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0화 (80/2,000)

< 82. 옆방의 BJ-11- >

내가 회귀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시절 미국의 애쁠 주식만 사놓았어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 거다. 아니, 재개발이 예상되는 지역라든가 2000년대 들어 땅값이 폭등한 지역따윈 얼마든지 알고 있다.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칠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젊어진 건 좋은데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군.’

[이정우의 몸이라도 말입니까?]

‘이정우라니?’

[회귀란 본인의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죠. 이도훈이 아닌 이정우라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그 생각까진 못했군. 취소다.’

군 면제까지 가능했던 158의 신장.

(안타깝게도 젊을 때는 158.5라서 현역 판정을 받고 말았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생식기.

(그래도 오줌싸는 방향 정도는 컨트롤 가능했지.)

아이큐는 지금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흑역사.

‘안 되겠어. 이도훈으로 돈 벌 궁리를 해 봐야겠어. 분명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뭔가 기발한 수가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 깨톡음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태영이 한참 전에 보낸 동영상 파일이 도착해 있었다.

"오오. 드디어."

나는 폰을 카운터 밑으로 내렸다. 혹시라도 손님이 보면 쪽팔리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기춘이 자식도 새벽에 몰래 야동 보곤 했다는데, 이젠 내가 그러고 있네.’

시각은 저녁 10시. 야동을 보긴 이른 시간이지만 손님 없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파일을 클릭했다.

***

"와, 쩐다 진짜."

화면 속의 서윤은 색녀 그 자체였다.

시스루 속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렇게 섹시할 수 없었다.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골반을 돌려댈 때마다 아슬아슬 드러나는 주요부위들. 보일 듯 말 듯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었다.

또 별풍이 누적될 때마다 제공되는 서비스도 엄청났다. 망사 스타킹 찢기라든가, 팬티 안으로 전동기구 넣기, 가장 압권인 딜도쇼까지.

특히 딜도쇼는 의자에 다릴 벌리고 앉아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었는데 커다란 딜도가 손잡이만 남기고, 구멍 속에 몽땅 삽입되는 장면에 이르자 도훈은 강한 딸딸이 욕구를 느꼈다.

‘으, 환생하고 딸 한번 잡은 없던 나를 이 정도로 꼴리게 하다니.’

잔뜩 부푼 팬티가 꺼내 달라 아우성을 쳤지만, 손님이 드나드는 가게에서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어쩌면 얼굴을 알고 있어 더 자극적인 걸지도···.’

영상 속의 서윤, 그러니까 BJ가영은 검은색 해골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남들은 그녀의 눈밖에 볼 수 없지만, 자신은 그녀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기억했다.

‘그나저나 뭔가 웃기군. 팬티는 벗어도 마스크는 절대 안 벗네?’

영상 옆 채팅창에선 그녀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특히 몇몇 댓글은 굉장히 악질적인 내용이었다.

-봊지 말고 얼굴을 까라고!

-얼굴 까기 전까지 우리 별풍 쏘지 맙시다.

-솔직히 얼굴 개 빻은 거 아냐? 대체 왜 가리는 데?

-눈깔 병신이냐? 딱 봐도 미인이구만. 분명 얼굴 팔리면 안 되는 직업이라서 그럴걸?

-저 가영이 진짜 직업 알고 있음. 세화여고 사회교사임, 눈매랑 가슴 사이즈 완전 똑같음.

-아닌데? 우리 피트니스센터 요가 강산데? 내가 어제 먹었는데?

서윤은 부정적인 댓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방송을 이어갔다.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진정한 프로다웠다.

-그럼 오빠들 내일 봐요! 뿅!

영상이 끝나고 도훈은 두 가지 이질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훔쳐봤다는 데서 흥분했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사정을 떠올리자 연민이 일어났다.

씁쓸한 기분에 꼴렸던 대물마저 가라앉았다.

도훈은 태영에게 연락했다.

-도훈 : 자냐?

-태영 : 아녀. 겜중요.

-도훈 : 이거 싸이트 어디야?

-태영 : ㅎㅎ 다 보셨구나. 장난 아니져? 제가 링크 남겨 드릴게요. 폰으론 접속 안 되니까 집에 가서 보세요

태영은 잠시 뒤 복잡한 인터넷 주소를 보내왔다.

도훈이 주소를 요구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누군가 녹화 뜬 것을 공짜로 본 것이 양심에 찔렸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별풍이라도 보내야지.’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가만. 어차피 별풍으로 주면 수수료를 떼고 받는 거 아냐? 차라리 현금을 주는 편이 낫나?’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 돈을 건네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지도 몰랐다. 특히 관계를 맺고 난 이후이므로, 만에 하나 화대로 오해한다면 그야말로 최악.

