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제66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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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신혜민을 좋아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일반적인 팬클럽이 아니라 신혜민에게 인생을 바친 자들, 즉 스스로를 여신의 사도라 자처하는 동아리의 부원인 이승진과 서지웅은 지금 공포에 질려 서로를 끌어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분명 회장 안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사람들이 흘린 땀이 천장에 쌓여 구름이 만들어질 정도까진 다행히도 아니었지만──, 당장 바로 앞에 앉아있는 남자들의 등만 봐도 땀에 절어 염전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
평소였다면 몹시 슬픈 얘기지만, 이승진과 서지웅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뒷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둘은 지금 오한으로 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바로 옆자리서 다솜이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한지 뾰로통한 얼굴로 팔한지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흘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드득…!
“히…히이익……!!!”
그녀가 무의식중에 짜증을 내며 이따금 손톱으로 팔걸이를 한 번씩 긁을 때마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식겁하며 속으로 죽는소리를 했다.
‘혀…현민 사제…부…부탁이니 제발 빨리 좀 와주시오. 아주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만 같아 죽겠소이다.’
두 사람 중에 비교적 홀쭉한 쪽인 이승진은 속으로 그렇게 우는소리를 하면서 옆에 있는 지웅에게 무언으로 모종의 눈짓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지웅은 지금 상황에서 승진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들었는지 퍼뜩 놀라더니 고개를 휙휙 양옆으로 세차게 젓기 시작했다.
무언가 한 가지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자들끼리는 서로 동료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 영역에 대해서도 확고한 고집이 있었다.
이것만큼은 목에 칼을 들이대도 양보할 수 없다.
남들에겐 무척 사소한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들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굽힘은 없는 그 임전무퇴의 정신은 그야말로 현대의 화랑.
“후우, 이런 식으로 그대와 승부를 겨루게 될 날이 올 줄은…….”
“동감이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때는 여신님이 관련됐을 때뿐이리라 생각했었소만…….”
“우리가 아무리 꿈의 사도라 한들 아직은 육신에 얽매인 몸.”
“그렇다면……그 업에서 도망치지 말고 짊어져야 하는 게 도리겠지.”
“그렇다면 결국 여기서 우리가 싸우게 되는 인과는 필연.”
승진과 지웅 두 사람의 ‘각오’가 담긴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스파크를 튀겼다. 두 사람은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껏 예민해진 다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신들의 모든 걸 건 남자의 승부를 시작했다.
“누가 이기든……원망하기 없기오!”
““듀얼 개시!””
“나는 이 한 번에 듀얼 리스트로서의 내 인생을 걸겠소!!!”
“무른 소리. 승리는 자신의 손이 아니라 여신님의 이름 곁에 있다오!!!”
두 사람은 각자 주머니에서 재빨리 한 뭉치의 카드를 꺼냈다.
두 사람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상대의 덱에서 곧바로 한 장의 트레이딩 카드를 빼낸 뒤에 서로를 향해 보여주었다. 승부는 한순간에 결착되었다.
승진이 뽑은 카드에는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신혜민이 쭈그리고 앉아서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사진이 찍혀있었고, 왼쪽 구석에 작게 99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지웅이 뽑은 카드에는 검붉은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는 신혜민의 모습이 찍혀있었고, 마찬가지로 왼쪽 구석에는 1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역시 여신님!!!”
그렇게 외치며 승자인 지웅은 한껏 거만한 태도로 승진을 내려다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고했다.
“꿈의 사도로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여신님께 기대지 않고, 자신 따위를 믿으니까 진 거요. 비록 1점 차이지만 여기에는 눈에 보이는 수치 이상으로 큰 격차가 있다오.”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듣는다면 그건 분명 인간으로서 잘못된 게 아닐까…라며 지웅을 한심하게 쳐다보았겠지만, 승진에겐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는 지웅의 말에 무언가를 크게 깨달은 듯 눈을 부릅뜨며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크…크윽……. 나도 아직 멀었구려. 패배를 인정하오…….”
“후우…….”
지웅은 승진의 패배 선언을 들으며 한숨 돌렸다는 듯이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기대며 편한 자세로 앉았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한 방울 맺혀있었다.
