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1화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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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눈이이02

108개나 되는 위업 목록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성적 판타지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물론 범죄로 간주 될 수 있는 강간이나 추행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로시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플레이어라고 해서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주신 권능을 남용하는 것은, 신께서 가장 노여워하는 행위이니까요.]

나는 이 부분에서 살짝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로 알려진 전쟁 영웅들, 가령 알렉산더나 칭기즈칸 암튼 뭐 이런 놈들은 권능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 아니야? 신에게 받은 능력으로 수십,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갔잖아? 설마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고, 수천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논리는 아니겠지?’

[훌륭한 지적입니다, 주인님. IQ는 떨어졌지만 판단력은 여전히 손색없으시군요.]

‘뭐지? 이 조롱당하는 느낌은?’

[...기분 탓일 겁니다. 아무튼,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은 ‘문명 발전도와 시대 상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소리 고만하고 알아듣기 쉽게 말해.’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대한민국 출신의 유명한 플레이어 중 세종이 있습니다.]

‘킹 세종? 역시 그럴 것 같더라니···.’

[세종은 랭커의 반열에 오른 플레이어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존했던 시대엔 노예제가 당연시되었으며, 축첩 또한 죄가 아니었죠. 세종이 노예를 부리고 부인을 6명씩이나 두었다 해서 문제가 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이상하네?’

[이는 위업의 적합성을 가늠하는 데 있어, 플레이어가 생존한 당시의 문명 발전도와 시대 상황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빈번하던 시대에 정복을 통해 영토를 늘리는 것을 잘못되었다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인권 개념이 없던 시대에 왜 노예해방을 하지 않았느냐 꾸짖을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판단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통용되었던 행위가 현대에 와선 불가한 이유는, 그만큼 문명이 발전하고 시대 상황 역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그 정신의 한계는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종속되기 마련이니까요.]

‘오호라.’

[따라서 플레이어의 행위에 대한 제제 혹은 도달 가능한 위업 또한, 그에 맞추어 달라집니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지속적 업데이트를 통해 패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죠.]

‘뭔가 그럴싸하군.’

아무튼 정리하면 불법은 안 된다는 소리다.

하기야 성적 판타지를 무한대로 펼칠 수 있게 허용한다면, 플레이어는커녕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지도 모른다.

손목에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발목에 전자발찌를 차게 되겠지···.

"그나저나 우리 기춘이 좆되게 만들 방법 뭐 없을까."

위업의 가짓수는 많았지만, 딱히 기춘에게 허용될 만 건 찾기 쉽지 않았다.

송지희의 경우 여자이기 때문에 좆방망이로 응징한다손 치더라도, 남자인 기춘을 상대로 그것을 휘두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토악질 올라왔다. 놈의 후장을 그러니까···. 어휴.

‘어? 근데 이거 위업 순서랑 난이도는 아무 상관 없는 건가?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네?’

[맞습니다. 완전한 무작위 배열입니다. 108번이 가장 어려운 것도 아니고 1번이 가장 쉬운 것도 아닙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 난이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게 위업이 가진 특성입니다.]

‘어떻게 그렇지?’

[그것은 스스로의 취향과 경험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예를 들어 69번 위업 ‘숨겨왔던 나의···.’가 대표적인 케이스죠.]

‘그게 뭔데?’

나는 시계의 테두리에 장착된 휠을 돌렸다. 화면을 슬라이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스마트워치가 보유한 여러 개의 편의 기능 중 하나였다.

★달성 가능 위업 리스트 (현재까지 1/108)

69. 숨겨왔던 나의···. (동성과의 섹스 성공 시 달성)

-당신의 사랑은 성별을 뛰어넘었습니다.

-업적 보상 : 면역의 제왕(현존하는 모든 성병에 면역.)

"아놔 씨발, 이게 뭔..."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동성섹스? 그러니까 진짜로 후장 교환?

오늘은 내가 공, 니가 수?

토 나오게 만드네! 진짜, 우엑.

내가 어처구니없어하는데 로시가 설명을 곁들었다.

[해당 위업은 어떤 사람들에겐 엄두도 못 낼 과업이지만, 누군가는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또 드물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테고요.]

‘야! 나같음 때려죽여도 못해. 어차피 72개만 달성해도 랭커에 오를 수 있다며?’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위업 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지닌 의지니까요. 아무튼 위의 예시처럼 상당수의 위업이 사람에 따라선 전혀 다른 난이도를 갖게 됩니다.]

‘오케이, 이해했어.’

