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64화 (64/136)

〈 64화 〉 제63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7)

* * *

“선배가 착각한 거 아냐? 누…누가 선배 따윌 …모…몰래 본다고…….”

“응……, 역시 그렇겠지?”

공연장에 도착하고 난 뒤부터 조금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다솜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내가 간헐적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다솜에게 답했을 때, 그녀는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어째서인지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것 같고,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 것 같았지만……그거야말로 내 착각이겠지.

어쨌든 그 자리에서는 나도 그녀의 말에 대충 수긍하면서 넘어갔지만──, 누군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날 관찰하는 것만 같은 그 끈적끈적하고 음험한 시선은 실내에 들어오고 나서도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건……, 우리가 의자에 착석하고 부원들끼리 이런저런 담소를 즐겁게 나누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이 기묘한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가끔씩 이 시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하여 기습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려본다. 그럴 때마다 마침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다솜과 눈을 마주쳤다.

왠지 서로 어색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건 이것과는 관계가 없는 거겠지.

다솜이 자신에게 유독 퉁명스럽게 대하는 거 같긴 하지만……그녀의 눈에는 그 나이대 소녀에 걸맞은 풋풋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끔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노려보더라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화가 나지 않고 숙이고 들어가는 이유였다. 그러니 그녀의 시선을 내가 기분 나쁘다고 느낄 리는 결단코 없었다.

하지만──, 이 시선은 굉장히 음험하고 기분 나쁜 종류의 그 무언가였다. 자신의 모습은 철저하리만치 군중이라는 장막 뒤에 숨기고 이쪽을 찬찬히 관찰하는 듯한……위에서부터 사람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꺼림칙한 기분을 들게 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도저히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보니 자신의 감각에 확신이 안 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건 바꿔말하면 모든 행동에는 그에 맞는 동기가 존재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스스로 말하고도 몹시 슬퍼지지만, 다솜의 말마따나 나 따위를 누군가 눈여겨보며 몰래 주시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결국에는 정말로 기분 탓인가……?’

확실히 요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긴 했다. 무리다 싶을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서 쉬는 날 없이 매일 늦은 새벽까지 일했으니까.

그러다 보니……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서 신경이 예민해진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내 착각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누군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다 보니 절로 긴장이 되고 몸이 움츠러드는 게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다솜의 별거 아닌 질문에도 조금 억지로라도 텐션을 올리며 일행들과 함께 바보 같은 대화를 나눠보기도 해봤지만, 조금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만 가속되어 소변이 급하게 마려울 정도였다.

이래선 안 되겠지.

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신혜민의 중요한 공연을 앞둔 지금이다.

마음 같아서는 목욕재계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무대를 맞이하고 싶을 정도다.

시계를 본다.

담백하게 시간만을 놓고 본다면 넉넉했다. 하지만 화장실이 붐빌 걸 생각하면 빠듯해 보였다.

다녀오려면 지금뿐이었다.

옆에 있는 부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서둘러 자리를 벗어난다. 재빨리 밖으로 나와서 복도를 바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복도 반대편에서 꽤나 익숙한 얼굴의 안내 요원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훤칠한 키에 쫙 빠진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그는 안내자라기보다는 경호원에 가까운 인상인지라 다른 사람들보다도 기억에 남았다.

딱히 그와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아무래도 내가 신혜민의 공연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다 보니 이래저래 마주칠 때가 많아서 눈도장만 가볍게 찍은 상태였다.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고, 아는 사이라고 하기도 뭣해서 못 본 척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도 되지만……그러기엔 또 찝찝한 무척 애매한 관계.

결국 나는 가볍게 고개만 살짝 숙이며 인사하는 걸 선택하고 그를 스쳐서 지나쳤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더니 날 불러 세웠다.

“소년. 혹시 화장실에 가려던 참인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성실하게 답했다.

“네.”

“그쪽으로 가면 지금 사람이 너무 몰려있어서 제시간에 맞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네.”

그러자 그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답했다. 어딘가 미리 준비해둔 대본을 읽는 것만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이쪽으로 쭉 가다가 계단을 올라가서…아니, 처음부터 말로 다 설명하려니 조금 복잡하군.”

“어차피 나도 그 쪽 방향으로 가는 길이니 괜찮다면 중간까지 같이 가는 게 어떤가?”

