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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섹터!03
어느새 위업을 두 개 달성했다.
진행 중인 위업도 2개나 된다.
일주일이란 짧은 기간 치곤 기대 이상의 성과다.
‘로시, 이 정도면 나름 선방한 것 맞지?’
[선방 정도가 아닙니다. 발군의 적응력이십니다. 본 시스템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플레이어들은 최초 1년간 단 한 개의 위업도 달성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놀라운 성취라고 할 수 있죠.]
로시의 칭찬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우쭐해 졌다.
‘이대로만 가면 랭커도 식은 죽 먹기 같은데?’
[하지만 너무 방심하셔도 곤란합니다.]
‘왜?’
[시간이 갈수록 주인님의 여자관계가 거미줄처럼 복잡해질 테니까요. 여자들의 집착과 질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맺고 끊는 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그로 인한 여파가 대학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릅니다.]
‘하긴. 거기까진 생각 못했군.’
로시의 경고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인간관계, 그것도 남녀 사이는 굉장히 복잡하고 오묘하다.
특히 살을 한 번 맞대고 나면 아무리 쿨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안 생길 수 없다.
이제껏 이도훈의 여자관계가 백지와 같은 상태라 여자 꼬시기가 용이했지만, 대상이 늘면 늘어날수록 인연의 실타래들이 엇갈리고 꼬이게 될 것이다.
당장 편의점이란 조그만 공간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얽혔다.
여사장 허영자, 그녀의 딸 하린, 동료 수연, 기춘의 여친 수아, 그 여친과 같은 클랜 예림까지.
심지어 이 다섯 명은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다. 이런 식의 관계는 머지않아 꼬리를 밟혀 파탄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시작되는 질투와 오해, 갈등과 대치 상황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여 나의 여성편력이 문제시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의 위업이나 미션 달성에 크나큰 악재가 될 것이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스폰 계약(?)을 체결한 사장을 먼저 보내고 로시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로시, 혹시 스마트 워치에 인맥관리 기능도 있을까?’
[해당 어플이라면 마켓을 통해 유료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어플? 유료?’
[기본적인 스케쥴러 기능은 저 역시 가능합니다만, 방금 말씀하신 인맥관리 쪽은 유료로 출시된 어플 쪽이 훨씬 우수합니다. 기능도 다양하구요. 설명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한 번 띄워봐.’
[문어다리] 인맥관리 어플, 200P
-스마트워치에 설치됩니다.
-정보창 스킬과 연동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바람둥이’모드 활성화 시 절대 걸리지 않는 거짓말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켓엔 정말 안파는 것이 없구나.’
[물론입니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진열되어 있으니까요.]
‘문어다리’는 관계하는 여자가 늘어날수록 꼭 필요한 어플이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새벽에 예림이와 화장실에서 한판 벌이고, 수아의 자취방에서 격렬한 섹스를 한 뒤 오후 출근해서는 뜨겁게 달아오른 여사장을 달래야 했다.
언제 누구랑 했고, 또 앞으로 누구를 만나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 포인트라... 마지막 남은 포인트까지 탈탈 털게 생겼군. 일단 구매해줘.’
이로써 지난 모녀 덮밥으로 얻은 1,000포인트가 고스란히 소모되었다. 특히 기춘을 빵에 보내기 위해 몸에 좋은 크림(200P)과 고개 들어요 용사님 담배(400P)를 소모한 것이 결정적.
하지만 아직 ‘오늘은 내가 가수다 목캔디’가 4개 남았고, 위업 달성 보상으로 ‘마라톤 용사의 양말’도 받았으니 아주 손해는 아닌 셈이다.
어차피 포인트는 다시 벌면 된다.
돈을 너무 아껴서는 오히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처럼, 때로는 과감한 투자가 더 큰 이득을 낳을 수도 있다.
[‘문어다리’ 어플을 설치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설치라니? 데이터는 천국에서 날아오는 건가?’
[좀 더 복잡한 원리입니다.]
‘설명은 됐고, 다 깔면 실행시켜.’
[문어다리 어플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로 실행시키겠습니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문어다리’를 최초 실행합니다. 정보창 스킬 정보와 연동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암전된 화면의 막대그래프가 빠르게 차오르더니 곧 화면이 다음 메뉴로 전환되었다.
1. 인맥정보
2. 공략진행상황
3. <바람둥이 모드> On/Off
[메뉴는 크게 3가지입니다.]
‘간단히 설명해.’
[네, 인맥관리는 정보창 스킬로 조회된 모든 인물정보를 재열람 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로시의 설명을 듣고 메뉴를 누르니 이제껏 내가 정보창으로 조회한 여자 목록이 주르륵 떠올랐다. 전수연, 박하린, 나예림, 허영자 그리고 송미나까지. 관계는 했지만 정보창을 사용하지 않았던 수아는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어디에 있든 정보창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건가?’
[네. 하지만 본 데이터는 마지막 조회 시점을 기준으로 저장됩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갱신하지 않으면 갈수록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능을 확인키 위해 전수연의 이름을 클릭해 보니 정보창으로 봤던 내용에 더불어 한 가지 사항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장관리’ 메뉴.
메뉴를 누르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떠올랐다.
-그녀는 현재 멘스 중입니다.
-애정을 갈구하는 스타일로 지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메신져를 통해 꾸준한 애정을 표현해 주세요.
‘오호. 이런 것이구나.’
이번엔 나예림을 확인했다.
