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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6화 (116/2,000)

< 118. 즐거운 사라-23- >

유람선 관광을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최종 목적지 양평으로 향할 시간.

운전은 여전히 성민의 몫이었다. 놈은 계속되는 기사 노릇이 불만이었는지,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려 했다. 이놈이 어디서 짬처리를? 나의 대답은 처음부터 확고부동했다.

"미안하군. 아직 면허가 없는데···"

"오빠 아직도 못 땄어? 많이 피곤하시면 제가 몰까요?"

"혜은이 네가 몰면 무면허지."

"왜?"

"국제면허증 발급 안 받음, 국내에선 불법이거든."

"아, 정말? 이럼 성민오빠만 너무 고생인데···."

우리 남매의 실랑이에 성민도 결국 두손을 들었다.

"···아냐. 됐어. 먼 거리도 아니니 그냥 내가 몰게."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했다. 여행경비부터 간식비, 기름값을 몽땅 대면서 심지어 기사 역할까지 성실히 수행 중인 놈의 모습은 한마디로 호구 그 자체였다.

‘크크크. 저 병신. 아주 모기처럼 쪽쪽 빨아 먹어 주지.’

[저렇게까지 하는데는 뭔가 속셈이 있지 않을까요?]

‘속셈? 뻔하지. 혜은일 별장으로 데려가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길 거라 보고 참는 거겠지.’

[주인님이 미리 대비하고 계시다는 것은 전혀 모르나 봅니다.]

‘사실 놈이 기춘이나 찬혁이보단 똑똑하긴 해. 솔직히 말해 두 놈은 보통 사람보다 못한 똥멍청이 수준이었지. 하지만 놈은 남들도 자기만큼 머릴 쓸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는 것 같아.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 대게 그렇듯 말이야.’

[방심이 화를 자초하는 꼴이로군요. 후후.]

‘맞아. 참, 아이템 수령처 내 호주머니로 바뀐 것 맞지? 아직 확인을 안 해봐서.'

[네. 새벽에 지시하신 데로 변경해 놓았습니다. 말씀하신 아이템은 지금 구매해 놓을까요?]

‘아니야. 때가 되면 내가 말할게.’

[알겠습니다.]

실은 새벽 내 마켓을 검색했다.

기춘의 성욕을 폭발시켜 스스로 자폭하게 만들었던 "고개 들어요, 용사님" 담배처럼, 놈의 음모를 저지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200포인트로 살 수 있는 아이템이란 1회성 소모품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날려버린 포인트가 못내 아쉬워지는 순간. 어떻게든 한정된 예산안에서 쓸만한 물건을 구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눈알 빠지게 휠을 돌려대는데 갑자기 아이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숙면할 수 있을 때 숙면하세요, 알약? 이건 뭐야?’

[설명 그대로 수면제의 일종입니다.]

‘수면제?’

‘물론 보통의 수면제가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온몸의 피로가 모조리 풀리는 뛰어난 숙면유도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불면증 심한 플레이어들이 찾는 물건이죠.]

‘말도 안 돼. 잠 한번 자는 데 아이템까지 쓴다고?’

[플레이어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제각각이니까요. 저명한 정치인 플레이어가 중요한 연설을 앞둔 날이나, 전쟁영웅이 트라우마를 지우기 위해서 등, 필요한 경우가 아주 없진 않습니다.]

‘하긴, 그렇겠군. 그나저나 숙면유도 효과라는게 어느 정도야?’

[자는 중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실험에 의하면 코끼리도 잠재울 정도라니까요.]

나는 로시의 말을 듣고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혹시 이거 내가 안 쓰고 다른 사람 먹여도 돼?’

[수면제를 먹여 여자를 공략하는 것은 심신미약 강간에 해당하는 불법적인 범죄입니다. 신께선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런 용도가 아니고 그냥 먹이고 재우기만 하는 건?’

[···그냥 재우기만요?]

‘응. 아무 짓도 안 하고.’

[그건 상관없죠. 하지만 굳이 200포인트짜리 아이템을 써가면서까지··· 혹시?]

‘그래. 이걸 성민이 먹여 재워버리면 되잖아. 네 말대로 불법적인 일에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숙면하라고 재워주는 것 뿐이면 말이지.’

[아하! 그런 것이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역시 주인님은 응용력이 뛰어나시군요.]

‘흐흐. 원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 법이거든. 단, 자는 놈은 빼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운전을 열심히 하는 성민을 보며 맘껏 비웃어 주었다.

‘열심히 운전한 당신, 푹 자라.’

***

성민의 양평 별장에 도착한 일행은 그 크기에 무척 놀랐다. 어찌나 대지가 넓은지 입구에서부터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본건물이 나올 지경.

