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제97 화 이 노래 별이 되어라 (12)
* * *
“저 새는 아직 잘 날지 못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바람을 가르며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거야.”
“지금은 가슴 속에 있는 그림자의 무게에 짓눌려 떨고 있을지 몰라도……,”
“괜찮아.”
“너에게도 분명히 있어.”
“아득한 미래로 향하기 위한 날개가.”
“그럴 수 있는 용기가.”
“그러니까 빛과 그림자를 안은 채로 너답게 살아줘.”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꿈을 위해서──.”
딸깍……!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사장이 보이스 레코더의 정지 버튼을 누른 소리가 들렸다.
“그럼, 들어보도록 할까.”
“네…….”
사장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녹음된 노래가 흘러나온다. 마이크를 들고 불렀음에도 마이크가 아니라 보이스 레코더를 손에 쥐고 부른 것처럼 마이크 특유의 울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내 육성이 깨끗하게 녹음되어 있어서 조금 의외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건 항상 위화감이 크다. 이게 정말 내 목소리가 맞나 싶었다.
노래가 끝나자 사장이 내게 물었다.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가장 연습을 많이 한 노래, 그렇기에 가장 자신 있는 노래는 불렀음에도 내 입에서는 사장의 질문에 자기비하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초라하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군.”
“아뇨, 그런 건…….”
“그런가……, 그렇다면 부르는 동안 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꼈지?”
“좋은 가사였다고 생각합니다.”
“……”
“자네와 나다. 쓸데없는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도록.”
“……”
역시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간절히 바라고 최선을 다하면 능히 못 이룰 꿈 따위 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역겹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자……,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 특유의 오만함이란 건가…….”
“네……, 노력하면 누구나가 보답 받는다니……, 이 세상은 결코 그렇게 입맛에 맞게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럼에도……, 자네와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이 노래를 선택한 건……, 비단 신혜민의 창법을 본받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겠지.”
“……”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뒤틀림 또한 깊게 파고들면 그것 또한 뒤돌아서서 보면 하나의 길이 되어 있다라……,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군.”
“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의 선택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까지 틀린 건 아니야. 자네는 조금 전 자네의 노래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 질문에 초라하다고 답했지.”
“그 말은 분명 맞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틀리다.”
“분명 신혜민과 비교하면 초라할 테지. 그렇지만──, 그녀를 제외하면 저 노래를 자네보다 더 잘 소화할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이게 자네에게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사장의 말대로였다. 신혜민을 꺾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보다 아무리 잘 부른다 해도 나에겐 의미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설령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만 못 불러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신혜민이 만약 세상에서 제일 못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면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것이 무엇 하나라도 좋으니 신혜민을 이기고 싶을 뿐이다.
정확히는 그녀를 끌어내리고 싶은 거지만──,
분명, 서준은 그녀가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그녀를 받아들이겠지. 그러니까 그녀 스스로가 서준의 앞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심령을 더럽히고 일그러뜨려야만 해.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네는 저 하나의 노래를 정말로 열심히 깎아왔어. 그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또한 사실.”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보이스 레코더를 재차 손에 들었다.
“다시 한번 들어보지.”
전부를 듣는 건 아니었다. 사장은 앞부분은 훅훅 건너뛰고 클라이맥스 부분만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 재생했다.
그다음에는 핸드폰을 꺼내 신혜민이 부른 원곡도 틀어주었다.
“자네가 부른 노래와 그녀가 부른 노래……, 둘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너무도 많은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음색, 감정, 기교……, 결국 그런 모든 것들은 단 한 단어로 집약되었다.
“역시……, 재능 차이 일려나요.”
“재능 탓으로 뭐든지 돌리는 건 무책임하다고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언제나 그런 법이지. 그렇다, 그녀와 자네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그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이 부분이다.”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다시금 클라이맥스 부분을 틀었다.
그동안의 감정이 정점에 달아 한 번에 터지는 고음부였다.
“자네의 경우엔 고음을 부를 때 이렇게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지.”
“네…….”
딱히 잘못을 지적당한 것도 아니건만 나는 나도 모르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하고 말았다.
“너무 기죽지 말게. 뭐라 하는 게 아니니까, 자네뿐 아니라 일반적으로라면 누구나가 그러니 말일세. 이건……, 자네가 기죽을 일이 아니야.”
“하지만──, 신혜민, 그녀만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녀의 고음은 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부터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는 고음이지.”
“…….”
확실히 듣기 전까진 몰랐지만, 사장에게 듣고 나니 그렇게 느껴졌다.
시작점부터가 다르다는 건가.
똑같은 음을 부른다고 해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나와 그보다 훨씬 위에서 내려찍는 신혜민.
마치 그녀와 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층 더 기분이 울적해졌다.
정말로 나와 사장 두 사람이 그녀를 이길 수 있는 걸까──.
