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5화 (95/2,000)

< 97. 즐거운 사라-2- >

***

4박 5일간의 일정이라 그런지 다들 들고 온 짐이 한 가득이었다. 공항에서 제공하는 카트에 짐을 실은 네 사람은, 서울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멀리 돌아가는 공항 철도와는 달리 숙소로 잡은 인터콘티넨탈 호텔까지 직행하는 노선이었다.

도훈의 옆 좌석에서 앉은 혜은은 오랜만에 해후한 오빠가 반가운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오빠, 요즘엔 뭐하고 살아?"

"응. 알바는 어제부로 끝났고 다음 주부턴 복학해야지."

"편의점 알바 말이지?"

"응."

"그거 3달간 했댔나? 돈 많이 벌었겠다. 나 맛있는 거 많이 사줘."

도훈은 천진하게 웃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많이 벌기는 개뿔. 얘가 아직 헬조선에 대해 모르나 보군. 네가 있는 미국과 여긴 많이 다르단다.’

"응. 알았어."

하지만 도훈은 그러고마 하고 대답했다.

로시에게 들은 경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도훈군은 어린 시절부터 여동생을 끔찍이 아꼈습니다. 다섯 살 터울이라는 나이차 때문이지요. 되도록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 주도록 하십시오.]

‘어리광 부리고 때 쓰는 애들은 영 별론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님이 의심사지 않는 것 아닐까요? 갑작스런 변화는 위업합니다.]

‘알겠어. 어차피 이틀만 죽어지내면 되는 거니까.’

4박 5일간의 일정 중, 여동생을 가이드 하는 시간은 서울에 머무르는 주말 이틀 여. 그것도 첫날은 숙소까지 안내하기만 하면 끝이다. 차후 일정은 자기네들끼리 움직이기로 했다.

"서울 구경 끝내고 어디로 간댔지?"

"뭐야? 벌써 까먹었어? 나랑 통화할 때 안 듣고 뭐한 거야? 오빠 진짜!"

혜은이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워낙에 예쁜 얼굴 덕인지, 짜증을 내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지는 도훈이었다.

‘얘는 정말 얼굴이 무기구나. 몸매도 고등학생 답지 않고···.’

"수원간다고 했잖아. 사라가 화성 보고 싶다고 해서."

"아, 그랬지. 미안. 그때 알바 늦어서 정신없었어."

"수원 화성. 좋아요!"

통로를 기준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라가 ‘화성’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대화에 참여했다. 창가 쪽으로 앉은 여동생 스테파니는 장기간의 비행이 피곤한지 창문에 머릴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사라가 계속 말했다.

"도훈 씨도 수원 화성 카보셨서요?"

‘한국말 엄청 잘하네. 발음만 좀 고치면 방송 출연해도 되겠는걸.’

"네. 어렸을 때요."

그때 혜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도훈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라니? 우리가 언제 거길 가봤어?"

"아···. 그러니까 내 말은···"

***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젠장.

나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말았다.

이정우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방문했던 수원화성을 떠올리고 말았던 것이다.

[주인님, 도훈군의 가족은 수원화성에 가본 기억이 없습니다.]

‘알았어. 적당히 둘러대 볼게.’

"대학교 1학년 때 말이야."

"대학교 1학년 때가 어떻게 어렸을 때야?"

혜은의 눈빛에 의구심이 번져갔다.

팔짱을 끼고 나를 추궁하는 모습이 무척 날카롭다.

"아, 아니 군대를 다녀오기 전이니까 어렸을 때라고. 사라씨 그거 아시죠? 한국 남자들 의무적으로 군대 가는 거. 저도 최근에 전역했어요."

"징병제요? 알아요."

"우아, 그런 단어도 아세요?"

"공부 했어요. 한쿡의 역사, Culture. hum, 그게 무···"

"문화요?"

"Yes, 무놔."

"무놔가 아니고 문.화."

"Thanks, You are very kind."

"Welcome."

그러나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려던 나의 시도에도 혜은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빠 지금 말 돌리는 게 너무 수상한데. 혹시···."

꿀걱- 역시 가족은 속이기 힘든 것일까?

긴장으로 얼굴이 딱딱해지는 데 혜은이 갑자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여자 친구랑 갔구나? 그지?"

"아···."

뭐, 뭐냐 이건?

"나도 이제 성인이라구. 알건 다 알거든? 외박했어?"

"아니, 그건 아니고."

"왜 우리도 수원 가면 숙소 잡아야 해서 물어보는 거야. 호텔은 어디가 좋아? 침대는 괜찮고?"

의심을 피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갑자기 동생의 참견이 주제넘게 느껴졌다.

