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7화 (57/2,000)

< 59. 새터섹터-22- >

"아무튼 언니가 뒤척이다가 그게 얼굴에 닿았나 보더라고."

"그게? 어머어머 미쳤어, 미쳤어!"

"근데 뒷얘기가 더 웃겨. 언니가 그때 꿈을 꾸는데 갑자기 누가 순대로 뺨을 후려치더라는 거야."

"순대로?"

"응, 길쭉한 순대 있잖아. 그래서 이게 무슨 개꿈인가 하고 잠을 깼는데 그 텐트 친 물건이 눈앞에 딱!"

"꺄악!!!- 야해!"

"너무 놀래가지고 아침부터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데."

"변태네 변태."

"근데 따지고 보면 변태는 아니지. 남친이 말해줬는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다던데? 아침에 텐트 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래."

"어머. 남친이랑 그런 얘기도 하니?"

"뭘 그런 걸 가지고. 더 심한 얘기도 하는데."

"요 엉큼한 계집애. 너 자고 있을 때 남자 방에 몰래 던져 놓고 와야겠다."

"키키, 그럼 꿈에 막 순대 수십 개 날아다니는 거 아니니?"

정음은 동기들의 이야기를 훔쳐 들으며 문득 스키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의 손이 닿자 갑자기 커져 버린 도훈의 물건.

징그럽다기 보단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렇게 커다란 물건을 자신이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앗,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정음은 민망함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동기들의 음담패설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듣기 싫어도 귀에 속속 들어와 박히는 야한 이야기에 정음의 몸도 조금씩 달아 올랐다.

팬티가 눅눅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말 젖어 있을까봐 확인하기 두려웠다.

‘내가 대체 왜 이러지···.’

정음은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 녘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도훈을 보았다.

야만인 부족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

빨래판 같은 복근 아래에선 거대한 순대가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

결혼한 남녀가 카풀을 하면 불륜으로 이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승용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릿결에서 은은히 배어나오는 샴푸향기.

차량의 떨림은 긴장감을 높이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배치가 사적인 영역을 뭉그러뜨린다.

일상으로 주고받던 대화는 어느새 농밀한 속 얘기까지 털어 놓을 만큼 깊어지며, 그렇게 정이 들다 보면 어느새 몸도 따라 가고 만다는 것이다.

문득 떠오른 옛 직장 동료의 얘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무렵 차는 왕복 2차선 길에 들어섰다.

S자로 굽어진 시골길은 앞에 서행하는 차 때문인지 굼벵이처럼 느린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정체가 계속되자 문득 얄팍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번 써먹어 볼까.’

나는 스멀스멀 앞차에 붙어가던 중 콱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심해!"

관성으로 튕겨져 나가는 정음을 향해 오른팔을 내뻗었다.

그녀의 말랑한 가슴이 밀려나오며 손바닥에 짓눌러진다.

‘아싸! 개 이득.’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앞차를 욕했다.

"무슨 운전을 저따위로 하는 거야? 이런데서 급브레이크를···. 괜찮아? 많이 놀랬지."

"아, 아니야."

의도된 행동임을 모르는 정음은 가슴을 완전히 내주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 자신을 지켜주려 움직인 나에게 조금은 감동했을 지도.

"천천히 가도 돼, 형. 서두르지 마."

"빨리 갈래야 갈수도 없어. 2차선 길 맨 앞에 거북이 기어가나봐."

"진짜? 여기 동해랑 가까운가?"

정음이 눈을 크게 뜨고 껌뻑거렸다.

이 정도면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헛갈릴 정도다.

"당연히 비유지. 차가 거북이처럼 느리다는 소리잖아."

"아하!"

하지만 얼굴이 예쁘다 보니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심지어 그녀는 아다이기까지 하다.

이른바 ‘백치 아다다.’

좋아, 이번 작전명은 ‘백치 아다다’로 간다.

"근데 어젯밤 내가 뭐 가르쳐 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응?"

"아니 보드 타다 넘어졌을 때 말이야. 문득 생각나서."

본격적인 작업 모드로 들어가자 정음이 쑥스러운 듯 창밖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강원도는 아직 눈이 많구나. 형."

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 줄 생각은 없다.

이곳은 오롯이 나와 그녀만이 존재하는 공간.

도망칠 곳도, 끼어 들 훼방꾼도 없다.

"괜히 말 돌리지 말고. 그때 물어 보고 싶은 거 있지 않았어?"

정음은 한참을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살짝 도발해 볼까?

"···하긴 궁금할 것도 없겠네. 요샌 고딩만 되도 뭐."

"뭐, 뭐래! 아니거든?"

"아냐? 뭐가 아닌데?"

"나 순진하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의외인 듯 말했다.

"괜찮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니까."

"솔직히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남자친구도 안 사겨 봤는데 어찌 알겠어?"

"꼭 남자를 사겨봐야 아니? 그냥 알음알음 알게 되는 거지."