-그녀는 남성 불신이 가득 찬 상태입니다.
-후유증이 극복될 때까지 한동안 섹스 요구는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올 것입니다.
‘와, 이거 기능 대박인데? 이 추천대로만 하면 어장관리 쪽은 따로 신경 쓸 필요 없는 거잖아?’
[물론입니다. 또한 추천 행동과 반대로 하면 관계를 끊는 것 또한 용이하죠.]
‘좋아. 이것만 있으면 문어다리, 아니 지네다리도 정녕 꿈이 아니겠군. 공략 진행 메뉴는 또 뭐야?’
[해당 메뉴는 공략 대상의 동선을 알려줍니다. 공략할 대상을 고르신 후 일정보기를 하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해 드릴 겁니다.]
나는 헬스장 트레이너 송미나와 사장 딸 박하린을 넣고 일정보기를 터치했다. 잠시 후 모래시계가 뜨더니 두 사람의 일주일 스케줄 표가 제공되었다.
일요일 ? 송미나 : 휴가 중 / 박하린 : 새터 참가 중
월요일 ? 송미나 : 헬스장 / 박하린 : 편의점 야간 알바
화요일 ? 송미나 : 헬스장 / 박하린 : 편의점 야간 알바
···
[파랗게 표시된 부분은 해당 대상의 공략에 최적화된 일시입니다. 또 지금은 두 사람밖에 없어 나오지 않지만 동선 상 두 사람 이상이 겹칠 경우 ‘충돌주의’ 경보가 뜨기 때문에 언제든 곤란한 상황을 미리 피하실 수 있습니다.]
훌륭하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관리할 사람이 늘어나도 최적의 동선을 짤 수 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항목을 물었다.
‘바람둥이 모드는 어떻게 쓰는 거야?’
[이 기능이야 말로 ‘문어다리’ 어플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인님께서 양다리를 의심받거나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경우 이 모드를 사용해 보십시오. 어플은 공략 대상의 심리상태와 주인님의 상황을 분석, 결코 모순되지 않는 최적의 ‘거짓말’을 추천해 드립니다.]
‘과연 200포인트가 아깝지 않군. 근데 이렇게 좋은 게 왜 이렇게 가격이 싸지? 가격대비 효율이 말도 안 되게 좋은거 같은데?’
[마지막 바람둥이 기능은 인 앱 결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뭐? 유룐데 또 돈을 받아?’
[1회 사용료는 50포인트입니다.]
‘참나.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써. 현질 유도 너무하네.’
[포인트가 아깝더라도 분명 필요한 순간이 올 것입니다.]
젠장.
이래서 바람을 피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거다.
이도훈이 아닌 이정우였다면 어플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텐데...
머리가 빠가로 변한 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기억력이었다. 잔머리 돌아가는 것 보면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뭔가를 기억하고 인출해 내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하지만 그리 애석해 할 필욘 없을 것 같다.
이도훈으로 환생한지 일주일 만에 벌써 다섯 명을 따먹었다. 머리만 좋았던 이정우론 꿈도 못 꾸는 일을 이도훈은 고작 일주일 만에 해냈다.
‘흐흐. 이제 시작이야. 당장 내일 새터가면 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바를 마치고 교대하러 온 사장이 나에게 택시비를 건냈다. 매일 받던 오천원이 아닌 5만원짜리.
그것도 6장이었다.
"사장님, 아니 누나... 이건 너무 많은데요?"
"곧 개강이라며. 새 옷도 사 입구 해야지."
"이렇게까지 안주셔도 괜찮은데..."
"사양마.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난 우리 도훈이가 어디 가서 꿀리는 모습 보기 싫어."
히야!
역시 호감도 100이란 이런 것인가!
하지만 이미 몸도 섞은 마당에 돈까지 얽히게 되면 나중에 괜히 발목 잡힐 게 두려웠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를 느꼈다.
"누나. 제가 이 돈 가지고 다른 여자 꼬시면 어쩌려고요?"
"상관없어. 도훈이도 이제 복학하는데 여자 친구 사귈 수도 있지."
"정말요?"
"그럼. 내가 설마 용돈 주고 나랑만 하자는 건 줄 알았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여자 만나고 싶음 얼마든지 만나. 너 구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잖아. 대신 가게 일보러 올 때마다 나 가끔씩만 위로해 줘, 알았지?"
"네. 그런 거야 얼마든지요."
"어서 가. 낼 새터 간다며. 재밌게 놀다오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첫 상대로 영자를 고른 것은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고.
***
아침이 되자 서둘러 짐을 챙겼다. 3일간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 세트,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 정도를 백팩에 넣고, 어제 받은 아이템용 양말을 착용했다.
체력 소모율을 30% 깎아 준다는데, 아직 그 기능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국성대학교 사범대요."
늦을까봐 택시를 잡았지만 지갑이 두둑하니 마음이 편했다.
영자가 이틀 간 준 돈만 40만원. 대학생 평균 한 달 용돈 수준이다. 이제 좀 넉넉히 살 수 있겠군.
사범대 본관 앞에 도착하자 관광버스 10대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팻말 속에서 ‘체육교육과’를 찾았다.
"체육교육과 여기 서면 되요?"
팻말을 들고 있던 학생이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어? 너 이도훈? 복학 했구나, 짜식! 왜 형한테 말도 안했냐?"
놈이 우악스럽게 내 목을 두르며 반가움을 표했다.
기억에도 없는데...
누구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