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제62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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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가을 날씨인데도 실내에 들어서자 워낙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몰려 있다 보니 그 열기로 푹푹 찌는 것만 같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자 자기들의 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도 일이었다. 곳곳에 배치된 안내 요원들이 나름 교통 정리를 해주는데도 이 모양이다.
어쨌든 현민들은 자신들의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의자 위로 털썩하고 편하게 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후우…….””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현민과 다솜 둘이서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마찬가지로 그들 옆으로 앉은 일행이 다솜을 향해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녀를 놀렸다.
“오늘따라 유독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잘 맞는구려.”
“그러게나 말이오. 마치 한 몸처럼.”
““부러워라!!!””
“자……, 잠깐! 지금 두 사람 진심으로 울고 있지 않아? 정말이지…….”
그녀도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체념한 건지 아까처럼 일일이 부끄러워하며 발끈하지 않고, 마지막엔 가볍게 흘려보내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어쩌면…다른 부원들이 자신과 현민을 자꾸 엮어주려는 걸 은밀히 즐기는 모습처럼도 보였다.
그녀가 습관적으로 음료수를 한 모금 홀짝이다가 약간 신기하다는 목소리로 현민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새삼 느낀 건데……,”
“응?”
“항상 용하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자리를 확보하네. 티켓팅이라고 하던가? 상당히 경쟁이 치열한 거로 알고있는데……특히 신혜민 같은 세계 레벨의 공연이면 더욱…….”
그녀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공연장의 좌석 배치 앞쪽에 있는 무대를 기준으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크게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자신들이 속한 그룹은 스테이지 정면에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걔 중에서 상당히 앞쪽, 즉 명당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자리였다.
‘아마……주최 측으로부터 직접 초대장을 받는 vvip석을 제외하면 일반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가 아닐까?’
한 번이면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따라올 때마다 항상 이것과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호…혹시……! 나…나와 함께 올 때는 날 배려해서 조금 무리하더라도 비싼 암표를 구한 건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자신의 머리에서 방금 떠오른 생각을 지웠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짜’인 것이다.
정말로 신혜민에게 깊게 심취해있는 신자들이었다. 아니, 일반적인 신자는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광신도라고 해야 옳았다.
그래서 여자라고 딱히 특별히 배려해준다든가 공주 취급해 준다든가 적어도 이들에 한해서 소위 말하는 ‘마이너 동아리의 공주님’과 같은 일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게다가 만약에…정말로 만약의 얘기지만 현민에게 그런 주변머리가 있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그의 둔감함 때문에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건…으음……,”
현민은 다솜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려다가 살짝 말끝을 흐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머릿속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 같았다.
다솜은 그 모습을 보며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정리를 끝냈는지 현민이 다시금 다솜을 향해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티켓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으음……역시 빠른 인터넷일까? 내 경우 당장 수강신청만 해도 집에서 안 하고 반드시 제일 설비가 좋은 피시방으로 가니까.”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정말 중요한 거?”
“그래, 시간이야.”
“바…바보 취급하는 거야? 그런 당연한걸.”
“맞아. 당연하지. 하지만……너무나도 당연하다 보니 거기에 의외의 허점이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되물었다.
“그럼 알기 쉽게 잠깐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여줄래? 초까지 나오게 말이야. 괜찮으면 다른 두 사람도 도와줘.”
선배는 내게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에 있는 다른 두 사람에게도 그렇게 부탁했다.
나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보면서도 순순히 핸드폰을 꺼냈다. 그다음 설정을 바꿔서 평소에는 시와 분만 나오는 핸드폰 시계를 초까지 나오게 했다.
내가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걸 확인하자 선배와 다른 두 사람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별다른 조작 없이 나에게 보여줬다. 아무래도 나를 제외하곤 전부 평소에 이렇게 초까지 표시되도록 설정해두었나 보다.
그리고……나는 액정에 표시된 시간을 비교해보고 살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부…달라?”
설마…아날로그 시계도 아니고 통신사와 연결되어있는 핸드폰 시계마저 각자의 시간들이 미묘하게 다를 줄이야. 물론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는 거의 정확하게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초에 이르러서는 심하면 5초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맞아. 분명 표준시간이 있음에도 이렇게 초는 싱크 때문에 조금씩 엇나갈 때가 많아. 재밌는 건 제일 정확할 거 같은 컴퓨터 시계가 의외로 오차범위가 제일 크다는 거야. 심할 땐 2분 가까이 난적도 있으니까.”
“그…그럼 이렇게나 제각각인데 어떻게?”
나는 처음 별생각 없이 물어봤을 때와는 다르게 무척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대화에서 눈치챈 것이다.
티켓팅의 본질을.
이건…잘만 알아두면 수강신청 때 자신이 원하는 꿈의 시간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우리는 티켓팅을 할 때 반드시 인터넷 시계를 써. 그것도 한 종류가 아닌 세 종류를 동시에.”
“인터넷 시계? 핸드폰 시계랑은 다른 거야?”
“그래, 네E비즘, M루시계, 타임C커 같은. 물론 이것들도 살짝 오차가 있어서 그때그때 아주 미세하게 다르긴 하지만……어쨌든 저 셋을 각자 기준으로 잡아서 프로그램을 돌리면 어지간하면 셋 중에 한 명은 당첨이거든.”
