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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5화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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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눈이이06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여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현관문에 가까이 바짝 귀를 붙여본다.

변태 같은 행동이지만 사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하아...흡...하아..."

귀를 대니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간드러지듯 헐떡이는 신음은, 흡사 야동을 틀어 놓은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 그러나 스피커를 통해 걸러진 소리와 사람의 육성은 느낌부터 다르다.

이건 진짜다.

‘와, 신음 한번 끝장나네. 이런 여자랑 한 번 해봤으면...’

이도훈으로 환생한 후 만난 여자들은 비주얼은 괜찮은 반면 사운드가 미흡했다. 혹자는 속궁합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 반문 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소리도 쌕끈한 쪽이 남자에겐 훨씬 만족감을 준다. 이 여자가 지금 내 것에 환장하고 있구나 하는 반응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자위중인건가?’

남자와 하고 있다면 분명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릴 터.

그러나 살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 특유의 찰진 소리는 없었다.

소리에 자극 받은 불기둥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순간, 불쑥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지금 박아줘. 가영이 구멍에 깊이."

‘뭐야? 남자가 있었어?’

화들짝 놀라 후다닥 물러선다.

남자와 함께라 생각하니 커졌던 좆이 절로 수그러든다. 스스로 위로중이면 이웃 주민의 정(?)으로 어루만져 줄까 싶었는데, 이미 그녀의 구멍은 주인이 있는 상태였다.

‘에이, 좋다 말았네.’

실망한 채 방으로 들어서려던 찰라, 또 다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여의봉님 별풍 감사요. 서비스로 지금부터 딜도쇼 들어 갑니다아~"

왠지 나레이터 모델이 연상되는 말투다.

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별풍은 또 뭐야?

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이상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들으라는 듯 현관문을 쾅- 닫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은 놀랐겠지?

잘 준비를 마치고 바닥에 눕는 데, 방금 전 들었던 신음이 메아리처럼 귀청을 맴돌았다. 그만큼 자극적이었나 보다.

"......."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아까처럼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부실공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층간이나 벽간 소음은 완벽히 차단되는 것 같다.

어쩌면 ‘포스트잇 녀’도 우연히 문 밖을 지나다 들었을 가능성이 높겠군. 근데 포스티잇 쓴 여자랑 저 여자랑 동일 인물이긴 한 건가?

나는 로시에게 물었다.

‘혹시 도훈의 기억 속에 원룸 주민들에 대한 정보는 없어?’

[맨 윗층 주인아저씨 말고는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설혹 마주쳤다 하더라도 인상적이지 않았던 기억들은 망각되어 사라져 버리니까요.]

하긴, 도훈이 생전에 보고 들은 모든 걸 기억했다면 로시는 천재나 마찬가지겠지.

‘그럼 별풍이란 말뜻도 몰라?’

[따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40대인 나는 그렇다 치고, 20대인 도훈도 모르는 단어라... 혹시 특정 사람들만 쓰는 은어 같은 건가?

살짝 호기심이 생겼지만, 피곤을 물리칠 만큼은 아니다.

앞으로 공략할 여자들도 대기표 받고 줄서있는 형국이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주인님.]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가볍게 아침을 때우고 헬스장 갈 준비를 했다.

어제 하루 빼먹었다고 몸이 찌뿌둥한 것 같다.

현관문을 닫는 데 어제 본 포스트잇이 또 붙어 있다.

‘뭐야? 이건?’

내용이 좀 다르다.

-문 좀 조용히 닫아 줄래요?

이웃 주민

"하-. 이것 봐라? 지금 나랑 필담하자는 거야?"

글씨체를 보니 어제랑 똑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누군지도 알 것 같다.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왔을 때 원룸에 깨어있던 사람.

그 신음녀 밖엔 없다.

나는 신발을 벗고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 메모지와 팬을 가져왔다.

-신음 때매 꼴려 죽을 것 같아요.

다음부턴 입 좀 막고 해주실래요?

옆집 대학생

크크크. 이거 보면 엄청 당황하겠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옆집 여자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주인님은 짖궂으신 면이 있으시네요.]

‘자꾸 나한테 뭐라 하니까 그렇지. 지나 잘할 것이지 말이야. 그나저나 대체 뭐하는 얠까?’

[궁금하시면 관련 아이템을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헬스장으로 가는 도중 로시는 나에게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투시안경이라든가, 파리모형의 초소형 드론 등을 소개했다. 물론 가격은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

‘응? 싸이코 메트리?’

[네, 아이템이 아니라 스킬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싸이코 메트리는 사물에 담긴 기억을 읽는 능력입니다. 물건에 손을 대면 물건을 거쳐 갔던 사람들을 볼 수 있지요.]

‘와, 그거야 말로 초능력이네. 형사같은 거 하면 대박나겠다.’

[아쉽게도 주인님 직업 선택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무슨 공산주의도 아니고... 아무튼 그 능력을 어떻게 얻는 건데?’

[미션 보상에 뜨거나, 레벨을 올려 랜덤 박스에서 나오길 기다려야죠. 확률적으론 후자 쪽이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참...쉬운 게 없구만.’

