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눈이이03
***
짧은 숙면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알바 갈 시간이 되었다.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원룸 밖을 나서는데 현관문 앞에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뭐지? 택배 안 시켰는데?"
포스트잇을 들여보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신음 때문에 잠을 청할 수가 없네요.
다음부턴 신경 좀 써주세요.-
이웃 주민
"으잉?"
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복도식으로 이루어진 원룸 통로엔 나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가구가 살고 있다. 누가 붙이고 간 걸까?
"설마 옆집?"
확실히 화장실 2차전 소리가 제법 크긴 했다.
처음엔 소리 내는 게 부끄러워 입까지 틀어막던 하린은, 2번째 세트가 되자 온몸으로 환희를 토해냈다.
대낮이라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하필 그 시간에 누군가 잠을 청하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민망함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애꿎은 원룸 방음 상태를 비난했다.
"하여간 날림 공사 수준하고는···."
말끔한 글씨체로 봐선 필시 여자가 쓴 것 같은데 단순히 ‘옆집 주민’이라고만 적어놓아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포스트잇을 때 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근데 왜 대낮에 잠을 자는 거람? 설마 밤일이라도 나가는 건가?’
누군가 나의 섹스를 실황으로 엿들었다고 생각하자 괜히 야릇한 기분이 든다. 특히 그 대상이 옆방 사는 익명의 여자라는 설정이 왠지 자극적이다.
떡 치는 소릴 들으면서 무슨 상상을 했을까? 혼자서 해버린 건 아니겠지?
‘흐흐. 다음번엔 더 크게 해 버려야지. 궁금해서 미치게.’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 3명의 여자를 공략하고 나니 부쩍 자신감이 든다. 40대 여사장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두 명은 얼굴도 반반한 묘령의 여성들이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를 공략하게 될까?
손발을 다 합쳐도 헤아리지 못할 건 분명하다. 설마 머리카락으로 카운팅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자라나라 머리머리!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편의점에 도착했다. 수연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다가도 생리통 때문인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왔어요, 오빠?"
"많이 아프니?"
"제가 좀 그게 심한 편이라서요. 첫날이라 양도 많고···."
어느새 수연은 이런 얘기도 거리낌 없이 하게 되었다. 확실히 살을 한번 섞고 나면 남녀 사이의 거리감이 부쩍 줄어드는 것 같다.
나는 괜히 짓궂은 농을 던졌다.
"그래도 생리해서 다행이지."
"네?"
"안 나오면 어쩔 뻔?"
"뭐라고요? 이 오빠가 진짜!"
수연이 앙증맞게 주먹으로 내 팔뚝을 때린다.
도끼눈을 뜬 그녀가 말했다.
"저 이 나이에 애 엄마 만들려고 했어요?"
"미안, 미안. 농담이었어. 화 풀어."
"이 오빠 안 되겠네. 담부턴 무조건 장화 차고 해요."
"그러지 마. 나 사이즈 맞는 것도 별로 없어."
"에이, 설마."
"진짜로. 특대형으로 사야 하는데 우리 편의점엔 없더라고."
"헐."
그러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노콘을 한 것 같다. 질싸는 피했지만 만에 하나 임신이라도 시키는 날엔 플레이어로서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23살로 환생했는데 덜컥 애 아빠라니···.
그건 너무 가혹한 운명이다.
"나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네."
나는 창고로 들어가는 길에 로시에게 물었다
‘로시, 혹시 임신이 안 되게 하는 아이템도 있을까?’
[불임을 원하십니까?]
‘아니아니. 그건 오버고. 애는 언젠간 낳아야지. 정관수술 받아도 되는데 그건 좀 씨 없는 수박 같잖아. 수술하지 않고도 절대 임신 안 되게 하는 그런 아이템은 없나 싶어서.’
[마켓창에 관련 아이템을 띄워놓았습니다.]
‘역시 빠르구먼.’
나는 화면을 터치해 검색 결과를 확인했다.
[철통 수비] 콘돔, 140p
-남성 전용 피임 기구입니다.
-절대 찢어지거나 새지 않는 콘돔. 슈퍼초박형 0.004mm 폴리우레탄 소재로 이루어져 이물감이 덜하며 세척 후 재사용 가능.
-재사용 가능 횟수, 50회.
*재사용 횟수를 초과한 경우 내구성 문제가 생길 수 있음.
[Plan B] 긴급 피임약, 130P
-여성 전용 경구투여형 사후피임약입니다.
-부작용이 전혀 없으며 몸에 해롭지 않음.
*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함.
[안에 해도 돼!]요구르트, 300P
-남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피임 음료입니다.
-마시는 순간 일시적으로 임신 능력을 상실. 단, 이미 임신 된 경우 유산되지 않음.
-음용 후 한 달 동안 효과 지속.
‘뭐야, 죄다 소모품뿐이야? 콘돔이랑 사후피임약은 여기서도 구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 않습니다. ‘철통 수비’ 콘돔은 천상계 나노섬유 기술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걸작입니다. 착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100%에 달하는 피임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세척으로 50회에 이르는 재사용 횟수 또한 매력적 이고요.]
