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76화 (76/136)

〈 76화 〉 제75 화 은(?)의 눈물 (6)

* * *

여자의 싸움이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보이지 않는 목줄을 채우는 것이다.

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름 아이돌 나부랭이라 직업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목이나 몸 관리 차원에서 스스로 멀리하는 것도 분명 이유이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내가 술을 꺼리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다.

단순하게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처음 맥주를 마셔봤을 때는 말 오줌 같은 맛이 났다고 느꼈고, 소주에서는 개 냄새가 난다는 게 내 솔직한 인상이었다.

하다못해 술자리 특유의 들뜨고 밝은 분위기라도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는지 또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건지, 아니면 이렇게 자라난 건지 근본적으로 양지와 음지 둘 중에 하날 고르라고 한다면 뼛속까지 음지에 속한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참견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내게 참견하는 것도 싫다.’

…단순히 그런 차원을 넘어서 그냥 사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혼자만 겉돌지만, 그거에 불편함 따위 느끼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나다 보니 혼자 술을 즐기는 일도, 그런 모임에 참석할 기회도 없는지라 자연스레 내가 마실만 한 음료라고 해봤자 콜라나 사이다 정도 수준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탄산이 목에 상당히 자극적이라 결국 내가 즐겨 마시는 음료는 석류나, 블루베리 같은 과일을 중심으로 하는 음료였다.

특히 최근에 빠진 건 달짝지근한 칼라만시.

그러나……

지금 내가 마신 이 와인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술에 대한 인식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한순간 세계가 확장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우선은 달콤했다. 내가 지금까지 마셔봤던 그 어떤 과일음료보다도 달았다.

하지만──, 대게 당도가 높은 과일음료들은 마시다 보면 좀 입안이 텁텁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오히려 탄산수보다도 더 탄산수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밀폐된 실내건만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는 목구멍을 넘어가 기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간 이후에 있었다. 아랫배에서부터 몸 전체로 은은한 따스함이 퍼져나간다.

나는 이 감각을 알고 있다.

그건……

그래………, 흡사 남자의 품에 꽉 안겨 그의 씨를 내 몸 안에 받아들일 때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머리보다도 몸이 먼저 사장에게 격렬하게 안겼던 날들을 떠올리곤 반응한다.

하아……

하아……

응…

감각이 몸으로부터 격리된다. 내 몸은 지금 실제로는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지난날 밤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서 사장에게 격렬하게 안기고 있었다.

잊으려고 해도 쉬이 잊혀지지 않도록 몸 구석구석에 각인된 쾌감이 되살아난다.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하반신 안쪽이 근질거렸다.

당장이라도 손가락을 팬티 아래에 집어넣고 추잡하게 찌걱찌걱 문지르고 싶은 걸 가까스로 견뎌낸 게 내가 지금 상황에서 간신히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었다.

하지만…그런 내 헛된 저항도 거기까지였다.

“후후……, 내가 준 선물은 다행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은숙이 이성을 유혹할 때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속삭였다.

플래시가 터지며 한순간 눈앞에서 번쩍이는 섬광을 계기로 최면에 빠져든 것처럼 나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녀에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다시금 내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사장에게서 떨어져서 앉은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을 향한 내 견제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노리고 있던 건 바로 나.

사장에게 계속 끈덕지게 붙어있을 거라 여겼던 은숙이 그에게서 거리를 두고 앉았던 이유는……, 지금 그녀가 앉아있는 저 위치가 실로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사장에게 적절히 거리를 둬서 내 주의를 그녀로부터 조금 돌리면서도 무엇보다도 내게 이렇게 친근하게 계속 술을 따를 수 있는 자리였다.

‘장수를 쏘려거든 타고 있는 말을 먼저 쏘라고 했던가…….’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만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은숙의 의도를 파악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냉정하게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기엔 너무 기분 좋았으니까……….

‘후후……, 귀여워라……. 이제야 좀 그 나이대에 맞는 얼굴을 하게 됐구나.’

고분고분하게 자신이 채워주는 술을 말없이 비우는 나은을 보며 은숙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그녀가 본 그림대로 흘러가서 그녀는 지금 속으로 무척 흡족한 기분이었다.

