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제71 화 은(?)의 눈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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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실내에는──, 하나의 관능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몸의 남녀가 서로의 살과 살을 맞대며 질척하게 몸을 섞고 있는 적나라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끈적끈적하고 낮은 음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음악 그 자체만 따로 떼어놓고 평가하면 평범했다. 지극히 평범했다. 그저 아무런 개성 없는 잔잔한 배경음에 불과했다. 특별히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배경음 본연의 역할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한 음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범상치 않은 교태를 두르고 있는 여인에게서 나오는 향기가 그처럼 평범한 음악마저 그 어떤 정열적이고 음란한 탱고 못지않게 섹시한 음악으로 바꿔버리고 있었다.
무르익은 여인만이 낼 수 있는 그 농밀한 분위기의 중심에는 은숙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마음속에 한 남자를 품은 여인은 그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이다.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남자를 앞에 두고 자연스레 그녀의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는 그윽한 향기가 실내를 잠식해 간다.
그녀가 사장을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만 서면 언제나 소녀로 돌아가고 마는 여자의 애틋함이, 사장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은 뒤에 그의 몸을 천천히 쓰는 나긋나긋한 손길이………,
그러한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녀의 미망인 못지않은 처연한 섹기를 돋보이게 했다.
그녀가 지금부터 무엇을 하고자 하려는지 나는 그 답을 잘 알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나와 사장이 오랜 시간에 걸쳐 간신히 만든 유대였고, 최종적으로는 내가 서준과 함께 만들고 싶은 둘만의 이상향이었으니까.
고립된 세계.
타인의 간섭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 두 사람만의 닫힌 세계. 세상과 단절하고 그 안에서 남녀가 몸과 마음을 섞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일이란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녀는 지금 짧은 시간에 의도적으로 분위기만이라도 그것과 엇비슷하게 맞추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가 개입하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놔두면 얼마 안 있어 사장과 키스를 하고 그 뒤 서로 몸을 포갤 것이라는 게 너무도 자명해 보였다.
‘하아……, 정말이지 사람을 앞에 두고 잘도 저질러 주는군.’
…그만큼 그녀도 필사적이란 거겠지.
그 마음은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안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 뿐…….
하지만 결국 그러한 인내도 잠시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역시 그렇게까지 성격 좋은 여자는 아니었나 보다.
‘뭐, 그런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쪽 다리를 탁자 위에 걸쳐 허벅지 안쪽이 보일 듯 말 듯 요염한 자세로 앉아있던 그녀가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띤다. 그리고는 사장의 목에 천천히 팔을 두르며 미끄러지듯이 사장 곁으로 자연스레 앉으려 할 때였다.
나는 말한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먼저 초대해놓고서는 손님에게 마실 것 하나 내오지 않다니 경우가 없네.”
그녀의 향기가 지배하고 있는 공간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커다란 돌을 던진다.
계속 날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고 사장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날 노려본다.
그 시선에는──, 나를 향한 원망과 아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모처럼 좋은 흐름으로 이어질 참이었는데, 내가 칼같이 끊어버려서 원망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사장 앞이라고 자제하는 걸까.
그녀는 내숭을 떨며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직접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이지 날 보는 그녀의 시선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라고.
나야말로 불청객이라고.
‘어른들끼리 긴밀하게 나눌 얘기가 있으니까 어린애는 먼저 돌아가는 게 어때?’
‘훗, 누구 좋으라고. 유감이지만 나는 남 좋은 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정말이지 삐뚤어진 꼬맹이네.’
‘남이사.’
다시 한번 그녀가 얄밉다는 듯이 날 노려보았다. 나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쪽이야말로 방해라며 답했다.
한동안 서로를 지그시 노려보길 잠시──,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나를 보며 살갑게 웃더니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사장을 향해 말했다.
“어머, 나도 참. 정말이지 어떻게 됐었나 봐. 재회가 너무 기쁜 나머지 확실히 나답지 않았네. 맞아……, 확실히 이런 기념비적인 만남에 술이 빠지면 허전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말을 끊었다. 그다음 사장에게 몸을 숙이며 그 풍만한 가슴을 사장에게 과시한다. 동시에 요염한 손짓으로 자신의 머리카락 한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덧붙였다.
“혹시 성우는 특별히 좋아하는 거 있어?”
은근슬쩍 친근하게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사장의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정말이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 신경을 긁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다.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의 가슴골이 훤히 보이도록 하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데 기분 나빠할 남자는 없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면 더욱──.
사장도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너무 세지 않은 거로 부탁하지.”
정말이지 사장의 발을 밟거나 옆구리를 세게 꼬집어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느라 고생했다.
“후후, 뭐랄까……그런 점은 변하지 않았네.”
“응, 맡겨 둬.”
게다가 그녀는 그녀대로 또 사장에게서 그녀만이 알고 있는 그리운 모습을 발견했나 보다. 혼자 무언가를 납득한듯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사장에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장의 모습을 알고 있다고 내게 과시하는 것만 같아 이 또한 탐탁지 않게 느껴져 내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질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쪽은 주스면 되려나?”
!!!
‘이……여자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정말이지 성격 한번 고약한 여자다. 지금 이 여자는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네게 너무 이르지 않아?’
즉, 또다시 노골적으로 나를 어린애 취급했다.
그 말이 시사하는 진정한 의미는 나는 사장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후우, 싸구려 도발이란 걸 알고 있지만, 어쨌든 저쪽에서 걸어온 싸움이다.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같은 거로.”
“괜찮겠어?”
어조만 보면 정말로 날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누가 봐도 비아냥거리는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냐.”
“흐음……정말이지 귀엽지 않다니까.”
그녀는 그렇게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한다.
저 여자가 저렇게 순순히 물러나는 거에 약간의 꺼림칙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때의 나는 몰랐다.
여기까지 이어진 일련의 대화가 내가 이렇게 나오리란 걸 정확하게 읽은 그녀가 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설계였다는 걸,
하지만──,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
그녀 또한 읽지 못했다.
설마 그녀가 판 구멍에 내가 아니라 그녀가 빠질 것이란 것을……….
“언짢아 보이는군.”
그녀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사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에 오고 나서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려 나는 사장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그 시간은 비록 무척이나 짧았건만, 나는 지금 사장과 상당히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장님은 저한테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저 여자 가슴이나 보세요.”
그래서였을까.
문득 내가 그렇게 느낀 원인이 사장이 내게 신경을 쓰지 않고 그녀에게만 집중해서였음을 깨달아서 자연 내 입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나…나는 딱히…그런…….”
그런 내 말에 사장이 기대 이상으로 동요한다. 내 별거 아닌 한마디에 사장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맺힌 정체 모를 응어리 같은 게 사르륵 녹는 기분이었다.
기분은 진즉 풀렸지만, 사장의 그런 모습이 어쩐지 귀엽고 더 보고 싶어서 나는 계속 사장에게 핀잔을 주기로 했다.
“남자는 다 똑같아……, 그저 가슴만 큰 여자만 눈앞에 있으면 헬렐레…….”
“……”
사장이 내게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말을 삼켰다.
나는 그런 사장을 향해 혀를 살짝 내밀었다.
나와 사장이 그렇게 티격태격하길 잠시──,
그녀가 쟁반 위에 와인과 글라스 3개를 담아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는지라 어떤 종류의 술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술에 관해 무지한 나라도 굉장히 값이 나가는 고급품이란 건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풍취가 느껴지는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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