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제96 화 이 노래 별이 되어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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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걷기를 약 10분.
레코딩 하우스에서 나온 지는 20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와 사장은 노래방 앞에 도착했다.
2층에 있는 노래방이었다. 계단을 올라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렇게 대낮부터 노래방이 과연 문을 열었을지조차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는지……, 그게 아니면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 가무의 민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해서인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간에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학생으로 여겨지는 어린 목소리부터 나이 꽤나 있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열리며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손님이 나간 후 청소를 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안쪽 방에서 젊은 여자종업원이 나와 영업용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의례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몇 분이신가요?”
종업원의 질문에 사장이 자연스럽게 하대했다.
“두 명이다. 그리고 가장 넓은 방으로 부탁하지.”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고급스러운 카드를 건넸다.
사장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건네받은 카드마저 무척이나 특별해 보여서인지 점원도 특실을 쓸 경우에 드는 추가 요금이 얼마인지 같은 멋없는 얘기는 하지 않고 곧바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척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는 원칙적으로 선불만 받고 있기에…….”
종업원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리며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답했다.
“두 시간……, 아니 넉넉하게 3시간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처음 1회에 한해 음료가 무료로 제공되는 어떤 거로 원하시는지요?”
“물이면 충분하다. 추가로 5병 정도 부탁하지.”
사장의 말에 점원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아……,
아무래도……, 표정을 보아하니 젊은 여직원과 혹은 스폰녀랑 대낮부터 놀러 나왔다고 내심 생각했나 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런데 사장이 술을 시키지 않고 생수만, 그것도 대량으로 추가 주문하는 걸 보고 우리가 건전하게 노래만 열심히 부르다가 돌아갈 거 같아 보이니까 얼마나 의외였는지 눈에 띄게 의아해하는 게 보였다.
“그럼 이쪽으로…….”
결제를 한 후 사장에게 공손하게 다시 카드를 돌려주며 점원은 우리를 가장 안쪽에 있는 특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고, 우리가 안에 들어가자 문을 닫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한 다음 떠나갔다.
사장이 먼저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가 안쪽에 있는 소파에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자 나 역시 그의 곁에 앉았다.
사장이 습관적으로 무심결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라이터를 손에 들고 불을 붙이려다가 우뚝 멈췄다.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 역시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버리려 한다.
아마 같이 있는 날 배려해서겠지.
그에게 말한다.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내 말을 사장이 도중에 제지한다.
“아니, 방금은 내가 실수한 거다. 자네도 괘념치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대화가 일단락되자 사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다.
“그래……, 일단은 목부터 풀어야겠지. 시간은 신경 쓰지 말고 우선은 스트레칭부터 충분히 하도록.”
“네…….”
“왜 그러나?”
“아……아뇨, 아무것도.”
사장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댄 채 내가 하는 양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괜히 머쓱해서 가만히 있다가 한 소리 들었다.
‘우으……, 집중하자…….’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다.’
거울이 있었다면 좀 더 편했겠지만, 이 상황에서 그거까지 바라는 건 도를 넘는 사치겠지.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린다. 두 손을 깍지낀다.
그다음 깍지낀 양쪽 손의 엄지손가락만을 위로 곧게 세워 머리를 뒤로 크게 젖히면서 동시에 엄지손가락으로 밑에서부터 고개를 위로 쭉 들어 올린다.
목이 땅길 정도의 자세를 유지하며 속으로 천천히 30초를 센다.
후우…….
자세를 풀며 크게 숨을 한번 내쉰다.
이번에는 반대로 깍지낀 손이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한 다음 뒤통수에 얹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서 꾸욱 누른다.
마찬가지로 이 자세를 유지하며 속으로 30초를 센다.
후아아…….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세를 풀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리자 슬슬 날 조용히 날 지켜보고 있는 사장의 시선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꺾는다. 왼팔을 들어 올려 오른쪽 뺨을 억누른 후 마찬가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으며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세게 누른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후 마무리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으로 각각 다섯 번 정도 고개를 천천히 돌린 뒤 두 팔을 위로 쭉 뻗은 다음 아래로 내리면서 사장을 쳐다보았다.
“끝났나…….”
“그럼, 이제 입술과 목을 풀도록.”
“네.”
앞선 스트레칭의 중요도는 지금부터 할 ‘트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걸 하기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다.
사장의 말에 따라 내가 우선은 입술부터 풀기 위해 왼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만을 펴서 양쪽 뺨으로 가져갈 때였다.
지금껏 딱히 아무 말 없던 사장이 내게 말했다.
“으음……, 그냥 하면 자네도 심심할 테니 뭐라도 맞추면서 하도록 하지.”
“그래, 특별히 틀어줬으면 하는 곡은 있나?”
“아뇨……, 그게…….”
