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3화 (73/2,000)

< 75. 옆방에 BJ-4- >

한참을 기다리자 마침내 기회가 왔다. 미나의 그룹 PT 수업이 끝난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나 선생님.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데드리프트를 하려는데 그립법이 궁금해서요."

"그립법요?"

"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오버 그립 말고 얼터네이트 그립이란 게 있던데 정확한 자세를 모르겠어요."

"아, 얼터네이트. 제가 한 번 보여드릴까요?"

"그럼 고맙죠."

미나는 옆에 있던 바벨 앞에 서더니 왼손 오른손을 엇갈리게 해서 그립을 잡았다.

"이렇게 두 손을 엇갈려 잡는 방식을 얼터네이트라고 해요. 오버 그립보다 좀 더 많은 중량을 칠 수 있죠."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혹시 루마니안 스타일로 시범 한 번만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루마니안 데드리프트요?"

"네. 영상으로 한 번 봤는데 기왕이면 정확하게 배우고 싶어요."

미나는 자꾸 귀찮게 구는 나에게 싫은 내색도 없이 곧바로 시범을 보였다.

"루마니안 스타일은 엉덩이 위치를 살짝 높게 잡는 게 포인트에요. 이렇게 하면 대퇴 사두근의 개입이 줄어서 등 근육에 좀 더 부하를 걸 수 있죠."

"그렇군요."

"보시는 것처럼 천천히 엉덩이를 뒤쪽으로 빼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여주세요. 이때 허리는 굽지 않게 바벨이 몸을 그대로 타고 내려가 주시구요."

미나는 성심성의껏 데드리프트 자세를 선보였다. 허리를 숙일 때마다 빵빵한 엉덩이가 터질 것처럼 밀려 나오며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와, 엉덩이 탄력 보소. 뒷치기 느낌 죽이겠네. 아니지, 이럴 때가 아냐. 어서 그녀의 질 수축도를 확인해 봐야지.’

"옆에서 봐도 될까요?"

"네. 원래 데드맆은 정면보다 옆에서 보는 게 더 정확해요."

나는 미나를 보는 척하며 그녀의 귓바퀴에 시선을 집중했다.

‘떠올라라, 떠올라라.’

{질 수축도 : 95%}

"헉!"

"왜 그러세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미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뇨. 자세가 너무 완벽해서요."

"뭐요? 도훈씨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잘하시네."

"아닙니다. 정말 완벽한 조임, 아니 그립입니다."

"직접 한 번 해보세요. 보는 거랑 또 하는 거랑 다르거든요. 자세 봐 드릴게요."

"네."

나는 그녀에게 배운 대로 얼터네이트 그립으로 루마니안 데드리프트를 선보였다.

"오, 역시 체육과라 그런지 금방 배우시네요.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에요."

"그런가요?"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녀의 쪼임력(?)에 무척 놀라고 있었다. 튼실한 하체를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로시, 95%면 대체 얼마야? 거의 잦이 분쇄기라고 보면 되나?

[이해가 쉽게 설명 드리면 정음 양의 수축도가 90% 정도였습니다.]

‘뭐? 육정음보다 높다고? 그럼 미나도 명기란 말이야?’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명기란 질 내부의 주름이라든가, 특유의 구조, 질 근육 조절 능력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니까요. 분명한 사실은 미나양의 수축 강도가 육정음양의 그것보다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아하, 이해했어.’

명기인지는 몰라도 쪼임 하나는 끝내준다는 소리군.

역시 미나는 공략할 값어치가 있는 여자다.

"무게를 좀 올려보시면 어떨까요? 중량이 올라가면 자세가 틀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되야 안 좋은 습관을 잡아드릴 수 있어요."

"바쁘실텐데 굳이···."

"뭘요. 회원님이랑은 비밀도 공유하는 사인데 특별히 챙겨드려야죠."

미나가 무거운 바벨 판을 들고 오며 슬쩍 윙크했다.

비밀? 아, 담배를 말하나 보군.

"저 입 무겁습니다. 소문 안내니까 걱정 마세요."

"그럴 거라 믿어요. 혹시 이거 들 수 있으시겠어요?"

미나가 양옆에 끼운 원판은 하나에 20Kg짜리. 순식간에 40Kg가 추가되었으나 평소에 힘을 생각하니 못 들 정도는 아니었다.

"해볼게요."

나는 전완근에 힘을 주어 바벨을 끌어 올렸다. 그때 미나의 손이 나의 등허리를 지그시 눌렀다.

"허리는 굽히지 말고, 그대로."

"네."

그녀의 손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자세를 반복하고 있으니 미나가 앞으로 다가와 내 복부를 눌렀다.

"지금 힘 바짝 들어가죠?"

"네."

"좋아요. 여기랑 다리."

