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92화 (92/136)

〈 92화 〉 제91 화 이 노래 별이 되어라 (6)

* * *

강의실 구석 창가 자리에 앉은 다솜은 수업시간 내내 계속 의미 없이 핸드폰만을 만지작거렸다.

교수의 말 따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폰에만 몇 번이나 손이 갔다가 도중에 멈췄는지 모르겠다.

‘선배, 괜찮아?’

고작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짧은 한 문장을 보내는 게 어째서 이렇게나 힘든 걸까…….

만약 반대로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학교에 안 나왔다면 선배는 분명 아무렇지 않게 안부 문자를 보냈을 거다.

그건──,

분명 기쁘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씁쓸한 사실이었다.

선배가 나한테 아무런 흑심이 없기에 가능한 거였으니까.

조금이라도 날 이성으로 의식하고 있다면 그렇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하진 못할 테지…….

물론, 알고 있다.

이게 나 혼자만의 정말로 바보 같은 고민이라는 것 정도는.

‘이 문자를 보고 혹시 내가 선배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을까?’

그렇게나 요령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답답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한 후배한테 문자가 왔네 라고 여겨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혹은 ‘딱히 애인 사이도 아닌데 사생활에 간섭한다고 성가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을 남자라는 건 그에게 구원받고 선배에게 흠뻑 빠진 내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작디작은 송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건만…….

‘선배, 괜찮아?’

이건 너무 짧지 않을까……?

‘별일이네, 선배가 수업을 다 빠지고. 끽해야 성실함만이 장점이면서. 혹시 무슨 일 생긴 거야?’

내 본심이 무척 잘 들어간 거 같지만, 이것도 좀 너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 같고. 받는 사람은 기분 나쁠지도…….

‘선배, 혹시 무슨 일 생겼으면 연락 줘.’

지금 제일 하고 싶은 말이지만 막상 내가 선배의 뭔데 연락을 달라고 하는데……? 선배가 나한테 사생활을 보고할 의무가 있나……?

이런 느낌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내용을 표현만 조금 바꿔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할 뿐……,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하아……

어째서 이렇게 여자아이는 섬세한 걸까. 이럴 땐 앞뒤 생각 안 하고 행동부터 나서는 남자들의 무모함이, 좋게 말하면 대범한 성격이 부러웠다.

으응……, 그건 아니겠지.

사랑이 남자든 여자든 겁쟁이로 만들고 마는 건 분명 마찬가지일 거다. 거기에 성별의 차이 따위 없겠지.

그렇다면 세상에 별의 수만큼이나 넘쳐나는 연인들은 전부 그걸 극복한 걸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걸까…….

나한테도 언젠가는 그런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언제나 숫기 없이……, 눈에 조금 아니, 상당히 커다란 콩깍지가 쓰인 내 눈에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온화하게 웃는 선배의 얼굴을 떠올린다.

다른 여학생들은 그런 선배를 보며 역시나 남자답지 못하다든가, 실없어 보인다든가라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대체로 다른 여학생들의 선배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는 ‘착한 건 알겠지만 그것 외에는 매력적인 점이 없어 보인다.’였다.

그래서 친구라면 모르겠지만, 연인으론 아예 대상 외라고 나에겐 무척이나 다행히도 다들 선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선배가 너무나도 좋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걸 바보 취급하는 게 요즘 같은 세상이다. 선배는 그런 세상에서 자기가 좀 손해 보더라도 궂은일을 자처하며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

내게는 그런 선배가 스크린 너머에 있는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멋져 보였다.

조별과제나 뒤풀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선배 혼자야?”

선배에게 전부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짜증을 전혀 숨기지 않고 내가 선배에게 그렇게 물으면 선배는 언제나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하게 답했다.

“그러게.”

듣는 이쪽이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화병으로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은 답변이었다.

선배의 상냥함을 이용하는 녀석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간다.

“선배가 이런다고 그 사람들이 알아주기나 할 거 같아? 고맙다는 말이라도 했으면 다행이지, 지금쯤 선배에 대해선 까마득히 잊고 자기들 좋을 대로 신나게 놀고 있을걸.”

“응, 아마 그럴지도…….”

“그럼 대체, 왜!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러게……, 하지만, 그러기로 그 사람과 약속했으니까. 으음……, 이건 조금 다르려나. 아니, 딱히 상관없으려나.”

“정말이지 또 그런 영문 모를 소리나 하고.”

“아하하, 그래도 고마워. 못난 선배를 위해서 진심으로 화내줘서.”

