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89화 (89/136)

〈 89화 〉 제88 화 이 노래 별이 되어라 (3)

* *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이른 새벽, 다솜의 방.

으음…

다솜은 알람 소리에 야트막한 신음성을 내며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5분만 더 눈을 붙이고 싶다는 유혹이 엄습해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조금만 타협한다면 1시간이 훌쩍 넘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잠결에도 그녀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떠올리곤 곧바로 그런 유혹을 뿌리쳤다.

눈을 번쩍 뜬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소녀의 마음이 수면욕을 저 뒤로 따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뜩이나 현민은 둔감한데, 그의 머릿속엔 신혜민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그런 만큼 더욱 자신이 노력해야만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 하러 간 그녀는 조금 있으면 현민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몇 년째 알람으로 해둘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씻기 시작했다.

“흐흥~”

그녀는……, 현민과 같은 강의를 듣지 않는 날에도 혹시라도 우연히 그를 만날 때를 대비해 매일 같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치장했다.

어떨 때는 두 가지 옷 중 하나를 고르는 데에만도 30분 이상 소요할 때마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지금 파란 짧은 치마에 금빛 자수가 수 놓인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을지, 그게 아니면 검은색 핫팬츠에 배꼽이 드러나고 가슴이 푹 파여 강조되는 가로 줄무늬 셔츠를 입을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전자는 선배가 좋아 죽는 신혜민이나 입을법한 단아한 옷이고, 후자는 선배를 만난 이후 변한 자신이 줄곧 입고 다니는 종류의 다소 화려하고 노출이 있는 옷이었다.

선배의 취향을 고려하자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신혜민을 따라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여자를 따라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매력으로 선배에게 사랑받고 싶단 마음이 거세게 밀려왔다.

아마……, 자신이 지금 이런 모습이 된 데에는 신혜민에게 반발하는 심리가 무척 컸을 것이다.

‘미련하다고 해도 좋아…….’

선배에게 사랑받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역시 다른 여자의 대용품이 아니라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어.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는 것 같긴 하지만 나한테는 이게 정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대체품으로 사랑받아봤자……, 분명 행복할 수 없을 거야…….’

나도……,

그리고 선배도…….

언제나 이렇게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다음날만 되면 또다시 같은 이유로 한참을 갈등한다.

그런 게 사랑에 빠진 소녀의 복잡한 마음이란 거겠지.

몸단장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만큼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이라면……,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혹시 몰라서 서둘렀겠지만, 밖으로 나온 다솜은 오히려 걸음을 늦췄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높은 확률로 이번 걸 넘긴 뒤 다음에 오는 전철의 네 번째 칸 2번 문에서 현민과 마주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전철 안에서 현민을 마주치면 우연을 가장하며

“우연이네, 선배.”라고 그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곤 했지만 정말로 그럴 리가……. 상당히 많이 우연에 기대긴 해도 어떻게든 그와 만나고 싶다며 아무리 필사적으로 그 우연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친 결과였다.

‘아마……, 날 내려다보는 하늘마저 내 갸륵함에 감동해서 도와줬던 게 아닐까……,’

‘오늘도 만났으면 좋겠네…….’

유독 바람이 강하고 쌀쌀한 아침이다.

기껏 머리에 공들였는데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얼굴을 간질인다.

괜스레 기분이 울적해졌다.

‘일기예보……, 확인하고 나왔으면 좋았을걸.’

‘난 항상 의욕이 앞서서 뭔가가 조금씩 부족하다니까…….’

‘뭐, 어쩔 수 없나.’

아마 나라면 일기예보를 아침에 확인했더라도 비가 오나 안 오나 정도만 봤을 테니,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으음……, 최대한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는 법. 어쩌면 이건 혹시 선배를 만난다는 징조가 아닐까…….

금세 기운을 차린 나는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철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하철이 도착한 뒤 안에 들어간 나는 곧바로 다시 기운을 잃고 말았다.

‘선배……, 없네.’

뭐, 그런가. 그렇게 세상일이 나한테 유리하게 돌아갈 리는 없겠지.

그런 걸 알고 있긴 하지만 낙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꽤 가능성 높다고 생각했는데.’