건물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초로의 관리인이 과도하게 허릴 숙이며 일행을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말씀하신 숯불바비큐 세트는 뒷마당에 세팅시켜 놓았습니다. 온천물도 넉넉히 받아놓아 언제든 들어가셔도 좋구요."

"수고했어요, 할아범. 오늘은 관리동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어디 가까운 데라도 나갔다 오세요."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실 텐데···"

"괜찮아요. 사람이 여섯이나 있으니까. 그냥 저희끼리 눈치 안 보고 놀고 싶어서요."

성민이 지갑에서 5만원 권을 뭉텅이로 꺼내 늙은 관리인 손에 쥐여주었다. 관리인은 감사함에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 순간 성민이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게 귓속말을 했다.

"···내가 구해놓으란 건?"

"말씀하신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수고했어."

관리인이 눈치를 보더니 슬쩍 성민에게 물었다.

"혹시 불법적인 일에 쓰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 문제 안 생기게 할 테니까. 혹시 몰라 그냥 챙겨두는 거야."

"알겠습니다. 쇤네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관리인은 부담스럽게 허리를 굽히더니 자기 차를 몰고 퇴근했다. 성민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다들 배고플 텐데 짐 풀고 바로 뒷마당으로 와. 방은 충분하니까 마음에 드는 곳 아무데나 고르고."

이제 성민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였으므로 그가 말을 놓는 편이 모두에게 편했다.

방에 짐을 푼 뒤 뒷마당으로 하나둘씩 모였을 때, 먼저 내려간 성민은 준비된 음식을 챙기는 중이었다. 정성스럽게 씻어놓은 야채와 각종 부위의 소고기 돼지고기가 보는 이의 군침을 돌게 했다.

바비큐용 그릴에 불을 지피던 성민이 도훈에게 말했다.

"참, 관리인 아저씨가 깜빡하고 구이용 숯만 준비해놨나 보더라고. 밤에 곁불이라도 쐬려면 장작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이 고기를 굽는 사이 도훈에게 일을 시키려는 성민이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머슴인지 남들 앞에서 드러내려는 의도. 놈의 얄팍한 수작에 도훈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이놈 봐라? 자기는 맛있게 요리나 하면서 나보고는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으란 건가?’

하지만 다른 생각이 있던 도훈은 모처럼 반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도훈이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장작 패기가 남성의 원초적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빠르게 캐치했던 것이다.

‘은성이 마초적인 스티일에 끌린다고 했겠다?’

도훈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끼를 잡았다.

원기둥 형태의 장작을 수직으로 세운 뒤 힘껏 내리치자, 쩍-하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

쿵-!

쿵-!

거침없이 장작을 쪼개는 도훈의 모습에 여성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훈에게로 쏠렸다.

'와, 우리 오빠 저렇게 터프했었나?'

혜은이 놀란 눈으로 도훈을 쳐다보았다. 사라 역시 어젯밤 살을 맞댔던 탄탄한 근육이 떠올라 야릇한 상상에 빠졌다.

‘오늘 밤도 날 저렇게 박력 있게 찍어주었으면···’

하지만 가장 충격받은 사람은 은성이었다. 머슴처럼 묵묵히 장작을 패는 도훈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강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와, 멋지다. 역시 남자는 힘이야.’

도훈은 자신에게 향하는 여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어으, 이것도 일이라도 땀이 좀 나네. 민망하지만 웃옷 좀 벗고 할 게."

도훈은 상의 셔츠를 탈의하더니 가까이 있던 은성에게 휙 던졌다.

"미안한데 좀 갖고 있어줘."

"네, 네."

그리고는 다시 도끼를 들고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다. 도끼가 머리 뒤에서 큰 호를 그리며 내려쳐 질 때마다 그의 두터운 광배근이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쿵! 쩍-!

쿵! 쩍-!

사라는 도끼 자국이 욱신거리는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바짝 오므렸다.

‘하아···저 말 같은 근육 좀 봐. 아시아 남자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죄다 과장된 것이었어.’

사라가 한국행을 결심할 때 고심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이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남성미를 강조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비해, 아시아인 남자들은 비쩍 마른데다 그곳도 왜소하다는 풍문을 자주 들은 것이다.

하지만 도훈의 물건을 접한 그녀는 그것이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한 왜곡된 시선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충분한 크기, 정신줄 놓게 하는 압도적인 파워. 게다가 상처를 위로하는 섬세함까지.

도훈은 그녀가 찾던 이상형임이 틀림없었다.

혜은 또한 오빠의 달라진 모습에 무척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알던 오빠가 아니야.’

