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70화 (70/136)

〈 70화 〉 제69 화 불청객

* * *

송나은과 강성우, 두 사람은 닫힌 세계의 아담과 이브였다.

외부로부터 일체의 간섭을 거부하며 고립된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고는 그저 서로의 몸을 하염없이 줄곧 탐하기만 했다.

안고, 안기고.

서로의 육체를 희롱하며 기쁨을 얻고, 또 기쁨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행위를 거듭해나갔다.

살과 살이 뒤섞인다.

점막과 점막을 격렬하게 문지르며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길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육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몸도 마음도 하나로 녹아내렸다.

그렇게……,

송나은의 신혜민을 향한 오기와 열등감이 강성우의 회한과 맞물려 두 사람은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동일한 마음의 상처와 고독을 품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같은 방향을 향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일체감이란 굉장히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낙원이었다.

비록 머지않아 사라질 위태로운 안식처였지만, 두 사람이 처음으로 찾아낸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송나은은 언제나 기본적으론 우울하고 낮은 텐션인 그녀답지 않게 조금 설레기까지 했었다. 사장과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 동안 그에게 잔뜩 밤낮으로 귀여움받을 생각을 하자 절로 마음이 들뜨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만의 세상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이 현재를 침범하여 더럽히려고 하는 불쾌한 감각에 송나은은──, 적의를 숨기지 않고 두 눈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갑자기 자신과 사장의 눈앞에 나타나 자신의 곁에 있는 사장에게 친근한 척 말을 거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생소하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신혜민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이 정도로까지 적의를 품게 될 줄이야.

지금 눈앞에 나타난 여자는 사장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사진 속의 소녀는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기엔 자아내는 색향이 너무도 요염하고 짙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저 여자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증오에 가까운 검은 불꽃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걸까.

문명의 역사는 길다.

무척이나 길다. 그러다 보니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도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신화적인 낭만을 곁들여 인간의 순수함과 신의 관계에 따라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의 시대로 구분하는 자가 있었는가 하면……,

인간의 이성과 신의 관계에 따라 고대와 암흑시대,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구분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그 문명이 주로 무엇을 소비하는 사회였는가로 구분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고 답할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너무도 발전된 우리 사회는 실체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지 않는 상황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이미지다.

우리는 이제 만물을 이미지로 가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이나, 실제 성능보다도 그것이 가지는 이미지에 집착한다.

똑같은 제품이어도 어떠한 상표가 붙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가치가 매겨지는 게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본래라면 그 자체로 존귀하게 여겨져야 할 사람이야말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이미지로 판단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특히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러한 현상이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사람은 이제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 그 사람의 인격에는 관심이 없고 첫인상과 직업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송나은에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후후, 역시 성우 맞지? 그다지 변하지 않았네. 여전히 멋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특히 지금처럼 의도적으로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고 사장에게 묘한 척 친근하게 구는 게 무척이나 짜증 났다.

내가 모르는 사장의 모습을 자신은 알고 있다고 나한테 은근히 과시하는 것만 같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적어도……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은 내 모든 것이 사장의 것이었고, 또 사장의 모든 것이 내 것이었다.

그런데──,

“은…숙……?”

사장은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레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사장이 본의로 그런 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모습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람에게 보여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겠지.

하지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 이었다.

무엇보다도──

“기뻐. 그래도 기억해주고 있었네. 사실 조금 걱정했었어. 너는 그녀 외의 다른 여자에겐 관심도 없었으니까. 나 따위는 곧바로 잊혀진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바로 떠올려주는 걸 보면……, 나도 조금은 가능성이 있었단 걸까?”

여자가 사장이 이름을 기억해준 것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과도하게 기뻐하는 모습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데 크게 한몫했다.

‘대체 저 여자는 누구지? 누군데 저렇게 사장을 반가워하는 거지?’

사장과 나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건 서준과 사장의 첫사랑인 소녀뿐이건만. 얘기를 들어보니 저 여자도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사장의 과거를 안다면 모를 수도 없겠지.

그런데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사장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건, 지금 사장의 옆에 있는 내가 여자로서 자신보다 아래로 보인다는 걸까? 나 정도라면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혹시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걸까…….

후…….

크게 심호흡을 한다.

“…”

사장은 여자의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해하는 듯했다. 어쩔 수 없다. 대게 여자가 이런식으로 나오면 남자들은 쉽게 반응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남자들끼린 아무렇지 않게 야한 얘기를 나눠도, 막상 여자들이 남자를 앞에 두고 야한 얘길 꺼내면 어떻게 반응하지 못하는 게 남자다.

