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1화 (51/2,000)

────────────────────────────────────

< 53. 새터섹터-16-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 분량입니다.) >

***

로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리프트를 타고 오를 때만 해도 생전 안 타본 보드를 어떻게 탈까 걱정하던 나는, 바인더에 부츠를 끼우는 순간 길고 넓적한 보드가 마치 내 발이 된 듯한 익숙함을 느꼈다.

그것은 몸에 잔존해있던 기억이었고, 세포 구석구석에 각인된 감각이었다.

"오! 형 어떻게 일어섰어요?"

이걸 뭐라 대답한다?

그냥 발에 끼우니 알아서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음, 무게 중심. 무게 중심이 중요해."

나는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몸은 기억하지만 머리는 텅 빈 자의 한계랄까?

놀라운 것은 육정음의 다음 동작.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경사진 지형에서도 균형을 잡고 멈춰선 모습에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원래 저렇게 쉬운 거였나?’

"아하! 그렇구나! 경사면의 반대로 힘을 주면 되는 거네요?"

"그, 그렇지."

"이제 어떻게 움직여요? 막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맨 처음 ‘낙엽’부터 배워야 한다던데?"

젠장, 내가 알게 뭐냐? 내가 너한테 배워야 할 참이구만.

몸의 기억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드의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순 있지만, 가르칠 이론적 지식은 전무한 상황.

나의 난처함을 인식한 로시가 구원 등판에 나섰다.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로시. 낙엽이 뭐야?’

[그러니까 낙엽이란···.]

로시는 도훈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보았던 모든 것을 떠올리진 못하지만, 인상 깊었던 기억들은 온전히 가지고 있는 셈.

스노보드를 상당히 잘 탔던 원주인 도훈이라면, 당연히 이론적 지식에도 빠삭할 것이다.

"낙엽이란 갈지(之)로 형태로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데···."

로시의 도움에 힘입어 나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시범을 선보였다.

"이렇게 하는 거야?"

정음은 동작을 한 번 보더니 곧바로 따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한 습득력임이 틀림없다.

"어, 잘 하네. 그럼 이제 뒷낙엽을···"

정음은 순식간에 뒷낙엽까지 마스터 했다.

등지고 경사면을 내려오던 정음이 신이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햐, 형이 알려주니까 금방이네?"

배운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 해내는 그녀였다.

이 정도면 거의 천재 아닌가?

‘로시. 어떻게 생각해?’

[무엇을 말입니까?]

‘보드라는 게 이렇게 빨리 배울 수 있는 거였어?’

[감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개인차가 존재합니다. 그렇다 해도 그녀의 성취는 확실히 비정상적인 데가 있군요. 재능만 따지면 역대 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올랐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군요.]

‘그래도 종목이 너무 다르잖아? 평생 투기 종목만 배웠던 거 아녔어?’

[운동능력은 전이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니까요. 유연성과 균형감각으로 봐선 오히려 태권도보다 무용이나 체조를 배웠더라면 더 대성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과연 천재라는 게 저런 건가?’

정음은 배운 동작을 몇 번 반복하더니 앞 낙엽과 뒷 낙엽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세상에! 스스로 턴을 터득했군요!]

‘그게 뭔데?’

[S자 곡선을 그리며 경사로를 내려오는 기본적인 하강 법을 말합니다. 빨리 배우는 사람들은 하루 만에 어설프게 흉내 낼 수 있다지만···.]

인공지능 로시마저 감탄하게 만드는 그녀.

갑자기 미션 보상 500포인트보다, 그녀가 가진 운동 재능쪽이 탐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체육교사를 해야 하는 나에게 이보다 필요한 재능은 없을 것이다.

그사이 중턱 까지 먼저 내려간 정음이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형! 얼른 와!"

나는 그녀가 보여준 재능에 놀라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정음이가 마유미 같은 변태는 아니어야 할 텐데···. 배구 선수 스파이크도 모자라 국대급 발차기로 낭심을 맞기라도 하는 날엔 고자가 돼 버릴 지도 몰라. 으흑, 내가 고자라니! 상상도 하기 싫군.’

나는 경사로를 내려 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키장의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며 정신을 환기시킨다.

‘정음이 제아무리 출중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한들, 아직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자기보다 부족한 남자에게 흥미를 가지는 여자는 드물 테니까.’

나는 슬로프를 수직으로 가를 것처럼 빠르게 활강을 시작했다. 가속이 붙자 눈발이 얼굴을 때릴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오옷, 너무 빠른가?’

[괜찮습니다. 주인님,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원하는 데로 움직여 보십시오. 도훈군의 보딩 실력은 누구나 알아주는 수준급이었으니까요.]

로시의 말을 믿고 기술을 시도해 보았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동작.

보드의 앞코가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공중에서 360도 턴이 이루어졌다.

공중 1회전 기술을 선보이는 나는 기다리고 있던 정음 앞에서 엣지를 박으며 급제동을 걸었다. 물웅덩이를 차바퀴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눈발이 촤악- 쏟아지며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우아! 형 짱이다! 방금 그 기술은 뭐에요?"

