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제134 화 마녀와 짐승과 강간당하는 소녀 (1)
* * *
사람의 일생에는 불꽃의 시기와 재의 시기가 있다.
그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과감하게 단칼에 끊어버린 다음, 다시 막을 열고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는 순간이───.
그 사실을………,
정현민은 사무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비가 쏟아지는 날 신혜민을 만나 인생에 큰 전환을 맞이했으니까.
그 순간 지금까지의 자신이 죽고,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신혜민과의 만남은 일종의 세례였다.
그렇기에 그는 확신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 만남 이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치관을 그 뿌리부터 뒤흔드는 만남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자신에겐 없으리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송나은을 보며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예지의 영역에 한없이 근접한 예감이었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어느샌가 자신의 방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수께끼의 불길한 여자.
그녀는 침대 끝에 다리를 꼬고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자신을 보며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건만, 어째선지 그는 거대한 독사를 앞에 둔 작은 개구리처럼 온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손발이 마비된 것만 같다.
동상이라도 걸린 걸까………,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져 까딱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등 뒤로 식은땀만이 쉴 틈 없이 흘러내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도대체 어째서인가?
인형 같은 더없이 아름다운 외견 속에 닿기만 해도 정신이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은 악의의 가시를 품고 있는 여자를 본 순간 신혜민을 떠올리고 만 것은.
신혜민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그녀에게 심취한 자신이 말이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신혜민이라는 이 세상 어떤 빛보다 눈부신 극광(?光)이 반전을 이룬 존재 같았다.
방향만 반대일 뿐 그녀에게선 무심코 신혜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격’이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대체 이 여자는 신혜민이 거하고 있는 영역에 한쪽 발이나마 들여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린 걸까……’
아직은 세간에서 말하는 소위 도덕에 묶여있는 그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런 그에게도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안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소중한 무언가 따윈 흔적조차 남지 않았겠지.
단 하나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소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그 어떤 것도 서슴없이 버릴 수 있는 극단으로 치우친 자.
그녀가 어떤 인간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은 순간, 현민은 더욱 그녀에게 위축되고 말았다.
그녀에게선 그녀를 거역하게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에서 항거할 수 없게 만드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미 나는 훨씬 예전부터 거미줄에 꽁꽁 묶인 먹잇감과 같은 신세였던 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런 의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를 가리켜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간절히 바라고 마는 사람의 마음속에 내리고 있는 비애를 그치게 해줄 자라고 소개한 송나은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녀에게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정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건 보기에 따라서는 여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숫기 없는 남자가 보이는 반응과도 비슷해보였다.
후훗……!
그런 숙맥 같은 반응을 보이는 현민이 귀엽다는 듯이 나은은 살짝 웃으며 그에게로 나긋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어느샌가 나은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현민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채 나은이 조금씩 그에게로 가까워질 때마다 뒷걸음질 쳤더니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벽에 몰린 후였다.
등 뒤로 벽의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게 바싹 다가와 있는 나은에게서는………,
무척이나 좋은 냄새가 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저 송나은이 가까이 다가온 것만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지고 하반신이 밑도끝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괴롭다.
명백하게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단 걸 머리 한구석에서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송나은이 가녀린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의 입술을 억지로 빼앗은 순간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웁……웁……
우뭅…
웁…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여자의 입술. 그건 어렴풋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라며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기분 좋았다.
송나은이 그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순식간에 그녀의 혀가 그의 입안을 비집고 들어와 헤집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뇌를 직접 휘저어지는 기분이었다.
의식이 몽롱해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진다. 반면에 하반신은 더없이 천박하게 딱딱해져 있었다.
푸하……!!!
갑작스러운 기나긴 입맞춤이 끝나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송나은이 갑자기 입술을 떼자 그가 있는 대로 크게 숨을 들이쉬다가 뱉길 반복했다.