"몰라 그런 거!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음. 너 진짜로 심각하네?"

결국 정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 놀렸다간 관자놀이를 향해 정권을 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기왕 포문을 열였으니 좀 더 밀어붙여 본다.

"요샌 너무 경험 없어도 인기 없는데···."

지나치게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정음이 모처럼 반격을 해왔다.

"그러는 형은? 형은 엄청 경험 많은 것처럼 얘기하네?"

"나?"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 답해야 더 점수를 딸 수 있을지 고민되는 순간이다.

‘이럴 땐 섣부른 대답보다 되묻는 편이 낫지.’

"어떨 거 같은데? 네가 보기엔. 나 경험 많아 보여?"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그냥 느낌 적으로 말야."

"음...조금?"

"조금? 조금으론 부족할 걸."

"헐! 형 완전 바람둥이네? 어쩐지 애들이 얼굴값 한다더니... 앗!"

"얼굴값? 누가 그래?"

"아, 아니. 그냥 어젯밤 동기들이."

"얼굴값은 모르겠고, 적어도 바람둥인 아냐. 바람을 피워야 바람둥이지. 난 바람은 안 피거든."

그건 사실이다.

애초에 여잘 사귈 생각도 없으니.

"정말?"

"응."

"그럼 몇 명 만나봤는데?"

"맞춰봐."

"음···. 둘?"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럼 셋?"

"아니."

"뭐야, 다섯?"

"그쯤 될까나."

"헐! 형 완전 까졌네! 어떻게 다섯 명씩이나...진짜루?"

‘다섯 명가지고 까졌다니. 환생하고 먹은 여자만 벌써 일곱 명도 넘는데. 물론 너가 여덟 번 째가 되겠지만.’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무슨 아재 같은 소리야? 형도 그 요즘 애잖아."

앗! 은근히 예리한 녀석같으니.

하마터면 아재란 걸 들킬 뻔 했군.

"아니 그니까 나까지 포함해서 말야."

"난 그럼 요즘 애가 아닌 건가?"

정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중하게 지켜온 정조관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바로 이때가 흔들 기회다.

"하기야 넌 얼마 전까진 고등학생이었잖아. 당연히 경험할 기회가 없었겠지."

"그, 그렇지?"

"아무렴. 하지만 이제 대학생이잖아. 설마 혼전 순결 주의자는 아니지?"

"다, 당연하지. 내가 무슨 조선시대 사람이야?"

발끈하는 모습이 귀엽다. 도발에 쉽게 걸려드는 모습이, 무력만 높고 지략은 낮은 삼국지 게임의 무장 같다. 장비아니면 허저 정도 되겠군.

"혹시 진짜 처음이면 경험 많은 남자 만나라."

"뭐, 뭐야!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마!"

"아니 진짜 염려해서 하는 말이야."

진지한 나의 표정에 정음도 자세를 고쳐 물었다.

"···근데 그건 왜?"

"경험 없는 남자들은 그걸 야동으로 배워가지고 무작정 세게 하는 버릇이 있거든. 그럼 하나도 안 즐겁고 아프기만 해. 잘못하면 석녀가 돼 버린다고."

"석녀? 그게 뭔데?"

"그니까 처음이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중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소리지."

"헐···."

정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내가 해주는 얘기에 쫑긋 귀를 세웠다. 정보창 스킬에 따르면 성적 호기심으로 팽배해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이에 나는 용기를 얻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잘하는 사람은 절대 급하지 않아. 무조건 세게하는 게 능사가 아닌 것도 알지."

"형, 엄청 박식하구나···."

정음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렴 40살이 넘게 먹었는데, 스무살 아다랑 비교할 수 있나.

가는 길은 여전히 막혔고, 한 번 물꼬를 트기 시작한 야한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어쩌면 밀폐된 차안이라는 특수성이 과감함을 불러 왔을지도 모른다. 서로 입만 싹 닫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은밀한 공간. 여기서 나눈 대화는 둘만의 비밀이다.

점점 흥미가 동했는지 정음이 이것저것 물어왔다.

"어제 우연히 들었는데 남자들은 왜 아침이면 커지는 거야?"

"응?"

"아니 그··· 텐트 치는 거."

"궁금해?"

"응, 막 야한 꿈이라도 꾸는 건가?"

"건강해서 그래."

"건강해서?"

"응. 섹스를 할 정도로 건강하다는 징표지."

"윽-."

‘섹스’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언급하자 정음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진심으로 듣기 싫었다면 좀 더 격한 반응을 보였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투정에 불과하다.

"섹스를 섹스라고 하지 뭐라고 해?"

"음···. 그것도 그렇네."

"아무튼 남자들은 야한 생각하면 거기가 커져."

정음은 자기도 모르게 내 바지춤을 훔쳐보았다.

"그럼 어제 스키장에서 설마···."

"어젠 너가 만져서 그런 거고."

