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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눈이이11
369 게임은 예림의 예상대로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틀리기도 쉽지 않은 게임이다. 더욱이 사람이 넷뿐이다 보니 스무 자리 숫자까지는 가뿐히 올라갔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면목은 30번 대 구간부터 시작된다.
십의 자리가 ‘3’이기 때문에 무조건 박수로 넘겨야 한다.
33,36,39에 이르러선 박수를 두 번 친다.
무난히 진행되던 게임은 30대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서 실수가 터져 나왔다.
짝-
짝짝-
짝-
짝짝-
"엇! 예림이 땡!"
"맞는데?"
"아닌데? 너 35거든?"
"아씨!, 또 틀렸어."
예림은 연거푸 소맥 잔을 들이켰다.
유리 글라스에 소주를 절반이나 넣어 제조한 벌주는 남자인 나라도 부담될 정도.
그러나 예림은 흑기사를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와 기춘이 처음부터 절대 안 들어 주겠다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거부하면 두 잔.
"크. 너무 써!"
벌주를 마신 예림이 과도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아무리 술이 센 사람도 연타로 원샷 때리면 버티기 힘들다. 예림의 눈이 슬슬 풀리는 것을 본 기춘은 비릿한 웃음을 나에게 보냈다.
-계획대로 잘 되고 있군.
이라는 사인이다.
나 역시 코를 비비는 척 엄지를 세워 ‘따봉’을 날렸다.
-네, 형님.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순식간에 소주 두 병과 맥주 두병이 증발했다. 대충 헤아려 보니 기춘이 2번, 예림이 4번, 수아가 3번 정도 벌주를 마신 것 같다.
물론 나는 술잔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왜냐고?
나에겐 마법의 스마트워치가 있으니까.
[박수 한 번입니다.]
[41.]
[박수 두 번입니다.]
로시는 내 차례가 돌아 올 때마다 미리 계산한 결과를 정확히 일러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들려주는 숫자를 읊거나 행동을 따라하면 끝이었다.
이런 순발력 게임에선 치트키나 다름없는 수준.
내가 도저히 걸려들지 않자 가장 많이 벌주를 마신 예림이 살짝 뿔이 났다.
"야! 종목 바꿔!"
"왜?"
"이건 너한테 너무 유리하잖아!"
"뭐가 유리한데?"
"너, 넌 공부 잘하니까! 국성대 다닌다며!"
저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369 게임과 학력은 큰 상관없다.
이런 건 초등학교만 나와도 다 할 줄 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소맥 4잔을 들이 부은 예림은 벌써 취기가 올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바꿔! 노잼이야 진짜! 유치해서 더 못하겠어!"
"······.그래?"
나는 이쯤에서 기춘을 향해 물었다.
"형, 뭐 다른 게임 없을 까요?"
물론 이것 역시 준비된 사인이다. 369게임을 통해 술을 충분히 먹인 뒤에야 할 수 있는 게임.
"그러면··· ‘산 넘어 산’은 어떠냐?"
"그게 뭔데요?"
"첨 듣는 게임인데?"
기춘은 열심히 게임 룰을 설명했다.
요약하면 앞사람 행동을 다음 사람이 똑같이 따라하되 턴이 진행될수록 동작이 추가되는, ‘시장에 가면’의 변형게임이라는 것.
처음엔 가짓수가 적어 단순하지만 콤보가 늘 수록 기억하기 쉽지 않다. 머리로 기억하고 몸이 따라해야 한다.
"동작은 혼자 해도 되고 앞사람에게 해도 돼."
"아무거나요? 제한 없이?"
"응, 대신 만약 동작을 틀리거나, 다음 사람의 동작을 도저히 못 따라하겠다. 그러면 벌주. 어때?"
"콜!"
잔뜩 약이 오른 예림이 의기양양 콜을 불렀다.
수아는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왔다.
‘흐흐. 좋아 지금부터 나의 시간이군.’
아직 내 손엔 ‘몸에 좋은 크림’의 효과가 남아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자연스럽게 터치를 허용한다.
"진행방향은 어떻게요?"
"당연히 고도리."
기춘의 의도는 분명했다.
예림을 자기 손으로 주무르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자연스레 수아를 주무르게 된다.
내가 자기 여친 이라고 봐줄 줄 아나보지?
"나부터 시작할래."
마지막 벌주를 마신 예림이 동작을 취했다.
파우더 솜으로 볼터치 하듯 오른뺨을 두 번 두드리는 동작.
"쉽네."
바통을 이어 받은 내가 볼을 두 번 톡톡 건드렸다.
‘헉!’
순간 극도의 흥분감이 노도처럼 밀려왔다.
마치 나체의 여자가 아로마오일 바른 가슴으로 내 뺨에 부비부비해주는 느낌이랄까?
‘로시, 이 아이템 나한테도 통하는 거였어?’
[물론입니다. 느낌 좋으시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발기돼버렸잖아.’
나는 급하게 다리를 꼬아 일어서는 녀석을 제압했다.
여기서 텐트를 쳤다가 옆에 앉은 여자들이 눈치 채면 큰일이다.
‘젠장, 다음에 내 몸을 만질 땐 시늉만 해야겠어. 이러다 내가 자제력을 잃겠군.’
