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제121 화 꿈(夢)의 끝(?)
* *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답 받는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그 말만을 중얼거리며 그저 성실하게만 하루하루 묵묵히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스스로가 모조리 부정하고 목을 매달고 만다.
자신은 결국 아무런 가치 없는 결함품 이었다면서…….
딱히 이제는 새삼 놀랄 것도 없는 흔한 이야기다.
나 역시 언제 저렇게 된다 한들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 해야겠지.
정말이지 더없이 잔혹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
레코딩 하우스에서 음반 작업을 끝낸 후 돌아온 나와 사장은 그 뒤, 콘서트 준비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사장은 1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무명의 회사를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시킨 남자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스스로가 직접 음반을 제작한 적은 없었다.
그랬던 사장이 처음으로 앨범을 낼뿐 아니라 직접 무대에 오른다고까지 했으니 화제를 모으는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이 정도로까지 반항이 크진 않았었다. 이목이 집중된 것은 한 인터뷰에서였다.
대부분의 인터뷰를 노코멘트로 일관하던 사장이 단 하나의 질문에만 답했다.
그건 앞으로도 종종 작업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던 사장이 그 질문에만큼은 마지막이라고 칼같이 못 박아버렸기에 모두의 관심이 폭발하게 되었다.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틈만 나면 몸을 섞었던 지난날들이 전부 꿈처럼 여겨질 정도로 우리는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그만큼 살을 섞었으면 정이 들만도 하건만 나와 사장은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 철저하게 사무적인 태도로 리허설에만 잠깐 얼굴을 비추고는 곧바로 헤어졌다.
나 역시 스스로도 조금 의외라고 놀랄 정도로 담담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준비 끝에 신곡 발표를 겸한 나와 사장 두 사람의 콘서트 날이 다가왔다.
대기실 안…….
사장과는 실로 오랜만에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딱히 우리 사이에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서로 아무 말 없었지만, 그렇다고 침묵이 어색하거나 답답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이 분위기가 조금 그리운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조용히 미소지을 정도였다.
그리고………,
공연 시간이 다 되어 우리를 부르러 온 안내 요원이 조용히 문을 두드렸을 때였다. 사장이 내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었군.”
“네.”
“떨리나?”
“아뇨.”
“다행이군, 그럼 가도록 하지.”
“네.”
짤막한 대화가 끝난 후 사장이 나를 지나 먼저 방을 나섰다.
내 곁을 스쳐 갈 때 그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고맙다,’ 라고 중얼거린 것만 같았다.
…
그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선다.
언제나처럼 조신하게 그의 뒤로 한 걸음 정도 뒤떨어져 복도를 걷는다.
상당히 주목을 모았던 만큼 아직 무대까지 거리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무수한 인파의 존재감이 여기까지 전해져와 피부가 저릿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신혜민 그 여자의 무대에 못지않을지도.’
만약 혼자였다면……, 분명 거기에 생각이 미친 순간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큰 무대를 앞에 두고 그런 얼빠진 생각을 하느라 조금 발걸음이 늦춰진 사이였다.
무대로 통하는 입구에 먼저 도착한 사장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나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
나는 그의 손 위에 살포시 손을 얹고 무대로 향했다.
사장에게 에스코트 받으며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난다.
그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기나긴 꿈을 꾸었다.
무척이나 따스하고 싱그러운 꿈이었다.
썩어 문드러질 만큼 달콤하고 아름다워서……,
눈을 뜨지 않았다간 사로잡히고 마는……,
내겐 더없이 과분한 꿈이었다.
…
내 손을 잡고 나를 무대 정중앙까지 인도한 사장은 피아노에 앉기 위해 내 손을 놓았다.
나 역시 그의 손 위에 살짝 얹고 있던 손을 떼면서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당신과 좀 더 빨리 만났거나, 당신이 내 아버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내 속삭임에 그 역시 흐릿하게 웃으며 내게 답했다.
“영광이군. 나도……, 마찬가지다.”
이 공연 이후엔……, 모든 것이 변하겠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나도, 사장도 더 이상 예전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안녕, 아버지.’
…
회장 안의 불이 한순간에 꺼지자 홀 안의 수군거림이 차츰 줄어들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웅성거림마저 완전히 줄어들었을 때였다.
천천히 막이 올라가고 그 안에서 강성우에게 에스코트 받으며 송나은이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기이한 장엄함에 괜스레 숙연해져 숨을 삼키고 말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애틋함.
그렇지만 연인 사이에서 나오는 기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슷하다면 억지로라도 비슷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명백하게 다른 그 무언가였다.