"혜은아. 오빠한테 그런 거 묻는 거 실례야. 무슨 고등학생이 성인이야?"

"What? 나 미국에선 차도 몰거든? 라이센스도 있어."

"그건 미국이고 여긴 한국이잖아. 그리고 차만 몰면 다 성인이냐?"

"그럼? 뭘 해야 성인인데?"

맹랑하게 따지고 드는 혜은의 모습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오냐오냐 키웠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섯 살 차이나는 오빠한테 덤벼든단 말인가?

"요 쬐끄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

가볍게 머릴 콩 하고 찍자, 혜은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주, 주인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뭐가 안 돼? 이제 18살 밖에 안 먹은 게 발랑 까졌는데, 그럼 오빠가 돼서 이걸 그냥 두냐?’

[그, 그게 아니고. 도훈군은 평생 한 번도 여동생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뭐, 뭐라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내가 혜은을 달래려 했지만 이미 혜은은 충격으로 얼굴을 파묻고 훌쩍이고 있었다.

"흑흑, 오빠가 날 때렸어."

"혜, 혜은아 그건 때린 게 아니고."

"몰라!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엉엉!"

"미안, 나도 모르게."

난처한 표정으로 사라를 쳐다보는데, 사라 역시 민망한 얼굴로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녀도 여동생의 친구일 뿐, 혜은이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다.

"우에에에엥!"

리무진 버스에서 혜은이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여 혜은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여기 공공장소라고."

"읍읍!"

"미안.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악!!!"

혜은이 갑자기 내 손바닥을 깨물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쯤 되자 앞뒤 좌석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어이 거기. 버스 전세 냈소? 거 적당히 좀 합시다."

"자는데 시끄러워 죽겠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해야 했다.

제기랄. 무슨 십 세 이하 꼬꼬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십 새 같은 경우람?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아직도 손바닥엔 혜은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흥. 오빠 미워."

그러면서 몸을 창가 쪽으로 훽 돌려 앉는 혜은.

동생만 아니었음 넌 나한테 처 맞았어.

"Are you Ok?"

이빨에 찍힌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으니 건너편 좌석에 앉은 사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사라는 여전히 마음이 쓰이는지 계속 내 손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금발의 푸른 눈이 매력적인 백마는 무척 자상한 성격으로 보인다.

"한국어는 어쩌다 배우시게 됐어요?"

나는 토라져서 자는 척 하는 혜은을 뒤로 한 체 이제 사라와 얘기를 나누었다.

"K-Pop 좋아해서요."

"케이팝? 한국 음악요?"

"Yes, Do you Know PSY?"

"싸이요? 알죠.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가 너무 웃켜요. 도훈씨는 어떤 카수 좋아해?"

가수? 내 나이대 가수면 거의 응답하라 1988인데···.

"저는 옛날 노래 좋아해요."

"옛날? Old Pop?"

"예압. 아마 말해도 모를 거예요."

"그래도 알려줘."

불쑥 불쑥 반말을 섞는 사라였지만, 왠지 기분 나쁘기보다 귀엽게 느껴진다.

이것도 백마의 위엄일까?

"김광석이라든가 유재하, 그리고 들국화 같은···."

"I Know 들구콰!"

"들국화를 안 다구요?"

"Yes, My favorite song is [Don’t Worry]"

돈 워리? 그게 뭐야?

내가 고개를 갸우뚱 하자 사라가 허밍으로 조그맣게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듣는 순간 바로 노래가 떠올랐다.

"아하, 걱정 말아요 그대?"

"Yes, yes!"

"아니, 이 노래 엄청 오래됐는데 어떻게 알아요?"

"드라마에서 봤어. 최근에. 한쿡 드라마. 많이 봐."

내가 너무 말을 빨리 했을까? 속도를 맞추느라 사라의 문법이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아, 그러고 보니 작년에 복고풍 드라마가 유행했는데, 그때 리메이크 돼서 다시 나온 모양이군. 길거릴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도훈씨. 그 노래 알아요?"

"알죠. 좋아했으니까."

"노래 잘 해요?"

그 순간 느낌이 왔다.

K-Pop이 좋아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라.

분명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타입일 것이다.

"네. 뭐, 조금?"

"하-! 웃기시네! 안보는 사이 거짓말 엄청 늘었다?"

자는 척 누워있던 혜은이 또 다시 참견해 왔다.

"오빠가 노래를 잘한다고?"

‘로시, 내가 혜은이 앞에서 노래 부른 적 있어?’

[없습니다. 다만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여동생과 달리 이도훈은 운동 분야 말고는 크게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제부턴 자존심의 문제다.

사라가 보고 있는 앞에서 거짓말쟁이로 몰릴 순 없다.