‘아무튼, 난 콘돔별로야. 들어갈 때 느낌부터 다르다고. 게다가 그걸 빨아서 다시 써야 한다니···. 으.’
[‘Plan B’ 긴급 피임약 또한 인간계에 존재하는 어떤 사후피임약보다 안정적인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작용 또한 전혀 없고요. 천상계의 FDA라 할 수 있는 GOA의 인증도 받았습니다. 또 요구르트로 말씀드리면···.]
나는 로시의 말을 끊었다.
‘아니 내 말은 이런 임시 처방 말고, 정관수술이랑 비슷한 효과가 있으면서도 원하면 언제든 임신 가능한 아이템은 없느냐는 거지.’
[아하, 이제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로시가 아이템 마켓을 뒤지더니 다른 제품을 화면에 띄웠다.
[원하는 데로] 신체 조절 모듈, 6,000P
-피부에 삽입하는 칩 형태의 모듈.
-스마트 워치를 통해 신체 기능을 통제할 수 있음.
*삽입된 칩이 공항 검색대에 걸릴 위험이 존재.
‘육천 포인트?’
[가격은 좀 비싸지만 스마트 워치와 연동해 신체 기능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모듈 장치입니다. 총 10가지 항목을 조절할 수 있으며, 옵션 중 ‘무정자증’을 선택하면 정액 활동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임신이 불가능 해집니다. 반대로 ‘정자왕’모드로 바꾸시면 임신확률이 200%까지 상승하고요.]
‘와, 이런 게 가능하다니···.’
[원하는 데로] 아이템은 로시가 추천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들었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저 포인트면 차라리 다른 아이템을 사는 편이 가성비가 높을 것 같다.
‘흠, 정 안되면 포인트 좀 아깝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요구르트 마시는 수밖에 없겠군.’
[한데 주인님께선 남자인데 임신을 걱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인마. 그래도 사람이 책임감이 있어야지. 싸지르고 나 몰라라 하면 쓰냐.’
[저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것까진 잘 모릅니다.]
‘암튼 알았어. 너무 시간 끌면 수연이가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수연과 임무 교대를 마쳤다.
수연이 퇴근하면서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 생리만 아니면 좋았을걸."
"왜?"
"나 오빠랑 운동하고 싶단 말에요."
"진짜? 정 못 참겠으면 말만 해. 난 떡볶이 돼도 상관없어."
"떡볶이···? 치, 됐거든요! 시트에 피 묻는 건 제가 싫어요."
난 오늘도 피보고 왔구먼, 뭘.
같은 피는 아니지만···.
"암튼 담 주 알죠?"
"그래. 생리 끝나면 봐. 찐하게 안아 줄게."
"히히. 그럼 오빠 수고하세요. 쪽-."
수연은 내 볼에 기습 키스를 날리더니 가게를 떠났다.
쟤도 어지간히 근질거리는 모양이군.
어째서인지 나랑 관계를 맺고 난 여성들은 자꾸 나를 찾는다. 여사장도 그렇고, 수연이도···. 내 대물이 그렇게 맛있나 보지?
일하고 있으니 사장이 수금하러 들렀다.
"도훈 학생 열심히 일하고 있네."
"오셨어요? 자···. 사장님."
나도 모르게 장모님이라 말할 뻔했다.
그런 훌륭한 따님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암튼 모녀를 동시 공략한 사실은 두 사람에 모두에게 비밀로 하는 편이 좋겠다. 자기가 나온 구멍으로 내 것이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면 하린이 멘탈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도훈 학생도 내일 약속 있다며?"
"네?"
"기춘 학생이 그러던데? 둘이 술 마시는 약속이라고. 결국, 내가 날새기로 했어."
아, 내일 새벽 알바 말하는 거구나.
어쩐지 나한텐 대타 안 물어본 이유가 그것이었군.
사장은 새침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아쉬워서 어째. 내일 집 비어서 도훈 학생 맛난 거 해줄랬더니..."
장모님. 말씀 똑바로 하시죠.
그 맛 난 음식이란 게 저 아니었나요?
"아···. 죄송해요. 기춘이 형이랑 먼저 약속을 잡아 가지고요."
"그래. 뭐 어차피 도훈 학생이 시간 되더라도 내가 새벽에 나와야 할 판이니 별수 없지. 잘 놀다 와."
사장은 가게에 있는 손님 눈치를 살피다 나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근데 기춘 학생 좀 수상하다지 않았어? 괜찮은 거야?
-제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어쨌든 증거는 지워버리는 편이 좋잖아요.
-그래, 잘했어.
사장은 내 엉덩이를 토닥이더니 가게를 떠났다.
"그럼 수고해. 혹시 낼 술 먹고 해장하고 싶음 연락하고. 아침에 퇴근하면 집에서 해줄게."
"알겠습니다."
정말 집요하구먼.
하지만 사장 딸이면 몰라도, 굳이 40대 여성을 다시 먹고 싶진 않았다.
장모님, 그냥 장모님으로 만족하심 안될까요?
하린이랑 부녀 사이가 되고 싶진 않다고요.
시계를 보니 아직 8시 조금 넘은 시각.
기춘이 교대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얼른 와라, 기춘아. 형이 물어볼 게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