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8화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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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눈이이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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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은 적당히 클랜 정모를 마무리 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즐거웠어요."

클랜원들이 택시를 타고 뿔뿔히 흩어지자 자연스럽게 나와 나예림 그리고 기춘 커플 넷만 남게 되었다.

"자. 그럼 우린 계획대로 2차나 가 볼까?"

나의 조언에 따라 기춘은 오늘의 소개팅을 넷이 술마시며 노는것으로 미리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뻘쭘하게 둘만 있는 것보다, 놀면서 친해지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라며.

"근데 어디로 가요?"

"응, 요 근처 괜찮은 룸소방 있거든. 거기로 가자."

"룸소방요?"

"룸 식으로 되어가지고 되게 깔끔해. 노래방 기계도 있고."

룸소방은 사실 어제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였다.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형, 술 먹고 자빠뜨리려면 밀폐된 장소가 최고에요. 룸소방 어때요?

-근데 이게 진짜로 될까? 여친은 어쩌고?

-글쎄, 된다니까요. 게임 같은 거 해가지고 술 잔뜩 먹인 담에 먼저 보내버림 되죠. 제가 형 여친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적당히 분위기 봐서 빠질게요. 그러면 형하고 예림이 둘만 남는 거죠.

-아씨, 근데 예림이가 엄청 빼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게임 같은 거 걸려도 맨날 흑기사나 부르고.

-상관없어요. 어차피 남자라곤 형이랑 저 둘 뿐이니까. 둘 다 거부하면 독박이잖아요. 제가 형 최대한 밀어드릴게요.

-그래. 너만 믿는다, 도훈아.

점원의 안내에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4명이 놀기엔 제법 넉넉한 공간이다.

"여기 소맥 4병씩이랑, 안주는..."

기춘이 거드름을 피우며 주문을 넣었다. 지 혼자 계산할 것도 아니면서 생색은.

나는 점원이 들고 온 메뉴판을 수아에게 건넸다.

"안주는 수아씨 먹고 싶은 걸루 골라요."

"제가요?"

"원래 이런 건 레이디 퍼스트죠. 하하."

이 방의 레이디는 모두 둘.

예림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수아에게만 선택권을 주었다. 예림의 표정이 짜게 식어간다. 조만간 눈에서 레이져라도 뿜을 기세다. 약을 너무 올렸나?

점원이 물러가자 기춘이 말했다.

"아까 대충 인사는 했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소개할 게. 이쪽은 나랑 같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생 도훈이. 그리고 저긴..."

"나예림씨죠?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기춘의 말을 끊으며 악수를 청했다.

예림이 놀란 표정으로 내 손을 바라본다.

이제껏 무심한 척 굴더니 이름을 알고 있던 것에 의아해 하는 눈치다. 나는 가볍게 변명을 덧붙였다.

"아깐 사람들 눈치 보느라 말 못 걸었어. 우리 동갑이랬지? 말 편하게 하자."

"그,그래."

예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수를 받았다.

그 순간 그녀의 동공이 급격히 확대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전류가 통한 사람처럼 어깨를 움찔거리는 그녀를 향해 방긋 미소 지었다.

‘이게 정말 통하는 구나.’

[물론입니다. 아이템의 위력은 확실하거든요.]

사실 이번 계획을 모의하기 전 몇 가지 아이템을 미리 구매했다. 하룻밤 사이 두 명을 동시 공략하는 것은 아무리 나 같은 대물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몸에 좋은 크림?’

[네. 애무 효과를 극대화하는 크림입니다. 손끝에 바르고 상대를 터치하면 성감대가 아닌 곳이라도 엄청난 흥분효과를 유발합니다.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면 금방 젖어 버릴 정도죠.]

‘와, 그래도 1회용 밖에 안되는 게 400포인트라니...’

[그만큼 확실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돼지 발정제 이상의 최음 효과가 있다고 하니까요.]