선배의 말이 끝나자 옆에서 선배의 말을 잠잠코 듣고 있던 통통한 선배가 흥분한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소. 티켓팅은 0.001초의 세계에서 생과 사가 갈리는 전장. 거기서 0.1초의 오차면 대국에서 상대방보다 10분은 더 수읽기 시간을 지닌 것과 다름 없다오.”
……항상 그렇듯이 무슨 소린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단 건 알겠다.
내가 속으로 조금 전 들었던 사이트 이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잘 기억해두려고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치더니──,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건───!””
“실패하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암표를 사고 말겠다는───.”
“용기야!!!”
“기합이라오!!!”
“의지요!!!”
“그때 특별 콘서트 티켓을 결국 암표로 사야 할 때는 아무리 우리라도 정말로 손이 떨렸지…….”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은 나는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졌다. 눈물을 흘리며 당시의 뜨거웠던 열정들을 토로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아연실색했다.
‘아…이 녀석들 정말 구제 불능인 바보들뿐이다.’
…
잠시 후──, 세 사람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현민 선배가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화장실 좀 얼른 다녀올게.”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두르시구려.”
그리고──, 선배가 자리를 벗어나 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을 때였다.
내가 야간의 허전함을 느끼고 있을 때──,
홀쭉한 선배와 통통한 선배가 동시에 오른쪽 손바닥을 쫙 편 다음 자신들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다음 중지 손가락으로 안경을 쓱 고쳐 쓰더니 평소 장난스러운 태도의 그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괜스레 나까지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마른침을 꿀꺽하고 목 너머로 삼킨다.
절로 등이 꼿꼿이 펴지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기 위해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들이 그런 내 긴장을 풀어주듯이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공주,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오.”
“우리들 사이에 섭섭하게 왜 그러시오?”
‘우…우리 사이라니? 대체 우리들이 무…무슨 사이라는 거야?’
나는 속으로 무척 당황하면서 곧바로 그들에게 빼액하고 소리 질렀다.
“아…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뭐, 그렇소만. 이렇게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아무리 우리라도 마음이 아프구려.”
읏──!
어쨌든 자신이 속한 동아리의 선배들이고,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잘 돌봐주는 어떻게 보면 은인들이었다. 순간 너무 매정한 게 말한 게 아닌가 싶어 반성하려던 차였다.
작고 통통한 쪽의 선배가 무척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핏 봐선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실 여자와 그다지 인연이 없다오.”
“………………………………”
…아뇨, 딱 봐도 알겠는데요.
너무도 어이없는 폭탄 발언을 들은 내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듣자마자 내 안에 떠오른 말을 입 밖으로 간신히 내지 않고 삼켰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었다.
내가 나 자신의 인내심과 싸우고 있을 때 이번에는 홀쭉한 선배가 바통을 이어받아 내게 말했다.
“후후……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사실 ‘리얼충 따위 전부 죽어버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합니다.”
“……”
“그런 저희들 입니다만, 아 그래도 부디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저희가 여자를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신혜민님을 놔두고 다른 여성분을 마음에 품지 않으려고 스스로 여성을 멀리하는 거니까요. 어쨌든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은 ‘저건’ 예외란 거지요.”
아마……현민 선배를 가리키는 거겠지. 그들의 말으며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런 사람들이지만 나랑 선배 사이를 순수하게 응원해주는구나.
이런 게 남자들의 우정이라는 걸까.
……라며 내가 속으로 살짝 감동하고 있을 때였다. 곧바로 내 훈훈함을 박살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 저 녀석은 정말이지 진짜 중에서도 진짜란 말이오. 이대로 계속 여신님께 빠지면, 우리와는 달리 나중에 그가 범죄라도 저지를까 봐 진심으로 걱정이 될 정도라오.”
“음음. 그렇지.”
통통한 선배가 홀쭉한 선배의 옆에서 고개를 적극적으로 끄덕이며 열심히 맞장구를 친다.
‘아니……신혜민의 사진 위로 ‘신혜민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든가, ‘나의 보배가 되신 신혜민님!’ 같은 낯간지러운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힌 티셔츠를 입고서는 나한테 다른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란 말을 해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세상에서 제일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정말이지 이 사람들은 신혜민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무엇에 심취해있었을까……. 나는 조금 상상하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어쨌든…… 내가 너무도 황당무계한 말을 들어서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패닉에 빠졌을 때였다.
무척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갑자기 두 사람이 진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 부디 못난 저 친구를 잘 부탁한다오.”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녀석의 좋은 점을 알아봐 주는 소저가 아니면……, 평생 여자와 인연이 없을 녀석이라오.”
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친구를 위해 자신들보다 나이 어린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친구를 부탁하는 그들의 열의를 접하고 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언제나……, 내 마음은 이대로 영원히 선배에게 닿지 않는 게 아닐까라며 속으로 끙끙 앓았다. 하지만 이렇게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지금까지 줄곧 현민 하나만을 향했던 자신의 한결같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보답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무릎을 꿇고 땅만 쳐다보여 울고 있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힘차게 웃어 보이며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댁들에게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거든?!”
“그……, 그 바보는 역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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