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제67 화 막간(??) 3 신의 형상 (1)
* * *
다솜은…
현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었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자리로 돌아오자 너무도 바뀐 현민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변했냐고 누군가 그녀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콕 꼬집어서 대답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현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 잠깐 사이에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현민은 좋게 포장해서 말하면 세속에 무척 초연한 사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혜민밖에 없기 때문에 그녀 외에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물욕이 없다.
그에게는 명예욕이 없다.
그에게는 권세욕이 없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근심이 없다.
즉, 나쁘게 말하면 그는 사람 좋은 바보였다. 언제나 부드러운 분위기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허허 웃으면서 넘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걱정이나 근심은 그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런 그가 지금 무척 진중한 분위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갑자기 철이 들었다? 그런 귀여운 말로 규정지을 수 있는 변화가 아니었다.
쉽게 말도 붙이기 힘들 만큼 무거운 현민의 분위기에 승진과 지웅 역시 입을 떡 벌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채 현민이 지나갈 때까지 그대로 굳어있었다.
현민이 자리에 앉자 그제야 그들도 엉거주춤 자리에 앉고 현민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얼핏 겉으로만 봐서는 무언가를 훌훌 떨쳐낸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줄곧 현민을 지켜봐 온 자신은 알 수 있었다. 현민은 무언가를 털어낸 게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에 얽매여있었다.
그는 애써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듯 스스로를 속이려 하고 있을 뿐, 그 어느 때보다 무언가 정체 모를 보이지 않는 사슬에 칭칭 묶여있었다.
그 사슬을 그가 스스로 자신의 몸에 휘감은 건지, 아니면 타인에 의해 속박된 건지, 그도 아니면 둘 다인지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알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뭔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부드럽게 웃어주는 현민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선배, 무슨 일 있었어?”
좀 더 다정하게 말을 붙이고 싶었는데, 긴장해서인가. 그 어느때보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속으로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현민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바라본다.
그 순간──, 현민에게서 그의 얼굴을 가득 뒤덮고 있던 수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 깊은 곳이 작게 떨리고 있음을.
“으응,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현민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건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변하고 싶었던가.
그렇지만 사람은 마음 좀 새롭게 먹는 정도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건 고작해야 하나의 붉은 핏방울과 같았다.
넓은 바다에 고작 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정도밖에 안 된다. 한 방울의 피는 그게 설령 아무리 붉더라도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 곧바로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계기──.
일혈(一血)이 만해(??)가 되고 만해(??)가 일혈(一血)이 된다.
빛과 어둠이, 삶과 죽음이, 한 개인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반전될 정도의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요동칠 정도의 계기.
그래………, 마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소리 없이 울고 있던 자신에게 현민이 손을 내밀어 줬을 때와 같은───.
현민은 변했다. 너무도 변하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 감추려 해도 미처 다 감추지 못하고 은연중에 계속해서 흘러나올 정도로 깊은 수심이 있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적어도 자신이 그때 겪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인연이 그에게도 일어났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닐 리가 없다.
하지만 쉽게 타인이 건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였다.
아니, 애초에 고민이고 자시고 없었다.
신혜민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시선을 미움받을 용기 하나도 없이 자신에게로 돌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행복해질 용기』를 얻기 위해서 『미움받을 용기』를 낸 다솜은 현민에게 말을 걸려고 했었다.
“선배, 혹시 고민이 있으면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나한테라도 털어놔. 아무리 바보 같은 이야기여도 웃지 않고 들어줄 테니까. 이번만 특별히 말이야.”
중간에 혀가 꼬이지 않도록,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연습한 끝에 현민에게 그렇게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그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단 한 순간──그야말로 눈 한번 깜빡이는 것보다도 빠른 지극히 짧은 순간에, 세계에 가득 차 있던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도 모른 채 어느새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무의식의 영역이 자극받아 벌어진 일이기에 그녀가 의식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동물들은 지진이나 대홍수같은 자연재해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하고 필사적으로 조금이라도 더욱 멀리 떨어지려 도망친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근본적으로 그것과 동일한 이상 현상이었다.
각각의 점()으로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던 개인들의 의식이 어느 순간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하멜른의 피리 소리에 홀려버린 쥐 떼들처럼 자신들의 몸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예감하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누구 하나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싫어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저 장막 너머에 그녀가 있다는 것을!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저 거기에 있기만 한데도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장악해버렸다.
그리고………,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회장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기라도 한 걸까──.
하나의 바이올린 소리가 장내를 가른다.
그리고 뒤이어서 백 명이나 되는 초대형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한동안 울려 퍼지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뚝! 하고 연주와 함께 실내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것은……여왕의 행차에 납작 엎드리는 신하의 무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빛 한점 없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만 불어도 스러질 것 같은 한 줄기 풀과 같이 가련하면서도 천년의 세월 동안 모진 풍파 속에서도 꽃을 피운 매화와도 같은 기품이 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진흙 속에 있어도 그것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그녀에겐 일혈(一血)을 만해(??)로 만해(??)를 일혈(一血)로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해를 품은 핏방울을 꽃피워 많은 열매를 맺게 했다.
그리하여 창공을 노니던 새들을 머물러 쉬게 만들고야 마는……,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어 모든 것에 초연한 신성함이 있었다.
그렇게 무대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빛이었다.
이 세상 어떤 빛보다 밝게 빛나는 빛이었다.
…
우리 모두는……, 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꽃의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꽃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머릿속에 꽃이라고 떠올린 것은 장미, 백합, 무궁화, 개나리처럼 우리의 관념이 현실 세계에 모사된 꽃의 수많은 그림자들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비단 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개, 고양이, 사과, 나무……기타 등등.
우리가 떠올린 것은 치와와지 ‘개’가 아니다.
우리가 떠올린 것은 페르시안이지 ‘고양이’가 아니다.
우리가 떠올린 것은 부사지 ‘사과’가 아니다.
우리가 떠올린 것은 소나무지 ‘나무’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도 마찬가지.
허나……,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녀, 신혜민의 모습을 보며 같은 생각을 품었다.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야말로 『신의 형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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