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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6화 (3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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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섹터!10

가까이서 본 마유미는 상당한 포스가 느껴졌다.

남자를 주눅 들게 만드는 커다란 키, 시원하게 뻗은 다리, 넓은 어깨까지.

현역 운동선수라는 게 이런 느낌이군.

‘가만, 만약 마유미를 따먹게 되면 얘는 선배인거야 후배인거야?’

[당연히 후배죠. 선후배는 학번으로 결정되니 까요.]

‘그렇지? 그럼 마유미까지 후배위로 공략하면 후배위하는 선배 위업도 동시 달성되는 셈인가?’

[정확합니다.]

나는 마유미의 골반 위치를 눈대중으로 가늠했다. 키는 나보다 10cm 정도 작다곤 하지만 다리길이는 얼추 비슷하다.

‘음, 다리가 저렇게 길면 뒤치기 할 때 높이 맞추기도 어려울 텐데...쇼파에 걸쳐놓고 서서 쳐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하는 데, 다른 학생들이 몰려오면서 대화가 중단되었다. 나는 두 사람 외에는 엑스맨인 걸 들키지 말아야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동기들 사이로 돌아오자 내 얘기가 한창이었는지 후배들이 나를 반겼다.

"어! 도훈이형 왔다."

"형 덕분에 설거지 면제! 개이득!"

"말뚝박기 완전 잘하시던데요? 많이 해보셨나봐요?"

지나친 관심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따지고 보면 같은 학번도 아닌데 적당히 튀어야겠다.

"운이 좋았어. 그리고 다들 수비할 때 잘 버텨줘서 이긴 거야."

"와! 겸손하기까지."

"누구랑 진짜 비교된다."

"누구?"

"저기 임시과대. 아까 보니까 자기 팀끼리 니 탓 네 탓 싸우고 난리 났더라."

"아, 강찬혁? 난 걔 첨 소개할 때부터 완전 재수 없었어. 복싱배웠다고 위세 떠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말이야.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불똥이 그쪽으로 튀며 동기들 사이에 강찬혁을 비난하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역시 나만 느낀 건 아니었구나.

첫 인상부터 저래가지곤 대학생활 피곤할 텐데...

"근데 형 뭐 운동배운 거 있어?"

동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데 육정음이 따로 나에게 물어왔다. 운동이라... 잘은 모르겠고 최근에 그건 많이 했지.

침대위에서 벌이는 혼성 레슬링.

"...그냥 뭐 이것저것."

"이것저것 뭐?"

대충 둘러대려 했지만 정음이 의외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말뚝박기 이후 부쩍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로시, 도훈이가 운동 뭐 배웠다 그랬지?’

[다양합니다. 구기로 하는 종목들은 대부분 잘하는 편이고 그중에서도 배구를 가장 잘합니다. 그 밖에 싸이클과 스노쿨링, 암벽 등반과 스노 보드에 소질이 있습니다.]

"응, 배구는 좀 했었고 여름엔 싸이클, 겨울엔 보드를 즐겨 타는 편이야."

"형, 보드도 탈줄 알아?"

"잘은 아니고 조금."

"그럼 오늘 밤 나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야간 스키 탈 때."

"보드를?"

"응, 난 스키밖에 못 타거든. 이번에 보드 한 번 배우고 싶어서. 안 될까?"

아차, 괜히 보드 얘길 꺼냈나?

이정우일 땐 타본 적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게다가 이건 육정음과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 뭐. 같이 타자."

"고마워 형."

육정음이 환하게 웃었다. 언제 봐도 상큼한 미소다.

근데 난 보드보단 너를 타고 싶구나.

***

체력 단련과 레크레이션이 끝나자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점심은 리조트 식당에서 단체급식 형태로 제공되었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근데 밥을 주는데 설거지 게임은 왜 한 거람?"

"그거 술자리 안주 치우는 거래."

"안주?"

"응. 숙소에서 고기 굽고, 파전 부치고 한다더라고. 아까 어떤 선배가 말해줬는데, 우리과 진짜 엄청나게 마신다던데?"

"으... 난 술은 잘 못 마시는데..."

새내기들은 어느새 부쩍 친해진 느낌이었다.

역시 같이 고생하다 보면 금세 정이 드는 법이지.

나는 옆에 있던 동기에게 물었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돼?"

"아까 형 귤 가지러 갔을 때 부회장님이 말해줬는데 못 들으셨구나. 오후엔 과별 장기자랑 준비하구요, 저녁 먹곤 야간 스키 타러 간데요."

"선배들 중엔 후야권 끊어서 벌써 타고 있는 사람도 있다더라고."

"으, 난 장비 하나도 없는데 다 빌려야 하나?"

그때 깨톡이 도착했다.

부회장 성수였다.

-도훈아, 밥 다 먹었음 1층 로비로 와라. 커피 한잔 사줄 게. 눈치 없게 애들 달고 오지 말고.

"나 먼저 일어날게. 화장실에 좀..."

"네."

"방에서 봐요. 형."

1층 로비를 찾아갔으나 커피숍을 찾을 수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문의하려는 데 성수가 등장했다.

"거기서 뭐하냐?"

"커피숍 못 찾아서 물어보려고요."

"커피숍? 난 저기 자판기 말한 건데?"

"아..."

"크크, 임마. 학생이 돈이 어딨다고 한 잔에 오천원짜리 커필  마시겠어. 그 돈 있음 담배나 한 갑 사피지."

