실히 치마보다 만지긴 쉬울지도.’

어찌 됐건 치마는 들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에 티가 난다.

하지만 짧은 핫팬츠라면 손가락이 바로 닿는다.

도훈은 경로석 주변에 서 있는 한 커리어우먼을 발견했다. 오버니 삭스 형태의 스타킹에 데님 핫팬츠를 입은 여자. 어깨까지 닿는 머리에, 상의는 반코트 길이의 카키색 야상을 입고 있다.

그녀는 불안한 시선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긴장된 표정.

도훈은 대번에 직감이 왔다.

‘저 여자다!’

[확신하십니까?]

‘스킬 준비해.’

[어떤 걸로요?]

‘싸이코 메트리는 물건을 잘못 찍으면 실패할 수 있으니까, 정보창이 적절하지.’

[준비되었습니다. 3M 이내로 다가가십시오.]

꿀꺽-

직감이 틀렸다면, 공연히 스킬만 날리는 셈.

하지만 도훈은 확실한 촉이 왔다.

도훈이 핫팬츠를 입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슬쩍 어깨를 부딪쳤다. 그녀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도훈을 빤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도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디스플레이에 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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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윤혜경

나이 : 27

호감도 : 75/100

개방성 : S

성감대 : 유두, 목덜미, 클리토리스

성욕지수 : 극단적으로 높음

공략팁

*그녀는 이상 성욕자입니다. 자신을 만져줄 남자는 누구든지 환영입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행동을 추천합니다.

-추천행동 : 그녀의 등 뒤에서 부비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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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고! 이럴줄 알았어!’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이건 뭐 매의 눈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군요.]

‘촉이 왔대도 그래. 근데 이상 성욕자는 뭐야?’

[쉽게 말해 변태입니다.]

‘하긴 치녀랬지? 그래도 극단적으로 높음은 처음 보는데?’

[이성 성욕자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흥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페도필리아(아동성애자)의 경우 어린 유아를 봤을 때,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가)의 경우는 시체를 보면 흥분하듯이요.]

‘아아, 그래서 변태.’

[아마도 그녀는 지하철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성감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타입일 겁니다.]

‘그래서 호감도가 바로 75를 찍은 건가? 이상형도 아닌데?’

[그렇죠. 그녀는 자신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높은 호감도를 보일 겁니다.]

‘신기하군. 얼굴도 멀쩡하게 생겨서는 변태라니.’

[그건 매일 거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던가요?]

‘머 인마? 확 그냥!’

[주인님. 집중하십시오. 포인트 벌 시간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치한 놀이를 시작해 볼까?’

< 132. 낭만의 캠퍼스-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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