‘그냥 손에 바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네. 핸드크림처럼 손에 발라주시면 2시간가량 효과가 지속됩니다.]

나는 룸소방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몸에 좋은 크림’을 바르고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그간의 도발로 인해 바짝 약이 오른 예림에게 적당히 사과도 할 겸 화해의 악수를 건냈다.

‘맛이 어때? 몸에 좋은 남자는 처음이지?’

***

‘흡-!’

예림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가까스로 들이켰다. 이상한 기분이다. 단순히 악수만 나눴을 뿐인데, 온 몸이 뜨거워진다.

유두가 바짝 곤두 서고, 밑이 근질거린다.

"저, 잠깐 화장실 좀..."

예림은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칸막이 문을 잠그고 팬티를 내리자 동전 크기의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손만 잡았는데 ...느껴 버린 거야?’

도훈은 알면 알수록 기묘한 남자였다.

실은 계속되는 무관심에 점점 지쳐가던 차.

아무리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라도 여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란 게 있다. 그 선을 아슬아슬 넘기 직전, 그는 느닷없이 악수를 건넸다.

사실 이름도 진즉 알고 있었고, 눈치 보느라 말도 못 걸었다며. 그리고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하자고.

‘뭐야 그럼 나한테 첨부터 관심 있던 거잖아? 쳇.’

농락당한 기분이었지만, 도훈의 진심을 알고 나니 그간 구겨졌던 자존심이 곧바로 회복되었다.

‘...좋으면 그냥 티를 내란 말이야. 난 괜찮으니까.’

예림은 휴지로 젖은 부위를 닦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밤 처음 만난 그와 잘지도 모르겠다고.

***

자리배치는 기춘과 수아, 그리고 나와 예림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ㄷ’자 모양의 좌석에 나와 수아가 가운데 앉고 기춘과 예림이 마주보는 형태.

나로선 두 여자를 양쪽에 끼고 있어야 작업이 수월했기 때문에 멍청한 기춘을 이렇게 설득했다.

-형은 무조건 예림이 맞은편에 앉아요. 원래 제일 중요한 게 눈빛으로 계속 시그널을 보내는 거거든요.

-그러다 수아가 눈치라도 채면?

-형수님은 걱정 마세요. 제가 꽉 붙들고 있을 테니까.

조금 서먹했던 분위기도 술이 한 순배 돌고나니 뜨끈뜨끈해졌다. 술이 오른 기춘은 느닷없이 마이크를 잡고는 테이블 앞으로 나갔다.

"막간을 이용해 노래나 한 곡 땡겨 보자."

기춘은 되지도 않는 발라드를 선곡하며 갖은 똥 폼을 잡았다. 아마도 예림에게 점수를 따려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예림은 나에게 완전히 집중한 상태였다.

"형 노래 부른다. 우리도 나갈까?"

"아니."

"하긴 뭐 댄스곡도 아니니까."

수아는 남자친구를 위한답시고 함께 고음 파트를 나눠 불렀다. 자연스럽게 나와 예림의 둘 만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너 국성대 다닌다며? 무슨 과야?"

"체육전공."

"어쩐지 몸 좋아 보이더라."

"너도 좋던데?"

"헐, 너 내 몸 훔쳐봤니?"

"훔쳐보기는. 아주 대놓고 보여 주더만."

"안 보는 척 은근 다 보고 있었네?"

"몰랐어? 들어오자마자 너만 보고 있던 거."

나는 무관심 전략에서 완벽한 공세로 전환했다. 어그로 끌기가 성공한 이상 전략을 수정할 타이밍이다. 나의 적극적인 변화가 예림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피-. 계속 수아랑만 얘기하더만 뭘."

"그거야 바로 수아가 앞에 앉아 있으니까 그렇지. 멀리 있는 너한테 말 걸면 다른 사람들이 괜히 수상하게 볼 거 아니야."

"너 남의 눈치나 보는 사람이었어? 좀 실망인데?"