딱히 떠오르는 곡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대답으로선 최악이지만 사장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기 전에 내가 노래방에 올 기회가 거의 없다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나 보다.
“흠……, 그럼 무난한 거로 틀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사장이 튼 것은──, 무척이나 잔잔한 동요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런 내 속내와는 별개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다시 양쪽 뺨에 가져다 댄 다음 지그시 옆에서부터 꾹 누른다.
자연스레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게 했다.
그다음 최대한 목과 입술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입술만으로 풍선을 부는 느낌으로 푸루륵 하고 공기를 불었다.
입술이 잘게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목과 입술에 절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침이 입 밖으로 튀거나 부르르 떨리던 입술에서 뿌르르하는 거센소리가 튀어나와 쉽게 알 수 있으니까, 그럴 때는 멈춘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된다.
조금만 해보면 이것 자체는 요령을 잡기 쉽다. 익숙해지면 굳이 손가락을 빌리지 않고도 입술만으로도 파르르 떨 수도 있었다.
까다로운 건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운율에 맞추는 단계부터였다.
곡에 맞춰서 음의 높낮이와 장단에 따라 입술을 떠는 걸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과 숙련도를 요구했다.
특히 폐활량을 아주 아주 많이 요구해서 1절 정도만 해도 아랫배가 상당히 땅길 정도였다.
내 경우엔 입이나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중간중간 입술이 떨리지 않고 그대로 공기가 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름 숙련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데뷔한 지 꽤 됐건만, 한 곡조차 완벽하게 소화 못 하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딱히 사장은 내가 중간중간 호흡이 끊기거나 실수를 해도 그다지 신경 쓰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하긴, 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새삼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하지만──, 사장은 그런 서툰 나와 함께 진지하게 신혜민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내게 기대하는 면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진 말자.
…
이런 느낌으로 대략 세곡 정도 소화했을 때였다. 입술이 완전히 풀리다 못해 치과에서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입술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무렵이었다.
사장이 생수병 하나를 따서 내게 건넸다.
“입술은 그만하면 된 듯하군. 충분히 목을 축이고 다음은 혀를 풀도록.”
“네.”
꿀꺽……
꿀꺽……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 이번에는 사장이 틀어주는 트로트에 맞춰서 입술을 떨던 것과 같은 요령으로 혀를 떨었다.
혀의 경우 입술을 떨 때보다 목이 바싹바싹 말라서 중간중간 수분을 계속 섭취해줘야만 했다.
여기서만 생수병 하나를 비웠을 정도다.
역시 이번에도 대략 세 곡에 걸쳐서 혀를 풀고 나자 사장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군. 어느 정도 준비는 된 건가 이제.”
“네……, 저………, 근데 사장님은 괜찮으신가요?”
“아아……, 나는 괜찮다. 내 경우 부르는 쪽은 아니니까…….”
“그런가요.”
내가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자 사장이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뭐. 내 노래 따위를 듣는다고 즐거워할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어찌 생각하든 본인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사장이 그렇다는데 내가 아니라고 해봤자 괜한 참견이다.
사장에게 있어서 그 자신은 뒤에서 연주하는 쪽이고, 앞에서 부르는 건 ‘그녀’라고 선을 그어놔서 그런 거겠지.
그렇지만──,
“다만……,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네요.”
이루어질 리 없는 무의미한 말을 그렇더라도 입밖에 내어본다.
이 정도 작은 바람을 말하는 것 정도는 크게 예에 어긋나지 않겠지.
“너무 기대하진 말도록.”
아니나 다를까, 사장 역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입에 담았는지 이해하고는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일단 내 문제는 제쳐두고, 오늘은 자네가 우선이다. 그러니 먼저 가장 자신 있는 곡을 불러보도록.”
그렇게 말한 후 사장은 주머니에서 작은 기계를 꺼낸 다음 전원 버튼을 누르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상당히 오래된 보이스 레코더였다.
“꽤 오래된 모델이네요.”
정확히는 모델뿐 아니라, 보이스 레코더 자체가 보기 힘들어졌지만…….
“아아……, 그렇지. 요즘은 핸드폰 녹음기능도 워낙 발달해서 집음 마이크만 달아주면 충분할 정도니 말이지. 그렇지만 난 여기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이쪽이 손에 익더군.”
“그런가요.”
그나저나……
사장은 나한테 가장 ‘자신 있는 곡’을 부르라고 했다. 좋아하는 곡도, 잘 부르는 곡도 아니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내가 가장 연습을 많이 한 곡을 부르라는 건가.
……남들 앞에서 부르기는 망설여지지만, 아마 사장은 이걸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 날 여기로 데리고 온 거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조금 내키지 않지만……, 사장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 테니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망설임 없이 신혜민의 노래를 선택했다.
내 모든 걸 구성하고 있는 이 오기와 열등감의 근원이라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증오하는 동시에──,
그렇기에 내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녀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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