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제65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9)
* * *
“무슨 사정이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렴.”
“분명 잘 풀릴 거야. 내 예감은 상당히 잘 맞으니까. 믿어도 될 거야.”
그녀는 울고 있는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단순히 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있어서 임시방편으로 건넨 위로의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였다.
어머니는 다행히 몸에 큰 이상 없이 퇴원하셨다. 발을 헛디딘 게 원인이었다고 한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의식을 되찾은 어머니가 괜한 걱정을 끼쳐 면목이 없다는 듯 엉망진창이 된 내 얼굴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을 때───,
“지금은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분명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렴.”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어째선지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태어났다니…….
그것이 허울뿐인 말이란 건 아무리 어린 나였어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우리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체개고(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감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갖은 힘든 노력을 다 해야만 한다.
이미 우리는 숙명적으로 괴로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일까.
‘우리 모두는 분명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을 거야.’라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
그 후…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그로부터 약 1년 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녀를 찾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언제나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으니까……….
그녀 주위에는 언제나 구름과도 같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을 뚫고 그녀에게 가서 말을 거는 것은 내게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녀 주위를 배회하며 그녀와 단둘이서 차분히 얘기할 기회를 줄곧 노렸다.
하지만……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저 그녀를 스토커처럼 언제나 멀리서 몰래 지켜보기만 하는 신세였고, 얼마 안 있어 그녀는 졸업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연예계에 데뷔하였고───,
나는 그녀와 나눴던 약속을 내 나름대로 지키기 위해 그때의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 그녀가 내게 해주었던 말과 함께 그녀의 음반을 나눠주고 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면 나한테 뭐라고 할까……?
혹시 애썼다며 칭찬해줄까…….
…
나 따위가 그녀를 흠모한다든가 하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와 내가 혹여 사귈 수 있으리란 상황은 감히 망상으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단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그때 자신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리고 그때의 약속을 내가 잊지 않고 지금도 지키고 있다는 걸 그녀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때처럼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그녀에게 포상을 바라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그녀가 내게 베푼 선행을 언제 떠올리더라도 내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에게 심취한 내가 그녀에게 대가를 받길 원하다니. 이건 그녀를 존경하는 내 마음을 스스로가 더럽히는 게 아닌가.
그녀를 만나서 그녀에게 칭찬받고 싶다.
동시에 그런 걸 바라는 자신이 너무도 속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복도 끝에서 끝으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이미 화장실이라든가 그런 건 머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때였다.
문 안쪽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언뜻 그녀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 순간 나는……, 한심하게도 곧바로 뒤돌아서 복도를 달려나갔다.
문이 닫혀있어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그녀를 만나서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갈등했지만, 정작 그녀를 앞에 두게 되자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말았다.
그건 내 마음의 연약함이 낳은 공포.
그녀가 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녀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줄곧 말해왔지만, 정작 그녀가 정말로 날 기억하지 못하면 살아있을 자신이 없다는 게 나라는 위선자의 본심.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확인하는 게 두려워서. 확인하지만 않는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언제까지고 달콤한 꿈에 젖어 그녀의 잔향을 쫓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걸로 정말 괜찮은 걸까……….
그녀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리에서다. 이렇게 지금처럼 보는 눈이 없는 데서 그녀에게 오롯이 내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우연이 필요할까.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하다못해……고맙다는 말 정도는……
아니,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보은의 말은……그딴 게 아니다.
나 같은 한심한 녀석이 그녀에게 은혜를 갚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와 비교하면 미흡하지만…
나도 조금이나마 나보다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못난 내가……,
그녀에게 구원받은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보은.
나는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선다.
이 말 만큼은 전하자. 그녀가 날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수상한 남자가 대뜸 그녀 앞에 나타나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쏟아놓는다고 그녀가 여겨도 좋다.
비장한 각오를 품고, 설령 그녀의 처지와 비교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는 지금 내 모습에 그녀에게 환멸을 받게 되더라도……왔던 복도를 되돌아간다.
그리고…저쪽에서 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직접 본 순간……
한심하게도 조금 전 내 결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새 나는 필사적으로 또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그녀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아니 줄곧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혀서 결코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가라앉혀둔 이유 때문이었다.
심장이……터질 것만 같다.
눈이……멀어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그런 내 등 뒤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현민이니? 현민이 맞지? 항상 공연에 와줘서 고마워.”
아…아아……….
순간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전해졌었다. 그때 내 외침은 똑똑히 전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기억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단번에 날 알아봐 줄 정도로…….
해바라기를 보며 참 슬픈 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해바라기에겐 단 하나뿐인 태양이지만, 태양에게는 그저 수백 수천의 흔해 빠진 꽃에 불과하니까.
해바라기는 태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태양은 해바라기 따위 안중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태양은……, 그 하나하나의 꽃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던 것이다.
꽃만이 태양을 우러러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태양 역시 상냥하게 꽃을 비춰주고 있었다.
나의 태양은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잊지 않아 주었다.
그거면 충분한 게 아닐까……?
그녀에게 직접 칭찬받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왔던 모든 것들이 보답 받은 기분이었다,
이 단 한 번의 추억으로도 나는 남은 평생을 그녀와의 약속을 위해 바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 걸음을 멈춘다.
어쩌면 지금이라면……그녀와 그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끝끝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보일 듯 말듯 작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분명 그 이상을 바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나는 이 이상을 바라선 안 되었다.
그랬다간 분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