하아……
하아……
자신의 의지가 일절 개입되지 않은 입맞춤이었다. 강제적으로 빼앗기다시피 이루어진 첫키스였건만,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여자의 몸을 모르고 있던 그에게는 이 상태 그대로 질식해서 죽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황홀한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부족하다. 갈증이 극심해졌다. 몸이 조금 전에 느꼈던 여자의 입술이 주는 부드러움을 전에 없이 원하고 만다.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송나은의 몸을 와락 끌어안으려 했지만, 가볍게 제지당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흐름상 그녀가 당연히 허락해줄 줄 알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하자 충격으로 얼어붙고 말았다.
지금껏 여자의 몸이 실제로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 채로 살아왔던 만큼 한번 접하고 나자 그 반동으로 전에 없이 애가 탔다.
만약……,
만약에 송나은이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였다면………,
그래, 자신의 후배 다솜 정도밖에 안 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녀였다면 분명 자신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렸을 것이다.
그다음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는 그녀의 위에 올라타서 마음껏 허리를 흔들며 자신의 욕망을 그녀의 안에 여과 없이 쏟아냈을 거다.
하지만………, 송나은에겐 그런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남녀 관계에 있어서 압도적인 경험의 차이가 느껴졌다.
여자에게 서툰 자신이 그녀에게 무얼 한다 한들 비웃음만 당하다 끝날 것만 같았다.
그건 도저히 견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하반신을 발기한 채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고 있는 그에게 송나은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의 귓불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흑──!!!
벼락처럼 등골을 타고 달리는 짜릿한 쾌감에 입에서 한심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송나은이 혀끝으로 그의 뺨을 핥으면서 바지 위로 손을 살짝 가져다 대자 그는 그것만으로 사정하고 말았다.
아……
아아……
스스로 육봉을 잡고 문지르며 흔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황홀경. 그만큼 여자의 손은 남자의 손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 부드러움에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려 언제 주저앉더라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상황.
지금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현실감 없는 것들뿐이었지만……, 현민에게 그런 건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깨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꿈이었다. 그래서 그는 송나은에게 일체 저항하길 포기했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는 어느샌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순하디순한 어린 양이 되어 있었다.
얌전하게 송나은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꿀렁꿀렁 정액을 하염없이 토해내는 일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읏……!
더러운 정액이 그녀의 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더럽힌다.
방안이 비릿한 냄새로 점점 채워져 나간다.
허나 송나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혐오감도 일절 내비치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그의 물건을 때로는 부드럽게 쓰다듬고 때론 격렬하게 문지르고 흔들며 그의 정소에 가득 차 있는 정액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잠시 후……
읏……!!
꿀렁……
꿀렁…….
야트막한 신음과 함께 현민은 몇 번째일지 모를 사정을 하곤 완전히 녹초가 되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반면 나은은 무기력해진 현민과 달리 바른 자세로 똑바로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후……, 기분 좋았어?”
나은의 말에 목자에게 홀린 어린 양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현민.
그녀는 그의 대답이 어지간히도 만족스러웠나 보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 서서히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만족 못 했나 보네.”
그녀의 말대로였다.
현민은 고환이 쓰라릴 정도로 정액을 토해냈음에도 그의 욕정은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있었다.
“뭐, 무리도 아니려나. 태어나 처음 어미젖을 빤 아기와 같은 상태일 테니까.”
“동정에겐 처음부터 더할 나위 없이 자극이 강했겠지.”
“후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눈앞에 자신의 하반신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왼손으론 치마를 위로 들어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입고 있는 팬티를 살짝 아래로 내리며 그를 도발했다.
“여기에 넣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지?”
“후후, 뭐 알몸이 되어 엎드려 빈다면 한번 생각 정도는 해볼게.”
“아……, 으………”
현민은 주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이내 모든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천천히 입고 있는 옷을 전부 벗은 다음 그녀의 앞에 더없이 공손한 자세로 무릎 꿇고는 이마가 완전히 바닥에 닿을 정도로 그녀에게 절하며 노예로서 주인에게 복종의 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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