"안녕하세요!"

어느덧 헬스장에 당도한 나는 입구에서 만난 남자 트레이너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미나에게만 인사했다간 괜히 찍쩝대는 행동으로 보일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오셨어요, 회원님? 어제 왜 안 오셨어요?"

"일이 좀 있어서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 어제 미나씨가 계속 회원님 찾았거든요."

"저를요?"

"네. PT에 갑자기 결원이 생겼나 보더라구요. 급성 맹장염이라나? 아무튼 여부를 물어본다고 기다렸는데 안 오셔가지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 넣었데요."

아차! 이런, 실수를!

하린이를 공략하느라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나는 다급한 마음에 남자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미나 쌤 지금 어딨어요?"

"오늘 내일 쉬는 날이에요. 트레이너 넷이서 격주로 돌아가면서 쉬거든요."

가는 날이 장날이네.

PT 들어가는 건 고사하더라도 3일 동안 얼굴도 못 보게 생겼으니...가만, 다음 주 월화순 또 새터 가야 되잖아?

이래가지곤 미션 수행 날짜 다 지나버리는 거 아냐?

나는 스마트 워치로 미션의 내용을 확인했다.

다행히 헬스녀를 공략하라 미션은 3개월짜리.

아직 시간은 충분하지만, 못 보는 사이 호감도가 떨어질 것이 우려되었다.

‘로시, 자주 안보면 호감도 떨어지기도 해?’

[물론입니다. 이미 관계를 맺은 여성의 경우 저하속도가 줄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흠... 아웃 오브 싸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란 소리군.’

이게 다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 벌어진 일이다.

좀 더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를 느낀다.

‘앞으론 미션이나 위업과 관련 있는 대상 위주로 공략해야 겠어. 공떡도 좋지만, 보상이 전혀 없잖아.’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나는 묵묵히 운동에 매진했다.

미나가 없으니 보는 재미는 없었지만, 기왕 헬스장에 왔으니 몸이나 만들고 가자는 심산이었다. 게다가 알바 시작 전까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기춘이건 까진 보상이 있든 없든 마무리 지어야지. 놈은 혼구녕 좀 나봐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덤벨을 들어 올리는 데 지나가던 트레이너가 말을 걸었다.

"오늘 되게 빡시게 하시네요? 컨디션 좋은 가 봐요?"

"밤에 힘 쓸 데가 있거든요."

"네?"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수연이와 교대를 마치고 무료한 시간이 흘러갔다.

저녁에 사장이 왔을 때 다음 주 새터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장님, 저 다음 주 월화수 빠져야 할 것 같아요."

"왜?"

"대학교 행사가 잡혀 가지구요."

"그래도 3일씩이나?"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제가 날짜를 깜빡했어요."

"아이참, 죄송 같은 거 안 해도 돼. 우리 사이에..."

사장은 대물 맛을 본 이후 나에게 무조건 호의적이다. 왠지 그녀를 이용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알바보단 도훈의 대학생활이 우선이다.

"저기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알바를 다음 주까지만 하겠다고 통보했다.

사장은 몹시 아쉬운 눈치였지만, 애초에 도훈이 알바를 시작할 때도 개강 전까지만 하는 것으로 말을 해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에휴, 도훈군이 일을 참 성실히 해줬는데 아쉬워서 어째..."

정녕 그것만 아쉬운 것입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사장이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그래 뭐 하린이도 이제 충주 떠나면 땜빵도 없어서 그렇잖아도 알바 더 구하려던 참이야. 말 잘했어. 너무 신경 쓰지마. 요샌 어플로 모집하니까 금방금방 구해지더라고."

"다행이네요."

"그리고 도훈학생..."

사장은 쭈뼛거리며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나에게 말했다.

"주말에 시간되면 언제든 연락해. 딸애도 집에 없으니까 내 집이다 생각하고... 알았지?"

그냥 딸애가 집에 있을 때 셋이 같이 하는 건 어떻습니까? 장모님.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말없이 미소만 띄웠다.

사장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보나마나 호감도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 같다.

***

드디어 새벽 2시.

기나긴 알바가 끝나자 기춘 대신 사장이 교대를 하러 왔다.

갑자기 가게 문을 잠그려는 손짓에 흠칫 놀라 그녀를 만류했다.

"저 지금 바로 가봐야 돼요."

"10분도 안 돼?"

뭔가 작정한 눈빛.

매상 따위는 상관없다는 건가?

그녀의 뜨거운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오늘은 힘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사장과 한참 실갱이를 벌인 끝에 결국 내가 항복했다.

"알았어요. 일욜에 집에 가서 제대로 해줄게요."

"정말이다?"

"네. 그러니까 오늘은 봐주세요."

"히히. 고마워 도훈학생."

사장은 포스기에서 현금 5만원 짜리 두장을 꺼내더니 뒷주머니에 꽂아주었다. 뭐지? 선불인거냐?

"오늘 술자리 있다며. 남자가 지갑이 든든해야지. 재밌게 놀다와."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지.

나는 가게문을 나서며 사장을 향해 따봉을 날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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