“따……, 딱히 그런 건 아니거든! 누……누가 선배 따윌 위해서.”

“아하하…….”

나를 향해 진심으로 기분 좋게 웃는 선배의 얼굴을 보자 뭔가 혼자서 진심으로 화내는 게 바보 같이 느껴졌다.

괜스레 이쪽의 독기까지 빠진다고 해야 할까…….

선배가 말한 ‘그 사람’이 누군지 미치도록 신경 쓰였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왠지 그 문을 들여다봤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절망에 붙잡혀 버리고 말 것만 같았기에.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마침 운 좋게 오늘은 한가하니까, 조금은 도와줄게.”

“폐를 끼쳤네.”

“그……, 그럴 땐 그저 순순하게 고맙다고 하라고?! 안 그랬다간 언제까지고 여자애들에게 인기 없을걸?”

“그래……, 새겨들을게.”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싸하게 하라고. 여자애들에게 인기있고 싶은 마음이라곤 1도 없으면서.”

스스로 말해놓고 순간 가슴을 송곳으로 찔린 것만 같은 아픔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선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평소와 마찬가지로 옅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딘가 보는 사람이 무척이나 씁쓸해지는 미소였다.

‘정말로 눈을 뗄 수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바싹 붙어있지 않으면 아마 평생을 다른 사람한테 이용만 당하며 손해 보고 살겠지…….’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뒤에 이런 식으로 선배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아늑한 시간이었다.

과연……

그런가───.

그랬던 걸까나─────.

용기는 이미 가지고 있었구나.

아니, 처음부터 용기 따윈 필요 없었다.

다들 그저 전하지 않고서는 그 이상 앞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거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비교하면 미움받는 것 따위 정말로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깨닫자 머리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천근만근은 될법한 무거운 추가 달려있던 손가락이 깃털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삭제했다가 수정했던 문자를 단번에 적어 내린다.

그 뒤 지금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자신이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송신 버튼을 눌렀다.

‘선배답지 않게 무슨 일이야? 아무런 말도 없이 빠지다니. 혹시 무슨 일 있어? 걱정되니까 문자 보면 연락 줘.’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라면 선배한테 문자가 오면 30초 내로 답장을 보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고작 문자를 보낸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혼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1분 정도 지났을 때 5분은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고, 답장이 안 온 지 5분이 넘었을 무렵에는 한 시간은 훌쩍 흘러간 것만 같았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선배가 학교마저 뒷전으로 제쳐놓을 정도로 무척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인데, 내가 자꾸 눈치 없이 연락해서 성가신 여자라고 여겨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소녀에게 먼저 연락을 받고서는 1초 내로 답장을 하지 않은 선배가 나쁜 거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 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성의의 문제인 것이다.

과감하게 통화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뒤 날 반겨준 것은 선배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해 주겠다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안내음이었다.

‘서……, 설마 방금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진짜 짜증 나서 핸드폰을 끈 건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내 번호는 진즉에 차단당했다든가?’

‘서……설마……!’

‘아하하’

그런 말도 안 되는 불안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고……….’

나는 속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했다.

한편 사장과 질펀하게 몸을 섞은 후 바닥에 누워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한동안 농밀한 시간을 보낸 나은과 사장은 그 뒤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은 후 사장과 함께 들어간다.

사장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며 앉자 저절로 입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잔뜩 땀을 흘린 후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자 온몸이 풀어지는 게 두둥실 천상에 오른 기분이다.

여전히……, 다리를 쭉 펴고 사장의 가슴팍에 더욱 바싹 등을 기대며 깍지를 끼고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크게 기지개를 한다.

사장은 내가 그렇게 팔을 들어 올리자 훤히 드러나게 된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내 젖가슴과 음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딱히 음란한 손길은 아니었다. 그저 여자의 가슴이나 음부가 부드러워서 기분 좋으니까 무심코 계속 만지작거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야릇한 기분이 들기보다는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게 내 몸을 주무르는 사장의 손길을 만끽하며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아아……”

“뭔가 예정이 있었던 게? 괜찮은가요……?”

“그래, 문제없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내가 조금 심각한 어투로 물었지만, 사장은 너무도 가볍게 내게 답했다.

“글세……, 우선은 노래방이라도 가볼까.”

“네?! 노래방요?”

내가 너무도 뜬금 없어서 혹시 놀리는 게 아닌가 하고 되물어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나 보다.

사장에겐 사장 나름대로 확실하게 생각해둔 바가 있는 거겠지.

“그래……, 확인해두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등 뒤에서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내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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