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옆방의 BJ-19- >
‘이것으로 위업 5개째 달성인가? 보상은 뭐지?’
[하수2Lv 승급은 앞으로 7개의 위업을 추가로 도달할시에 가능합니다. ]
‘아, 맞다. 그랬지? 아직 한참 남았구나 그럼.’
[진행 중인 위업 목록을 알려드릴까요?]
‘그건 나중에. 일단 희주부터 정리하고.’
나는 뱀허물처럼 내던져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섹스가 끝난 후 파트너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특히 현자타임까지 와버린다면, 그 짜증이 배가 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유격 마친 복귀 행군 길에 멘 군장과도 같다. 한마디로 어디론가 패대기쳐 버리고 싶은 짐 덩어리라는 소리지.
"이제 나갈까?"
"잠시 만요. 아직 시간 남았는데 좀만 얘기하다가요."
"······."
아니나 다를까 희주가 뜸을 들였다.
남녀는 이런 부분에서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번식 행위를 끝낸 남성은, 더 이상 씨뿌리기에 관심이 없다. 혹시나 위협적인 포식자가 나타나진 않을지, 아니면 내일 먹을 식량은 충분한지 등 미래에 대한 대비를 위해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을 10달 동안 배부르게 만들 수 있는 남성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확보하려 든다. 임신이 되는 순간 방어력은 급감하고 생산성 또한 저하된다.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지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적 차이가 섹스 후 남녀의 전혀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다.
남자는 치근덕거리는 여자가 하염없이 귀찮아지고, 여자는 남자가 단지 쾌락을 위해 먹고 버린(?)것은 아닌지 어느 때보다 전전긍긍해 한다.
"···시간 추가한 돈이 아깝잖아요."
희주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어떤 핑계를 대건 구차하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냥 담배 땡 겨서 그랬어."
"아···."
희주를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적절한 핑계를 대 주었다.
"남자들은 하고 나면 담배가 피우고 싶은가 봐요."
"그렇지, 아무래도. 여기서 피긴 뭐하잖아."
나는 벽 한쪽에 붙은 [실내금연] 스티커를 가리켰다.
"알았어요. 그럼 5분만 있다가 가요. 저 숨만 돌리구요."
"그래."
합의점을 찾았다.
5분 정도야 뭐.
가만,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헉. 벌써 4시가 넘었잖아?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가버린 거야?’
[피씨방에서 2시간, 점심에 1시간, 마지막으로 멀티방에서 2시간 20분 경과하셨습니다.]
‘아니 지금 그걸 물은 게 아니고, 이래가지곤 오늘 헬스장 못 가겠는데?’
[송미나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매일 얼굴도장 찍어야 하는데···.’
[자주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궁금하게 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거국적으로 보십시오.]
‘오올, 그런 조언도 할 줄 알아?’
[저야 주인님의 매니저와 같은 존재 아니겠습니까?]
‘매니저는 무슨. 시도 때도 없는 잔소리꾼에 걸핏하면 전기충격이나 주는 못된 녀석이지.’
[흑흑.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서글프군요.]
‘감정 따위 없는 거 다 알거든?’
"···저랑 할 말 없으신 가 봐요."
로시랑 한창 속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희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볼 장(?) 다 봤으니 관심이 떨어졌다 생각하는 것일까?
"아냐. 아까 네가 했던 말 좀 생각하고 있었어."
"뭘요?"
"1학년 여자애들이 나한테 관심 있다는 말."
"오빠 누구 맘에 드는 사람 있어요?"
"아직까진 딱히."
"에이, 제가 눈치하난 귀신이거든요? 있으시잖아요. 누군데요?"
"누군 줄 알면 다리 놔주게?"
"헐, 그 발언은 좀 너무하신데요?"
"왜? 섭섭해?"
"당연하죠. 아니 뭐 오빠가 다른 사람이랑 잘 수도 있는 거긴 한데···."
"한데?"
"그래도 그게 제 동기라면 좀."
"내가 입 놀리고 다닐까봐서 그래?"
"그것도 걱정되고···."
"걱정 마. 나 그렇게 입 싼 사람 아니니까. 그리고 너도 비밀 꼭 지켜."
"당연하죠. 오빠한테 콘돔 들고 다니는 것 까지 다 들켰는데···. 헤픈 여자로 소문나는건 저도 싫어요."
나는 희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원래 잘 주는 타입이야?"
"저요?"
"응."
"그런 편이죠? 남자들이 유혹하면 저도 모르게···."
"너도 어지간히 밝히는 구나. 이러다 과에 구멍동서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뭐라구요? 참 나."
"상관없어. 나도 그런 건 터치할 생각은 없으니까. 대신 어디서 누구랑 자건간에 서로에 대해선 입 싹 닫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아요. 저도 개념 있거든요? 근데 혹시 오빠 우리 동기 한번 씩 다 건드릴 생각은 아니죠?"
