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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0화 (3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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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섹터!04

[이도훈의 입학동기 박성수입니다. 재수로 들어와 나이는 한 살 많으며, 재작년 군에 입대 했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6개월 만에 의병 제대했습니다. 현재 3학년이구요.]

로시의 상세한 설명에 대번에 관계도가 그려졌다.

그러니까 동기면서 형이란 소리군.

"···성수형?"

"그램마! 작년에 우리 한 번 통화하지 않았냐? 너 병장 달았을 때 말야, 기억 안나?"

"아, 그랬죠. 형 허리는 괜찮아요?"

기억이 떠오르는 척 아는 체를 했다.

"응, 많이 좋아 졌어. 의사샘 말로 그 가수 누구냐? 근육맨 걔처럼 코어 운동 많이 해서 기립 근을 강화시켜야 한다더라고. 그래서 죽어라 운동만 하고 있다. 옛날 보다 몸 더 커진 것 같지 않냐?"

성수가 팻말을 들고 있던 팔을 들어 올리며 이두박근을 부풀어 올렸다. 얇은 패딩 사이로 불룩 솟아난 근육이 상당히 비대해 보인다. 운동 열심히 하는 아저씨들에게 자주 보이는 근육 돼지 체형 같다.

그러고 보니 체육교육과에 모인 애들은 유난히 몸 좋은 애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입학 시 체대입시처럼 실기를 치르다보니 다른 사범대생들에 비해 비교적 몸 관리가 잘 돼 있는 편이었다. 물론 그 중에 나도 포함되지만.

근육을 과시하던 성수가 장난스럽게 내 배를 찌르자 나도 모르게 복근에 힘이 들어갔다. 딱딱해진 근육에 성수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 이도훈! 너도 아직 안 죽었네? 운동 계속 한 거야?"

‘안 죽긴 인마. 이미 요단강 한 번 건너고 왔는데.’

"전역하고 헬스장 좀 다녔어요. 근데 왜 형 여기서 팻말 들고 계세요?"

"엉, 나 이번 학기 집부 맡았거든."

집부.

집행부라고도 불리며 과대표들과 함께 학과를 이끌어 가는 주체이자, 단과대에 소속되어 사범대 행사를 주도하는 간부집단. 나 때 집부라고 하면 대부분 운동권들이었는데 말이지.

"그럼 학회장?"

"아니, 난 부회장이야. 학회장은 유미가 맡았어. 아, 넌 잘 모르겠구나. 우리보다 한 학번 후밴 대 똑 부러지는 여장부야."

"아···"

"잠깐, 가만 보자··· 도훈이 너 일루 와봐."

성수가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팻말을 맨 앞에 서있던 멀대같은 놈에게 맡겨 버린 체였다. 체육교육과 줄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성수가 나를 향해 물었다.

"너 복학하면 2학년이지?"

"네, 1학년 마치고 군대 갔으니까요."

"우리 동기들은 이제 4학년 올라가니까 새터 안 따라올 테고."

"그런데요?"

"그러니까 도훈이 네가 복학생인 건 지금 4학년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단 말이지."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뜸 들이는 거야?

내가 고개를 갸우뚱 하자 성수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좋다! 이번 새터 엑스맨은 네가 해."

"엑스맨이요?"

"지금부터 재학생인척 하지 말고 신입생들하고 같이 어울리란 소리야."

"그게 무슨 말인데요?"

두서없이 말을 내뱉은 성수가 아차 싶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이번 집부에서 이벤트로 기획한 게 있거든. 재학생 중 하나가 신입생인척 위장하는 거지. 나중에 X맨 맞추기 경품도 준비했어."

"아니, 근데 그걸 제가 왜?"

"아까 말했잖아. 너 알만한 애들은 새터 안 따라오니까 아무도 네 존재를 모를 거라고. 원래 2학년 부과대가 맡기로 했는데, 걔가 갑자기 일 생겨서 펑크 냈거든. 대타 찾으려던 차에 네가 딱 온 거 아니겠냐."

"형, 제 얼굴이 어딜 봐서 새내기에요. 헌내기도 모자라 쓰레기구만."

"인마. 재수생 무시 하냐? 나도 재수로 왔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형 한 번만 도와주라. 응? 엄청 재밌다니까?"

"재밌다구요?"

성수는 본래 장난기가 많은 성격 같았다. 말하는 내내 혼자 실실 쪼개는 모습이 벌써부터 신입생들을 골탕 먹일 생각에 신이 난 모양새였다.

"엑스맨 맡으면 새내기들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잖아."

"새내기들이랑 친해져서 뭐하게요?"

"너 아직 모르는 구나? 이번 우리 과 신입생 여자가 여덟이나 들어왔데. 그것도 엄청 물 좋다는 소문이 있어."

오호라. 여자가 많다고?

이건 좋은 정보군.

"또 신입생들이 OT하면서 어떤 선배 흉보는지 나한테 알려주란 말이야."

"그거 완전 뒤통수잖아요."

"인마. 그런 흑역사가 남아야 재밌는 거야. 우리 그걸로 내기도 걸거 걸랑. 그리고 너 기억 안나? 왜, 우리 때도 3학년 종현 선배가 X맨 했었잖아. 비록 술 처먹고 실수하는 바람에 하루 만에 뽀록나긴 했지만··· 남들은 시켜달라고 로비까지 벌이는 마당에 뽑아줘도 싫다는 놈은 첨이네, 허 참."