그나저나 어쩐다.

위업 달성과 기춘에 대한 복수를 동시에 이루려는 시도는 무리였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데, 특이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달성 가능 위업 리스트 (현재까지 1/108)

70.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지인의 여자친구 공략 시 달성)

-당신의 사랑은 우정보다 진합니다.

-업적 보상 : 아이템 증정.

「마라톤 용사의 양말」 - 착용하는 동안 체력 소모율 30% 감소.

‘어라? 이거라면···. 로시, 지인의 범위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야? 같은 직장서 3개월 정도 알고 지냈으면 지인이라고 볼 수 있나?’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문득 기춘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게임에서 만났다던가? 아무튼 나한테 갑자기 여자를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 적 있다.

‘...놈이 사장을 건드리려고 했으니, 똑같이 복수해 줘야겠어.’

사실 난 바람피우는 것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행위를 경멸하는 편이랄까.

해서 이 능력을 갖추게 된 후에도, 되도록 불륜 문제로는 얽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요즘엔 간통이 죄도 아니라지만, 상간남에서 칼 맞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던 나의 입장으로선 당연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문제.

하지만 기춘의 사례는 나와 달랐다.

그는 일단 결혼한 것도 아닌 데다, 특별히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여자친구를 진정 사랑했다면, 그 사람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수작을 부리려 한다든가, 혹은 여사장을 육노예로 만들어 기둥서방이 되려는 생각 따위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

내가 갖긴 싫어도 남 주긴 아까운 법.

자기 여자친구가 나와 바람 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엄청난 분노와 상실감에 빠질 것이다. 또 그로 인해 나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되면 놈을 폭행죄로 엮어 콩밥을 먹일 수 있다.

아니, 설사 거기까지 안 가더라도 놈의 멘탈은 걸레짝으로 변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테니까.

‘기춘. 너무 억울해 마라. 성공을 못 했다고 죄가 아닌 게 아냐. 내 걸 건드리려 한 것만으로 넌 이미 유죄야.’

[...주인님 왠지 표정이 음산해 보이십니다.]

‘엉? 너 내 얼굴도 볼 수 있냐?’

[아직 모르셨군요. 시계를 통해 저는 주인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체크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맥박이나 걸음걸이뿐 아니라, 감정의 고조나, 질병에 대한 진단, 심지어 생각도 읽을 수 있죠.]

‘하긴 생각을 읽는 기계니까 표정 정도 알아채는 건 일도 아니겠군. 가만, 일거수일투족이라니? 너 설마 이제까지 내가 한 짓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단 거야?’

[네, 주인님의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 제 임무니까요.]

‘여자 목소리로 그런 말 하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너 혹시 관음증 같은 건 아니지?’

[호호호. 걱정마십시오. 인간처럼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엄연한 A.I 니까요. 저에게 있어 인간의 성행위와 가축의 교미는 완벽히 동일한 행위로 인식됩니다.]

‘그게 뭔데?’

[종족 번식을 향한 본능적인 움직임이랄까요?]

‘뭐, 딱히 틀린 소린 아니네.’

최근 혼자 있을 때마다 로시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녀석을 사람이라 착각한 것 같다.

목소리를 여성형으로 바꾼 뒤 훨씬 듣기 좋아진 것도 그 원인이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굉장한 미인과 대화하는 착각이 든다랄까? 물론 그런 착각은 항상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좌우간 복수의 방법은 정해졌다.

이제 가진 바 능력을 활용해, 하룻밤 만에 임자 있는 여자를 자빠뜨리면 끝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물로 다시태어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일 것이다.

남의 여자를 빼앗는데 미안한 마음 따윈 ‘1’도 없다.

놈이 나와 사장에게 하려고 했던 짓은 이것보다 훨씬 더 했다. 그나마 달성하기 께름칙한 위업 하나를 달성하는 것으로 적당한 타결점을 찾은 셈이다.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을 놈은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제약만 없었더라면 놈은 훨씬 심한 짓을 당했을 것이다.

‘후후. 토요일이면 내일이지? 괄약근 바짝 조이고 대기타라, 김기춘.’

[주인님 혹시 69번 숨겨왔던 나의 위업을...]

‘아, 아냐! 난 그냥 긴장하고 있으란 뜻으로 한 거야. 진짜로!’

[네, 제 오해였습니다. 후훗.]

‘야! 기분 나쁘게 웃지 말라고!’

[네에~]

가끔 로시는 나를 놀리는 데 재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녀석, 인공지능 치곤 너무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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