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제77 화 은(?)의 눈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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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숙은 만에 하나라도 그에게 거부당할까 봐 조심조심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성우가 그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용감하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겁많은 가녀린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성우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은숙은 그 상태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운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뿐인 이야기.
당연히 그녀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의 성우를 향한 굶주림은 그 정도로 만족할 만큼 무르지 않았다.
실상을 살펴보면 지금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성우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척이나 치열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은 호흡이었다.
처음에는 대략 30초에 한 번꼴로 성우가 숨을 쉴 때 자신도 쉬며 자신의 호흡을 성우의 호흡에 정확하게 일치시켰다.
그리고 그 간격을 결코 조바심내는 일 없이 차근차근 줄여나갔다. 그리고 그 차이가 대략 10초 안까지 좁혀졌을 때 성우에게 더욱 집중하며 다음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초점을 맞춘 것은 그의 눈이었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는 위험을 인식조차 못 하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또다시 천천히 그의 눈동자가 오른쪽을 향하면 마찬가지로 오른쪽을 향하고 눈을 깜빡이면 나도 깜빡이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서로의 싱크를 맞춰나간다.
숨을 쉰다든가 눈을 깜빡인다든가 하는 이런 일상 속의 미세한 행동들은 크게 티가 나지 않아서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한다고 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이 모든 정보를 확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새겨지는 것이다.
의식의 저편에서는 확실하게 서로가 보이지 않는 유대로 연결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략 나와 그의 어긋남이 3초 간격까지 줄어들었을 때였다.
미묘하게 줄곧 어긋나있던 분침과 초침이 어느 순간 딱 들어맞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그가 무의식중에 나한테 맞추게 되었다.
사람의 근육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내 손발처럼 언제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의근(???)과 내장기관처럼 우리 뇌의 통제를 받지 않고 무의식의 영역인 자율신경에 지배받는 불수의근(???)이 그것들이다.
지금 내가 행한 일련의 행동들은 그의 그러한 불수의근(???)에 심리적인 실을 연결해 그와 나를 동기화시키는 거였다.
이것은……, 그렇게 거창한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사소한 정도는 가능하게 해줬다.
지금까지 줄곧 그에게 맞춰서 행동하던 내가 불현듯 내 앞에 있는 잔을 만지작거린다. 그러자 그 역시 반사적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나와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여자와 여자의 싸움이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목줄을 채우는 것이라면, 여자가 남자를 함락시키는 방법은 남자에게 보이지 않는 실을 걸어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데에 있었다.
꼭두각시 인형사과 그가 조종하는 인형처럼…….
실로 사소한──, 마인드 컨트롤 중에서도 가장 볼품없는 기초적인 세뇌 중에 하나지만, 그만큼 사전에 특별한 준비가 필요치 않기에 실전에서 쓰기에는 가장 유효한 전법이었다.
특히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이런 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내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그를 유혹하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즉, 패를 전부 열고 포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실제로 그는 나은이 취한 이후 의식적으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진심을 부딪치기 전에 우선 그의 경계심을 풀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지금 이 한 수를 위해서───.
그의 의식에 파고들지 못했기에, 무의식에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튼튼하단 것도 조금 전 확인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차례였다.
살며시 잔을 들어 입에 대고 혀끝으로 살짝 핥듯이 한 모금을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그걸 시작으로 한 모금 두 모금 계속해서 입안으로 야금야금 흘려넘긴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그였지만, 나와 동기화된 그의 무의식이 균형이 깨지는 걸 꺼려 하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한 모금 두 모금 야금야금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리 쎈 술이어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는 판단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허점이란 그런 사소한 방심에서부터 탄생한다.
한 모금 두 모금도 서로 말없이 반복하며 야금야금 들이키는 사이 어느새 우리가 마신 총 용량은 한잔 두잔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기분 좋은 술기운이 전신에 돌기 시작할 때였다.
두 사람의 얼굴에 미열이 감돌아 옅은 붉은 빛을 띤다.
이쯤 되면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나는 천천히 그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녀’와는 어쩌다가 헤어지게 된 거야?”
“글쎄…….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하게 그저 내가 그녀와 인연인 아니었던 것 같군.”
“아니야!”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대체 ‘그녀’를 응원해서 어쩌자는 걸까.
“하지만……, 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은 너무도 잘 어울렸는걸.”
내 말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제 와선 의미 없겠지.”
“거짓말……,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러면서 축 처져있는 나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런 것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위로받을 정도로…….”
“하지만……, 저건 과거의 네가 아니야.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어. 무엇보다도 저건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밖에 못 하는걸.”
나은을 향한 은숙의 신랄한 말에 성우는 잠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렇다면 자신은 어땠는지를 잠시 돌이켜 보았다.