정음도 놀랐지만, 나 역시 놀랐다.

정녕 이것이 내가 펼친 기술이란 말인가!

"어, 삼육공이라고 해. 넌 아직 초보니까 기술 들어가지 말고 턴부터 숙련시켜."

"응! 형한테 배우길 정말 다행이다. 저기 봐."

정음이 멀리 뭉쳐있는 체육과 동기들을 가리켰다.

50M 아래에선 큼지막한 덩치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초보를 상대로 큰 소리로 혼을 내는 중이었다.

"야! 균형부터 잡으란 말이야! 이딴 운동신경으로 우리 과엔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쩌렁 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성수가 분명하다.

로시말에 따르면 우리 과에서 나 보다 잘 타는 사람이 성수정도 랬던가?

"성수형도 잘 타."

"응? 형이 부회장님 실력은 어떻게 알아? 같이 타본 적 있어?"

아뿔싸!

긴장이 풀렸던 나머지 나도 모르게 실언을 내뱉었다.

정음의 미간이 가늘게 좁아지더니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뀌었다.

"설마 형···."

나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새터 끝날 때까지 들키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 뽀록나고 마는 것인가?

"···역시 고수는 다르네. 척 봐도 잘 타는 지 아는 거지?"

"아? 으응, 그렇지."

"과연, 대단해!"

다행이다.

정음이 바보라서.

해맑게 웃는 정음은 눈치라곤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아까 보니 민주 신음소리도 못 알아 체던데 완전 숙맥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난 후 많은 여자와 관계했지만 그 중 처녀는 단 한명 뿐이었다.

교대생 하린이.

하지만 그녀는 성욕도 많고, 개방성도 높은 타입이었다.

그런 쪽으로 호기심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수월하게 관계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음은 다르다.

정보창이 물음표로 뜨는 바람에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성욕수치나 개방성이 무척 낮은 타입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경험이 없다 해도 스무 살이면 성에 눈을 뜰만도 한데, 성격도 선머슴 같은데다 운동에 전념하느라 남자를 못 만나 본 티가 났다.

그녀가 눈곱만큼이라도 여성성을 갖추고 있었다면, 아무리 화가 났다 한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돌려차기로 찬혁을 까버리진 않았을 거다.

이건 거죽만 여자지, 완전 초등학교 남자애나 마찬가지다.

‘하- 이거 공략 난이도 너무 높은 거 아닌가? 민주랑 유미는 정음에 비하면 애피타이저 수준이잖아?’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이번 새내기 배움터의 끝판 왕이라고 보시면 되겠군요.]

‘3일 안에 가능은 할까? 아니지 3일이라 해도 마지막 날은 점심 먹고 나서 바로 복귀잖아. 실제 공략할 수 있는 시간은 내일 저녁까지라는 말이네.’

[이렇게 된 이상 총력전 밖에 승산이 없습니다, 주인님.]

‘총력전이라···.’

가진 아이템도 전무.

스킬도 쿨이다.

더구나 상대는 백치 아다다 수준의 끝판 보스.

오로지 본연의 능력만으로 이번 미션을 성공시켜야 한다.

‘어떻게든 정음일 넘어뜨리고 말겠어.’

나는 그녀를 지도하던 중 기회를 포착했다.

스키장에서 낯선 연인들이 쉽게 가까워지는 이유, 바로 불가피한 스킨십이 아니겠는가?

"어어? 조심해!"

나는 일부러 정음의 보드에 충돌했다.

쿵-!

한참 턴에 재미를 들리던 정음이 나와 함께 포개지며 눈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반사 신경이 뛰어난 정음이라도 두 발이 묶인 상태에선 피할 도리가 없었다.

"아얏!"

정음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자, 나는 그 위로 몸을 포겠다. 얼굴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향해 처박혔다.

쿠션감 좋고!

"형! 괜찮아?"

정음은 자신도 꽤 아플텐데 나부터 챙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슴에 얼굴을 처박은 채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혀 다친 곳은 없었지만 계속 가슴에 얼굴을 문대려는 수작이었다.

"으···. 미안, 빙설에 미끄러졌나봐. 전혀 못 움직이겠는 걸."

‘그냥 이대로 좀만 있자.’

"진짜? 많이 다친 거야?"

정음이 다급히 일으키려 하자 곧바로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앗! 가만! 모, 목이 이상해!"

"미, 미안."

정음은 나의 비명에 다시 부동자세를 취했다. 두꺼운 스키복 위였지만 뭉클한 가슴의 촉감이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은근 가슴도 크단 말이지.’

"어떡하지? 안전요원 부를까?"

"아, 아니 그 정도까진 아냐. 근육이 살짝 놀란 거 같아. 미안 나 무겁지."

"아냐. 형, 신경 쓰지 마. 나 가르쳐주다 다친건데."

정음의 목소리엔 걱정스런 기색이 가득했다.