처음에는 다들 알 수 없는 이질감에 곤혹스러워했다.
그 정체를 제일 처음 알아차린 것은 바로 얼마 전에 결혼한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은을 에스코트하는 성우에게서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신랑에게 단 하나뿐인 소중한 외동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두 사람이 맞닿아 있던 손을 놓는다.
그러면서 나은이 가볍게 성우의 뺨에 닿을 듯 말듯 입맞춤하고 서로의 자리로 돌아갈 때였다.
그 모습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제야 공연장 안에 있는 모두가 그녀가 깨달은 것과 같은 심상의 풍경에 도달했다.
장내가 더 없는 숙연함으로 채워져 간다.
그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신성으로 가득 차 있는 신혜민의 무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애절한 목소리가 고요가 감도는 회장 안에 맑게 울려 퍼졌다.
신혜민처럼 듣는 이의 영혼을 움켜쥐는 매혹적인 목소리도 아니었다.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사가 심오한 것도 딱히 아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가수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것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세레나데였다.
지극히 평범한 노래.
누구나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평범한 감정을 평범하게 읊조리는 듯한 노래.
그렇지만……,
그 평범함이 기이할 정도로 듣는 이의 마음에 사무쳤다.
아무리 평범한 감정이라도 거기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진심이라면 이미 그건 무척이나 특별하다.
신념으로까지 승화한 아집이 무서울 정도로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온 세상 사람이 저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
당신만이 저를 사랑하였습니다.”
“저는 잃을 게 없어요,
그대의 사랑 이외에는…….”
“시간이 흘러 제 삶이 바뀔지라도……,
그댈 향한 제 마음은 그대로일 거예요.”
“시간이 흘러 그대의 마음이 변할지라도,
그대를 위한 제 사랑은 변치 않을 거예요.”
“저는 잃을 게 없어요.”
“그대 이외에는───.”
…
노래가 끝난 후 한동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적이 유지되었다. 어쩌면 나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낸 여운에 젖어 아무것도 못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샌가 나와 사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
공연이 끝난 후 전화기가 조금도 쉴 틈 없이 사무실로 추가 공연 문의가 쇄도했지만, 나와 사장은 그것들을 전부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 무대는 그때 그 한순간에 밖에 할 수 없던 거였으니까. 나와 사장이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열정까지 전부 끌어다 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마지막 무대였으니까.
그때와 똑같은 무대를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쏟고 난 뒤, 약간의 침전물조차 남지 않은 어설픈 상태로 공연을 해봤자, 무대를 모욕하기만 할 뿐이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서 그 이후에 발매된 앨범도 호조였다. 우리 소속사 사상 가장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연일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와 사장 두 사람이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도 결국에는 발끝에도 닿지 못했단 말인가.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신문지를 신경질적으로 와락 구겨버렸다.
거기에는 ‘존귀한 이름’, ‘The greatest of all time’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신혜민, 그 여자를 찬양하는 글로 가득 차 있었다.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소속사에서 압도적으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어도──,
신혜민과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이번에 2위를 기록한 내 판매량은 3위부터 10위까지의 판매량을 전부 합친 것을 아득하게 상회 했다.
하지만──, 신혜민과는 그 이상으로 벌어져 있었다.
후후…
후후후……
내 입에선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크게 좌절해서 실성하거나 그런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너무나도 예상한 것 그대로 흘러간 데서 나오는, 진심으로 즐거워서 어쩔 수 없다 보니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만 웃음이었다.
왜냐하면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이런 올바른 방법이 통하지 않을 무법의 괴물이라는 것 정도는──,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왜냐하면──,
내가 처음 아이돌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속였었다.
진정으로 사랑받길 원하는 한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함.
그 마음의 빈틈을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얕은 사랑을 받아 그걸 위안으로 삼자며 자신을 기만했었다.
그건 전부 역겨운 거짓말.
그렇다.
나는 아이돌 따위가 되고 싶어서 연예계에 뛰어든 게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건……,
바로 신혜민.
나는 단순히 신혜민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저 그녀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우상(아이돌)에 적합했기에 나는 아이돌이 된 것뿐이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그녀의 열화 판에 불과한 내가 원형에게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
후…
후후……
사장과 같이 음반 작업을 하면서 숱하게 몸을 섞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처음에는 서준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몸을 허락하는 게 죽을만큼 괴로웠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괴로운 일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달콤했다.
거기에 언제까지고 안주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랄 정도로.
그렇지만 꿈에서 깨어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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