의외로 남자들이 소심한 법이라니까.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남고 앞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릴 수 있지만, 남자들은 여고 앞에서 잘 그러지 못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귀여워…….

그러니 이럴 땐 남자를 위해서 같은 여자가 대신 나서서 싸워줘야 한다.

나는 사장에게 은숙이라고 불린 여자 앞에서 사장의 팔짱을 끼고 그의 몸을 내 쪽으로 가져오려 했다.

그러면서 사장은 이미 내거니까 건들지 말라고 무언으로 시위하며 여자의 싸움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간발의 차이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미안. 내가 괜한 얘길 꺼내서. 하도 오랜만에 만났다 보니 조금 들떴나 봐.”

여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사장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뻔한 삼류 연기.

“아니,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하지만──내가 서준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자의 이런 어리숙한 연기야말로 실제론 남자를 속이는 포인트다.

과연 나잇값은 한다는 건가. 꽤나 남자를 상대하는데 익숙하단 느낌이다. 거기다 여자의 공세는 그거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노리던 것.

“이쪽은 여동생이야? 귀여운 애네.”

여자는 자연스레 사장과의 거리를 좁히더니 나에게 그렇게 견제를 넣었다. 이 여자는──지금 사장에게 여동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날 여동생 취급했다.

나는 그에게 여자로서 어울리지 않으니까, 알아서 주제 파악을 하라고 대놓고 얘기한 것이다.

후……

후후……

우후후후………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그쪽이야말로 여자로서 끝났다는 걸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겠군. 상당히 노련해 보이는 여자긴 했지만, 신혜민과 비교하면 그 격은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내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신혜민을 끌어내리기 전에 몸풀기 정도론 꽤 적당할지도…….

내가 그렇게 속으로 칼을 갈며 여자로서의 설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였다.

“아니, 우리 소속사의 귀여운 아이다. 너무 놀리지는 말도록.”

사장이 먼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씁쓸함만을 삼켰고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사장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우리의 관계는 그것뿐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순간 가슴이 철렁했던 걸까.

나는 대체 사장이 나를 뭐라고 소개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걸까?

내가 잠시 그렇게 사장과 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은근슬쩍 사장에게 팔짱을 끼며 그 커다란 가슴을 사장에게 꾸욱 꾸욱 누르며 요염하게 속삭였다.

“저기…모처럼 만에 만난 거니까……. 요 앞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거든. 잠깐 들렀다 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듣고 싶고.”

“…”

사장은 어째선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내 쪽을 보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지.”

그리고는 곧이어 내게도 물었다.

“자넨 어떻게 할 건가?”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사장에게 답했다.

“물론, 따라갈래요”

“그래…….”

사장이 그렇게 말할 때 반대편에서 사장의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가 사장에게 들키지 않도록 날 흘겨보며 눈으로 말했다.

‘후……정말이지 눈치 없는 아이네.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 하다니. 어린아이한테는 상당히 자극적일 텐데 말이야. 너무 이른 게 아닐까?’

나 역시 그녀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두 팔로 사장의 허리를 꼬옥 껴안으며 그녀에게 마찬가지로 눈으로 답했다.

‘누가 할 소릴. 아줌마야말로 주책 떨지 말고 나잇값이나 하는 게 어때?’

‘어머, 어머. 기가 센 아이구나. 후회하게 될 텐데. 남자를 눈앞에서 빼앗기고 엉엉 울지나 마렴.’

‘그쪽이야말로. 그나마 간신히 촌 동네서 보잘것없는 남자들 덕분에 간신히 유지해왔던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서 재기불능이 되지 않기를 바랄게.’

‘후후후후후후’

‘아하하하하하’

우리는 그렇게 그녀를 따라 그녀가 운영하는 바로 향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이지……사장도 사장이다.

저런 여자의 권유 따위……어차피 그의 곁에는 내가 있으니 칼같이 거절해도 되건만.

역시 가슴인가……여자의 반쯤 드러낸 커다란 가슴을 본다.

같은 여자가 봐도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었다.

확실히 저런 가슴을 들이대며 부탁하면 남자 따위 한방에 함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마 사장마저 그럴 줄은…….

그녀는 자신의 소굴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남자는 여자에 약하니까……이럴 때 의지가 되지 못한다.

역시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지.

나는 나와 사장 둘만의 세계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려고 하는 만만찮은 불청객을 쫓아내기 위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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