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0화 (110/2,000)

< 112. 즐거운 사라-17- >

[설마 고성민의 여동생을 공략하실 생각입니까?]

‘맞아. 놈이 혜은일 노렸으니, 나는 반대로 놈의 여동생을 노리는 거지. 이른바 되치기랄까?’

[뒤치기요?]

‘아니 되치기 말야. 상대의 기술을 역으로 거는. 복싱의 카운터 펀치 같은 거.’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네가 농담도 할 줄 알아?’

[왜 이러십니까? 최근 인공지능에 탑재되기 시작한 딥러닝 은 천상계에선 이미 오래전에 완성된 기술입니다. 저 역시 학습능력을 갖추고 있고요.]

‘그 놀라운 학습능력으로 배운 농담이 고작 뒤치기란 소리네?’

[플레이어 맞춤식이랄까요?]

‘뭐 인마?’

[아무튼, 뛰어난 발상입니다.]

‘어이, 말 돌리지 말고.’

[아뇨 진심입니다. 게다가 주인님의 역공 전략은 무려 일석 삼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삼조라니? 첫째, 고성민을 엿 먹인다. 둘째, 재벌가 딸을 공략해 자금줄을 확보한다. 이것 말고 또 있어?’

[네, 위와 관련된 위업이 존재하거든요.]

‘위업? 재벌가 막내딸 공략 위업도 있어?’

[정확히는 ‘너넨 거기 금테 둘렀냐?’ 위업입니다. 디스플레이에 띄워 보겠습니다.]

★달성 가능한 위업 리스트(현재까지 4/108)

19. 너넨 거기 금테 둘렀냐? (현금, 예금 및 유가증권, 부동산 등의 재산 총액이 상위 0.1%에 드는 여성과 관계 시 달성)

-그녀를 공략하면 당신도 이제 금수저.

-업적 보상 : 아이템 증정

「기적의 복리 계산기」 - 해당 아이템은 당신의 포인트에 이자를 붙여 줍니다. (금리는 변동됨.)

[고성민이 가진 재력으로 봐선 그의 여동생 고은성 역시 재산 총액 상위 0.1%에 들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겠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니까. 근데 보상 아이템이 좀 신기하다?’

[설명처럼 보유하신 포인트에 복리 이자를 붙여 주는 아이템입니다. 장차 포인트 적립에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고은성만 공략해내면 업적도 완수하고 아이템까지 딸려 온다는 소리네? 고성민에 대한 응징은 차치하고라도 말이야.’

[그렇죠.]

이거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역공이다.

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상대는 평범한 부자가 아닌,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재벌가.

과연 내 능력으로 고은성을 자빠뜨릴 수 있을까?

게다가 고은성 공략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고성민과 엮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혜은이를 미끼로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주인님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대어를 낚기 위해선 미끼 또한 먹음직스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혜은이는 미끼 같은게 아냐.’

[먹음직스러운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러니 고성민 정도의 인물이 꼬였을 테고요.]

‘혜은일 놈에게 바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당연합니다. 제 말은 더 큰 보상을 원할 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 해야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네. 이번 공략은 특별히 공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민의 음흉한 수작으로부터 여동생을 디펜스하고, 동시에 성민의 여동생을 자빠뜨려야 하는 거죠.]

‘오케이. 그건 차차 작전을 세워보자. 뭔가 수가 있겠지. 그 전에 혜은이부터 따끔히 혼내고.’

나는 여동생이 쉬고 있는 호텔 룸으로 들어갔다.

***

늦은 시각인데도 세 여인은 잠을 청하지 않고 모여있었다.

사라와 그녀의 여동생 스테파니, 그리고 혜은.

대강의 사정을 파악한 사라가 이미 여동생을 크게 혼내고 난 뒤였으므로 도훈은 더이상 그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다만 혜은이만 따로 밖으로 불러냈다.

"넌 무슨 생각으로 거기 간 건데?"

"아니 난 그저···."

혜은은 도훈의 꾸지람이 두려워 고개를 떨구었다.

도훈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 사람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 그렇지만 아무리 친구가 붙잡혀 있더라도 네가 거길 왜 직접 가? 나한테 부탁했어도 됐잖아."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뭐?"

"나 때문에 옷도 다 젖은 데다, 또 괜히 밖에 나왔다가 사라 언니랑 괜히 마주치면 오빠 입장이 난처해질까 봐 그랬어."

"흠···."

도훈은 자신을 생각해서 그랬다는 혜은의 대답에 더 화낼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녀가 성민의 엉큼한 속셈을 간파하고 따라나섰을 리는 만무. 사기당한 사람에게 사기당한 네가 잘못이라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혜은은 오빠의 화가 어느 정도 풀린 기색을 보고, 이번엔 자신이 질문했다.

"오빠, 근데 아깐 왜 그랬어?"