"형 담배 펴요?"

"어. 원래 폈잖아? 뭘 생소하게 묻냐."

"그럼 같이 피러 나가자구요."

"어? 너도 펴? 원래 안 폈잖아."

"군대 가서 배웠어요."

"크크크. 이 자식 군대 갔다 오더니 완전 까졌네. 그래, 역시 커피엔 담배지."

나와 성수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후미진 곳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우니 전생에 직장 다닐 때 생각이 났다.

그때도 점심 먹고 나면 항상 이렇게 담배를 피곤했는데...

"아직 안 들켰지?"

"네. 전혀 눈치 못 챈 것 같아요."

"기왕이면 끝까지 들키지 마라."

"그래야죠. 그럼 제가 복학생인 거 아는 사람은 세 사람 뿐인 거죠?"

"응. 유미랑 나, 그리고 민주 선배까지."

"민주 선배? 아, 조교샘요?"

"아까 만났지? 너한테 할 말 있다고 밖으로 불러 달라 던데. 뭐라든?"

응? 그럼 콕 찍어 나를 불렀단 소린가?

조교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하군.

"그냥요. 뭐. 옛날 얘기 좀 했어요."

"옛날? 아... 맞다. 너 과씨씨였지? 지희 선배랑."

"네. 그냥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잘 지내자고."

"그래 뭐 벌써 2년도 지난 일인데... 크크. 어차피 여잔 또 사귀면 되잖아. 너 새내기 중에 맘에 드는 애 있냐?"

"새내기요?"

"응. 17학번에 이쁜애들 많더만. 형이 최대한 밀어 줄게."

"굳이 안 그러셔도 되요."

난 알아서 잘 먹는거든.

"형은 혹시 찍은 사람 있어요?"

"나? 난 여친 있는데?"

"아, 몰랐어요."

"우리 과는 아니고 수학교육과. 너도 혹시 과에서 맘에 드는 사람 없으면 여친한테 부탁해서 수학과 애들 소개 시켜줄 수도 있고."

"말만으로도 감사죠."

성수가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원래 대학생활은 예비역부터가 시작이야. 현역들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여자들도 금방 군대 갈 애들한테는 관심 없거든."

"그래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넌 예비역 티도 안 나서 인기 많겠다."

"에이, 뭘요."

담배를 모두 핀 우린 다시 숙소로 향했다. 성수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근데 도훈이 너 군대 갔다 오더니 성격 좀 바뀐 것 같다?"

"...네?"

순간 등줄기가 오싹했다.

환생했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면 큰 문제다.

로시의 말에 따르면 그 즉시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될 거라 했다. 까딱하면 지금의 능력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며.

"아니. 말도 훨씬 잘하고 성격 밝아졌다고. 옛날엔 되게 조용한 편이었잖아."

"아...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암튼, 난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아. 그럼 저녁에 보자. 장기자랑 준비도 잘하고."

"넵."

휴. 들키는 줄 알았네.

편의점 알바 할 적엔 몰랐는데, 학교로 돌아오자 과거의 인연들이 슬슬 얽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최소 1년 간 도훈과 교류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성격 변화를 눈치 챌 정도라면, 가족들은 금방 알아챌지도 모른다. 항상 조심해야지.

그나저나 슬슬 3일 간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현재까지 레이더망에 걸려든 사람은 모두 셋.

터프걸 공략 미션으로 등장한 1학년 육정음.

‘강한 여자’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학회장 마유미.

그리고 도훈에게 치욕을 안겨 준 송지희의 베프 강민주.

현재까지 공략 난이도는 강민주가 가장 낮아 보인다.

그녀의 노골적인 관심은 굳이 정보창 스킬을 쓰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

‘...일단은 강민주부터 인가?’

"어? 도훈아!"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조교 강민주였다. 이 여자도 양반은 못 될 사람이군.

"잘 만났다. 너 나 좀 도와줄 수 있니?"

"뭘요?"

"내가 짐을 좀 많이 가져왔는데 혼자 나르기 힘들어서. 보드장비랑 캐리어랑 다 들려니까 너무 많아."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듣기론 교수님들 숙소는 학생 숙소랑 떨어진 곳으로 잡았다는데 왜 여기서 나타난 걸가? 설마 날 기다린 건가?

"저 장기자랑 준비해야 하는데..."

한 발 빼려는데 조교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팔짱을 꼈다. 은근슬쩍 가슴을 비벼대는 모습이 뭔가를 작정한 사람같다.

"에이, 뭘 그런 걸 준비하니? 따지고 보면 너 1학년도 아니잖아. 뭣하면 내가 일 시킬 거 있어서 불렀다고 말해줄게."

"그래 주실래요?"

"당연하지."

***

"안 무거워?"

"네. 들 만해요."

조교 차에서 짐을 꺼내들고 숙소로 올랐다.

학생들이 있는 곳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짐을 내려놓고 나가보려는데 강민주가 나를 붙잡았다.

"바로 가려고? 차나 한 잔 하고 가지?"

"지금도 늦은 것 같은데..."

"자꾸 일 시켜서 내가 미안해서 그래."

"그럼 커피한 잔 만 주세요."

"잠깐 기다려. 물 좀 올리고 올게."

강민주는 들뜬 표정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딱 보니 나를 잡아먹으려는 눈치군.

글쎄...누가 누굴 먹는지는 까봐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강민주의 뒤태를 감상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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