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85화 (85/136)

〈 85화 〉 제84 화 THE MOON (2)

* * *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사장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은 뒤, 사장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에 나온 후 제일 먼저 불을 켜려고 하다가 그만둔다.

이미 복도는 달빛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창문을 연다.

한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내 귓가를 간질였다. 열린 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환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불길한 빛을 띠고 있는 보름달이……

나는 그 몽환적인 빛에 취해 한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달빛이라……, 나쁘지 않네.’

이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굉장히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언제나 땅만 보고 다녔으니까.

이것도……, 사장에게 안기면서 여자로서 갈고 닦이면서 얻게 된 부산물일까.

‘너무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게 지금의 내겐 이 정도가 딱 적당할지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얼굴을 간지럽힌다.

여기서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까지고 계속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건 그거대로 나름의 맛이 있긴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다.

‘후우……, 우선은 일단 가볍게 샤워부터 할까……….’

방해가 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한 걸음 한걸음 아래층으로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그렇게 조심스레 움직이는 데에는 단순히 녹초가 되어 편히 자고 있는 사장을 내 발소리 때문에 깨우고 싶지 않은 이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움직일 때마다 하반신 안쪽이 쓰라렸기 때문이다.

……

‘처녀도 아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실신 직전까지 사장에게 격렬하게 안기던 순간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읏……!

어쩌다 이렇게 젖기 쉬운 몸이 된 걸까…….

굳이 고개를 내려서 자신의 몸을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유두가 슬그머니 융기하여 딱딱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반신도 촉촉하게 젖어 든다.

정말이지……,

만약 평소처럼 콘돔을 다 쓴 후 사장의 씨를 있는 그대로 몸 안에 받아들였으면 지금쯤 발걸음마다 바닥에 정액을 뚝뚝 흘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점차 몸에 열기가 감돌았다.

아직 온종일 안겼던 여운이 가시지 않았나 보다. 조그만 자극에도 쉽사리 몸이 달아오른다.

‘하아……, 욕조에 몸이라도 좀 담그고 있으면 나아지려나…….’

나는 속으로 자책 섞인 한숨을 내쉬면서 1층에 도착한 후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싫어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알몸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오늘 얼마나 격렬한 정사를 치렀는지를 나타내주는 상스러운 흔적들이 몸 곳곳에 가득 남아있었다.

걔 중에서도 허벅지 안쪽에 특히나 눈에 띄게 남아있는 큼지막한 키스 마크에 손을 가져다 댄다.

거울을 보며 허벅지 안쪽에 남자가 새겨놓은 낙인을 매만지며 생각한다.

‘음란한 몸…….’

‘내 몸이 이렇게나 저속했었던가……?’

아니, 사장의 손에 의해 이렇게 바뀐 거겠지.

……그것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록 내 몸은 저속하게 변했지만, 정말로 소중한 마음은 변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으니까……….

또 이런 몸이라면 분명 서준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남자는 자신의 몸으로 함락시킬 수 있다는 그러한 여자로서의 자신감마저 고개를 슬그머니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나는 이대로 나아가도 괜찮은 걸까…….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다.

서준의 얼굴을 떠올린다.

……

분명 있는 그대로의 나도 받아줄 남자다.

하지만……, 오늘 낮에 있었던 은숙과의 일을 떠올린다.

그다지 재밌는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름 도움이 되는 만남이긴 했다.

써먹을 수 있는 건 써먹어야겠지.

그렇다면……, 으음 역시 조금 돌아갈 필요가 있을지도…….

‘하아……, 그럴 경우엔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일이겠네.’

사장에게 소개해달라고 할까.

아마도 이게 정답이겠지만.……, 으음……, 이 문제를 그에게 기대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분명 사장에게 부탁하면 흔쾌히 들어줄 거 같긴 한데……,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닐 테지.

서준을 위해 내 몸에 새겨진 그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없애는 거니까.

단 하나의 염원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용하겠노라 마음먹었건만──, 나도 아직 무른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사장이 그만큼 내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됐다는 걸까.

단순히 먹다 뱉지는 못할 정도로…….

‘아아……, 머리 아프다.’

이 이상 생각하는 건 몸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몰려온다. 마침 욕조에 물도 다 받아졌길래 사고를 멈추고 욕조 안에 들어간다.

등을 푹 기댄 채 한동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더니 몸도 마음도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여유를 되찾았달까…….

이건 지금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니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봐도 되겠지.

물론, 기한은 정해져 있다만.

지금 정말로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타협하는 수밖에.

‘그래……, 천석들이 종을 뒤흔들 거대한 나무를 깎는 것이야말로 지금 내게 가장 급한 일이니까.’

기세 좋게 욕조에서 일어나 비누칠을 한 다음 물을 끼얹는다. 그렇게 가볍게 샤워를 끝마친 나는 마른 수건으로 대충 몸에 묻어있는 물기를 닦아낸 다음 알몸 그대로 욕실 밖으로 나왔다.

‘뭐라도 마실까…….’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둔 현관으로 향하기 전에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열자 캔맥주, 콜라, 우유, 그 외에도 몇 종류의 음료가 더 있었다.

목욕한 후에 마시는 시원한 음료도 끝내주지만……,

신중히 생각할 게 많은 밤이다.

아무래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따스한 게 좋겠지.

그렇다면 역시 커피가 무난하려나…….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선반을 열며 따로 괜찮은 차가 없나 이모저모 살펴본다.

무척이나 향이 좋은 다양한 차가 구비 되어 있었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건 보이지 않았다.

‘흐음……, 어쩔 수 없나.’

내가 단념하고 대충 아무거나 골라 마시려던 차였다. 선반 안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코코아였다.

‘코코아라니…….’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장의 이미지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짜를 살펴보니 비교적 최근에 준비해둔 거였다.

……

그렇다면 혹시 이건 사장이 날 위해서 준비해둔 걸까…….

한순간 ‘나 혹시 자의식 과잉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몹시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 내겐 이 코코아밖에 없다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와 작은 냄비에 두 컵 정도 따른 다음 불에 데운다.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다른 선반에서 설탕을 찾아 냄비에 코코아와 설탕을 각각 한 숟갈 정도 넣고 잘 저었다.

얼마 안 있어 완성된 핫초코를 커다란 머그컵에 가득 부은 뒤 한 모금 마시며 거실로 돌아왔다.

고작 단 한 모금뿐이었건만,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내 안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거실에 들어선 나는 머그잔을 한 손에 든 채로 다소 느긋해진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벗어던진 옷더미에서 핸드폰을 찾아 집어 든 뒤에 거실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대면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후룩…….

코코아를 한 모금 깊게 머금은 뒤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조작하여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숨겨진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브라우저가 아니라 조금 특수한 브라우저가 들어있었다.

빛이 일절 닿지 않는 심층으로 향하는 문이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기에 은막 뒤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온갖 악의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곳.

내가 몸을 대가로 사장에게 받은 검은돈으로 거금을 들여 제일 먼저 구매한 게 이곳으로 통하는 열쇠였다.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너무나도 저속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여 시선을 사로잡는 온갖 추잡한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거액을 내고 이곳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저런 자료들을 접하기 위한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는 일절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내 관심사는 그런 게 아니니까.

내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여신의 눈을 피해 빛의 신을 찔러 죽인 나뭇가지(미스틸테인)를 손에 넣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어디……

그럼……

확인해보자.

내가 쳐놓은 그물이 과연 바람을 잡았는지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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