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제99 화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욕정이었을 때의 배덕감 (2)
* * *
하아……하아……
하아……하아……
허억……
허억……
비록 빈속이었지만 억지로라도 배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내자 그나마 속은 조금 편해진 기분이다.
하지만……, 그만큼 입안이 텁텁했다. 생으로 모래를 씹은 것만 같다. 수도꼭지를 튼 다음 수돗물로 입안을 대충이나마 헹군다.
하지만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 채 어지간해선 당분간 가라앉을 일이 없어 보이는 내 하반신처럼 입안 역시 쉽사리 개운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받은 찬물을 신경질적으로 들이킨다. 그리고 입에서 우물 세면대에 거칠게 뱉길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하지만 도통 나아지지 않아서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온다. 기왕 이렇게 침대에서 일어난 김에 뭐라도 먹을까 잠시 고민한다.
위장에 음식물이라도 좀 집어넣으면 이 무력감도 조금은 가시려나 하는 기대감도 조금 들었지만──, 역시 관두기로 했다.
만사가 허무하다 보니 지금 그까짓 거 먹어봤자 뭔 의미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사고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침대로 돌아와 그 위로 엎어지듯이 쓰러진 다음 천장을 향해 벌러덩 드러누웠다.
여전히 내 물건은 추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채였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건강하다면 건강하단 증거라 남자로서 좋아해야 할 상황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단 심적인 괴로움이 훨씬 커서 문제였다.
딱히 스스로 성욕을 해결하는 게 추잡하다거나 더럽다거나 혹은 비참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남자 특유의 왕성한 성욕을 살짝 부끄럽다고 여긴 적도 있긴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범하니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아마 거기에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겠지. 욕망은 선악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 지나쳐서 남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때가 문제지 그렇지 않은 선에서는 아마 순기능이 더 크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성욕을 천시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내겐 중대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 수단이었다.
그저 성기를 열심히 손으로 문지른다고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반찬이 필요했다.
나한테는 이 반찬이 참으로 커다란 골칫덩이였다.
내 경애의 대상이자 내 모든 것인 신혜민 그녀를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감히 그녀를 그런 추잡한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녀를 대상으로 음란한 상상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조차 뇌 이전에 몸이 먼저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다른 여자를 떠올리면서 하는 거뿐인데……, 그건 그거대로 신혜민을 향한 내 일편단심인 마음이 퇴색되는 것만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별 쓸데없는 고민으로 사서 고생한다고 비웃겠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상 맨정신으로는 자력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일수록 지금처럼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밖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허무함도 큰 원인 중 하나긴 했지만, 그뿐 아니라 지금 나는 빛이 무서웠다.
분명 밝은 햇살은 그녀의 따스한 마음씨를 연상하게 할 것이다.
그건 지금의 나한텐 무척 쓴 극약이겠지.
잘못 마셨다간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 죽어버릴 정도로…….
하아아…….
그냥 한숨 더 자고 일어나면 가라앉아 있으려나…….
반쯤 자포자기가 되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눈을 감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엔 침대에 드러누워 뜬 눈으로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그녀가 선명하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는 천지 차이로 먼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
과연 내 보잘것없는 팔이 그녀에게 닿으려면 얼마나 많은 기적이 필요할까…….
그녀와 나 사이에 놓여있는 절망적인 거리를 떠올리자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동시에 그녀의 연인인 남자를 향한 질투로 다시금 마음이 불타올랐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어 무심결에 오른손이 사타구니로 향했다.
하아……하아……
언제나……, 언제나 그녀만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도 한결같이 단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건 내 꿈속에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내 상상에서조차 그녀는 언제나 한 점 흐트러짐이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남자와 몸을 섞는다니…….
남자의 아래에 깔려 울부짖으며 그녀의 신성한 육체에 더러운 남자의 물건을 받아들이며 헐떡인다 생각하니까 정말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언제나처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기 전에 이딴 망상은 멈춰야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다른 여자처럼 남들이 모르는 곳에선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안긴다는 상상은 그저 내 마음을 한없이 갉아먹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좀처럼 그런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내 방 못지않게 좁은 단칸방 안에서……, 연인을 앞에 둔 그녀가 웃는다. 언제나처럼 여신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애로 가득한 미소가 아니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줍은 웃음이다.
그녀가 천천히 한 꺼풀 한 꺼풀 옷을 벗는다.
허억……
허억……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녀가 다른 남자 앞에서 이렇게 옷을 벗는 광경을 보느니 지금 당장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충동과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 아름다운 육체에 빨려 들어가 시선을 뗄 수 없다는 정욕이 맞부딪힌다.
시간이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어느새 걸치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신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남자의 선망의 대상인 그녀가 일개 남자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지극정성으로 봉사한다.
