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제107 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의 지평선 (1)
* * *
맑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으로 주변 공기를 물들이는 그 울림은 신혜민 못지않은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다.
“음…….”
피부에 스며들어 마음에 직접 손짓하는 송나은의 노래를 들으며 강성우는 내심 만족해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나은이 자신이 요구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지시했던 건 단 한 가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듯이 가능한 한 편하게 부를 것.
그녀에게 그 하나만을 요구한 다음 그는 송나은에게 같은 노래를 음정만 바꿔서 몇 번이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송나은이 어떤 어려운 발성이든 편하게 소화할 수 있는 그녀에게 가장 알맞은 음역대를 찾은 뒤부터는……, 노래 시작 초반에 한 번 음정을 손대는 것 말고는 송나은을 자유롭게 풀어두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 데에 집중했다.
“내 가슴에 깊이 박히는 네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울리는 환성과 비슷해.”
“시들어 떨어져 두 번 다시 피지 못할지라도──,”
“불꽃처럼 스러지는 내 사랑.”
“까마귀에게 이 몸을 쪼이며……,”
“느릅나무 관에서 나는 언제까지고 너를 기다릴 거야.”
“사랑해, 죽도록…….”
그녀의 노래를 쭈욱 들으며 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과연……, 이게 바로 오기와 열등감에 8만 4천의 번뇌를 바친 여자인가. 일주문(一?門)을 지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군.’
일주(一?)
다르게 표현하면 일심(一心)
마음을 어지럽히는 삿된 잡념이 전부 제거된 하나의 의지가 기둥의 형태를 빌려 나타나는 것.
그 편린이 송나은의 노래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걸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프로가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한다. 얼핏 들어서는 너무도 당연히 해야만 하는 얘기 같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걸 쉽사리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게 사람의 천성이기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여러 걱정이 들게 마련이었다.
이런 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야 하는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노래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그러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연습 삼아 불러보는 것과 다른 사람 앞에서 부르는 건 굉장히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기에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그게 함정이었다.
쓸데없는 치장을 하게 되느라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힘이 들어가게 된다. 결국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더 안 좋은 모습만 부각 돼버린다.
그래서 노래에 열중하고 있는 척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로 밑바닥까지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지만……, 송나은은 지금 어떤 노래든지 쉽사리 몰입하고 또한 그럼에도 기교에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의 곡도 아닌데도 나름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건 단 하나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이 땅에 여신의 그림자를 지워버리려는 그녀의 오기와 열등감이 가져다준 부산물.
‘아이러니하군…, 누군가에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오히려 노래는 자유로워진다니…….’
그렇지만──, 어쩌면 노래뿐 아니라 인생이란 게 전부 그런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수확을 거두었다.
그녀는 오늘 충분히 잘해주었다.
이후부터는 한동안 내가 힘쓸 차례다.
시계를 확인한다.
시곗바늘은 어느샌가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꽤나 시간이 흘렀었군.’
송나은은 지금 막 한 곡을 끝낸 참이었다.
마이크를 잠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물을 입안에 한 모금 머금은 다음 천천히 목 뒤로 넘기며 목을 축시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네.”
“고생했다.”
“아뇨, 딱히 고생이랄 건…….”
희미하게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하는 그녀의 머리를 무심코 쓰다듬으며 솔직한 감상을 말하며 그녀를 칭찬한다.
“잘 부르더군.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남들이 보지 않아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게 전해졌다. 성실하고 들으면서 기분 좋은 노래였다고 할 수 있겠군.”
“감사합니다.”
“자네는 어땠나? 조금은 즐거웠나?”
그런 내 질문에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곰곰이 생각하며 말을 고른 후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확히는 자신의 기분을 모르겠다기보다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가…….”
“워낙 경황이 없었는지라……, 즐길 여유 따윈 없었던 거 같습니다.”
“뭐, 그만큼 몰입했었으니, 그런 것도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또 사장님이랑 둘이서 와보고 싶네요.”
