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134화 (134/136)

〈 134화 〉 제133 화 삐걱거리는 밤, 달 없는 밤하늘의 광대

* * *

어두운 방이었다.

빛뿐만 아니라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공허함만이 가득한 방.

아주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서……,

인기척이라고는 요만큼도 느낄 수 없는 메마른 방 안에………,

그렇지만 있었다.

거기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빛을 잃은 눈동자로, 바싹 마른 고목 나무처럼 홀로 나직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

정현민이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침대에 누워서 멍한 눈으로 그저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몰골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엉망이 된 그의 침대보다 더욱 만신창이였다.

그렇지만──, 그는 딱히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이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면──,

지금의 자신에게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미 없어…….’

속으로 나직하게 뇌까리곤 그가 다시금 천천히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그가 자기 안의 어둠 속으로 침전하려는 그때, 돌연 핸드폰의 알람이 급작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그 자체의 소리만을 따로 떼놓고 보자면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알람이라고 일컫는 게 무색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그렇지만 그 어떤 빛과 소리도 없던 방이다 보니 급작스레 울린 그 벨 소리는 무척이나 그에게 크게 들렸다.

단순히 시간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소리임에도 그가 간과하지 못할 정도로…….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다.

무심코 그가 액정으로 시선을 돌리고 만 것은───.

핸드폰 화면은 7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만약 한 달 전,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일주일 전이기만 했어도 그는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7시라는 숫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하고 만다.

마치 눈앞에 있는 누군가가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주박에 걸린 것처럼 한동안은 코끼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이 시간은 한동안 다솜이 꾸준히 자신을 찾아와줬던 시간이었다.

기껏 멀리서 매일같이 그녀가 찾아와줬을 때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고 그녀를 박대했건만, 정작 그녀가 일주일 다 되도록 소식이 없자 이번에는 가슴 한편에 약간의 허전함을 느낀다.

후우………

스스로의 얄팍함에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겠지.

누군가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혹시 아무라도 좋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제 와선 솔직히 딱 잘라서 아니라고 장담할 순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요 근래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무심코 자기에게 편리한 기대를 해버리고 만다.

그녀가 나한테 실망하고 오만 정이 떨어져서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게 아니라, 혹시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자기 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지.

스스로 봐도 우스울 정도로 자기에게 편리할 대로 해석한 생각이라 코웃음을 치며 머릿속에서 곧바로 지우기로 했다.

아마, 그녀의 선의에 매몰차게 답하기만 한 나한테 크게 실망해서일 거다.

그러는 편이 그녀의 남은 인생을 위해서도 좋다. 나 같은 못난 남자와 얽혀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그나저나……

그런가………….

그녀는 결국 자신의 인생을 찾으러 간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인 나와는 다르게 훌훌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가 무척이나 눈부시게 여겨졌다.

나보다 어리건만, 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야무진 후배가 존경스러웠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슬슬 힘내지 않으면.

이대로 세상과 단절된 채 서서히 모두에게서 잊혀져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과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란 생각이 내 안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기 시작한다.

답답하다.

지금까지도 답답했지만, 어딘가 다른 답답함이었다.

기분 전환 겸 밖에 나가 조금 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간만에 마음이 일자 그 뒤의 행동은 금방이었다.

어느새 나는 재빨리 채비를 맞춘 후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복도로 나오자 쌀쌀한 바람이 뺨을 때린다.

입을 벌리자 눈에 보일 정도로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완전히 겨울 날씨다.

마음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날씨인 게 지금의 내게는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얼마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을까. 체감상 두 시간 정도는 지났다고 느껴졌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연스레 고개를 위로 든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달이 구름에 가려지며 빛을 잃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단순한 자연현상의 일종임이 분명함에도 무언가 내게 있어 불길한 일의 징조처럼 느껴졌다.

괜스레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뛴다.

‘……슬슬 돌아갈까.’

느긋한 걸음으로 올 때와는 달리 빠른 걸음으로 맨션으로 향한다.

그렇게……,

맨션으로 돌아온 내가 뛰는 듯이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서둘러 올라와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나는 어째서인지 전에 없이 조급해져 있었다.

때문에 당장이라도 서둘러 문을 열고 허겁지겁 안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문 앞에 서자마자 그만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사고가 정지한다.

사지를 결박당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어붙은 듯이 방문 앞에 멍하니 선 채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간신히 눈동자만을 떼굴떼굴 굴려 몇 번이고 주소를 확인한다.

잘못 찾아온 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방이다.

하지만──, 낯설다. 너무나도 낯설다.

차라리 주소를 착각했단 쪽이 현실성 있었다.

두꺼운 현관문을 사이에 두었음에도 좁은 문틈 새로 스며 나오고 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이 온몸을 엄습한다.

허억……

허억……

나는 분명 문을 꼭 잠그고 나왔을 터였다.

외출할 땐 언제나 열쇠로 문을 잠근 다음 제대로 잠겼는지 두세 번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문손잡이로 손을 갖다 댄다.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본다.

문은……, 열려있었다.

순간 온몸의 핏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세계에서 소리가 사라진다.

거기에 있는 것은 휑한 정적.

들리는 거라곤……, 자신의 호흡과 심장 소리.

마음을 다잡는다.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방 안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내가 모르는 음악이다.

그렇지만 저 음악이 결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관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허나 내가 초대하지 않은 누군가가 내 허락 없이 저 안에 있다는 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곳에는 이상한 정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악몽 같은 정적과 바닥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해로운 존재감.

미지의 상대방이 내뿜고 있는 사이함이 피부를 통해 스며들어와 내 심장을 옥죈다.

낯선,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는 방 분위기가 내 안에 있는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고작 한두 시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방의 주인이 바뀐 것만 같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팔뚝에는 닭살이 우둘투둘 돋아 있었다.

부디 내가 괜스레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떤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곧바로 느낀 한기가 그 사실을 부정했다.

찰나의 공황이 사라진 뒤에도 온몸의 핏기를 가시게 만든 오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방안의 온도가 몇 도나 단번에 내려간 듯했다.

정면을 응시한다.

그러자 시선 끝에는 한 여자가 한쪽 다리를 꼰 채 내 침대 끄트머리에 가볍게 걸터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

내 질문에 여자는 히쭉 웃으면서 답했다.

“왔구나.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여자는 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한번 빙 돌렸다.

너무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그렇지만 어째서 이렇게나 사악하게 들리는 걸까. 눈앞에 있는 여자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유독물질보다 더 유해하다는 것을 지금 단 한마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째서지?

어째서 저런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아니, 저런 여자기에 지금 이 순간, 이 타이밍에 내 앞에 나타난 건가?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자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빙긋웃으며 내게 답했다.

“후훗……,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나는──, 너의 세상에 내리고 있는 비애를 멈춰줄 사람이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름 뒤에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 걸까.

희미한 달빛이 방안의 좁은 틈 사이로 스며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짙은 어둠 속에서 달빛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현민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여신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오기와 열등감을 우화시켜 완전한 악녀로 거듭난 여자,

약 일주일 전 다솜을 납치해서 감금한 뒤 그녀의 몸과 마음을 저변에서부터 잘근잘근 즈려밟으며 철저하게 망가뜨린 여자,

단 하나의 염원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 어떤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극단으로 치우친 자!!!

송나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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