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제68 화 막간(??) 3 신의 형상 (2)
* * *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그들은 구원을 바라는 어린 양처럼 맹목적인 시선으로 신혜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달린다. 매달린다.
남자아이가 매달린다.
여자아이가 매달린다.
어른이…
노인이…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 하나에게 매달린다.
거기에 있는 것은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그녀를 향한 동경, 존경, 혹은 사랑이 담긴 눈동자 뒤에 숨어있는 것은 광기였다.
수천수만의 광기로 얼룩진 시선은 그 자체로 유형의 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종의 초자연 현상을 일으켜 거센 격류가 되어 그녀를 덮쳐왔다.
가녀린 여인이 여자에 굶주린 죄수들로 가득 찬 교도소 한가운데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진 상황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범인(凡人)이라면 그것들을 앞에 둔 순간 순식간에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실금을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고, 군중 앞에 서는 게 일상일 정도로 익숙한 스타나 정치인이어도 다소 긴장을 하며 진땀을 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연했다.
거친 풍랑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저 높은 하늘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모든 것들을 받아내며……, 그녀가 싱긋 웃었다.
그러자 다시금 세계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치고 연약해서 근심 속에……,”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는 영혼들이 있어.”
겨울의 끝을 고하는 목소리였다.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봄의 햇살과도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맑고 투명하며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안을 것만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의지할 곳 없어 풍랑 한가운데서
슬픔만을 짊어진 아이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행복해지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믿고 싶어.”
“비록……, 지금은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불순물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목소리.
카페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유명한 화가였다. 이를 알아본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가 제안했다.
“나를 그려 주면 충분한 값을 치르겠어요.”
그는……펜을 잡더니 순식간에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 다음 그녀에게 말했다.
“1억이오.”
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그렇지, 고작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서 대충 끄적인 그림에 1억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인이 남자에게 당신 지금 제정신이냐며 따졌다.
그러자 화가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그녀에게 얘기했다.
“당신을 이렇게 그리는 실력을 얻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록 5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5분에 평생이 담겨있다면 억만금의 가치를 가진다고 말한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찰나’에 ‘영원’을 새겨넣은 파블로 피카소.
지금 장내에 울려 퍼지는 신혜민의 노래에 깃들어 있는 순수함이 듣는 이의 심령을 뒤흔드는 것은 단순히 신혜민의 목소리가 듣기 좋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피카소가 5분 동안 그린 그림이 1억의 가치를 지닌 이유는 거기에 그의 평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듯이, 신혜민의 노래에도 그녀가 지금까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왔던 삶이 깃들어 있기에──,
그녀의 노래에는 가식이 없었다.
불순물이 없었다.
“적어도 더 이상은…….”
“그 누구도 홀로 외로이
울지 않는 세계를 위하여……”
“작은 힘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보태주었으면 해.”
자기 한 몸 돌보기 힘든 요즘 같은 삭막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손을 내밀자는 노래를 하고 있음에도 짙은 호소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잊어버렸을지라도
당신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고
같이 아파하는 상냥함이 남아있어.”
“부디 그 상냥함을 외면하지 말아줘.”
…
“에?”
홀린 듯이 신혜민의 노래를 듣던 중 다솜은 순간 퍼뜩 놀라며 자신의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뿐 아니라 모두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억지로 우는 게 아니란 것 정도는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이 스스로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조금 전까지 의식하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크게는 선과 악으로 대립하면서 비어있는 석판과도 같아서 무엇을 채워 넣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하는 중립적인 견해까지.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정답이란 없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어느 견해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이기에.
다솜의 경우에는 어느 쪽이냐 하면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성은 약함에 있다는 쪽에 표를 던지는 부류였다.
그녀는 줄곧 생각했다.
사람은 약하다고.
그렇기에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다고.
그렇게──,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난무하고 있고, 그중 무엇하나 확실한 정답이 없음이 분명함에도 단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의 슬픔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측은한 마음(不?人之心)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발을 헛디뎌 지하철 문틈 사이로 빠져 몸이 꼈을 때, 이제 곧 저 아이의 몸뚱이가 허리부터 반으로 잘리는 모습을 두근대는 심정으로 기대하며 그 장면을 녹화해서 sns에 올리기 위해서 핸드폰부터 꺼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천만 명 중에 하나. 아니, 1억 명 중에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편적인 성품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하다못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소리라도 지를 것이다.