이번에는 허벅지를 더듬는다. 터치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난 온몸이 성감대인데 대체 어쩌자는 거냐.

"지금 되게 딱딱해요. 부하가 제대로 걸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봐. 다리보다 더 딱딱 한게 가운데 달려있는데 거기도 한 번 만져주면 안 될까?

나는 미나의 손길을 즐기며 몇 차례 운동을 계속하다 바벨을 내려놓았다. 고중량 운동을 반복해서 인지 절로 몸에 땀이 났다.

"잘하셨어요. 근데 중량이 올라가니 확실히 허리가 안 펴지는 문제가 있네요."

"허리요?"

"네. 데드맆은 자세가 틀어지면 허리 다치기 제일 좋은 운동이죠. 이번엔 맨몸으로 한 번 자세 취해보세요."

"이렇게요?"

"오케이, 그 상태에서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엉덩이는 뒤로."

미나의 손길이 아쉬워진 나는 일부러 자세를 비틀었다. 그러자 미나가 곧바로 다가와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또 허리."

음, 좋아. 왜인지 몰라도 옷 위로 손길만 닿아도 좆 끝이 바짝바짝 서는 느낌이다. 그녀의 가슴골 사이 맺힌 땀 때문일까?

"네, 이제 됐어요. 나중에도 혹시 궁금한 거 생기면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이럴게 아니라 미나샘한테 PT 받으면 딱 좋을텐데."

"그러잖아도 저번 주에 그룹 PT 결원 생겨서 찾았는데 그날 안 오셨더라구요. 제가 도훈씨 넣어 드리려고 계속 기다렸는데···."

"그땐 일이 좀 있었어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겠네요."

"음, 아님 야간 타임은 좀 한가한데, 그땐 못 오시나요?"

‘야간? 왠지 솔깃한 정본데?’

"다음 주 개강하는데 그때 저녁 시간대로 옮길 거에요."

"그럼 그때 오세요. 특히 마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는 PT수업도 없으니까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을 거예요."

"마감이 언젠데요?"

"저녁 10시요. 근데 트레이너끼리 돌아가면서 마감하거든요. 참고로 전 월수를 맡고 있어요."

순간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어어? 이건 진짜 고급정보로군? 마침내 헬스장 섹스각이 보이는구나!’

"암튼 고맙습니다."

그녀의 퇴근 시간을 알아낸 것에 만족하며 오늘의 운동을 끝마쳤다.

***

서윤은 오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처럼 생긴 노점에 들렀다.

"아주머니, 컵밥 하나 주세요."

"왔어? 오늘도 열심히네."

"시험이 한 달밖에 안 남았거든요."

"그래, 근데 감기가 잘 안 떨어지나 봐. 요새 마스크 계속 쓰고 다니네?"

서윤은 흠칫 놀라며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네. 좀 오래가네요."

"공부도 좋지만, 몸도 생각하면서 해. 아플 땐 차라리 푹 쉬어버리는 게 나을 때도 있다니까."

"네. 얼마에요?"

"응, 이천 원만 줘."

"이천오백 원 아니에요?"

"단골한테 주는 서비스야. 맨날 와줘서 고마워서. 그 돈으로 약 지어 먹는데 보태."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서윤은 꾸벅 인사를 하고 컵밥이 든 봉지를 들고 나왔다.

‘착한 아주머니에게 거짓말해서 양심에 찔리네. 사실 감기 아닌데···.’

그녀가 마스크를 착용한 이유는 새벽에 하는 성인 방송 때문이었다. 공무원을 희망하는 서윤으로선, 인터넷에 얼굴이 팔렸다간 설사 합격을 한들 결격 사유가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자도 깊이 눌러쓰고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만,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휴-. 오늘따라 컨디션이 영 별로네. 집에서 밥 먹고 30분만 자다 나올까?’

그녀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험이 막바지에 이르자 점점 체력이 달리며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한 달간이라도 방송을 접어야 하나.’

새벽 내 하는 방송도 분명 영향이 있을 것이다. 역대 최대의 경쟁률이 예상되는 이번 시험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나 서윤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무슨 배부른 소리야. 아빠 병원비 보내드려야지.’

서윤이 방송을 접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녀는 수험생활은 물론, 집에 보내는 생활비와 병원비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수입이 끊긴다면 당장 다음 달 월세와 독서실비도 막막한 처지였다.

그나마 알바를 그만두고도 공부를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성방 방송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시간 대비로 치면 하루 2~3시간으로 그만큼 벌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최근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요새들어 매출이 너무 떨어졌어.’

이유는 알고 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처음엔 늘씬한 몸매와 수위 높은 방송으로 시청자 수를 유지해왔지만, 점점 얼굴을 공개하라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제 얼굴 좀 보자!