내가 한없이 우울해져 당장이라도 자포자기 할 것만 같을 때 사장이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지금의 자네라면……, 어느 정도 따라 할 순 있을 거다. 마침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해보겠나?”
“네…….”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솔직히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순순히 긍정했다.
“우선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리고 아무 팔이나 쭉 뻗어보도록. 그리고 손끝에서 가슴과 수평이 되도록 가상의 오선보를 그리도록.”
“네.”
사장의 말에 따라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평소보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오선보를 떠올려본다. 한 번에 이미지 하려니 무척이나 흐릿해 보여서 떠올리나 마나였다.
여기서는 나답게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선을 쌓아 올리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넷……,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선명한 선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다섯 번째 선을 그리려 하자 제일 먼저 그렸던 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두 번 더 시도해 봤지만……, 계속 같은 곳에서 막힌다.
쉬운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잘 안되네요.”
“뭐, 처음이니까 그런 법이지. 굳이 오선을 다 안 그려도 되니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려보도록.”
“네.”
내가 당장이라도 손으로 쥘 수 있을 것만 같은 3개의 선을 그린 다음 사장에게 답했다.“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전 불렀던 곡의 최고 음에 하나의 점을 찍어보게나.”
“네…….”
“좋군. 그럼 이제 그 점 하나만을 있는 힘을 다해 내려다보면서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는 마음가짐으로 불러보도록.”
“알겠습니다.”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생수병 하나를 뜯는다. 가볍게 목을 축인 뒤 사장이 말한 걸 최대한 의식하면서 불러봤다.
후우…….
노래가 끝나고 내가 숨을 깊게 토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자 사장이 내게 말했다.
“기대 이상이군. 솔직히 이 정도로까지 잘 해줄 줄은 몰랐다. 과연……, 화살을 쏘려거든 목표로 하는 과녁보다 높게 쏘라는 건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한결같이 신혜민만을 목표로 했던 건……, 최고의 선택이었군.”
사장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그에게 이렇게 순수하게 칭찬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살짝 들뜬 목소리로 수줍게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자네도 같이 들어보도록 할까.”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사장이 녹음한 걸 재생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사장이 내게 말했다.
“신혜민을 향한 자네의 집념은 단순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깊더군.”
“어쩌면……, 자네는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그녀처럼 되길 바랐을지도 몰라.”
“그야말로 한눈에 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무리도 아니긴 하지.”
“…….”
내가 그녀에게 만난 순간 빠져들었다니……. 내겐 이 이상 없을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부정할 순 없었다.
“그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잔인한 말이지만, 자네는 신혜민처럼은 될 수 없어.”
“그럼에도 그녀처럼 되길 바라고 그녀의 발자취를 뒤쫓은 자네의 행동은 틀리지 않았다.”
“비록 별의 축복을 한몸에 받은 그녀의 자질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목표로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어느 정도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조금 너무 지나쳤다고 말하고 싶군.”
……지금 사장이 내뱉은 말은 어떻게 보면 내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과도 같았다. 무언가 한순간 속에서 어두운 감정이 꿈틀거린다.
그것은 내 열등감. 정면에서 열등감을 지적당하자 어린아이처럼 발끈하려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왜냐하면……, 사장이 저렇게 말하는 데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사장은 말하자면 온 세상이 내 일그러진 욕망을 손가락질한다 해도 그만큼은 날 긍정해줄 나에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아군.
그가 하는 말은 그 어떤 말이라도 날 위해서 하는 말이기에 나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새겨들어야겠지.
그런 마음을 담아 사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내게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는 그런 여자지. 한없이 올곧게 미친 여자다.”
“여신의 독기에 오염되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지만, 너무나도 올곧게 미쳤기에 그것마저 하나의 길로 개척할 수 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여신의 날개를 잡아 뜯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아무리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러니 자네는 그거면 된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곧 별의 목소리와도 같은 신혜민과 자네를 비교하는 건──, 그야말로 개인과 이 별 자체를 비교하려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것.”
“그렇지만 사람은 때론 별보다 아름답고 존귀하다.”
“그러니 자네가 신혜민을 이기기 위해선 우선 자네가 자네가 될 필요가 있네.”
“지금까지 신혜민의 뒷모습을 쫓는 과정에서 자네가 몸에 두르게 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자네의 목소리를 찾아야만 하지.”
“노래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남은 것은 자네가 자네 자신의 형태를 되찾는 것뿐.”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자기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그런 거니까 말일세.”
“이를테면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지.”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도 당연해서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서는 의식할 수 없는…….”
“그러니까──, 우선은 그 첫걸음으로 자네 목소리의 체형에 맞지 않는 옷부터 갈아입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조금 전까지 내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틀기 시작했다.
다만 그 노래는 원래의 곡보다 반음 낮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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