‘음. 도와주기도 쉽지 않구나.’

[주인님 방금 전 분명 돈 없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없기야 없지. 하지만 쟤는 나보다 힘들잖아.’

[괜한 오지랖처럼 보이는군요.]

‘인마. 아무리 없어도 서로 돕고 살아야지.’

[저로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는 거야. 제길. 내가 돈이라도 잘 벌면 화끈하게 도와주겠구먼. 확 성방을 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만? 성방이라고?"

도훈은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이마를 탁-쳤다. 태영의 말에 따르면 잘 버는 BJ는 대기업 사원들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어쩌면 나도?’

도훈은 급하게 태영에게 연락했다.

-도훈 : 태영아. 뭐 하나 만 물어보자.

-태영 : 네 형님.

-도훈 : 혹시 남자BJ도 있냐?

-태영 : 네? 형 그런 취향일 줄은···.

‘헉. 이 새끼가 지금 날 게이로 오해하는 건가?’

-도훈 : 야, 그런 거 아냐.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래.

-태영 : 글쎄요. 벗방 싸이트는 여러 개 봤지만 남자 방송은 본 적 없어서요. 아예 외국 쪽으로 가시면 있긴 할 거예요. 알아봐 드릴까요?

태영의 답장에 도훈은 크게 실망했다.

국내에는 없다니···.

-도훈 : 아냐. 됐어. 야, 나 그리고 게이 아니다. 진짜.

-태영 : 네, 형.

-도훈 : 그럼 즐겜해.

-태영 : 네.

왠지 쓸데없는 오해만 사버린 셈이라 도훈은 더욱 낭패감에 빠졌다.

‘젠장. 이러다 진짜 게이로 오해받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차라리 그러는 편이 여자들 따먹고 다니긴 나으려나?’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태영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태영 : 참, 게스트로 가끔 출연하는 때는 있긴 해요.

-도훈 : 응? 뭔 소리야?

-태영 : 남자BJ 말이에요.

갑자기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도훈 : 자세히 말해봐.

-태영 : 그러니까 남자가 단독으로 출연하는 방송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구요, 여자BJ랑 콜라보를 맺는 경우는 간혹 있어요. 소프트SM 플레이라든가 둘이 붕가붕가 하기도 하고.

-도훈 : 그런 게 있다고?

-태영 : 네. 혼자 하는 것만 보는 건 별로잖아요. 생 라이브로 야동 찍어버리는 거죠.

-도훈 : 그거 공연음란죄 아냐?

-태영 : 어차피 성기 노출부터가 불법이에요. 그래서 성방들이 외국 서버로 대피한 거고요. 뭐, 걸리면 공연음란죄로 잡혀 가긴 하겠지만 어차피 신상만 노출 안되면 신고할 방법도 없죠.

게스트라고?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도훈 : 혹시 남자 여자 둘 다 나온 동영상도 있어?

-태영 : 함 찾아볼게요. 제가 품번으로 파일을 정리하는 편인데 BJ 영상은 품번이 없어놔서.

‘품번은 또 뭐야? 뭔진 몰라도 이 새끼 엄청나게 전문적인 놈인 것 같군.’

태영은 흔히 얘기하는 프로 딸잡이였다.

품번만 말해도 작품의 여주인공과 줄거리가 술술 나오는 수준.

잠시 후 태영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태영 : 형 찾았어요. 같은 싸이트에 있는 BJ왕수박 건데 파이즈리 실전 동영상이에요.

-도훈 : 보내봐.

-태영 : 네. 근데 형도 이런 거 좋아하시나 봐요. 전 잘생긴 사람은 야동도 안보는 줄 알았는데.

-도훈 : 무슨 소리야. 안 보긴 왜?

-태영 : 하긴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야동이죠. 흐흐. 이번 건 저화질이라서 금방 갈거예요. 그럼 즐딸 하세염.

-도훈 : 인마, 나 아직 알바 중이야.

-태영 : 아 그렇구나! 암튼 전 이만 게임 하러.

태영의 말대로 영상은 금방 도착했다.

이란 제목이었다.

"이런 제목은 누가 붙인 거야? 제목만 봐도 바로 알겠네."

품번이 따로 없는 영상을 위한, 태영의 분류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도훈이 혼자 중얼거렸다.

***

오늘의 공부를 마친 서윤은 가방을 메고 독서실을 나왔다.

‘유난히 집중이 잘 되네, 오늘은.’

서윤은 기분 좋은지 마스크 속에서 방긋 미소 지었다. 오후에 도훈과 한판(?) 벌이느라 시간을 소모하긴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복습한 날이었다.