"아, 안 만졌어! 거긴!"

"아니 그 주변만 만져도 커진단 말야."

"진짜?"

"여자도 똑같잖아. 꼭 거길 만져야 젖는 건 아니니까."

"으으으! 아침부터 그런 얘길!"

정음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나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아침엔 뭐 안하냐? 어떤 개그맨이 그랬잖아. 통금시간 있으면 자녀들 못하고 다니는 줄 아냐고. 통금 끝나기 전에 다 하고 들어온다며."

"헐!"

"원래 섹스에 맛들이면 밤낮이 따로  없거든."

계속 되는 자극에 정음도 슬슬 질문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게 그렇게 좋아?"

"뭐? 섹스?"

"···응."

"당연히 좋지. 근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왜?"

"태어나서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바다를 말로 설명한들 알아먹겠니? 한 번 보여주는 편이 빠르지."

"흠!"

"너 진짜 한 번도 안 해봤어?"

"남자친구 사겨본 적도 없다니까?"

"꼭 남자친구 사겨야 하는 건 아니잖아."

"어?"

"뭐 그런 거 있잖아. 교회 수련회 갔다가 교회 오빠랑. 동네 친한 오빠랑 놀이터에서."

"윽!"

"섹스를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끼리만 하란 법은 없으니까."

"어떻게 사귀지도 않는데 그걸 해?"

"사귀지 않아도 하고 싶을 만큼 삘이 왔나 보지."

마지막 말에 정음이 입을 다물었다.

거듭되는 대화가 점점 우리의 상황을 빗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던 걸까?

‘적당히 자극도 준 것 같은데 이쯤에서 훅 들어가 볼까?’

[추천 멘트를 기억하십시오. 호감도를 끌어 올리는 데는 그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뭐였지? 궁금하면 봐 보던가?였나’

[네. 하지만 좀 더 상황 전개가 필요할 것 같군요.]

정보창 스킬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추천 멘트는 아무 때나 발휘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해당 멘트가 먹혀 들어갈 상황을 이끌어 낸 다음 필살기처럼 들어가는 최후의 한 방이랄까?

‘저 멘트를 쓰려면 일단 꼴리고 봐야겠군.’

차를 타고 오며 정음과 나눈 대화로 살짝 커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나는 출발 직전의 모닝섹스를 떠올렸다.

멀티 오르가즘으로 탈진해 버린 민주의 나신이 아른거리자 슬슬 불기둥이 성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네."

"왜? 길 막혀서?"

"아니 그게 아니라···. 너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버렸어."

나는 물끄러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정음 역시 시선을 따라 바지춤으로 향하더니 뜨악하며 소릴 질렀다.

"으앗! 혀, 형 뭐야! 왜 갑자기 커진 건데!"

"나도 모르지. 내가 키운 것도 아니고."

"으으으! 얼른 쪼그맣게 해봐!"

"그게 맘대로 되면 이러고 있겠냐."

***

"그게 맘대로 되면 이러고 있겠냐."

정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계속 바지춤을 힐끔 거렸다. 츄리닝을 뚫을 것처럼 솟아오른 그것의 모습에, 어젯밤 꿈 속에서 보았던 도훈의 나신이 떠올랐다.

‘어머! 나 미쳤나봐.’

왜 하필 순대였을까?

아마도 자기 전 들었던 동기들의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그녀 자신이 남성의 발기된 자지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여성과 한 번도 교합 못 해본 남자가 여자의 그곳을 궁금해 하듯, 정음도 발기된 도훈의 그곳이 궁금해졌다.

"아, 미치겠네. 운전하기 불편한데. 너 운전면허 없지?"

"아직 안 땄는데···."

"이거 걸리적거려서 운전하기 힘든데···."

도훈은 몹시 난처한 표정이었다.

운전 중 느닷없이 꼴려버린 자지.

두 손은 운전대에 묶여 있고, 다리는 쉴 틈 없이 엑셀과 브레이크를 넘나든다.

‘많이 불편하겠구나, 도훈이 형.’

미안한 마음이 든 정음이 도훈에게 물었다.

"내가 뭐 도와줄 방법 없을까?"

"뭘 도와?"

"아니 뭐, 영화에서 보니까 애국가를 부르면···."

"너가 불러주게?"

"응. 나 4절까지 다 외우고 있어."

"야. 그건 남자가 직접 불러야 효과가 있지."

"그런 거야?"

"그리고 난 그걸론 어림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도훈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만져서 달래야지."

"헉!"

정음은 진짜로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아둔한 그녀였지만 도훈의 말뜻을 알아 듣지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마, 만지다니! 그걸?"

"그래. 만져서 살살 달래면 가라앉기도 하거든. 근데 보다시피 내가 운전 중이라···."

도훈이 뻔뻔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자긴 두 손을 못 쓴다는 말. 그 말인 즉슨.

"나, 나보고 만져 달라고?"

< 59. 새터섹터-2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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