착하기도 하지. 가슴도 착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너무 오래 있다간 둔한 정음이라도 눈치 챌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좀 괜찮네."

나는 벌러덩 하늘 향해 돌아누웠다.

그러나 여전히 아픈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목만 아픈 줄 알았더니 햄스트링 온 것처럼 허벅지도 아프다. 이래서 어떻게 내려가지?"

"내가 엎고라도 갈까?"

"나 무서워서 힘들거야. 그냥 다리 좀 주물러 줄래?"

"응. 나 안마 잘해."

정음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나의 허벅지를 주물렀다.

눈밭에 누워 예쁜 스무 살 처자에게 마사지를 받다니.

캬.

여기가 천국, 아니 설국이구나.

"어때? 좀 풀린 거 같아 형?"

"아니 그보다 좀 안쪽이 당기는 데?"

"여기?"

"아니 더 위."

"여기?"

정음의 손은 이제 골반 근처까지 올라왔다.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주무르던 정음도 점점 중심부에 가깝다고 여기는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형.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거야?"

"그게 좀 민망한 부위라···."

"아픈데 민망한 게 어디 있어. 괜찮으니까 말해봐."

"사타구니 안쪽."

"음!"

정음이 낯빛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뱉은 말이 있어서 그런지 부끄러워하면서도 손을 깊이 집어넣었다. 조금만 위로 올렸다간 불알을 만질 기세다.

스키장 야간 조명아래 발그레 달아오른 정음의 두 볼이 무척 귀엽게 느껴진다.

순진한 녀석 같으니라고.

잡아먹는 맛이 있겠군.

허벅지 안쪽을 매만지는 그녀의 손길에 슬슬 불기둥이 성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만 두 번이나 물을 뺀 녀석이지만, 그 정도론 끄떡없다는 듯 다시 용솟음치는 정력에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진짜 발기력 오지네. 20대의 체력이란 굉장하구나.’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주인님의 체력이 30% 향상된 측면도 있습니다.]

‘뭔 소리야?’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잊으셨군요. 마라톤 용사의 양말은 족저 부위의 자극을 통해 신진대사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동일한 활동을 하고도 체력이 덜 소진되는 이유죠.]

‘아하! 그게 그런 아이템이었어?’

[네. 착용하는 동안은 자동 발동되므로 항상 소지하시길 바랍니다.]

‘오케이. 평생 안빨고 신어야지.’

"형. 이게 뭐야? 바지에 뭐 넣었어?"

슬슬 부풀어 오르는 바지 밑 텐트를 보며 정음이 신기한 듯 물었다.

뭐긴 인마, 니 아다 때줄 물건이지.

"이런 거 넣고 다니면 넘어질 때 다친다구."

정음이 순진한 표정으로 덥석 물건을 움켜쥐었다.

***

헉, 이게 뭐람?

손끝에 닿는 감촉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백치처럼 순진한 그녀였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남성의 발기된 성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으악! 뭐, 뭐야!"

정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도훈이 민망함에 볼을 긁적였다.

"미안, 갑자기 커져가지고."

"아니 그게 왜 커지는데! 형! 변태였어?"

"그런 거 아냐. 네가 만져서 그렇게 된 거라고."

정음은 불쑥 말뚝 박기 할 때 생각이 났다.

도훈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을 때도 길쭉한 무언가가 머리를 건드렸다.

‘설마 그때도? 그럼?’

정음이 혼란스러워 하는데 도훈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고, 남자는···자극에 예민하단 말이야."

"이, 이상해!"

"많이 놀랬어?"

"당연하지!"

정음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어렸을 때 포경 안 된 남동생의 물건을 몇 번 본 적 있지만, 저렇게 커다란 것은 처음이었다.

‘근데 저렇게 큰 게 어떻게 들어가는 걸까?’

정음은 자기도 모르게 도훈의 부풀어 오른 텐트에 눈을 때지 못했다. 두터운 스키복 바지를 들어 올릴 정도면 실물은 대체 얼마나 크다는 말일까?

부쩍 호기심이 생긴 정음이 도훈에게 물었다.

"그거 다시 안 작아져?"

"작아지긴 하지."

"얼른 그럼 작게 해봐."

"그게···. 좀 내 맘대로 안 되는 거라서."

"그런 게 어디 있어? 자기 몸인데 통제가 안 된다고?"

정음은 이해할 수 없었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타고난 그녀는 원하는 데로 신체를 조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래. 남자는 여자랑 다르니까."

"음. 신기하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냐?"

"당연하지! 내가 무슨 수로 알겠어!"

"성교육도 안 받았어?"

"성교육?"

정음은 중고등학교 시절 보건선생님이 틀어준 영상을 떠올렸다.

올챙이 수천 마리가 헤엄치며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를 향해 돌진하던 모습. 얼렁뚱땅 넘겼던 성교육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지식이었다.

"배우긴 한 것 같은데···."

도훈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좀 가르쳐줘?"

< 53. 새터섹터-16-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 분량입니다.) > 끝

ⓒ 성난불기둥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