나은이 유흥에 면역이 없다는 것 정도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간파할 수 있었다.

나은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남자 앞에서만 청순을 떨고 뒤에서는 술 담배를 즐겨서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경우였다.

그녀에겐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없지만……어쨌든 그녀는 그야말로 유흥에 한해서는 정말로 청순해서 술 담배를 일절 안 하다시피 하니까 살면서 피부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민얼굴에 가까운 저 한 듯 안 한듯한 화장은 그런 평소 그녀의 삶이 결정화되어 드러난 것이었다.

여기까지 간파한 순간 그 뒤의 설계는 무척이나 쉬웠다.

나은과 같은 여자들은 대개 술자리서 술의 종류에 따라 마시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약한 술은 흘려넘기듯이 마시고 강한 술은 핥듯이 마신다.

특히 혹시나 취해서 추태를 부릴 것을 염려해서 가급적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쎈 술을 애초에 기피 하거나 마시게 될 땐 절대 단번에 들이키지 않고 찬물을 끊임없이 마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핵심인데 이러한 여자들이 약한 술과 독한 술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하게 맛이라는 점이다.

달면 과일주처럼 도수가 낮다고 판단하고 조금이라도 쓰면 소주처럼 독하다고 생각해서 잔뜩 경계하곤 조심스레 들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닳고 닳은 헤픈 여자보다도 저런 여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게 더 까다로울 때도 있다.

그야말로 철벽을 치는 거니까…….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면 거기에 함정을 파면 된다. 세상에는 예외라는 게 있어서 손쉽게 가능했다.

와인이 그중 하나였다.

와인은 도수가 높을수록 맛과 향이 달콤해지고 깊어지는 풍취가 가득한 술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꺼내온 건 그중에서도 브랜디를 섞어서 한층 더 도수를 높인 주정 강화 와인이었다.

그 도수는 무려 20도에 육박한다.

면역이 없는 여자가 약한 술인 줄 알고 단번에 마시면 한 번에 자빠지기 딱 좋은 와인이었다.

와인 자체가 일상에 녹아있는 나라라면 모를까……상당히 접하기 어려운 환경인 우리나라에서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와인이었다.

왜냐하면……, 와인이란 다른 술과 다르게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음미하기 위해서 마시는 거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 전 성우가 그랬던 것처럼 지식으로는 진즉 알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접하고 나서도 따로 말해주지 않으면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후후……

내가 굳이 성우와 ‘그녀’가 결혼할 날에 그 둘을 기념하기 위해 이렇게 독한 와인을 준비했던 이유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두 사람의 결혼을 맨정신으론 축하하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독하디 독한 술기운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좋아하는 두 사람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하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못남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어쩌면 두 사람 앞에 일평생 나서서 축하하는 일조차 없이 식장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컸다. 나라면 아마 어두운 곳에서 처량하게 혼자서 질펀하게 취한 채로 그날을 넘기고 있을 가능성이 더욱 컸다.

뭐……,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겠지.

어쨌든 자신의 안배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된 점에 지금은 감사하자.

송나은을 바라본다. 그녀는 얼굴에 미열을 띄운 채 몽롱한 눈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일체개고(一??)라는 말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一)이 괴로움(?)이라는 저 말을 두고 종교계에서는 심도 깊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화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저 의미가 무척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인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다.

팔다리 한번 움직일 때조차도 관절과 관절이 마찰을 일으키며 삐걱거리고, 애초에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 자체를 지탱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이런 미세한 고통은 우리 뇌가 무시한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고통이 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술에 취하면 이처럼 알게 모르게 존재해왔던 고통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그야말로 몸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감각.

극상의 황홀경에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익숙해지고 난 다음이면 모를까 지금의 나은처럼 급작스럽게 당하고 나면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겠지.

‘후후후……!’

‘후후후후…………!’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드디어……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꼬맹이를 치웠다.

이로써 약간의 시간을 확보했다.

물론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 하나를 함락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은의 잔을 가득 채운 뒤에 서서히 성우에게로 자신의 몸을 가져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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