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86화 (86/136)

〈 86화 〉 제85 화 THE MOON (3)

* * *

<천석들이 종을="" 보라!="" 큰="" 공이가="" 아니고는=""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남명(??) 조식(?)이 자신이 거처하던 산천재(山??)에 주련(?)으로 걸어놓은 글귀의 일부다.

그 말 그대로였다.

실로 거대한 범종을 울리려면 그에 걸맞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 없듯이, 소 잡는 데 닭 잡는 칼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신혜민 그녀는 그야말로 천석들이 종이었다. 아니, 그런 표현조차 그녀를 나타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그야말로 인신(人?).

어중간한 악의는 그녀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겠지.

아니, 애초에 닿는 것조차 불가능.

그전에 이쪽이 자기 자신의 악의에 스스로 목이 베일 터……

그래서 나는 찾기로 했다.

천석들이 종을 울릴 거대한 공이를.

빛의 신을 찔렀다는 나뭇가지를.

번거롭지만 몇 번의 보안장치를 걸쳐 심층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메일함을 연다. 까다로웠던 접속에 비해 나한테 온 메일은 단 하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미건조한 단 한 문장만이 적혀있었다.

<대상의 접촉을="" 확인.=""/>

후후……

후후후……

하지만 내게는 그거로 충분했다.

차고도 넘쳤다.

입 밖으로 절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내가 남몰래 보낸 선물은 잘 전달되었나 보다.

‘내가 쳐놓은 그물이 아무래도 훌륭하게 바람을 잡았나 보네.’

그물로 바람을 잡으려 한다는 말이 이렇게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는──, 운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은 들어가는 금액과 비교해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불확실한 천운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결코 신혜민에게 닿지 않았겠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한번이 안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눈먼 화살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쏘다 보면 언젠간 과녁에 맞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설마 단 한 번 만에 다시금 정현민에게 신혜민과의 극적인 만남을 안겨줄 수 있을 줄이야.

후후……,

이건 나 혼자만의 집념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겠지.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혜민을 향한 그의 마음은 간절했던 것 같다.

그의 간절함이 기적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긴 것이리라.

기적이나 행운이란 다름이 아니라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나는 거니까…….

후훗……!

그때, 그는 몰랐겠지.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아마도 평생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 비 오던 날……,

상처받아 울고 있던 소년이 처음으로 신혜민이란 존귀한 여자에게 닿아 치유 받았던 버스 안에는 나도 있었다는 걸.

뭐 그녀와 비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존재감이 빛을 잃고 마니까 어쩔 수 없다.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 역시 길어진다. 신혜민이라는 규격외의 밝음이 만들어내는 어둠은 그녀를 제외한 다른 모두를 덮어버린다.

배경으로조차 인식되지 못하고 아예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자연현상에 가까웠다.

그러니……, 그때 그는 신혜민과 단둘만 남은 세상에서 그녀에게 위로받았다고 느꼈을 테지.

그것은 그가 태어나 처음 겪는 강렬한 경험.

그의 몸과 영혼이 그 자리에서 신혜민에게 심취했다는 그의 눈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신혜민에게 구원받고 그녀 덕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재야에 묻혀있을 때, 그녀에게 영혼을 구함 받은 건 그가 최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날은 신혜민에게 아무것도 아닌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겠지만, 한 소년에게는 하나의 세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날이었다.

그날로부터 그는 자신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이 파괴되고, 단 한 여자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세상을 살아가게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날은 내게도 무척 인상 깊은 날이었다.

발견했으니까……,

찾아내고 말았으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의 본질은 나와 같았다.

그는 머지않아 나처럼 되리라.

그날 나는 그를 눈여겨보았다.

신혜민에게 심취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너무나 먼 존재였다.

방송이나 공연을 통해 얻어지는 한정된 만남을 제외하면, 그들에게 그녀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머나먼 저편, 결코 닿지 않는 신기루와 다를 바 없었다.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신혜민의 목숨이 저울에 올려졌을 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신혜민의 목숨을 선택할 사람은 거의 없다.

허나……, 정현민은 그럴 수 있는 남자였다.

신혜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전혀 보답 받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아 그녀가 절대 모르는 곳에서도 주저 없이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남자.

그렇기에 신혜민을 떨어뜨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그부터 떠올렸다.

그라면 분명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석들이 종을 뒤흔들 거대한 방망이가.

신을 찌른 나뭇가지가.

여신을 더럽히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이!!!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를 움직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말만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무척이나 평화로웠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대게의 경우 외부의 영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때가 오면, 저절로 움직이는 법…….

자신이 가야만 할 곳으로 알아서 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정현민은 신혜민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자였다. 어지간해서는 그가 신혜민을 더럽히도록 만들 수 없겠지.

그렇기에……,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단 하나.

그가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게 마음먹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가식과 위선의 구속복을 벗어 던지게 하는 수뿐이 없었다.

거기에 필요한 건 계기.

다시 한번 신혜민과의 극적인 만남. 그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 계기.

그녀가 그에게 결코 닿지않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손을 뻗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횟수는 상관없었다.

단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저 단 한 번 불씨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억눌러두었던 많은 것들이 활활 타오를 테니까.

그가 신혜민에게로 이어지는 하나의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나는 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아무리 거금을 들이더라도 무리한 지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됐다가는 그대로 모든 게 끝.