-맞아. 난 봊이보다 얼굴이 더 궁금하다고!

-우리 모두 보이콧 합시다! 얼굴 공개할 때까지 절대 별풍 안 쏨.

몇몇 극성 시청자들이 주도하던 분위기에 다른 시청자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치잇. 남의 사정도 모르고···.’

그녀가 정말 돈만 밝히는 사람이었다면 진작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했을 것이다. 서윤은 오히려 몸매보다 얼굴에 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무원이 되겠다는 그녀의 굳은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성방을 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몸은 팔고 싶지 않았기에 얼굴을 가린 채 성방을 시작했다. 몹시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시험 합격만 하면 과거는 지울 수 있다고 믿었다.

서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원룸 건물에 다다랐을 때, 맞은편에서 키 큰 남자가 걸어왔다. 운동을 하고 왔는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아까 봤던 그 사람이네?’

서윤은 슬쩍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했다.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같은 원룸 거주민과는 되도록 안면을 트고 지내고 싶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고나서 들어가야지.’

게다가 최근에 옆 방에 사는 남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눈치챈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문 앞에다 대놓고 "신음 때매 꼴려 죽을 것 같아요. 다음부턴 입 좀 막고 해주실래요?"라고 쪽지까지 붙여 놓았다.

‘설마 저 사람이 그 옆집 남자는 아니겠지?’

서윤은 우두커니 서서 키 큰 사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트레이닝 복 사내가 불쑥 인사를 건넸다.

"어? 또 만나네요?"

***

"어? 또 만나네요?"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았길래 알바가기 전까지 집에서 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올 때 마주쳤던 옆집 여자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손에 든 건 도시락이려나? 제대로 밥이나 챙겨 먹고 다니지는.

"······."

옆집 여자는 말을 섞기 불편한 듯 아무 대답 없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요. 혹시 수첩 잃어버리지 않으셨어요?"

"?"

"아까 책 쏟을 때···."

"아! 혹시 주우셨어요?"

드디어 여자가 반응을 보였다. 아끼던 수첩이 맞나 보다. 단어를 그렇게 열심히 써놓고 외웠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제가 우편함에 넣어두고 갔는데 아직 못 보셨나 보네요."

"···우편함이라뇨?"

"207호 맞죠?"

"어, 어떻게! 그걸!"

옆집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들고 있던 봉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봉지에서 컵밥이 튕겨 나오더니 바닥으로 뒤집어진다.

"아이고 밥이!"

"어엇!"

그녀가 황급히 컵을 돌려세웠지만 이미 바닥에 밥은 분봉처럼 쏟아진 채였다.

"이를 어째···."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괘, 괜찮아요. 수첩은 고맙습니다."

그녀는 검은 봉지에 쏟아진 밥을 주워 담더니 그대로 원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안타까운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냥 있기 너무 미안했다.

"저기요."

"네?"

"식사 어떻게 하시려고요."

"······."

"저희 집에 밥 좀 남은 거 있는데 그거라도 드실레요?"

"괘, 괜찮아요. 사양할게요."

꼬르륵-

하필 민망하게 딱 그 타이밍에 그녀의 뱃속에서 허기를 알리는 신호가 왔다. 옆집 여자가 겸연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저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냥 가시면 제가 너무 죄송해서요. 어차피 저도 점심 먹으려던 참이었어요."

BJ는 의아한 시선으로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궁금한 것일까?

하지만 우연히 속사정을 알게 된 나는 또다시 컵밥을 사러 가지도 못하는 그녀의 신세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체 그게 얼마나 한다고···.

나는 과감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가요."

자존심이 센 그녀는 굶으면 굶었지 제 발로 따라오진 않을 것이다. 자존심이 세다고 생각한 이유는, 힘든 처지에서도 끝내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점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못한 척 내 손을 끌려왔다.

***

"제가 207호 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방까지 따라 들어온 서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도훈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글씨체 보구요."

"글씨체?"

"왜, 우리 필담 주고받지 않았어요? 포스트잇."

"아···."

"근데 계속 서 계실 거에요? 일부러 출입문도 안 닫았잖아요. 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서윤을 고개를 돌려 살짝 열려있는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사소한 배려지만, 그의 호의를 의심한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래. 어차피 바로 옆집인데. 문도 저렇게 열려있고.’

서윤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같은 원룸이라 그런지 구조는 비슷했지만 남자 방 특유의 휑한 느낌이 낯설게 느껴졌다.

도훈은 어느새 주방으로 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찬 별거 없는데 괜찮죠?"

"···네."

"근데 공무원 시험 보세요?"

"네."

단답뿐인 대답이지만 도훈은 참을성 있게 질문을 계속했다.

< 75. 옆방에 BJ-4-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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