이 푸른 별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인 그녀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하잘것없는 비천한 남자에게 그녀가 스스로 입맞춤한다.
그 어떤 감로수보다 달콤한 그녀의 타액을 남자의 구역질 나는 체액과 교환하며 이 추악하고 일그러진 세계의 평안을 위해 노래하는 그 고귀한 입술로 남자의 매스꺼운 물건을 머금는다.
성신(??)의 그릇인 그녀의 몸이 존귀함이 아니라 더러운 정액으로 채워져 간다.
더럽혀진다. 더럽혀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구한 것이, 내 영혼을 악마가 기르는 개의 먹이로 던져줘도 좋으니 부디 언제까지나 순백으로 남아있길 바라던 그녀가 일개 암컷으로 전락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이 날 슬프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든 남자는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녀의 육신을 자기 멋대로 다루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그녀를 소유한 남자는 절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겠지.
분명 시도 때도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모 하나하나 그녀의 모든 것을 맛보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의 것이 되지 않게 철저하게 자기 색으로 물들이려 하겠지.
이 세상 그 어떤 신성모독보다 더욱 모욕적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녀의 육체에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자신의 흔적을 새겨넣는 것도 있음 직한 일이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단순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기만 해도 원래 있던 세계의 색을 자신의 색으로 덧씌워버리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물든다니……,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매일 같이 한 남자의 품에 안기어 그의 씨를 몸 안에 받아들이면서 언제까지고 자기 자신을 유지할 여자가 과연 있을까…….
그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옛 세계의 지배자들인 비유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여신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다솜이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 부원이라고는 꼴랑 남자 셋만 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세상에서 가장 콘돔이 많이 팔리는 날이든 말든 나랑은 조금도 상관없는 얘기였기에, 평소처럼 씻고 일찌감치 잠들려던 참이었다.
승진과 지웅 두 사람이 술에 취한 채 연락도 없이 내 방으로 쳐들어와선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현실 여자에 대한 험담이었다.
그들은 울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내가 다 가슴이 쓰릴 정도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1년도 안 된 연인들조차 얼마나 문란한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반년만 사귀었어도 그 전까지 남자 손도 한번 잡아본 적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던 여자조차 남자에게 개발될 대로 개발 당해 정액을 물처럼 마시고 모닝 펠라가 아침 인사 대신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그들의 얘길 대충 흘려들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신혜민과 그녀의 연인인 남자를 떠올리며 묻고 말았다.
그럼 도대체 고등학생 때부터 몇 년을 사귄 커플들은 대체 어느 정도냐고……, 내가 조심조심 묻자 그 둘은 그쯤 되면 서로가 서로의 가장 더럽고 부끄러운 부위인 항문조차 하도 빨아대서 주름의 개수조차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천박하게 답했다.
그 얘기를 듣고 무척이나 후회했다. 괜히 물어봤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천박해…
그때는 무척이나 천박하고 더럽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아…
지금은 상상하고 말았다. 떠올리고 말았다.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잔뜩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서 지그시 눈을 감고 남자의 더러운 항문을 벌리는 모습을. 그다음 그 안쪽에 그 고운 얼굴을 가까이 대고 혀로 필사적으로 괴로움을 참으며 할짝할짝 핥는 모습을 눈앞에 그리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모습마저 그녀가 한다고 하니 무척이나 아름답고 고상하게 여겨지는 걸까…….
읏!!!!!!!!!!!!!!!!!!!!!!!!!!!!!!!!!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폭풍우 치는 번민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내 몸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하반신이 터졌다.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단번에 터져나갔다.
윽……!
아아……!
너무나도 한순간에 일어났던 일이었던지라 휴지를 찢을 틈도 없었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손과 하반신을 더럽힌다. 자신의 정액이 몸에 흘러내리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방안이 비릿한 냄새로 채워져 간다.
익숙한 냄새였건만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뒤늦게 휴지로 주섬주섬 뒷 정리를 한다.
최악의 기분.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하반신이 개운했다.
하아……
하아……
어째서……, 어째서인거야…….
왜 그녀를 더럽히는 상상을 하면서 이렇게 흥분한 거지…….
내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눈앞에 토해진 새하얀 액체가 답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나 대량의 정액을 꿀렁꿀렁 토해놓은 주제에 하반신은 만족을 몰랐다.
자기 혐오가 온몸을 엄습한다.
수천수만의 바퀴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며 내 몸을 갉아 먹는 기분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자위를 하고 싶지 않은데, 자위를 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너무도 비참하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는 이 충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이 이상은 정말로 위험하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신의 욕망에 삼켜져 제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닐지 몰랐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녀.
지금의 내가 신혜민 다음으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이성.
어느샌가 신혜민 그녀의 얼굴은 다솜의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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