그래서 나는 분산하기로 했다. 한사람에게 과도한 명령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별거 아닌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그것은 거대한 점묘화를 그리는 것과 같았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점에 불과 하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아름다운 그림을 자아내듯이……

갑에게는 을에게 배치를 바꿔 달라고 요청할 것.

을에게는 그날 담배를 피우려거든 정해진 시간에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도 반드시 흡연실 내지는 건물 뒤쪽으로 가서 필 것.

A 구역을 먼저 순찰하고, B 구역을 순찰하는 병에게는 그날 하루만 순서를 바꿔서 돌 것.

정에게는 울고 있는 아이가 보이거든 반드시 성심성의껏 아이가 울지 않을 때까지 도와줄 것.

이처럼 그들이 받는 금액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지시들을 내렸다.

이것들이 노리는 건 그들에게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설마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나 하나쯤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까?

누구 하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를 비웠을 때 똑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동시에 그 자리를 뜨게 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어린 아이들은 최고였다. 어른처럼 큰 욕심도 없어서 그들이 바라는 극히 사소한 바람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울어달라는 내 부탁을 잘도 들어줬다.

게다가 효과도 좋은 게 아이의 눈물을 무시할 안내 요원은 없으니까 시선을 끄는데도 효율적이었다.

너무 남발하면 그건 그거대로 부자연스러운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일탈을 유도하여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지만, 신혜민이 거하는 복도를 텅 비웠다.

그리고 보는 눈이 아무도 없게 된 그 안에 정현민을 집어넣는 데까지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그와 그녀가 극적으로 만나는 건 그야말로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그녀의 대기실 문을 두드린다든가, 때마침 그녀가 나온다든가.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대기실에 언제나 혼자 있다는 건 알고 있기에……,

혼자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싱숭생숭해지도록 간신히 손을 써놓긴 했었다. 극히 미세하게나마 불쾌감을 심어줄 수 있는 저주파를 내뿜는 작은 기계를 안쪽에 몰래 숨겨놓은 선물이 그녀의 대기실에 놓여지도록 손을 써놨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 이후는 두 사람만의 영역이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한번 특별하게 신혜민을 만나고 싶다는 정현민의 간절한 바람이 인과를 뒤틀어놓길 기대하는 수밖에……,

뭐,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을 노리겠단 마음이었기에, 이번엔 과연 내가 어디까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는 거에 더 큰 방점을 찍긴 했었다.

그럼에도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었다.

‘후후……, 그럼 가장 큰 관문이었던 게 무난하게 해결되었으니 느긋하게 남은 보고서를 읽도록 할까.’

조금 식은 코코아를 한 모금 들이킨 뒤에 로그아웃한다.

그런 다음 곧바로 다른 계정으로 들어간다.

한사람에게 많은 것을 맡기면 분명 편하고 그만큼 비용도 절감되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내 약점을 잡히기 쉽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정현민과 신혜민의 만남을 연출했을 때처럼 여러 사람을 썼다.

그들이 내가 뭘 얻고자 하는지 알아챌 수 없도록 잡다한 명령들 속에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 하나를 섞어놓는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두번째 계정 역시 첫 번째 계정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메일만이 들어와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본문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지만, 메일의 용량은 그 수천 배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하다.

이번에 내가 지시한 것은 아무 때라도 상관없으니 하루 한두 시간 정도 무작위로 정현민을 포함해서 내가 지정한 사람들의 일상을 뭐든 좋으니까 찍어서 보내라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마지막으로 내가 그에게 직접 찾아가 쐐기를 박아넣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흠…….

코코아를 천천히 마시면서 더미로 지정한 사람들의 사진은 눈길도 주지 않고 표적으로 삼은 현민의 별거 아닌 일상이 찍혀있는 사진들을 쭉쭉 넘긴다.

……?!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장의 사진에서 손을 뚝 하고 멈추고 말았다.

이건……도대체……?

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

재빠르게……,

재빠르게 다른 사진들을 휙휙 넘기며 방금 내가 본 것이 내 착각이었는지 확인한다.

정말이지……, 언제나 나쁜 예감은 빗나가질 않아.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생긴 것 같다.

……

‘이것만큼은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다른 사람에겐 맡길 수 없다.

하아……

생각지도 못한 거에 허를 찔려 정신적으로 조금 지친 나는 소파 위에 두 팔을 크게 걸치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그러자 어느새 의식에서 사라졌던 환한 달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유독 달이 밝았지.

달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래를 암시하는 점에서는……, 기만과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어있는 적을 나타낸다.

‘숨은 적이라…….’

‘오늘따라 유독 달이 눈에 밟힌 건 이걸 암시하는 거였나…….’

하지만……!

후후……, 아직 운은 내 편일지도.

이걸 지금이라도 내가 알아챘다는 건……, 내게도 방법이 있다는 거지.

써먹기에 따라서는 그 무엇보다도 나한테 유용한 장기 말이 될 것이다.

남아있는 잔을 깨끗하게 비운다.

그다음 나는 내려올 때와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2층에 있는 내방으로 올라갔다.

신경을 다른 곳에 쓰는 사이 하반신 안쪽의 쓰라림도 가라앉았나 보다.

방에 들어선 나는 여전히 알몸인 채로 다시금 사장이 누워있는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사장의 옆에 누워 조금 전 내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일어난 사장이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더니 조금 날 걱정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를 옆에 두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내게 질투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잠 못자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날 걱정하는 걸까.

뭐가 됐든 내 피부와 맞닿아있는 그의 체온만큼이나 마음이 따스해진 나는 그에게 웃으면서 답한 뒤 그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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