"내가 뭘?"

"막 엄청 흥분해서는 그 사람 마치 때려죽일 것처럼 굴었잖아."

"아, 아니 그건···."

도훈이 당황하자 혜은이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왜? 내가 어떻게 됐을까 봐?"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맞잖아. 혹시 내가 막 그 사람한테···."

"그만해. 듣기 싫으니까."

"피. 솔직하지 못해."

혜은은 날름 혀를 내밀더니 도훈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껴왔다.

"뭐, 뭐야. 저리 안 가?"

"왜에~ 오빠가 좋으니까 그렇지."

"이 꼬맹이가 진짜!"

"···오빠."

팔짱을 낀 혜은이 도훈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 도훈도 입을 다물었다. 키 차이 한참 나는 남매는 그렇게 서로를 말없이 응시했다.

‘뭐야. 왜 저런 눈빛으로 보는데? 심장 떨리게.’

도훈이 침을 꿀꺽 삼키는 사이 혜은이 입을 열었다.

"나, 오빠가 와줘서 고마웠어."

"······."

"오빠가 그렇게 불같이 화내서 기뻤어. 방에 돌아오니까 사라 언니가 말해주더라. 집에 가는 길에 나랑 연락이 안 돼 걱정돼서 다시 돌아왔더라고."

"······."

"근데 언니 말이 너무 웃긴 거 있지? 오빠 옷이 많이 젖은 게, 뛰어오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그렇다는 거야. 키키. 아까 욕조에 빠져서 그런 줄도 모르고."

혜은의 말에 도훈은 사라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실은 도훈 혼자만 알고 있는 셈.

"···난 네 오빠니까."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오빠가 동생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치. 그럼 내가 가족이라서 걱정했다는 거야?"

"그럼 또 뭐?"

"으! 밉다, 진짜!"

혜은은 팔짱을 빼더니 흥-! 하고 토라졌다.

등 돌린 혜은을 향해 도훈이 뒤에서 불쑥 껴안았다.

"헛!"

갑작스러운 도훈의 백허깅에 혜은이 호텔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사라 자매라도 나오는 날엔 오해를 피할 수 없는 자세.

당황하는 혜은을 향해 도훈이 조용히 속삭였다.

"가족 아니라도 걱정했을 거야."

"오, 오빠···."

"넌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히잉. 갑자기 이러면···."

혜은은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마조마 했다. 두 볼은 안면 홍조증에 걸린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도훈의 손이 감싸 쥔 허리는 긴장으로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너 뺏기고 싶지 않아."

"오빠···."

혜은이 고개를 뒤로 돌려 도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벌컥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후다닥 거리를 벌리더니 헛기침을 했다.

"도훈, 언제까지 혼내고 있을 거야. 그만 들어들 와요."

사라였다.

***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각.

혜은의 방에 모인 네 사람은 내일의 일정 문제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럼 내일은 경복궁이랑 한강 유람선, 남산타워 코스인가요?"

"응, 중간에 맛집도 몇 개 알아놨어. 한국 왔으니까 한정식도 먹고···."

"저기 중간에 껴들어서 죄송한데요."

스테파니가 말을 끊었다. 네 사람 모두 대화할 땐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녀도 도훈과 사라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왜?"

"혹시 펜트하우스에 사시는 분도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스테파니!"

"난 싫어."

사라와 혜은이 반대했지만, 스테파니는 모처럼 필사적이었다.

"실은 아까 약속해 버렸거든요. 저희 가이드 해 주기로."

"뭐라고? 왜 네 멋대로 그런 결정을 해?"

"난 그 사람 별로야. 왠지 기분 나빠."

그러나 도훈은 잠자코 스테파니의 의견을 경청했다.

"스테파니, 너랑 성민이 약속을 했다고?"

"네. 사실 아까 일은 제가 잘못한 부분도 있고···. 물론 도훈 오빠가 가이드해 주시기로 했으니까 계획대로 하는 게 맞는데···."

"호의를 거절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는 거구나?"

"네, 네! 그분은 좋은 뜻으로 제안한 건데 이제 와 안 된다고 하기도 그러니까요. 그래서 같이 다니기라도···."

스테파니는 본인이 성민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은 쏙 뺀 체 핑계를 댔다. 다들 반대했지만 다른 꿍꿍이를 가진 도훈 역시 스테파니 편을 들었다.

"흠, 나쁘진 않겠는데?"

"오빠?"

"도훈씨!"

"아, 실은 나도 성민이랑 얘기 좀 하다 내려왔거든. 오해해서 흥분한 거 미안하다고. 근데 생각보다 쿨한 사람이더라고. 자기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네? 그래서 그 자리서 화해하고 바로 친구 먹었어."

"그쵸? 매너 되게 좋아요. 또 차도 있다니까 이동할 때 대중교통 이용 안 해도 되고."

