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71화 (71/136)

〈 71화 〉 제70 화 은(?)의 눈물 (1)

* * *

‘젖내나는 재수 없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나를 앞에 두고 사장에게 묘하게 치근덕거리며 내 신경을 박박 긁고 있는 은숙이라는 여인이 그런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날 노려봤다.

그녀는 그러면서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사장의 팔꿈치에 꾸욱 누르며 내게 자신의 농밀한 매력을 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범한 여자였다면 같은 여자임에도 기가 죽을 만큼 색정적인 모습이었다. 확실히 나이를 허깨비로 먹은 건 아니었나 보다.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두르고 있는 색향은 남자뿐 아니라 같은 여자마저 지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바닥을 기어 다니는 볼품없는 존재.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신혜민을 줄곧 목표로 해온 내 눈에 위협적이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뜬 후 그녀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나는 나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욕망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가 요염하고 농밀한 향기를 뿌리더라도, 침대 위에서 남자가 원하는 모든 욕망을 전부 받아들여 준다 해도 나이에는 이길 수 없었다.

다른 남자의 손을 하나라도 덜 거친 어린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취향에 맞게 개발하고 싶다는 수컷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지배욕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불쌍하다는 듯이 회답했다.

‘상장폐지가 코앞인 잡주 주제에 욕심이 과하네. 설마 아직까지도 당신한테 물릴 호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거야?’

‘후후훗’

‘아하하’

이런 식으로 나와 그녀는 사장을 사이에 두고 화기애애하게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며 그녀의 가게에 도착했다.

“다 왔어, 여기야. 잠시만 기다려줘.”

그녀는……사장에게서 떨어지는지 어지간히도 내키지 않았나 보다. 무척이나 아쉬움이 그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사장의 팔에 끼고 있던 자신의 팔을 풀었다.

열쇠를 꺼내 잠겨있는 문을 연다.

문 위에 있는 간판에는 ‘은(?)의 눈물’이라고 적혀있었다. 고급 창부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인상이 인상인지라 그녀가 운영하는 바라고 하길래 어디까지나 좋게 돌려 말한 거일 뿐 분홍빛이 감도는 업소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일단 겉만 봐서는 무척이나 깔끔해 보이는 게 그녀가 한 말 액면 그대로 생각보다 제대로 된 바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부도 밖에서 처음 보고 자연스레 떠올린 인상과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나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봤다.

전체적으로 무척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세심하게 신경 쓴 게 잘 전해졌다. 의자들도 하나하나가 의자라기보다는 푹신한 소파를 떠올리게 하는 것부터 노란색 계열의 부드러운 조명까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 게 아니라 이곳의 주인이 직접 하나하나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이건……, 바 라기보다는 오히려 카페에 가깝군.’

인테리어란 의도했든 의도치 않든 간에 사람의 내면을 대변하는 법이었다. 취향에는 개성이 묻어난다. 개성이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고 은은히 드러나게 되는 자신의 본모습이었다.

‘과연……, 사람이란 겉모습만으론 판단할 수 없다는 걸까.’

저렇게나 색기를 흘리고 다니며 남자를 먹잇감으로만 여길 것 같은 여자도 마음속에 따스함을 품고 있다는 걸까…….

‘하긴──, 그녀가 사장을 바라보던 그윽한 눈을 떠올려본다면야…….’

완전히 틀린 얘기도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녀를 다른 시선으로 다시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내게 한 방 먹였다는 듯이 조금 자랑스러워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후후……, 의외라는 얼굴이네? 하지만 뭐, 그것도 당연해. 여긴 원래 카페였거든.”

그리고는 조금 그리운 얼굴로 덧붙였다.

“그래, 예전에는 성우도 자주 왔었지…….”

그녀가 마지막에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다. 지금 사장의 곁에 있는 여자가 그녀가 아니라 나라는 다른 여자가 있는 것처럼 그때도 사장의 곁에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동정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해했다. 어째서 신혜민이 아님에도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격렬한 증오가 들끓었는지를.

서로 한순간에 상대를 이해한 거겠지.

닮은꼴이라는 것을.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서 오기와 열등감으로 점철된 후회뿐인 인생을 보낸 자기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보는 건 그다지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자신을 비추고 있는 거울 자체에 증오를 품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신혜민처럼 그 작은 몸 안에 별의 기적을 담고 있는 여자에게 진다면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패배자에게 지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보다도 더욱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건 신혜민에게 지는 것보다도 더한 굴욕이었다.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동족 혐오는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여자와 여자의 자존심이 걸린 나와 그녀 사이의 일.

여자의 적은 어디까지나 여자.

그렇기에 남자인 사장의 경우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고 만다.

남자와 여자는 별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별이다. 남자와 여자는 모든 것이 사랑 아래에서 행해진다.