[가끔 플레이어 중에선 개인 용도로 구매하시는 분도 있다 들었습니다. 크림을 바르고 자위를 하면 극도의 쾌감을 얻을 수 있다며······.]
‘야! 난 절대 아니야! 넣을 구멍이 양 옆으로 있는데 자위는 무슨 자위!’
크림의 효과를 실감한 나는 좀 더 수위를 올리기로 했다.
"형, 이거 앞 사람한테 해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요, 뭐 게임이니까."
나는 옆에 앉은 수아의 손을 붙잡고 손등에 키스했다.
사실 키스는 별것 아니고 포인트는 손을 맞잡는 동작에 있었다.
내 손을 잡은 수아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어때?
너도 몸에 좋은 남자는 처음이지?
아마 손등이 아니라 밑에다 코를 처박고 보빨 당한 기분일 거다. 모터달린 혀로 이곳저곳.
"흐읍!!!"
예상치 못한 강한 자극을 받은 수아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린다. 술에 취해 달아오른 얼굴은 더욱 빨개지고, 입에선 안타까운 한숨이 밀려나왔다.
남들이 보기엔 남친 앞에서 키스를 받은 것에 놀란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깊은 곳에서 샘물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춘은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사실 게임 수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바로 기춘이었다.
-대충 몸 풀기 게임으로 술 좀 먹이고 나면 바로 수위 올리자. 산 너머 산이라는 게임 알지?
-형, 근데 그 게임은······. 자리배치상 저도 형 여친한테 동작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괜찮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예림이 따먹으려면. 눈치 봐서 적당히만 해.
-알았어요. 최대한 조심스럽게 할게요.
물론 동작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내 손이 닿는 순간, 누구든 느껴버릴 테니까.
손등 키스 이후 수아가 나를 보는 시선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그녀 입장에선 손등 키스만으로 밑이 젖어 버린 것에 대해 오해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이 나를 격렬히 원하고 있다고. 그런 착각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동작을 이어 받은 수아는 볼 터치, 손등에 키스하기에 이어 자신만의 동작을 추가했다. 그것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기에 지켜보고 있던 나와 예림 모두 놀라고 말았다.
빡-
바로 딱 밤 때리기였다.
"으앗! 야, 이거 때리는 것도 있어?"
딱 밤을 맞고 이마를 문지르는 기춘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에 나는 수아의 편을 들었다.
"아까 형이 그랬잖아요. 아무거나 해도 된다고."
"아, 아니 그래도."
여친에게 딱 밤을 후려 맞은 기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수아를 노려보았다. 누가 봐도 진심을 담은 일격이었다.
"에이 씨, 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세게 때리냐?"
"미안 오빠. 게임은 게임이니까."
수아가 메마른 목소리로 기춘에게 대답했다.
술에 취한 수아는 처음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소심하고 기죽어 있는 평소 모습이 아니라, 새침하다 못해 시크하기까지 했다.
‘쟤도 취하니까 성격 확 바뀌네?’
[술에 취하면 숨겨진 본성이 나온다고들 하지요.]
그런가?
그렇다면 방금 전의 일격은, 평소 기춘에 억눌려 있던 것에 대한 복수나 마찬가지군.
크크. 쌤통이다 기춘이 새끼.
그러나 기춘은 여친의 심경을 헤아릴 생각 따윈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벌써부터 예림에게 할 짓을 떠올리느라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짐승의 눈빛이나 마찬가지군.’
나는 빠르게 깨톡으로 주의를 주었다.
-형, 너무 심하게 하지 마요.
변태 같은 표정으로 예림에게 다가가던 기춘은 깨톡을 확인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가 눈에 힘을 주어 다시 사인을 보내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할 때 수위를 한 번에 올리면 오히려 역효관거 아시죠?
-뭔 소리야?
-사람이란 게 손잡고 뽀뽀하고 차근히 진도를 빼야지, 다짜고짜 꽂아버리면 반감을 산다는 말이에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너무 급하게 하지 마세요. 또 수아 눈치도 좀 보면서 하구요.
-알았어.
결국 기춘은 앞선 동작과 함께 가볍게 포옹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턴을 마쳤다. 기춘이 포옹을 할 때 예림의 얼굴을 보니 하수구에서 기어 나온 바퀴벌레라 마주친 표정이었다.
그 썩은 얼굴을 옆에 있던 나만 본 게 다행이었다.
다시 예림의 차례.
예림은 내 손등에 키스를 하려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좋아 죽겠지?
딱 밤도 때리는 시늉만 했다. 아마도 기춘이었으면 온 힘을 다해 갈겼겠지. 이어지는 포옹. 그녀는 기춘이 했던 것과 달리 온힘을 다해 나를 껴안았다. 이미 손을 잡으면서 몸이 달아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
"어머, 어머!"
"저렇게 세게 해도 되는 거였어?"
그럼 인마, 너는 안 되도 나는 되지.
나는 마주 포옹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손길이 닿는 순간 예림의 뜨거운 호흡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미치겠네, 진짜."
그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기 때문에 껴안고 있던 나만 알아 들었다.
아깐 실패했지만, 지금처럼 술기운이 오르고 흥분한 상황에선 과감히 들이대도 될 것같다.
여자의 마음을 훔치는건 타이밍이지.
나는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못 참겠음, 참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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