‘크크. 니가 세 번째라는 걸 모르나 보구나. 이미 새터에서 정음이랑 효민이 뚫어놓고 왔는데.’
"저야 뭐 엔조이 할 수도 있다고 생각 하는 편인데, 순진한 애들 너무 상처주지 마요. 특히 정음이 같은 애들은 백퍼 아다 일건데 그런 애들 오빠 이해 못 할 걸요?"
정음을 생각해 주는 척 하지만, 사실 견제하고 있다는 거 다 알거든?
하지만 어쩌니? 이미 정음이도 호로륵 해버렸는데.
"알아서 잘 먹고 다니니 걱정 마라."
"칫. 오빠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완전 난봉꾼이었네."
"내가 순진하게 생겼어?"
"그냥 운동 좋아하고 매너 좋은 오빤 줄만 알았죠."
"근데?"
"하는 거 보니까 완전 프로네요 프로. 전문 배우 하셔도 되겠어요. 이거 칭찬인 거 알죠?"
"응."
희주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서윤과 새벽에 찍기로 한 성방이 떠올랐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소품 살 게 있었지?’
"이제 슬슬 나가자. 알바 가기 전에 들를 때가 있어."
"네."
***
희주와 헤어진 도훈은 그 길로 커다란 잡화점을 찾았다.
"혹시 여기 가면 같은 거 있을까요?"
"가면요?"
"네. 얼굴에 쓰는 종류로요."
"아, 할로윈 데이 때 팔다 남은 물건이 창고에 있을 거예요. 잠시 만요."
남자 점원은 한참 뒤 창고에서 먼지 묶은 박스를 들고 나왔다.
"여기서 찾아보세요. 저희 가게에 있는 건 이게 전부에요."
"네, 감사합니다."
도훈은 박스를 열어 가면을 뒤적거렸다.
할로윈 데이 상품이라 그런지 각종 귀신 탈이 한 가득이었다. 스크림 마스크를 비롯해, 일본의 귀신 탈인 한야, 또 영화 쏘우의 직쏘 가면까지.
"이건 너무 비호감인데···. 조로 마스크 같은 건 없나?"
박스 아래쪽을 더 뒤적이다 보니 좀 더 대중적인 종류가 나왔다. 마블 캐릭터 가면이었다.
"아이언 맨, 헐크, 얼씨구? 이건 캡틴 아메리카?"
도훈이 박스 전체를 뒤졌는데도 조로 마스크는 없었다.
다만 비슷해 보이는 것은 하나 있었다.
바로 베트맨 & 로빈.
하지만 로빈 가면은 눈 주위만 가리는 것이 너무 노출 심했다. 얼굴을 알고 있는 태영이 본다면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도훈은 배트맨 가면을 골랐다. 해당 가면은 입만 드러나 있어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도 알아채기 힘들 것 같았다.
"이걸로 주세요."
"오, 배트맨! 훌륭한 선택이군요. 고담시티를 지켜 주십쇼!"
남자 점원의 시답잖은 농담에 도훈은 피식 웃었다.
‘아니, 대물 배트맨 할 건데?’
쇼핑을 끝마친 도훈은 마지막 알바를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오전 근무자인 수연이 도훈을 보더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오셨어요, 오빠."
"어, 수연이 오랜만이다."
"네."
수연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교대 근무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수연은 한참을 뜸 들이다 도훈에게 따지듯 물었다.
"오빠, 근데 좀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응?"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 끊으시고···.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아, 미안. 새터 때 말이지? 그땐 깨톡 할 상황이 아니라."
"됐거든요?"
"화 많이 났니?"
"···뭐 지난 일이니 어차피 상관없어요. 저 그리고 남자친구 생겼어요."
"응. 하린이한테 들었어."
"그러니까 이제 연락 같은 거 따로 안 하셨음 좋겠어요. 괜히 오해 받기 싫으니까."
"알았어."
"···알았다구요? 그게 다에요? 참나."
수연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옷을 환복하고 가게를 떠나 버렸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수연을 때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좀 심했나?’
[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파트너들의 감정까지 일일이 배려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좀 씁쓸하긴 하네. 다음에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리해야겠어.’
[경험이 자꾸 쌓이다보면 맺고 끊는 것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위업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파트너를 스쳐지나가듯 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소 정 없이 보이더라도 내칠 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게 좋습니다.]
‘알았어. 근데 수연인 적절한 타이밍에 남친이 생겨 떨어져 나갔다지만, 나중에 만날 사장이 심히 걱정이군.’
[허영자 말씀입니까?]
‘그래. 스폰을 해서라도 나를 붙들고 싶어 하는 영자를 어떻게 떨궈낼지 말이야.’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힘내십시오.]