"흠, 난 좀 찝찝한데···."

혜은이 넌지시 눈치를 보냈지만, 도훈은 모르는 척 시선을 회피했다.

‘미안, 혜은아. 놈을 낚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라.’

"또 남자가 둘이면 더 든든하잖아. 사라, 괜찮지?"

"난 도훈씨만 괜찮다면 OK."

사라까지 동의하면서 결국 성민의 합류가 결정되었다.

혜은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다수결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스테파니 혹시 그 사람 연락처는 받았어? 같이 다닐지 일단 물어는 봐야지."

"네, 저한테 아까 번호 알려줬어요. 여기."

스테파니가 저장한 번호를 도훈에게 넘겼다.

도훈은 폰에 저장을 마친 후 좌중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럼 내일 아침 출발하는 걸로 하고 다들 자. 난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볼게."

"이 시간에? 지하철도 끊겼을 텐데?"

"하는 수 없지. 택시 타야지."

"그러지 말고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같이 움직여요."

"여기서?"

사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응. 내 방에서."

그녀의 애매모호한 표현에 혜은이 발끈했다.

"언니!"

"아, 아니 도훈씨가 내 방에서 자고 난 여기서 잔다는 소리였어."

"아···."

도훈은 망설였다.

사라의 의도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하지만 워낙에 사라의 입장은 강경했다.

게다가 혜은까지 거들기 시작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오빠가 여기서 자고 내일 같이 출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괜히 택시비 쓸 필욘 없잖아?"

‘쟨 또 왜 저래?’

두 사람의 설득에 도훈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사라한테 좀 미안해지는데···."

"아니에요. 도훈 씨가 저희 때문에 고생 많이 하는 걸요."

사라는 방으로 가 침구 세트를 옮겨왔다.

"그럼 아침에 봐."

"네."

세 사람을 재운 도훈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1층으로 향했다. 오늘 밤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

부르르!

핸드폰을 확인하니 사라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사라 : 도훈 씨, 저에요 사라. 애들 잠들면 그 방으로 다시 갈게요. 나중에 문 좀 열어주세요.

‘헐,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는데,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

혜은 : 오빠, 나 오빠랑 같이 자도 돼?

‘어랍쇼? 얘 봐라?’

[인기 많으시군요. 역시 마성의 남자. 후후.]

‘그런 소리 마.’

[하지만 두 사람 다 목적한 바를 달성하긴 어렵겠군요. 서로 잠들 때까지 뜬 눈으로 버텨야 할 테니까요.]

‘어차피 응할 여유도 없어. 지금부터가 중요하니까.’

[네?]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 한 뒤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담배를 입에 물고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어, 나야 도훈."

-도훈? 아아···. 무슨 일이지?

그때 수화기 사이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구야?

-아니, 그냥 친구.

-오빠 요새도 아무 여자나 만나고 다녀?

-무슨 소리야? 남자라니까.

오호라. 쟤가 고은성이구나.

목소리 제법 귀여운데?

나는 수화기 바깥으로 소리가 들리게끔 목소리를 크게 해 대답했다.

"내일 얘들 가이드 하기로 했다던데 맞아? 아까 일정 짜는데 스테파니가 그러더라고.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그 얘긴 내일 통화하면 안 될까?

"지금 통화하기 곤란한 상황이야?"

-운전 중이라.

-가이드라니? 오빠가 누굴 가이드 해?

놈의 여동생은 꼬치꼬치 통화에 끼어들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성민은 싫은 내색 없이 차분하게 여동생에게 해명했다.

-그게 아니고 사정이 좀 있어서 그래.

-사정이 뭔데? 내일은 나랑 놀기로 했잖아. 오빤 어쩜 여동생이 오랜만에 한국 왔는데도···.

-일단 나중에 전화할 게.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하지만 통화 한 번으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인천공항에서 여동생을 태우고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녀석도 여동생에겐 꼼짝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담배를 모두 태운 나는 호텔 프론트로 갔다. 외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이곳은, 늦은 시간임에도 환하게 프론트가 운영되고 있었다.

"저기, 예약 좀 확인하려는데요."

"네, 손님. 성함이?"

"고성민입니다."

"고성민 님···. 아, 1시간 전에 전화로 예약하셨군요."

"네."

"신분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예상대로 절차가 깐깐하다.

본인 아니면 확인조차 불가능하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지갑을 차에 두고 내렸네요."

"아니면 주민 번호를 여기 기입하셔도···."

"아니에요. 어차피 카드도 필요하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나는 밖으로 나가는 척하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본래 사라가 묵기로 했던 방.

룸에 설치된 전화기를 이용해 성민의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인터콘티넨탈 호텔 프론틉니다. 예약하신 방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놀랍게도 내 입에선 바로 전 프론트 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112. 즐거운 사라-1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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