“그런가……, 좋은 대답이군.”
생각지도 못했던 나은의 진솔한 대답에 이번에는 성우가 겸연쩍어하며 그녀에게서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나은은……, 그런 성우의 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잠시 후──,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와주세요.”
나와 사장은 점원의 공손한 인사를 뒤로하며 노래방에서 나왔다. 체감상으론 안에서 그다지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았던 거 같은데 밖에 나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사장이 즐거웠냐고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고 답했었는데, 이런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즐겼었나 보다.
좀 더 귀여운 대답을 하면 좋았을 텐데……, 라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느새 발이 멋대로 움직였다. 사장의 곁으로 반 발자국 정도 좀 더 가까이 붙은 뒤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렇게……,
나와 사장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를 지나 레코딩 하우스로 돌아왔다.
…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금방 저녁 차려드릴게요.”
둘만의 닫힌 세계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장에게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앞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방해되지 않도록 뒷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올리기 위해 입에 고무줄을 물고 두 손으로 머리를 묶고 있을 때였다.
잠시 말없이 뒤에서 내가 머리를 묶고 있는 모습을 본 사장이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날 기다리지 않고 내 등 뒤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다음 위로 말아 올려서 훤히 드러난 내 목덜미를 사장이 뒤에서 부드럽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읏…!
간지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야릇함이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사장님…?”
나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고개를 살짝 돌리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 대신 내 몸을 그의 가슴팍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뒤에서부터 날 꽉 끌어안으며 오른손을 내 앞섬에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브래지어 위로 내 가슴을 주무르는 동시에 왼손으로는 살짝 고개를 돌렸던 내 턱을 꽉 붙잡은 다음 그의 입술로 내 입술을 막았다.
웁?!
웁!!!
우믑!!!
처음에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내 몸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리며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하움…
움…
음……
츄릅……
츄릅……
입맞춤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와 사장은 단순히 서로의 입술을 맞대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입술을 연 다음 적극적으로 서로의 입안을 혀로 휘젓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장의 손은 내 가슴을 주무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거듭된 자극에 차츰 유두가 빳빳하게 서기 시작했다.
읏……
응……
하…아앙……
입에서 달콤한 숨결이 새어 나온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처럼 유방 전체를 골고루 애무하는 게 아니라 유두만을 집중적으로 괴롭혀줬으면 좋겠다며……, 더 큰 자극을 바라게 됐을 무렵이었다.
내 엉덩이 뒤로 무척이나 크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사장님도 참……,’
‘성급하시긴…….’
‘밤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물건을 세우시고……….’
그만큼 내 몸을 안고 싶단 거겠지. 누군가 나를 이렇게나 원하는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손을 내려 바지 위로 그의 물건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하아……
하아……
서로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사장의 뜨거운 입술과 맞닿아있는 내 입술이 당장이라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쪼옥……
쪽……
서로의 혀를 사이좋게 번갈아 가며 빨아주며 몇 번이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한다.
내 두 눈이 점점 풀리며 초점이 맞지 않게 될 때였다.
그걸 신호로 사장이 내 유두를 꼬집은 다음 있는 힘껏 비틀었다.
읏!!!!!!!!
응!!!!!!
아아……
그다음 내 입안에 남아있는 타액을 남김없이 빨아들일 기세로 강하게 내 입술을 지금까지 중에 제일 길게 탐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서 입술을 뗀 순간 진즉 몸에서 힘이 빠지고 머리가 몽롱해졌던 나는 당장이라도 자리에 털썩 소리를 내며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사장의 품에 몸을 기대게 된다.
그의 품 안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작은 동물처럼 몸을 잘게 떨고 있는 내게 그가 내 뒷목을 핥으며 말했다.
“저녁 따위보다는……, 지금 당장 안고 싶군. 싫은가?”
나는 의식이 몽롱한 와중에도 사장에게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뇨……, 기뻐요…….”
“저도 같은 기분이었으니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