‘참 그나저나 아까 알려주기로 했던 것 말해봐.’
[진행 중인 위업 목록 말씀이시죠?]
‘그래. 기왕이면 하던 걸 마무리하는 게 빠를 거 같으니까.’
[디스플레이를 보시기 바랍니다. 기 달성한 위업과 현재 진행 중인 위업을 모두 띄워 드리겠습니다.]
[달성한 위업 목록 (5/108)]
1. 모녀 덮밥.
2. 강한 여성, 왜곡된 성욕.
3. 명기를 찾아서.
4. 아다 폭격기.
5. 후배위하는 선배.
[진행 중인 위업 목록]
*밀당의 달인(1/2)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1/2)
*같이 할래?(3/10)
*SM마스터 (S도달도 : 54%, M도달도 : 45%)
*저기요, 지스팟 좀 켜주세요. (최고 기록 : 102ml)
***
내가 이렇게나 많은 위업에 도전했었단 말인가?
그동안 달성한 위업들을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가만 다음 레벨업까지 7개의 위업을 추가하면 가능 하댔나?’
[네. 최초 하수칭호의 요구 업적은 세 개지만, 추가적인 레벨업은 일곱개 단위입니다. 그렇게 스물 네개의 위업을 달성 하시면 ‘중수’ 칭호승급이 이루어집니다.]
‘중수까진 요원한 일이고 하수2Lv이라도 얼른 달성해서 스킬 보상이나 받았음 좋겠군.’
[진행 중인 위업들을 모두 달성하시면 가능할 것도 같군요.]
나는 진행 중인 위업 목록을 차분히 살폈다. 너무 많은 위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몇 가지는 달성 조건이 기억나지 않았다.
‘가만, 밀당의 달인이 뭐였지?’
[해당 위업을 클릭하시면 상세 설명이 나옵니다.]
*밀당의 달인-달성 조건 : 2명의 호감도를 100까지 올릴 시 달성
-업적 보상 : 마성의 소유자(패시브 스킬)-치명적 매력을 발산하여 상대의 호감도 상승률을 높이고 하향 속도를 낮춤.
‘맞다. 호감도를 100까지 올리는 거였지?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지인의 여친을 자빠뜨리면 되는 거였고...’
하나 둘 조건을 확인하고 나니 당장 시도해 볼 만한 것들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같이 할래?는 쓰리썸 말하는 거였던가?’
[꼭 쓰리썸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포썸이건 뭐건 섹스에 참여하는 총원을 10명까지 채우시면 됩니다. 일전에 알려드린 대로 그룹섹스가 가능하다면 언제든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종류라 볼 수 있지요.]
그룹섹스라···.
언젠가 기사에서 본 ‘소라넷 초대남’이 떠오른다.
NTR취향을 가진 남성이, 무작위로 사람들을 초대해 ‘갱뱅’ 이벤트를 벌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면 한 방에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그래도 아직 갱뱅까진 멘탈이 못 견딜 것 같은데···. 참, 지스팟 켜주세요 저건 혹시 누적식인 거야? 최고 기록은 또 뭔데?’
[누적은 아닙니다. 정확한 계량 파악이 힘든 문제로 측정값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아하, 얼마나 성공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렇습니다. 일전에 서윤양에게 시도 하셨을 때 나온 용액이 100ml 정도라는 뜻이죠.]
‘그렇게 싸댔는데 100ml라니. 진짜 사람 할 짓이 못 되구나.’
위업들을 꼼꼼히 따져보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종류는 ‘밀당의 달인’과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정도였다.
밀당의 달인으로 호감도 100을 올릴 대상은 육정음.
그리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헬스장 트레이너 송미나.
‘어차피 송미나를 공략하려면 애인 있는 여잘 자빠뜨려야 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미션과 연동하려면 미나양의 남자친구분과 친분을 맺으셔야 합니다.]
‘그냥 애인 있는 여자면 안되는 거야?’
[그것은 룰에 어긋나지요. 기춘의 사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긴 그렇구나. 남자를 알고 남자의 여친을 공략하는 것이 정석이군. 그 반대가 되면 안되고.’
[맞습니다.]
‘쉬운 게 없구만. SM마스터는 지랄 맞고···.’
[내일 미국에서 여동생이 오지 않습니까?]
‘맞다. 백마 업적이 있었지?’
[백마일지 흑마일진 모르죠.]
‘난 기왕이면 백마가 좋은데.’
[인종차별적 편견입니다.]
‘아니 아직까지 거부감이 있다고.’
한창 위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사장이 가게로 들어왔다.
"도훈군! 아쉬워서 어째. 오늘이 마지막이네?"
< 90. 옆방의 BJ-1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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