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99화 (99/136)

〈 99화 〉 제98 화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욕정이었을 때의 배덕감 (1)

* * *

늦은 오후……,

해가 중천에 훤히 떠 있는 한낮인데도 땡볕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현민은 조용히 눈을 떴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잠이라면 진즉 깼었다.

다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그의 귀를 세차게 때리더라도 그저 눈을 감고 전부 무시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도무지 일어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눈을 떴지만, 눈을 감고 있는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은 깨었지만, 몸은 자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반대로 몸은 일어났지만, 정신이 깨길 거부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핸드폰에 무심코 손이 간다.

화면을 보자 핸드폰 배터리가 전부 닳아있어서 꺼져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어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피폐해져 있었다. 그대로 씻지도 않고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침대 위에 기절하듯이 쓰러져 아침까지 잠들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충전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뭐……, 상관없나.’

‘딱히 급하게 연락 올 곳도 없고…….’

‘아니……, 그래도 적어도 한 명 정도는……있는 건가………?.’

문득 귀여운 후배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자신에게 조금 짜증 나있고, 입이 약간 험한 소녀. 그렇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속은 무척 착하고 은근히 자신을 챙겨주는 좋은 아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같은 강의였지…….’

어쩌면 말도 없이 수업을 빠진 자신을 걱정해 문자라도 하나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였다면 바로 충전을 한 다음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장을 보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나를 걱정해준 소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것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침울해져 있었다.

그렇다.

그저,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귀찮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

빛 한점 들지 않는 이 음울한 방이 지금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죽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뭐,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마도 이런 나약한 생각은 금방 사라지리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진심으로 죽음에 대해 고민할 만큼 앞으로의 자기 삶이 무가치하게 여겨졌다.

춥고 어두운 겨울보다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에 더욱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왜인가?

어째서 혹독한 겨울이 아니라 그 모든 추위와 고독을 견디고 난 이후에 삶을 포기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 신혜민 그녀와 우연히 지척에서 재회하기 전까지는.

‘희망’이야말로 신의 ‘독기’다.

어설픈 희망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몰랐다면……, 영원히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단 하나뿐인 바람이 영원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절대 자신의 염원은 이루어질 리 없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전보다 더 큰 어둠에 빠지고 만다.

그래……, 줄곧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따스한 온기를 접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견딜 수가 없어서이다.

지금의 봄이 지나가고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겨울을 이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어서이다.

알아버렸으니까…….

알아버린 이상 그것들이 없던 삶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쫄딱 비에 젖은 채로 버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그녀와의 만남은 내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구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분명 자신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신은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한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상의 사랑을 나눠주기에 여신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때의 만남은……,

내 모든 것은 앞으로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너무도 극적인 만남이었지만……,

그녀에겐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평소 그녀가 타인에게 내미는 작디작은 친절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물론, 내 이런 생각은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곧바로 내 이름을 반갑게 불러주었다.

‘찰나’의 시간을 오래도록 바로 조금 전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대하게 된다.

주제를 잊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만다.

어쩌면 그녀의 안에서 나는 조금 특별한 게 아닐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녀의 콘서트에 빠지지 않았다.

개인은 먼지만도 못하게 느껴질 수많은 관중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나를 찾아 내주었던 게 아닐까──.

위험하다. 이건 진실로 위험한 생각이다.

그녀에게 자신은 남들보다 단 한걸음이라도 더 특별할지 모른다는 망상이 서서히 마음을 좀먹는다.

마음속에 있는 빛을 갉아먹고 그 자리를 검은 욕망으로 채운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녀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가서 그녀를 찾았을 때,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그녀에게 인사하려다가 그 자리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감히 말조차 붙여볼 수 없었다.

단순히 그녀가 내게 너무도 눈부셔서만은 아니었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에겐 죽음 이외에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는 남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 따위 그녀에게 있어서 성가신 것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여자일지언정 그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믿으려 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도 고된 일이었다.

그녀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이 세상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왜 그녀의 곁에 서는 게 허락된 게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인 걸까.

얼핏 봐서는 크게 특출나 보이지 않는……, 자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해 보이는 소년인데 말이다.

물론, 그녀에게 간택된 만큼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남자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가 평범해 보이는 것도 열등감 때문에 나 자신의 눈이 흐려져서일지도 몰랐다.

그렇더라도 역시 ‘왜 내가 아닌 걸까?’라는 불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 남자보다 내가 그녀를 더 먼저 만났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녀를 먼저 만나고 사랑에 빠진 건 내가 먼저였을지도 몰랐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저런 자기망상들을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억눌러왔었다.

하지만……, 어제 그 단 한 번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게 된 것만으로 지금까지 내 안에 고여있던 무수한 감정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속으로 천박하게 욕지기를 내뱉는다.

그건 나 자신을 향해서 하는 욕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 이렇게 그녀를 조금 떠올린 것만으로 하반신에 온몸의 피가 전부 쏠려있는 자신한테 하는 욕이었다.

그녀에게 추잡한 마음을 품고 또 거기에 반응하는 자신의 몸뚱이가 도무지 용서되지 않았다.

맹세컨대 지금까지 그녀를 대상으로 야한 상상을 한 적은 단연코 없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 너무도 고결하고 존귀한 존재다.

그렇기에 속된 망상에서조차 나 따위가 그녀를 상대로 추잡한 짓을 하는 것 따위 감히 할 수 없었다.

생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남자의 천박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려고 할 때마다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그날 먹었던 걸 전부 게워냈다.

남자의 욕망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지는 같은 남자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남자가 아무리 자신이 경애하는 여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떠받든다고 해도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그녀를 정복해서 자기 배 아래에 놓고 그녀의 몸을 안으면서 범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신혜민 그녀는 나뿐 아니라 그 어떤 남자의 손도 닿아서는 아니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무구한……, 그 누구의 발자국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새하얀 설원으로 남아있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 손끝에 경애의 입맞춤을 하는 것조차 허락되어선 안 된다.

옷자락……,

백 보 천 보 양보하더라도 그녀의 발아래 엎드려 그녀의 발등에 입맞춤하는 게 내게 있어 최대한의 양보였다.

하지만……,

이미 그렇지 않겠지…….

읏……!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한가지 깨닫게 된 게 있다. 남자고 여자고 무척이나 문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음란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녀의 애인은 과연 어떨까…….

굳이 신혜민 그녀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마음을 연 여자를 가만히 놔둘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라면……, 타고난 모성으로 연인의 욕망도 전부 받아주겠지…….

제길……제길……

젠장……젠장……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눈물임이 분명하겠지만, 내겐 눈물이 아니라 피였다.

그렇게나 고귀한 그녀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천박하게 안기면서 교태를 부리는 걸까…….

그 앙증맞고 붉은 입술로 남자의 더러운 물건에 복종의 입맞춤을 하거나 그러는 걸까…….

우웁!!!!!!!!!!!!!!!!!!!!!!!!!!

그런 생각을 하자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우웩!!!!!!!!!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커헉!!!!!!!!!!!

컥!!!!!!!!!!!

웁웁!!!!!!!!!

웨에에에에에엑!!!!!!!!!!!!!!!!!!!!!!!!!!!!!!!!!

엊저녁부터 뱃속에 집어넣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한동안 헛구역질만 나왔다. 그러다가 결국 위액을 한참 동안 한 사발이나 게워냈다.

하아……하아……

어째서……어째서 이렇게 나는 연약한 걸까……….

그녀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걸 어떻게 해도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속에 들어있는 걸 전부 토하는 주제에도……,

내 하반신은 더없이 딱딱하게 서 있어서 나는 그런 내게 절망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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