말로는 대승한 것처럼 승진에게 잘난 듯이 말했지만, 실제론 굉장히 치열한 승부였던 것이다. 왜냐면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한순간도 놓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 위험지대에서 한걸음 떨어져 안전한 곳에서 관망하는 입장이 되어 편한 마음으로 승진을 보자 그는 죽어가는 얼굴로 다솜의 눈치를 보며 덜덜 떨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소……소저. 소저의 맘은 백번 이해하오만, 너무 그렇게 초조해하지 마시오. 원래……”
승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지웅이 무언가를 눈치챈 듯 ‘아뿔싸!’하고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승진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웅의 분위기에 자신이 무언가를 실수했다고 승진이 감지했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내 마음이 뭔데요?”
다솜이 눈에 쌍심지를 키며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승진은 자신이 지뢰를 밟았단 걸 깨달았다. 소녀의 비밀스럽고 섬세한 마음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에……그……그게……그러니까……아……아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더듬으며 옆에 있는 지웅에게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지웅은 먼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뭐, 됐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솜은 팔짱을 끼더니 자세를 고쳐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얹으며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대체……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늦는 거야?’
현민을 향해 그렇게 속으로 계속 투덜거리는 다솜은 동시에 선배들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 워낙 많이 몰린 곳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는 거겠지. 이런 상황에서 화장실 문제는 그들이 말 안 해줘도 여자인 자신이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그렇더라도 그 모든 걸 감안 하더라도 이건 너무 늦었다.’
자신은 조금이라도 더 현민이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자기 맘도 모르고 이렇게 늦게 오는 현민에게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건 순전히 자신이 억지 부리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현민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사실이었다.
그걸 알지만……알고 있지만, 소녀의 마음이라는 게 참……
하지만……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초조하고 원인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현민이 걱정되어서였다. 혹시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은 게 아닐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라면 차라리 좋겠다.
현민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시비에 휘말린 건 아닌지. 선배는 워낙 착하니까. 약한 주제에 신혜민에게 감화되어 바보같이 착해빠지기만 해서는……불의를 보면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처세술이건만…….
물론, 현민이 그런 남자였다면 이렇게 자신과 엮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건 다른 여자와 새로운 만남을 가질 가능성이 있단 말과 같은 말이기도 했다.
모든 여자가 자신 같지는 않겠지.
현민은 외모도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니고, 장점이라곤 상냥하다든가 곤란에 처한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는 점뿐이었다. 그것도 신혜민의 앨범을 건네주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일을 당하면 대체 이 사람 뭐냐며 당황스럽기만 하리라.
하지만……그게 10번이 반복되고 100번이 반복되면, 그중에는 누군가 현민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여자가 나올지도 몰랐다. 아니 반드시 나올 것이었다.
상냥하긴 쉽다. 무척이나 쉽다.
대부분 남에게 단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상냥하단 것 정도뿐이리라.
혹자는 자기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조차도 평소에는 상냥할 때가 더 많다며 냉소한다.
하지만──, 평범함이야말로 비범한 것이다.
누구나가 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지켜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분명 있건만 이치라는 게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더욱 많이 일어난다.
상냥하기란 쉽다.
그러나 사람이 일관되게 상냥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성별을 불문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거기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니까 손을 내민다.
그게 그의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히 신혜민이라는 여자에게 감화되어 그녀를 따라서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그야말로 지독한 위선.
하지만──, 그렇게 좋고 나쁨도 없이, 기쁨 슬픔도 없이, 끝끝내 자신의 의지마저도 없이 그저 의무감으로만 하는 선행일지라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간절한 사람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건 이미 궁극의 선이 아닐까.
그러한 형태에 다다른 사람을 우리는 존경의 염을 담아 성인(?人)이라고 부른다.
그때 자신의 눈에는 현민이 더없이 고귀해 보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로 보였다. 자신의 생에서 이런 남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 엄지손톱을 질겅질겅 씹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
어째서 지금 지금 지금 지금에서야 이렇게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거지? 현민을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가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갔어야 했다.
항상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다른 여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있어선 안 돼.”
현민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잘 해주는 것도, 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여자가 현민에게 흥미나 호감을 가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되었다.
“히……히익!!!”
“소…소저가 또 망가졌소이다.”
“제……제발 현민공 부탁이니 빨리 와주시오. 이러다가 큰일 나겠소.”
갑자기 폭주한 다솜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승진과 지웅 두 사람이 식겁했을 때였다.
“미안, 늦었지.”
갑자기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두 사람이 얼굴에 반색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호들갑을 떨며 현민을 맞이하려 할 때였다.
다솜 역시 현민의 목소리에 퍼뜩 제정신을 차리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현민에게 잔뜩 핀잔을 주려고 할 때였다.
다솜, 승진, 지웅……, 세 사람은 각자 현민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본 순간 그대로 그 자리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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