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제64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8)
* * *
안내인의 말대로 계단을 올라와 한동안 쭉 걸어간다.
고작 단 한 층만 내려가도 개미 떼처럼 사람이 많건만 어째선지 내 발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혼자 동떨어진 별세계에 온 것만 같다.
그렇기 때문일까……, 점점 안쪽으로 갈수록 호흡하는 공기의 맛조차 달라지는 것 같다.
단순한 기분 탓으로 취급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뭐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분명 그저 공연 전에 긴장을 풀 겸 단순히 화장실에 가려던 거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꼭 보고 싶은 무서운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보기보다 그래도 사람들이 있는 영화관서 같이 보면 좀 덜 무섭지 않을까 싶어서 극장에 왔더니 안에 들어오자 막상 나 혼자뿐인 상황이었다.
혹 떼러 왔더니 혹 붙이게 된 우스꽝스러운 상황.
아마 누군가 뒤에서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건들기만 해도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어쨌든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흡사 어두운 터널과도 같이 느껴지는 조용하고 지루한 복도를 지나고 나니 그 안쪽에는 화장실이 아니라 하나의 문이 있었다.
그 문에는……그렇게 세 글자가 간결한 서체로 적혀있는 새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존귀한 이름!!!
그 이름을 앞에 둔 것만으로도………,
저 문 너머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간신히 벽에 손을 짚으며 꼴사납게 바닥에 자빠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지금 자신이 처한 이 특수한 상황을 머리가 받아들이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뇌가 반응하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과도하게 흥분하여 머리로 피가 쏠린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현기증이 난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몹시 수상한 사람이라며 당장 신고해서 끌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모습을 하고 있겠지.
아니,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어도 똑같이 행동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다솜이라면 분명 그렇게 행동하겠지.
어쨌든 이 층에 다다르자 현실과 동떨어진 이 세계에 온 것만 같은 이질적인 느낌도, 호흡하는 공기의 맛조차 다르게 느껴졌던 것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누구 하나의 숨소리조차 없이 쥐죽은 듯 고요했던 것도 전부 이해가 같다.
여긴 지금 신이 거하는 성역인 것이다.
신성불가침의 안식처인 것이다.
거기에 하찮은 인간 따위가 들어오는 게 감히 허락될 리가 없었다.
‘돌아가자…….’
돌아가야 한다.
괜히 저 문을 두드려 그녀를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그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그녀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줄곧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언제고 기회만 되면 전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분명 같은 지구에 살고 있건만 나 따위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별에 살고 있는 것만큼이나 머나먼 존재가 된 그녀에게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려면 지금뿐인 게 아닐까?
이쯤 되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운명이 등을 떠밀어주며 만들어준 기적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린다.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하늘도 빛 한 점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지만, 지금 이렇게 떠올리는 추억 속의 그 날은 내 생에 가장 밝게 빛나는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홀로 키우는 편모가정의 자녀였다.
그날도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저녁 준비를 해놓고 식탁에 앉아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다.
혹여 내가 시간을 착각한 게 아닌가 하고 시계를 몇 번이고 확인해보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분명 오실 시간이 한참 전에 지났는데, 유독 늦으시길래……그때만 해도 나는 일부러라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늘 회식하고 오시나……라며 별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만화책이나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핸드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발신자를 보자 액정에는 내가 처음 보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또 이상한 광고 전화인가 싶어서 무시할까 했다. 하지만……보통이라면 길어야 대여섯 번쯤 울리다가 끊어지건만, 그 전화는 도저히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화는 처음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이 안 좋은 쪽의 예감은 꽤 적중률이 잘 나오기 마련이다.
그건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건너편의 여자는 어머니가 쓰러지셨으니 내게 병원으로 오라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심각한 내용과 달리 간호사의 목소리는 너무도 담담해서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오히려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이게 꿈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이란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정신없이 집 밖으로 나와 달렸다. 자신이 우산을 쓰고 있는지 또 울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큰길로 나온 나는 곧바로 택시를 잡으려 했건만, 평소에는 그렇게나 많이 보이던 택시가 그날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신경질적으로 발만 동동 구르다가 도저히 더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곧바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서 급한 마음에 빨리 교통카드를 꺼내서 찍으려고 주머니를 허겁지겁 뒤적이다가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지갑을 놓고 나온 것이었다.
버스는 이미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었고, 내 뒤에는 몇몇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가뜩이나 초조해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겹치자 완전히 뇌가 정지해버렸다.
이건 분명 내 실수인데도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겹치냐며 악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때였다.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따스하게 내 손을 잡아주는 게 느껴졌다. 거친 풍랑 한가운데에 있던 내 마음을 무척이나 잔잔하게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명이요.”
“에?”
내가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며 너무도 놀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주변의 여자들과 같은 여자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위로 보였다.
그녀는……아무 말 없이 빙긋 웃으며 다정하게 내 손을 잡고 안쪽으로 날 이끌었다. 그리고는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 자신은 어차피 금방 내릴 거라며 나보고 대신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천천히 놓고는 몸을 돌려 내리는 문 쪽으로 가서 서려고 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자락 끝을 간신히 붙잡으며 타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했다.
“고…고맙습니다. 그…연락처나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반드시 돌려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 말에 그녀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별일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마렴.”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받는 내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진 것만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내밀어준 작은 손길 덕에 나는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설령 그녀에겐 길가의 돌멩이를 치우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작은 선행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그녀에게 목숨을 구해진 것만 같은 큰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아…아니에요. 그…, 그렇지 않아요…….”
내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무언가 사정이 있다는 걸 짐작한 걸까…….
그녀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몸을 살짝 숙이더니 자리에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다음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언젠가 곤란에 처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지금 내가 네게 했던 것처럼 도와주렴.”
생긋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감히 그녀에게 반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날 진정시키려는 듯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렴.”
“분명 잘 풀릴 거야. 내 예감은 상당히 잘 맞으니까. 믿어도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내게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은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분명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스가 멈추고 내리는 문이 열렸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리려 한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녀에게 다급히 물었다.
“호……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름이라도…이름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신혜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저,저는 정현민이에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버스의 문이 닫혀버려 그녀에게 내 말이 전해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심으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녀가 내 이름을 모른다 해도, 오늘 있었던 일을 잊어버린다 해도, 나는 그녀의 이름을 평생 기억할 테니까.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 뇌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더라도 나는 오늘 있었던 일만큼은 잊지 않을 것이다.
뇌가 아니라 심장과 내 영혼에 새겨넣을 것이다.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설령 죽더라도 반드시 잊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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