‘어쩌면 묵은 스트레스를 풀어서 그랬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밖엔 없다.

남성의 양기가 지친 몸에 활력을 주었다고 밖엔.

‘옆집 학생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줘야 할까봐.’

도훈의 모습을 떠올리자 서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훤칠한 키. 조각 같은 몸매. 훈훈한 얼굴.

‘···게다가 섹스도 끝내줬지.’

그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유부남은 스킬은 좋았으나 얼굴이 평범했다. 첫 번째 남친이 그나마 잘생기고 섹스도 잘하는 편이었지만, 도훈과 비교할 수 없었다.

우선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부터 남달랐다. 야동에서나 보던 서양 대물을 상대하는 느낌이랄까?

체위변환, 지속력, 강도 무엇하나 빠질 게 없었다.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매일 밤 뒹굴고 싶었다.

도훈과의 섹스를 떠올리던 서윤은,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으으, 안 돼.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때야.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

서윤은 애써 도훈에 대한 생각을 떨쳐냈다.

당장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타이트한 스케쥴 속에 도훈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서윤은 BJ 복장으로 탈바꿈했다.

옷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 놓은 야한 속옷을 꺼내 입고, 속살이 다 비치는 이브닝드레스를 걸쳤다. 전신 거울 앞에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 쫌 예쁘다, 너?"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한 모습.

이는 공시생 서윤으로부터 BJ가영으로 변신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최면 의식이었다.

곧 그녀의 눈빛이 음탕하게 바뀌었다. 몸짓 또한 교태가 넘쳤다. 공부하는 동안 꼭꼭 숨겨놓았던 색녀가 서서히 고개를 쳐들었다.

"자, 그럼 오빠들 물이나 빼주러 가볼까?"

BJ가영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의자에 앉았다.

***

아무리 생각해도 기발하다.

서윤과 합작으로 성방을 찍는다.

매출이 감소하는 서윤을 돕고, 나 또한 부가수입을 올릴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일석이조.

[주인님, 절대로 얼굴을 노출 시켜선 안됩니다. 명심하십시오.]

‘걱정 붙들어 매셔.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BJ 예명도 벌써 생각해 뒀다.

‘불기둥 조로’.

조로 마스크를 쓰고 대물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사나이. 아시안 체형에서 볼 수 없는 우람한 대물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똑똑-

새벽에 도착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서윤은 대답이 없었다.

"나야, 도훈이. 안 자고 있으면 문 좀 열어봐."

한참을 기다리자 졸린 표정의 서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왠지 기운 빠진 목소리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나는 편의점에서 챙겨온 맥주와 마른안주가 담긴 봉지를 들어 보였다.

"맥주나 한잔하자고. 긴히 얘기할 것도 있고."

"나 술 안 마셔."

서윤이 문을 닫으려고 하자 재빨리 발등을 욱여넣었다.

"어어. 잠깐. 성미도 급하긴. 술은 나 혼자 마실 테니 그럼 내 얘기만 좀 들어봐."

"뭔데? 할 말 있음 여기서 해."

서윤은 유난히 저기압이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설마 BJ 가영이 아니라 공시생 서윤인 건가? 젠장 종잡을 수 없는 캐릭이군.’

"여기서 얘기하기엔 너무 긴데···."

"됐어. 나 잘 거야. 다음에 얘기해."

서윤이 힘을 주어 문을 닫으려 하자 내가 다급히 외쳤다.

"도, 돈 필요하지 않아? 나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무슨?"

서윤이 반응을 보였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문틈 사이로 억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일단 들어나 보시라니까."

"야. 너!"

쪼르르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서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라? 너 방송하고 있었어?"

책상 위에는 각종 도구들이 깔려있었다. 동영상에서 봤던 진동기구나, 큼지막한 딜도들. 내가 모니터에 달린 웹캠을 보고 움찔 물러나자 서윤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일찍 끝냈어. 오프니까 안심해."

"아···"

"짜증나 진짜."

"왜? 무슨 일 있는 거야?"

서윤은 목이 타는지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더니 잔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악플러들이 선동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다 나가버렸어. 얼굴 가리는 BJ 볼 것도 없다며. 얼굴 공개하기 전까지는 절대 별풍 주지 말라는 거야."

"허."

"계속 안주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고. 진짜 최악이야. 왜 그런 새끼들이 들어와서는."

서윤은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캔을 깠다.

"하나 마실래?"

"됐어. 나 술 못 마신다니까."

"그렇다면 뭐."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그녀에게 제안을 시작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 같지 않아?"

< 82. 옆방의 BJ-1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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