나는 조금 떨떠름하면서도──, 내게 결코 나쁜 얘기가 아니기에 그의 제안을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딱히 서로 간에 마땅히 할 얘기도 없기에 아무 말 없이 어색한 침묵과 함께 걷기를 잠시.

또박…또박…

그렇게나 사람들로 꽉 찬 곳이었건만……, 어느샌가 복도에는 우리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마침 내가 그 사실을 조금 의아하게 여기며 약간의 의문을 품기 시작하려 할 때였다.

“혹시 자네는 7854 이 네 개의 숫자에 대해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나?”

그가 타이밍 좋게 내 사고를 끊으며 말을 건네더니 나한테 영문모를 숫자를 늘어놓았다.

전혀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없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저 4개의 숫자를.

그건 내 인생이 뒤바뀐 날과 너무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숫자인데.

그렇지만, 그건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는 나만의 소중한 보물.

어느 누구에게도 앞으로 영원히 말할 일 없이 내 안에만 고이 간직할 추억.

그러니까───────,

“아뇨. 전혀…….”

겉으로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그렇게 답했다.

저 숫자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건 분명 뜻밖의 일이지만, 아마도 우연일 테지.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일 터.

7854번 버스에서 일어났던 기적과도 같은 일.

‘나’라는 인간을 근본부터 변화시킨 내 인생에 있어 단 하나의 특이점.

그 일에 대해 기억하는 건, 분명 나뿐일 테니까.

“그런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잠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조금 아쉬운 얼굴을 하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선지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딱히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아니, 아니. 이쪽이야말로 이상한 걸 물어서 미안하네. 방금 한 말은 잊어주게나.”

“네, 네에…….”

대체 뭐였지 방금 대화는? 하루 종일 내 몸을 휘감던 기분 나쁜 시선도 그렇고 방금의 대화도 그렇고 어째 오늘은 줄곧 불가사의한 게 많은 날이었다.

무언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질척한 수렁에 한발을 걸친 것만 같은 그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자, 난 여기까질세. 이 계단을 올라가서 쭉 걸어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되네.”

“감사합니다.”

내가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가 낯간지럽다는 듯이 콧잔등을 긁으며 내게 말했다.

“뭘, 딱히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하하…….””

둘이서 동시에 기분 좋게 웃는다.

그리고──, 그의 말을 따라서 내가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가 내 등 뒤로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빌겠네.”

“네.”

나는 남자의 마지막 말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 상황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다지 깊은 의미는 없다고 판단한 현민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래에 있던 남자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는 다시 후욱 하고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이걸로 끝인 건가.”

그리고는 구석의 사각지대로 미리 치워놨던 ‘통제 구역,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경고문이 쓰여있는 팻말을 다시 입구 쪽으로 옮겨놓으며 조금 전 현민과의 대화를 상기했다.

나름 사람의 표정을 읽는 데에는 자신 있었다.

그걸 봐선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 결정적인 걸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자신이 이 이상 참견할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보내어진 의문의 편지에는 혹시 불상사가 생길까 봐 걱정되면 그를 몰래 미행하면서 지켜봐도 된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는 딱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숫기 없는 녀석이 뭔가 저지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겉보기에 평소 순한 양과 같았던 온순한 녀석들이 한번 눈이 돌아가면 정말 위험한 경우가 세상에는 허다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저 청년에 한해선 ‘어지간해서는’ 그러한 사실이 적용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매번 콘서트에 오는 그를 가끔 우연히 볼 때마다 느낀 거지만 저렇게 신혜민에게 심취한 녀석은 자신 또한 본적이 없을 정도니까──.

그는 그저 순수하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전부 희생해가면서 신혜민 하나만을 바라본다.

그건 마치 오래된 고승과도 같은 혹은 경건한 순교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태도였다.

그처럼 팬 활동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노라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그에게 부디 좋은 추억이 될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나길 바라며 응원해주고 싶단 마음이 약간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저 청년에게 지금 자신과 같은 마음이 든 사람이 작은 도락으로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이지 부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나 같은 일반인들은 도저히 모르겠군.’

그렇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오늘 일을 기억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남자의 조언에 따라 이동한 현민의 앞에 나타난 것은───,

화장실이 아니라 신혜민, 즉 여신의 형상이 머무르고 있는 대기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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