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제111 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의 지평선 (5)
* * *
‘이렇게 쉽고, 기분 좋은 걸 왜 진즉부터 하지 않았던 걸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신혜민 그녀에게 아무리 의리를 지킨다 한들 대체 내 그런 노력을 누가 알아주냔 말이다.’
‘의미 없다. 전부 의미 없다. 나는 자기 자신에게 취해서 무의미한 짓만을 반복해온 거나 마찬가지다.’
‘원래부터 헛살았다고는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손해만 보면서 살아왔군──.’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스트레이트 재킷(구속복)이 저절로 벗겨져 땅바닥 아래로 털썩 떨어진다.
그 안에서 내 몸과 함께 줄곧 억눌려있던 추잡한 욕망들이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감히 꿈꾸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동경하는 여자.
내게 있어 유일한 신앙의 대상인 그녀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어 찌부러뜨리며 그녀의 몸을 거칠게 밀어 넘어뜨린다.
하아…
하아…
조금 전까지 눈물로 흐려있던 마음은 지금───.
…
입과 혀뿐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만끽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린 다음 그녀의 몸 위로 타고 올라가 발정난 짐승마냥 더없이 천박하게 허리를 흔든다.
내 안에 고여있던 썩을 대로 썩은 욕망을 여과 없이 그녀의 안에 쏟아붓는다.
상상력의 한계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내 눈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 없이 변함없는 표정으로 기품있는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런 거겠지.
나 따위에게 그녀가 더럽혀질 리 없다.
결국에는 가짜.
아무리 선명하게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한들 여기 있는 건 절대 그녀가 될 수 없었다.
짙은 허무함이 내 정신을 잠식해왔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마저도 아무래도 상관없게 느껴졌다.
그녀와 똑 닮은 성 처리 인형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를 닮은 여자를 사서 안는다고 여기면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허리를 흔든다.
손바닥이 쓰라릴 정도로 세차게 하반신을 위아래로 문지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정소에 있는 모든 정액을 토해냈다.
방안이 내 몸에서 흘러나온 땀과 정액이 뒤섞인 시큼한 냄새로 가득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연이은 사정으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졸음이 쏟아졌다.
너무도 기분 좋은 사정.
지금도 이렇게나 기분 좋은데 실제로 그녀를 안는다면 대체 얼마나 기분 좋을 것인가.
어쩌면 심장이 지고한 쾌락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녀를 단 한 번만이라도 안을 수만 있다면……!!!
그녀의 육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신의 흔적을 단 하나라도 새겨넣을 수만 있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죽어도 좋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민은……. 그렇게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욕망이 자유롭게 머릿속을 헤엄치도록 놔두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방으로 돌아온 다솜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대로 침대 위로 엎어졌다.
같은 일을 겪게 되더라도 사전에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었냐 없었냐로 그 차이가 무척이나 극명하게 나타난다.
당연히 선배한테 받아들여질 거라 믿고 들뜬 마음으로 선배네 집에 찾아갔건만, 너무도 매몰차게 쫓겨나다시피 거절당하자 정신적인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정신을 잃었던 것도 아닌데 중간부터 기억이 날아갔다.
지금 상황이 어딘가 꿈만 같다고 해야할까……,
물론, 악몽이겠지만.
그만큼 어딘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현실이었다.
주머니로 손을 가져간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버려버리려고 했다가 끝내 버리지 못했던 콘돔을 꺼내 베게 머리맡에 놓는다.
꾸깃꾸깃하게 신경질적으로 구겨진 콘돔 상자가 오늘 있었던 일이 분명한 현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보……,’
‘여자가 이렇게까지 준비해서 찾아간 거였는데…….’
‘정말 모지리라니까…….’
하아…
하아…
자연스레 손이 하반신으로 갔다.
응…
아…
앗…!!
그저 단순하게 지금의 쓸쓸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자는 방어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어떠한 기교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가슴과 음부를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처음에는 아무 느낌 없이 반쯤은 습관적으로 주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조금씩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앙………
입에서도 차츰 옅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찌걱…
찌걱…
팬티 위로 문지르기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손가락을 은밀한 곳에 찔러넣고 휘젓는다.
그러자 조금씩 스며 나오기 시작하던 애액이 손가락에 뒤엉키면서 금세 손가락이 끈적끈적해졌다.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끈적끈적한 점막을 미끈미끈한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방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엎드린 상태로 점점 허리와 함께 엉덩이가 위로 올라간다.
하반신에 힘이 꽉 들어가 양쪽 발가락이 쥐가 날 정도로 오므려졌다.
유두를 세게 꼬집은 다음 살짝 아플 정도로 여기저기 비틀면서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격렬하게 음부를 쑤신다.
찔걱…찔걱…찔걱…찔걱…
아……
아아……
…………!!!!!!!!!!!!!!!!!!!!!!!!!!!!