"너 내 노래 들어 본적 있어?"

"아니? 한 번도 부른 적 없잖아. 창피하다고."

"근데 왜 거짓말이라고 해?"

"안 봐도 뻔하지. 지금 사라 앞에서 잘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흥."

사라는 또 다시 시작된 남매간의 다툼에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동생이 아니라 웬수구나, 이 뇬은.

"뭐. 믿든 말든 자유 니 자유야."

"치!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은 구박하고, 오늘 처음 본 사라한테만 친절하고."

"혜은아."

"흥, 됐거든?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그제야 깨달았다.

이도훈의 여동생은 몸 만 컸지, 얘나 마찬가지라는 걸.

어린애를 논리로 설득할 순 없는 일이다.

아이를 키워 본 입장에서-물론 친딸이 아니라는 건 함정-그녀를 바라보자, 어르고 달래야 할 꼬맹이처럼 느껴졌다.

"속상하다. 오빠가 너 오랜만에 한국 온다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귀가 솔깃한지 혜은이가 나를 쳐다본다.

이런 멘트는 질색이지만 지금은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할 시점이다.

"···정말?"

"내가 너 좋은데 구경시켜 줄려고 밤새 관광지 뒤지고, 맛 집도 찾아 놨어. 근데 이렇게 만나자 마자 투닥거리니까 너무 속상해."

"흐음."

"같이 있는 시간도 짧은데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응? 내가 이렇게 부탁할 게."

자존심을 굽히고 통사정을 하자 혜은이도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화해의 악수를 내밀었다.

"흥, 그래. 사라 언니도 우리 때문에 불편해 하는 거 같으니까."

"고마워."

‘로시. 혜은이가 조금 마음이 풀린 것 같지?’

[그렇게 보이는 군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호감도를 확인해 보는 것이죠.]

‘호감도를? 보나마나 지나가는 방아깨비보다 낮을 걸?’

[꼭 그렇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남매 사인걸요.]

‘그래. 어쨌든 추천멘트를 알아야 비위 맞추기도 쉬울 테지.’

로시에게 명령해 혜은의 정보창을 띄웠다.

슬쩍 시계를 보는 척 화면을 쳐다보는데 놀라 까무러칠 뻔 했다.

‘헉?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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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이혜은

나이 : 18

호감도 : 82/100

개방성 : B

성감대 : 클리토리스, 젖꼭지, 똥구멍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시면 ‘금단의 열매 위업’을 달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친오빠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다른 여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녀의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추천멘트 : "혜은이 많이 성숙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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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씨발! 이게 뭐야?’

[놀라운 일이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이 기계 맛탱이 간 거 아냐? 어떻게 친동생이 나한테···.’

[놀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지만, 기계가 고장 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천상계의 기술력은···.]

‘닥쳐!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린데? 여동생의 성감대를 왜 내가 봐야 하냐고?’

[진정하십시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혜은양과 진짜 남매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개소리가 어딨어?’

[어쨌든, 그리 흥분할 일은 아닙니다. 가족이다 보니 호감도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리고 뭐? 금단의 열매? 설마 근친 위업도 있었냐?’

[네. 100번 위업입니다.]

‘근친상간은 불법 아냐? 불법적인 위업은 없다며?’

[정확히는 동성동본 결혼만이 불법이죠.]

‘···뭐라고?’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위법적인 요소가 없다는 말입니다. 형법에 따르면 만 13세 이상인 사람 둘이서 합의해서 했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범죄가 아닙니다. 설사 남매끼리 혼인을 했다 해도 혼인 무효사유일 뿐 범죄는 아닙니다. 다만, 합의해서 하지 않은 경우는 강간죄 쪽으로···.]

‘개소리 작작해!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저는 그냥 규정을···.]

‘아가리 싸물랬지?’

[······.]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세상에, 근친상간의 위업까지 있을 줄이야. 아니 그보다 형법상 처벌 규정조차 없다는 소리가 더욱 기막혔다.

당연히 범죄 아닌가? 어떻게 여동생을.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트에 몸을 기대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옆 좌석에 앉은 혜은의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지자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로시 말마따나, 따지고 보면 혜은은 이도훈의 여동생일 뿐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아닌가?

"오빠? 자?"

"······."

"피곤했나 보네. 갑자기 잠들고."

자는 척 누워있는데 혜은이 무릎에 올려 둔 담요를 내 몸에 덮어주었다. 그녀의 몸에 밴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자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린다.

나는 진저리 치듯 몸을 반대로 돌렸다.

여동생에게 반응하는 내 몸뚱이가 저주스럽다.

< 97. 즐거운 사라-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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