전에는 두 번에 한 번꼴로 마주쳤지만, 최근 들어선 어지간하면 선배와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세 번에 두 번 정도?

엇갈린 건가…….

그게 아니면 먼저 갔나?

어쨌든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는다. 전철 안에서 어차피 할 것도 없겠다 혹시 다른 칸에 선배가 있나 돌아다니면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결국 첫 번째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빠짐없이 돌아다녀 봤지만, 선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단 거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포지티브……, 포지티브.’

그래도 역시 만났다면 좋았을 거란 미련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기에 다소 어거지로 텐션을 올리며 전철에서 내렸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강의실로 향했다.

안에 들어오자 입구서부터 몇몇 남자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그래 봤자 내 관심사는 오로지 선배 한 명 뿐이기에 대충 흘려넘기며 선배의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간 걸까……?

조바심 내지 않고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려본다.

‘대체 이 인간은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오늘따라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무의식중에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선배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럼 내 쪽에서 찾으러 가볼까 라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종이 울림과 동시에 교수가 들어와 강의가 시작되었다.

‘선배가 지각이라니……, 드문 일이네.’

정말이지 뭐 하는 거냐고…….

장점이라곤 성실한 거랑 상냥한 거뿐이 없으면서…….

선배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의를 빠질 남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어쩌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어느 누구를 대하든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선배라면, 어쩌면 다른 사람의 트러블에 말려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안 좋은 걱정도 들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넉살 좋은 얼굴로 들어오겠지.

아니면 점심때쯤 부실에 가보면 다른 부원들과 어제 있었던 신혜민의 콘서트에 대해 열띤 감상회를 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응,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그것보다 지금 진짜 문제는 나였다.

그다지 관심도 없는 강의인데 선배와 같이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과목이란 이유만으로 신청했다.

학생으로선 어떨까 싶지만, 소녀에겐 인생을 걸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선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도 아니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큰일 났네, 이거…….

이때의 나는 왜 이렇게 생각했던 걸까? 어째서 이렇게나 안일했던 걸까?

아마 두려웠던 것일 거다.

확인하는 게 두려워서……, 믿고 싶은 거만 믿고 싶어서……,

만약, 만약에 내가 조금만 더 진지하게 선배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정말로 만약의 이야기지만…….

내가 조금만 더 빨리‘────의 마녀’에 대해 알아챘더라면…….

어쩌면 나와 선배에게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은의 후끈후끈한 치맛자락 아래로 강성우가 머리를 집어넣고 그녀의 속곳을 내리려는 참이던 레코딩 하우스의 거실.

남자의 허세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연이은 사정으로 강성우는 내심 무척이나 지친 상태였다.

피곤했다.

머리가 무거운 게 졸음이 쏟아져 당장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이럴 땐 자기도 나이를 먹었다는 걸 체감한다.

몇 년만 젊었어도 이 정도는 쌩쌩했겠지.

속으로 그렇게 자조하면서도……,

견딘다.

견뎌낸다.

아무튼 지금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눈앞에 있는 소녀는 어쩌면 파랑새일지도 몰랐다. 평생 두 번 다시 못 찾을 거라 체념했는데, 찾으려고 노력하면 의외로 또 찾아지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묶어둬선 안 되겠지,

뭐, 묶어둘 수도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말이다.

여자의 감만큼 예리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남자로서 일종의 예감이 있었다.

끝이 멀지 않았다는…….

아마 떠나가고 나면 그녀의 안에 자신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추억조차 되지 못하지만, 그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자신에게는 그편이 어울리기도 하고,

다만……,

그러니까……

적어도 같이 있는 동안은 최대한 기분 좋게 해주자.

그녀가 내게 그러듯이…….

치마 때문에 송나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후끈후끈한 열기와 연이은 사정의 피로가 겹쳐서일까.

눈앞에 있는 송나은의 몸 위로 과거 언제나 꿈에 그리던 첫사랑의 ’그녀‘가 겹쳐 보였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뭐, 상관없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여자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서 그는……, 송나은의 허벅지 안쪽의 은밀한 곳에 살며시 입술을 갖다 대고 천천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송나은의 몸이 과거 그에게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소중했던 ’그녀‘의 몸만큼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모든 애정을 담아 상냥하고 부드럽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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