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제100 화 어그러짐의 씨앗이 눈 뜬 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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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각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한다. 굳이 수치로 나타낸다고 치면 80%에 근접한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후각은 7% 내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할 때 수치 이상으로 후각에 의존한다.
특히 무언가를 연상하거나 떠올릴 때 그러한 특징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이상 신혜민을 떠올리며 욕정을 해소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이밀 거 같은 위기감을 느낀 나는 내 욕망을 받아줄 그릇으로 다솜을 떠올렸다.
제일 먼저 신혜민의 얼굴이 다솜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했다.
그다음 신혜민의 몸을 다솜의 몸으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솜의 살 내음까지 선명하게 떠올렸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나는 정말로 지금 다솜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새침한 미소였다.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듯, 혹은 업신여기는 듯한 그녀의 뾰로통한 미소를 나는 사실 무척 좋아한다.
사실은 무척이나 부끄럼 많은 그녀가 자신의 겸연쩍은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웃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주더라도 나만큼은 그녀의 웃음이 무척이나 따스하고 부드러운 미소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자기 주변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무척이나 당연하다지만……, 나한테 있어 그녀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이 악몽 같은 세상에서 평범한 꿈을 꾸려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내 앞에 있는 그녀의 웃음이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괴로워서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아무런 그늘 없는 그녀의 미소가 지금의 내겐 무척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이미 마음 어딘가가 부서진 거겠지.
언제 어디서 망가진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가 파손된 것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미 내가 고장 났다는 결과.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어느샌가 마음속에 하나의 씨앗이 놓여있었다.
원래부터 있었던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가 내 안에 심어 놓은 건지.
그렇지만 너무도 거기에 있는 게 자연스러워서 그게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든지 혹은 장막 뒤에 숨어있는 누군가가 손을 쓴 거든 간에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그 씨앗은 안에 두 개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가 같으니 둘이지만 하나의 감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기와 열등감.
아직 완전히 흘러넘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라고 있었다.
망가뜨리고 싶다.
일그러뜨리고 싶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녀의 인생을 나처럼 뭉개버리고 싶다.
이 소녀에게도 언젠가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겠지.
아니, 어쩌면 이미 있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무척이나 귀여운 여자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런 여자를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가만 놔둔다는 게 오히려 개연성이 없었다.
너도냐…
너도 마찬가지로…
저렇게나 남자 따위 관심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결국엔 남자의 더러운 물건을 맛있다는 듯이 핥고 스스로 가랑이를 벌리는 거냐.
자신이 심하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타인을 소유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명제는 제쳐 두더라도 근본적으로 일단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선배와 후배.
냉정히 말하면 완전한 타인.
그녀가 어디서 남자와 무얼 하면서 지내든 간에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생떼를 부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몸을 와락 끌어안는다. 내게서 벗어날 수 없게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은 왼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덮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억지로 그녀의 입술을 빼앗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슬며시 본다.
그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옅게 미소짓고 있었다.
분명 저 미소엔 악의나 멸시 따윈 일절 없겠지.
내가 제정신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그녀를 향해 기분 좋게 웃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자 경험이 적은 날 경험 많은 그녀가 비웃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의 망상 속에서조차 여자 하날 자기 뜻대로 못 다루고 있는 나를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읏…!
애초부터 자존심 따윈 없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아무 의미 없는 오기가 발동했다.
반드시 그 잘난 면상을 뭉개버리겠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녀의 입술을 비집어 연다. 그녀의 따뜻한 입안에 일단 혀를 집어넣었지만 정작 이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목적 없이 그녀의 입안을 휘젓다가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그녀의 반응에 허무함만을 느낀다.
사고를 바꾼다. 내가 원하는 게 뭐였는지를. 여자 경험 한번 없던 내가 키스로 그녀를 입맞춤으로 그녀를 느끼게 한다? 개소리다.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었다.
아무리 지금 내가 미쳤다지만 저런 망상을 할 정도로 정신이 일탈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답은 간단했다.
쾌락은 줄 수 없지만, 고통은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선은 그녀의 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리는 데에만 방점을 찍기로 했다.
입술을 뗀 다음 손으로 그녀의 앙다문 입술을 벌린다.
손가락을 집어넣고 혀를 입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리고 나는 녹이 슬어서 잘 들지 않는 톱으로 그녀의 혀를 잘라내려는 것처럼 그녀의 혀를 질겅질겅 있는 힘을 다해 씹기 시작했다.
……!
움찔움찔……
읏……!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표정 변화가 있었다. 그 고운 눈썹이 일그러진다. 몸을 움찔움찔 떨며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당연하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신체적 고통이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의지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다.
턱을 타고 흘러내린 한줄기 타액이 가슴을 더럽히기 시작하자 그녀는 작은 신음성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했다.
쾌감 따윈 없이 그저 고통만이 고밀도로 농축된 신음성.
맨정신이었다면 여자의 그런 신음성을 불쾌하게 여겼겠지만, 지금 내 귀에는 무척이나 감미롭게 들렸다.
더욱……,
더욱 듣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때 처음으로 명확하게 내 안에 있는 씨앗이 눈뜬 거겠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대상이 인간이라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미화시킨 것뿐이란 걸.
사람이나 사물이나 다 똑같다.
그러니 사양할 필요 없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전에 없이 크게 뛰었다.
언제나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말뚝이 박혀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날뛰지 못했었다. 두 손으로 심장째 쥐어뜯는다.
가슴 한가운데에 뻥 뚫려버린 시커먼 구멍 속에서 대량의 피가 뿜어져 나온다. 진홍색의 신선한 피가 아닌 거무죽죽한 죽은 피였다.
오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탁한 피가 내 아래 무릎을 꿇고 멀뚱멀뚱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철퍽 철퍽
욕망이란 구정물에 오염된 피를 한 바가지는 뒤집어써서 그녀의 새하얀 얼굴 또한 구지렁물에 물들었다.
모든 것이 욕보여 ‘여신’조차 모독하려는 이 오염된 세계의 제단 위에서 그녀의 입술만이 홀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폭풍우 속에서 빛을 잃지 않은 단 하나의 별이었다.
그 무엇보다 요염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보다도, 신비에 감싸여 있는 음부보다도 지금만큼은 모든 것이 내 욕망으로 검게 점철된 세계 속에서 여전히 빛바래지 않는 그녀의 입술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럽히고 싶다.
더럽히고 싶다.
허겁지겁 바지를 내린다. 추잡한 물건을 꺼내 그녀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녀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좋다.
차라리 잘 된 거다.
이편이 나도 그녀를 물건으로 취급하기 좋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의사를 무시한 채 우악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비틀어 열고 내 더러운 성기를 뿌리 끝까지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녀의 머리를 꽉 붙잡은 다음 앞뒤로 격렬하게 흔든다.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그녀의 몸이 이리저리 힘없이 흔들린다.
또 다른 내가 내 뒤에서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