도훈의 운동 능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타고난 피지컬에 신경도 좋은 편이라, 어려서 부터 어떤 운동이든 곧잘 배우곤 했다. 그에 반해 성격은 과묵하면서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부끄러움도 많고, 특히 여자 앞에선 말도 잘 못 꺼냈다. 저런 외모와 몸뚱이를 가지고도 여자를 쉽게 못 만나던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과감하게 웃통을 벗어 재꼈다. 그리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과시하듯 박력 있는 도끼질을 선보이고 있었다.

‘···물론 저런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혜은은 남성적으로 변해버린 오빠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뜨거워졌다.

앞선 두 여인들처럼 은성 역시 도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완전 짐승이야. 도훈 오빤.’

계속된 장작패기로 잔뜩 펌핑된 도훈의 몸은 땀으로 얼룩졌다. 핏줄이 선 팔뚝은 강철보다 단단해 보였고, 성난 등 근육이 잔뜩 웅크려질 때면 자기도 모르게 꼴깍 침이 넘어갔다.

‘어쩜 저렇게 남자다울까?’

은성은 우연히 받아 든 도훈의 셔츠를 들어 몰래 땀 냄새를 맡았다.

‘하아···. 냄새도 마음에 들어.’

그것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흥분시키는 최음제처럼 여겨졌다. 은성의 호감도는 계속 높아져 갔다.

한편 그릴 위에서 스테이크를 굽던 성민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본래는 멋지게 고기 굽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여성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고 싶었는데, 여동생을 포함 사라나 혜은마저도 도훈의 도끼질만 구경하는 것이었다.

‘이, 이 뭐야? 왜 내 쪽은 쳐다도 안 보지?’

마치 고기 굽는 시종이라도 된 느낌에 성민은 자존심이 확 상하고 말았다. 별장 제공도 자신이, 재료도 자기 돈으로, 심지어 고기까지 굽는 대출혈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 이럴순 없어!’

"성민 오빠, 고기 잘 구운신당."

물론 한 명 정도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가 있긴 했다. 그게 주근깨 가득한 못난 스테파니였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응."

"전 요리 잘하는 남자가 엄청 섹시해 보이더라고요."

스테파니가 입을 헤벌쭉 벌린 체 성민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성민은 그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걸려도 하필 저런 쭉정이만···.’

"이봐 도훈. 장작은 이제 충분해 보이는데? 그만해도 되겠어."

보다 못한 성민이 도훈의 장작 패기를 중지시켰다. 더 시켜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여기 하던 것만 마저끝내고."

도훈은 성민의 말은 들은 체도 한참 더 장작을 팼다. 결국 한 무더기의 장작을 쌓은 뒤에야 그의 도끼질이 멈추었다. 혜은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건을 들고 뛰어갔다.

"오빠, 고생했어. 힘들지?"

그녀는 과감히 도훈의 몸에 맺힌 땀을 닦았다. 여동생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한 과감한 터치에 사라와 은성의 눈에 질투의 불이 붙었다.

‘아, 부럽다. 나도 만지고 싶은데···’

‘도훈 오빠 가까이 가면 땀 냄새 더 맡을 수 있지 않을까?’

도훈은 사람들의 시선이 민망했는지, 혜은의 수건을 뺏어 들고는 스스로 땀을 닦았다.

"괜찮아. 이런건 내가 할게."

"칫. 동생이 고생했다고 닦아준다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보잖아."

애써 여동생을 무마시킨 도훈은, 황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성에게로 다가갔다.

"내 옷 좀 다시 줄래?"

"예? 아, 앗! 옙!"

은성은 도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만 뻗어 셔츠를 건넸다. 도훈은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흐흐. 좀 더 들이대 볼까?’

"아, 등 쪽에 땀이 덜 닦였네. 여기 좀 닦아줄래?"

도훈이 뒤로 돌려 수건을 내밀자 은성이 수줍은 표정으로 수건을 받았다. 가까이서 본 도훈의 등 근육은 근섬유가 쩍쩍 갈라진 게 보일 만큼 완벽한 데피니션을 자랑했다.

‘아아···. 내 심장이 왜 이리 떨리지?’

조심스럽게 땀을 닦던 은성은 은은하게 올라오는 도훈의 살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눈앞에선 거대한 등판은 태평양처럼 광활했다. 저 넓은 어깨에 으스러지듯 안길 수만 있다면···.

"고마워."

"네, 네."

도훈은 셔츠를 걸쳐 입고는 혼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성민을 도우러 갔다. 은성은 손에 든 수건을 몰래 챙기며 생각했다.

‘이건 머리맡에 깔고 자야겠어.’

자신도 모르게 도훈의 채취에 흠뻑 빠져버린 은성이었다.

< 118. 즐거운 사라-2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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