과연 예림은 녹록치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티를 내자마자 주도권을 잡으려 들었다.

물론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눈치 보기는. 내가 너 처음 보자마자 안주 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육포?"

"그래. 첨부터 너 찍었다는 소리야."

예림이 피식 웃는다.

"웃기셔. 근데 왜 하필 육포야?"

"제일 맛있게 보여서."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지며 예림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예림은 민망해 하며 시선을 피했지만, 뭔가 싸인을 눈치 챈 표정이었다. 예상대로 순진한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발라드를 마친 기춘은 한 곡만으론 만족이 안 되는지 이번엔 힙합으로 장르를 바꿨다. 수아 역시 엉겹결에 한 곡 더 피쳐링을 맡게 되었다.

"둘이 잘 노네."

"솔직히 수아가 아깝지."

"응?"

"클랜 사람들 뒤에서 다 욕해. 기춘오빠가 순진한 애 꼬아서 사귀는 거라고. 수아가 좀 바보같이 착하거든. 거절도 잘 못하고."

예림은 여러모로 기춘이 못 마땅한 듯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자연스레 뒷담화를 거들었다.

"기춘이형이 좀 찌질하긴 하지."

"응?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친하긴 개뿔. 나이 좀 먹었다고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원래 호박씨는 함께 까주어야 제 맛이다. 나의 격한 호응에 예림도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야. 그러다 들어."

"들어도 상관없어. 솔직히 오늘 소개팅 상대 그 후덕녀였음 면상에 바로 죽빵 갈기려고 했어."

"헐!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솔직하네?"

"맞아. 나 솔직해. 둘만 있음 더 솔직할 수도 있고."

계속 되는 나의 도발에 예림은 알 듯 모를 듯 미소만 지었다. \

역시 말만으론 작업속도가 더디다.

나는 이쯤에서 비장의 한 수를 쓰기로 했다.

"내가 너 손금 봐줄까?"

"볼 줄은 알고?"

"우리 외삼촌 철학원 하시거든. 어렸을 때 어깨너머로 좀 배웠지."

"괜히 손잡아 보려고 수작부리는 거 같은데?"

"싫음 말든지."

예림은 어떻게든 남자를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전혀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이런 타입은 고분고분 굴수록 상대를 얕잡아 본다. 콧대 높은 여성일수록 떠받들 게 아니라 찍어 눌러야 한다.

내가 뻐팅기자 마지못한 척 예림이 손을 내밀었다.

"뭐,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니가 계속 도도한척 한다 이거지? 어디 한번 이래도 참나 보자.’

나는 아이템을 바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손이 맞닿는 순간 예림이 어깨를 움찔 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밑이 아주 찌릿찌릿 할거다.

‘반응 즉빵인데?’

[당연합니다. 살이 맞닿는 모든 부위가 극도로 예민한 성감대나 마찬가지니까요.]

나는 일부러 손가락을 세워 간지럽히듯 손금을 타고 내렸다.

"어디보자 생명선이 아주 기네, 장수 하겠어."

"흐아..."

"이건 재물선. 재복이 많은 타입이군. 집 좀 사나 보지?"

"하아...앙.."

손바닥만 만지는 데도 예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지를 비틀어 댔다.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혀끝에서 터져 나오고, 눈동자마저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좀 있음 질질 싸겠구나.

"애정 운도 한 번 봐볼까? 오!"

나는 깜짝 놀란 척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예림이 한껏 아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하아...왜, 왜 그래?"

"여기서 말하기 좀 민망해서."

"뭔데 그래? 말해줘."

"이리 가까이 와봐."

내 손짓에 예림이 순순히 귀를 붙여댔다.

마법의 터치로 몸이 바짝 달은 예림은, 시키기만 하면 당장 빤쓰라도 벗어 던질 기세다. 정말 아이템 효과 죽이는 군.

나는 귓속말을 하는 척 그녀의 귀를 한손으로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너 남자를 일찍 알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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