그러자──, 자기 역시 딱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줬던 기억은 없었던 거 같았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구태여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더 피곤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 말 하고 있지 않자 은숙은 그가 그녀의 말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동조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자신감을 가졌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어프로치를 했다.
그의 손등 위로 그녀의 손을 포개며 그에게 말했다.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저건 결코 네게 될 수 없어. 잠시 머물다가 떠날 새야. 네게 상처만을 남기고서──.”
“딱히 그녀를 계속 내 곁에 붙잡아 두고픈 마음도 없다만…….”
“거짓말!!!!!!!!!!!!!!”
“정말로 자신할 수 있겠어? 그녀를 곁에 두고 기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
곧바로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딱 잘라 단언하기엔……,
묘하게나마 걸리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달라. 여자는 마음이 없는 남자에게도 얼마든지 계속 안길 수 있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마음이 없으면 계속해서 안지 못해.”
“그럴지도…….”
화류계에 몸담아온 그녀가 하는 말이니만큼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절대적인 설득력을 가졌다.
은숙이 갑자기 자신의 잔에 병 안에 남아있는 와인을 한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맥주 마시듯이 단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그녀가 맨정신이 아니라는 걸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몸을 살짝 비틀거리며 말했다.
“저기──, 나로는 안될까?”
“취했군.”
취했음에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한없이 올곧은 시선에 성우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려고 하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은 뒤 자신을 향하게 하며 말했다.
“아니야! 취하지 않았어. 그러니 내 진심을 부디………, 똑바로 봐 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시에 스르륵 그녀가 입고 있던 검붉은 드레스가 풀썩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가지런히 정리된 음모가 훤히 비칠 정도로 얇디얇은 속옷 한 장만을 걸친 그녀는 이윽고 그녀의 단호한 결의를 드러내듯이 이번에는 단번에 마저 입고 있던 속옷까지 벗어 던져 버렸다.
아름다운 나신이 성우의 앞에 훤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성우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의 가슴팍에 자신의 가슴이 찌부러질 정도로 밀어붙이고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호소했다.
“나한테 무슨 짓이든 해도 좋아.”
“암퇘지처럼 취급하며 그 어떤 요구를 해도 전부 기쁘게 받아들이고, 암캐가 되라면 암캐가 되어 무엇을 시키든지 할게.”
“그러니……그러니까……제발 내 곁에 있어 주세요.”
“제가 당신 곁에 있는 걸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은숙이 성우에게 입맞춤하려고 할 때였다.
그녀의 눈앞으로 불쑥 새하얀 손이 튀어나오며 그녀와 성우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남자의 손이 아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조금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나은이 있었다.
“방해하지 마.”
은숙이 나은을 노려보며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나은은 그녀의 적의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내더니, 은숙에게서 성우를 떼어낸 다음 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은숙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잘도 여기까지 저질러 주었네. 괘씸하지만, 먼저 감사해둘게.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우린 이만 실례할게. 유감이지만, 이 남자는 내 거라서.”
그렇게 다소 강압적으로 나은은 성우의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섰다.
그들의 뒤로 은숙이 성우를 향해 외쳤다.
“꼭,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나, 언제까지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여자의 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는 언제든지 내게 와줘.”
어떻게 보면 여자로서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비굴하게까지 남자에게 매달리는 은숙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은은 무척이나 냉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당신 차례는 오지 않아.”
…
나은이 은숙이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던 건, 단순히 그녀의 덫에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가만히 그녀가 멋대로 행동하게 놔뒀던 건……그럴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녀가 내 목에 채운 최후의 보이지 않는 목줄.
그건 그녀가 필사적으로, 그리고 신랄하게 사장에게 나에 대해 쏘아내는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
그녀가 하는 말은 옳았다.
근본적으로 나와 사장은 서로 이용하는 관계.
나는 사장의 모습 위에 서준을 겹쳐보고 있었다.
하지만……, 은숙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사장에게 안기려 했을 때,
사장의 모습 위에 겹쳐있던 서준의 얼굴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
은(?)의 눈물
나는 이제 은숙 그녀의 가게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건 그녀의 눈물.
언제까지나 울면서 사장 한 남자만을 그리워하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
그녀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지만, 속으로는 사장 한 남자만을 기다리며 울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사장을 양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사장을 독점하고 싶다는 마음.
…
나와 사장은 어느새 레코딩 하우스로 돌아와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나는 사장이 구두를 벗기도 전에 그의 몸을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벨트를 풀어 그의 물건을 빼내고 그의 물건을 원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그의 물건을 입에 머금고 격렬하게 빨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남자를 어느 여자에게도 넘겨주지 않고 나만이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오직……, 오직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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