엑스맨이라···

잘하면 파릇파릇한 스무 살 여대생들하고 친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군.

나는 마지못한 척 수락했다.

"알겠어요. 별로 자신 없지만 형 부탁이니까."

"좋았어. 연기 잘해라. 마지막 날 까지 최대한 들키지 말고. 내가 나중에 술 한 잔 살게."

성수의 제안으로 갑작스레 새내기로 위장한 나는 다시 대기 줄로 돌아갔다.

"OT 개회식은 정선 넘어가서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과별로 탑승 완료해 주세요."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자 줄 서 있던 인원들이 우르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체육교육과 신입생들 사이에 섞여 45인승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 입구에서 박성수가 나를 보고 찡긋 윙크를 날렸다.

"자자. 새내기들은 왼쪽에 짝지어 앉으시고, 재학생 분들은 오른쪽으로 앉아주세요."

성수의 말에 누군가 토를 달았다.

"부회장님! 새내기랑 같이 앉아서 가면 안 됩니까?"

"옳소! 가는 길에 신입생들이랑 친해지고 좋잖아요!"

남자가 많은 과 특성상 2,3학년 남자 재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거센 항의에도 성수는 단호하게 싹을 잘랐다.

"에블바리 샷따 마우쓰! 누가 부회장 말에 토 달아? 요것들 요새 군기 빠진 거 보니, 저녁에 한딱까리 해드려?"

부회장 박성수는 유난히 등빨이 좋은 편이었다. 관광버스 통로 사이에 서면 양 어깨가 끼일 정도. 위압적인 덩치와 부리부리한 눈빛에 금세 버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방금 전 나랑 얘기 할 때의 장난스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혹시 부회장을 맡게 된 것도 저런 군기반장 역할 때문이었을까?

"아, 아닙니다, 부회장님!"

"저희가 실언했습니다!"

반발하던 2학년 재학생들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확실히 남초과라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군대처럼 딱딱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새내기들도 바짝 긴장한 게 느껴졌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펴고 차렷 자세를 취하는 녀석도 있었다. 어릴 때라면 나도 쫄았겠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태어나 보니, 이런 행동들이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학생은 얼굴이 까무잡잡한 남자애였는데, 쌍꺼풀 없는 눈빛이 날카로워 제법 총기가 있어 보였다.

놈은 창가에 앉은 체 밖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좆도 아닌 새끼들이 똥 폼 잡기는."

겨우 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였기에 주변에 들은 사람은 없었다. 불만이 많은 타입일까?

"반갑다. 난 17학번 이도훈이라고 해."

먼저 손을 내미는데도 놈은 빤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현역?"

"아니 재순데?"

"같은 학번이면 말 트는 거 알지? 나한테 형 대접 받을 생각 말고."

허허, 참.

이건 뭐 아주 싸가지를 말아 드신 놈일 세?

하지만 어린애랑 드잡이질 하기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 말 편하게 해."

내가 쿨하게 수긍하자 그제야 놈이 굳은 얼굴을 풀었다.

"난 강찬혁. 혹시 알지 모르지만 고교 아마복싱 챔피언 먹은 거, 나 맞아."

아마복싱 챔피언이라고?

어쩐지 이 새끼가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그래도 그렇지, 처음 보는 자리에서 이토록 안하무인이라니··· 운동 배운 놈치곤 영 예의범절이 없는 편이군.

"복싱 배웠구나! 어쩐지 몸이 탄탄해 보이더라."

내가 팔뚝을 만지려고 하자 갑자기 찬혁이 빠르게 움직이며 가드 자세를 취했다. 놈의 가드 동작에 내 팔이 무안하게 튕겨 나왔다.

"아야!"

"미안. 뭔가 날아오면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게 있어서."

별 지랄 같은···

나는 몇 마디 더 나누다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복싱 좀 배웠다고 깝죽대는 모습이 영 꼴사나웠기 때문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한참을 달려 목적지인 정선의 리조트에 도착했다. 다들 한가득 싸온 짐을 들고 커다란 강당으로 집합했다. 신입생 300여명, 재학생 150여명으로 구성된 국성대 사범대학 OT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사범대 학과장의 지루한 개회사가 끝나고 곧 과별로 뿔뿔이 흩어져 숙소로 향했다.

서른 평 남짓한 크기에 큰 방 하 나 작은방 두 개 있는 리조트 건물이 우리의 숙소였다.

"남자들도 같이 있는데 설마 혼숙하라는 건 아니죠?"

"아니, 잘 땐 옆에 선배 숙소랑 나눠서 남녀 따로 잘 거야. 일단 너희들끼리 친해지는 차원에서 같은 방에서 쉬고 있어. 참, 임시 과대도 뽑아 놓고. 1시간 뒤에 보자."

부회장 박성수가 말을 마치고 숙소를 나갔다.

이제 숙소에는 17학번 새내기들만 남게 되었다.

모두 16명. 듣던 대로 여학생이 절반이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여학생들 와꾸를 스캔했다.

‘다들 늘씬하군.’

운동을 배워서 그런지 여학생들의 몸매는 다들 좋은 편이었다. 성수 말처럼 이번 기수에서 체육과가 가장 꽃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 특히 몇몇은 눈에 띄게 예뻐 나도 모르게 정보창을 쓰고 싶어질 정도였다.

"뻘쭘한데 우리 소개나 할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럴 때 가장 먼저 나서는 놈들이 있다.

지금 나서는 놈은 아까 전 버스에서 복싱 배웠다고 유세를 떨던 강찬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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