그리고 머지않아 머릿속이 아무런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쾌락에 절어진 나는 얼굴을 베개에 푹 파묻은 채 절정에 이르렀다.
하아……하아………
천장을 바라보며 벌러덩 몸을 대자로 드러누워 흐트러진 숨을 천천히 고른다.
몸 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한번 시원하게 빼내서 그런지 확실히 조금 기분이 나아지긴 했다.
그렇지만……, 가슴에 뚫린 구멍이 메워지긴커녕 오히려 더욱 넓어진 것만 같았다.
목이 너무나도 말라서 하는 수없이 자신의 피라도 마셨더니, 시원해지기는커녕 나트륨을 처리하느라 갈증이 더 심해지는 느낌과 비슷하달까…….
역시……,
선배에게 안기고 싶어…
혼자 하는 것도 이렇게 기분 좋은데, 사랑하는 남자에게 귀여움받으면서 잔뜩 안기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조금 상상하자 진정된 줄 알았던 몸이 갑자기 확 뜨거워졌다.
그 뒤로 다솜은 한참 동안 그녀가 사랑하는 현민을 떠올리며 방안이 암컷 냄새로 가득찰 때까지 스스로를 위로하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에 빠지면서도 그녀는……, 한결같이 현민의 걱정만을 했다.
‘선배……, 저녁은 잘 챙겨 먹으려나…’
‘내일은 뭔가 먹을 거라도 사 들고 가볼까…….’
…
‘따스해…….’
그런 생각을 하며 송나은이 사장의 품 안에 쏙 안겨 눈을 뜬 것은 늦은 밤이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불길할 정도로 둥근 보름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었다.
‘내 방…… 아니, 사장의 방인가.’
잠이 덜 깨 안개가 낀 것 같은 무거운 머리로 간신히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본다. 1층에서 격렬한 행위 끝에 내 안에 가득 들어왔던 대량의 정액을 단번에 분수처럼 뿜어내며 의식을 잃었었다.
아무래도 그런 나를 사장이 여까지 안고 왔나 보다.
사장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무방비한 얼굴로 내 몸을 꼭 끌어안은 채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조금 가슴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었다.
무심코 손이 올라가 그의 뺨을 쓰다듬으려다가 직전에 손을 멈춘다.
그가 혹시라도 깰까 봐서다.
단순히 곤히 자고 있는 그를 방해할까 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일어나면 내가 곤란해져서였다.
나는 지금부터 확인해야만 할 게 있었으니까…….
내가 뿌려놓은 하늘을 더럽힐 씨앗이 싹을 틔워 대지에 확실하게 그 뿌리를 내렸는지 확인해 봐야만 하니까…….
사장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1층으로 내려온 나는 부엌 바닥에 옷과 함께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 다음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걸음을 죽인 채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알몸으로 침대 끝에 대충 걸터앉은 다음 핸드폰을 열어 복잡한 절차를 반복한 끝에 다시 한번 심층에 접속.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또 다른 계정에 접속하자 거기에는 녹화된 하나의 동영상이 저장되어있었다.
현민이 신혜민의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비웠던 사이 사람을 시켜 설치한 몰래카메라가 녹화한 영상이었다.
클릭한다.
“후후……, 귀여워라.”
어두운 영상에는 하룻밤 새에 몹시나 핼쑥해진 현민이 갈라진 목소리로 연신 신혜민의 이름을 연발하며 격렬하게 자위하고 있는 적나라한 모습이 몇 시간씩이나 녹화되어있었다.
‘전부 볼 필요는 없겠지.’
영상을 뒤로 휙휙 넘긴다.
그리고 영상이 거진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더 없이 슬프게 울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성을 욕망에 눈이 멀어 모독하고 말았다는 깊은 자괴감과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가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머지않아 의식을 잃었다는 걸 화면 너머로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의식을 잃고서야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지고서야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왜냐하면──,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못했으니까.’
세상 사람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미련하게도 바로 곁에 있는 약속된 행복에 손을 뻗지 않고 빛나는 태양에 몸을 던져 자신의 몸이 타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후후…후후후………!!!”
“그래, 갈망하라, 소년이여.”
“간절히 바라면 능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나니…….”
“왜냐하면──,”
“후후…후후후…아하하하하하하하하!!!!!!!!!!!!!!”
…
‘그렇다면 이제 역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하나뿐인가.’
‘곧바로 손을 쓰는 것도 괜찮겠지만──, 나에게도 기회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한 번에 확실하게 망가뜨리기 위해서는 한동안은 자유롭게 풀어놓는 편이 좋겠지.’
‘그렇다면──, 당분간은 마음껏 활개 치게 놔두도록 하자.’
‘실의에 빠진 남자를 위로하는 헌신적인 여자역에 취해 한껏 청춘을 즐기게 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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