때문에──, 사장은 저렇게 자신과 닮은꼴인 한결같이 짝사랑을 해온 여자를 눈앞에 두면 자신을 향한 연민까지 더해져 저런 여자에게 매몰차게 대하지 못했다.

내가 그 가장 큰 증거였다.

“아아……, 분명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하군. 그래, 중요한 건 그대로라는 느낌이야.”

아니나 다를까 사장이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은숙에게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사장의 그런 이제야 고향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 됐다는 듯한 반응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아무 데나 편한 곳에 앉아. 나는 잠시 안에서 옷 좀 갈아입고 올게.”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들뜬 걸음으로 그대로 탈의실로 향했다. 사장과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바로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탈의실 안으로 막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사장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들어와도 괜찮은데…….”

‘이……, 이 여자가 정말!!’

당연히 저런 헛소리는 사장이 곧바로 일언 지하에 거절할 줄 알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사장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사장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자……잠깐. 서…설마 고민하고 있는 거야?’

‘읏! 바로 옆에 내가 있는데도!’

‘이래서 남자들이란!!!!!!!!!!!’

콰앙!

나는 순간 욱하는 심정에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했다.

“이 노출증 환자가. 그렇게 아무한테나 보여주고 싶다면 그 보잘것없는 몸뚱이 내가 봐줄게.”

“어머, 무서워라. 후후, 농담이야. 금세 발끈하긴. 이런 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둬야지. 거기서 두근거리며 기대하고 있어 줘.”

재빨리 그렇게 말한 후 사장에게 윙크를 날리더니 내게서 도망치듯이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잠갔다.

‘하아……, 지친다.’

분명 별것 아닌 상대건만 묘하게 까다로웠다. 그만큼 저쪽이 체면이니 뭐니 따지지 않고 필사적이란 거겠지.

여기가 그녀의 영역임을 다시금 자각하며 사장의 옆에 내가 다시금 앉았을 때였다.

“잠시 실례하지.”

사장이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는 익숙한 손길로 재빨리 공손하게 두 손으로 라이터를 잡은 뒤 사장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맙군.”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뒤 다시 천천히 내뱉은 다음 재떨이에 꽁초를 꾸욱 문지르며 불을 껐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여기도 자주 오던 장소였다. 뭐, 그때는 은숙, 조금 전 그녀의 말마따나 카페였지만 말이지.”

“그녀와는……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중학교에 올라간 뒤 내가 ‘그녀’를 따라 같이 밴드부에 가입하러 갔을 때였지. 그때 우리보다 먼저 거기에 와있던 소녀였다.”

사장이 말한 ‘그녀’란 사장의 첫사랑인 소녀를 일컫는 거겠지…….

“그걸 계기로 친해지셨군요.”

“글쎄…잘 모르겠어. 처음에 은숙은 우리를 잘 보살펴주었다고 할까.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의지가 되는 소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점점 우리와 서먹서먹해지더니……, 언제부턴가 잘 보이지 않더군.”

……스스로 멀어진 건가.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의 곁에서 행복한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 두 사람을 순수하게 축복할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나는 무심코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당시엔 사장의 눈에 온통 한 여자만이 비치고 있었으니, 은숙이 갑자기 멀어진 이유를 몰랐겠지만, 지금은 사장도 싫어도 눈치채고 있겠지.

사장은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은숙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걸 생각한 순간……!

읏……!

지금의 통증은 대체 뭐지?

순간 가슴 한편이 철렁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이건……이 아픔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 이상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그렇게 의식적으로 사고를 멈췄을 때였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그녀가 문을 열고 나타나며 말했다.

“기다렸지.”

나는……, 순간 같은 여자임에도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 숨을 삼키고 말았다. 그녀는 가슴이 반쯤 파이고 허벅지 아래가 훤히 드러나는 검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군.’

내가 그렇게 그녀의 모습을 품평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사근사근한 발걸음으로 사장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일부러 허벅지 안쪽이 보일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자세로 사장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한쪽 다리를 걸치며 앉았다.

화려한 나비가 날아와 꽃 위로 사뿐하게 앉는 것만 같다.

그녀는……손가락으로 사장의 가슴팍을 쓸며 관능적인 목소리로 조금 헐떡이며 말했다.

“어울려? 모처럼 힘 좀 써봤는데.”

“몰라보게 변했군.”

“그만큼 시간이 흘렀으니까. 혹시 실망했어?”

“아니……. 잘 어울린다.”

“기뻐…….”

그녀는 사장의 말에 몸을 떨며 황홀한 눈동자로 사장에게 답했다. 당장 그녀가 사장의 품 안에 와락 뛰어들어 사장을 끌어안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째서인지 입안에서 진한 피 맛이 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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