아이를 구해주고 부모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방관했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그저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석판과 같든, 혹은 약함에 있든 간에……그런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가 저러한 고귀하고 소중한 맑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워낙 고통으로 충만한 세상이다 보니 더러워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기에──, 어느샌가 우리의 마음에는 먼지가 쌓여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낸다.
신혜민의 노래는 그 먼지를 부드럽게 닦아주어 잊고 있던 소중한 감정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었다.
신을 죽이고, 신의 그림자마저 정복하려는 지금의 세상에서……,
신의 사도를 자처하는 자들은 더이상 구원이 아니라 속세의 영달을 기도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녀는 노래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데에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데에는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다솜은……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탄식했다.
‘아아──, 나도 그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옆에 있는 현민을 훔쳐본다.
현민은 두 눈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도 황홀한 표정으로 혜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이었다.
보답 받지 못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녀를 위해 목숨마저 초개처럼 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자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나와 현민을 이어줬지만, 그녀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연적이었다.
이쪽은 목숨을 걸어도 부족한 판이지만, 그녀에겐 자신들의 사정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게 더 질이 나빴다.
‘정말이지 나도 참 미련하네──.’
얼마든지 더 좋은 남자를 골라잡을 수 있음에도 왜 이리 힘든 사랑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지만.
‘역시 포기할 수 없는걸.’
…
찰나지만 영원같이 느껴졌던,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것만 같은 신혜민의 무대가 끝난지도 벌써 30분이 지났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여운에 잠겨 있을 때였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30분 뒤에 악수회가 있을 예정이오니 악수권이 있으신 분들은 1층 로비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옷! 이것만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거기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승진과 지웅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운에 젖어 넋을 잃고 있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그들의 타고남은 재는 다시 기름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좀만 늦어도 온종일 줄 서야 하니 두 사람도 얼른 일어서시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발을 동동 굴리면서 지웅이 멍하니 있는 현민과 마찬가지로 그를 따라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다솜에게 재촉했다.
하지만 현민은 묵묵부답이었다.
“미안, 난 괜찮아. 먼저 가줘.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
“정말 괜찮으시오?”
“응. 미안 걱정을 끼쳐서.”
“아니오. 그런 건 아니오만.”
승진은 뭔가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지웅이 분위기를 억지로라도 밝게 하려는 듯이 쾌활한 목소리로 현민에게 말했다.
“알겠소. 먼저 출발하겠소. 천천히 오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고마워.”
현민은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배웅했다. 그리고는 그들과 같이 가지 않고 자신의 옆에 남아있는 다솜에게 말했다.
“넌 안 가봐도 괜찮아?”
“흥……, 선배가 이런 상탠데 혼자 놔두고 내가 어딜 가. 같이 있어 줄게.”
“고마워…….”
현민은 그렇게 말했지만, 썩 기쁜 눈치는 아니었다. 좀 더 기뻐해 줘도 좋을 텐데. 아니, 어쩌면 현민은 충분히 기뻐하고 있는 건데, 자신이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어서 자신의 눈에는 영 미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괜히 속이 상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선배. 신혜민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녀도 여자인걸. 그렇게 빠져들었다가 나중에 그녀가 결혼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스스로 말하고도 아차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바로 곁에 있는 자신을 봐달라는 말을 돌려말한 것이었으니까.
현민이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움받을 각오까지 한 상태에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현민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녀에게 놀라울 정도로 싱거운 것이었다.
“알아.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현민의 말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기묘하게 들렸다. 입에 담은 단어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오히려……부디 그랬으면 좋겠어.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녀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그녀를 떠나면, 그만큼 내가 더 그녀를 독점할 수 있게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현민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그는 보답받지 못해도 진심으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혜민이 다른 남자에게 안기게 되더라도 그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동자 깊은 곳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의 그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으며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어째서인지 그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떠날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날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것을 그녀는 평생 후회하게 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