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제61 화 막간(??) 2 가장 고매한 위선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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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도중에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다솜과 현민 두 사람이 무사히 공연장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신혜민의 모든 콘서트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현민에겐 분명 익숙한 광경이건만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입이 떡 벌어진다. 현민이 그럴 정도니 다솜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조금 걱정되는지 곁에 있는 현민에게 물었다.
“먼저 온 두 사람 찾을 수 있을까?”
그녀의 질문에 현민도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게…….”
두 사람이 그런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한두 줄로 섰다가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이다.
그만큼 안내요원들도 다른 공연보다 훨씬 많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공연에 온 팬들 때문에 혹여라도 다른 행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는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안내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줄이 굉장히 복잡하게 여러 번 꺾여지도록 줄을 쳐놓고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단순한 사각형 형태로 사람들이 밀집되어 서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쪽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다음 자신들의 일행을 찾을 때까지 인파를 헤치며 앞쪽으로 나아갈 자신이 안타깝게도 두 사람에겐 없었다.
근본적으론 둘다 소심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의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나……. 어차피 조금 있다가 안에 들어가면 만날 테니까.”
그렇게 말한 뒤 현민은 곁에 있는 다솜에게──,
“나랑만 있으면 조금 지루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줘.”
멋쩍은 듯 웃으면서 덧붙였다.
“따…딱히.”
‘조……좋았어!!!!’
그다지 흥미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답한 다솜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두 팔 벌려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기쁨의 춤이라도 추었을 기세로 그녀는 현민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난 상황에 속으로 좋아 죽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저 앞쪽에서 한 사람이 줄 밖으로 살짝 튀어나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 것이다.
그녀 혼자만 목격했다면 애써 못 본 척하고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딴청을 피웠겠지만, 자신에겐 그렇게나 둔감한 현민이 이럴 땐 또 귀신같이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가자.”
다솜에게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가는 현민.
“응…….”
다솜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에게 그렇게 답한 후 곧바로 그를 뒤따라 가며 속으로 작게 먼저 온 두 사람에게 투덜거렸다.
‘칫…그 두 사람은 기왕 도와줄 거면 끝까지 도와주지. 왜 하필 마지막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온 두 사람도 현민 못지않게 신혜민에게 홀려있는 극성 신자였다. 엄밀히 말하면 신혜민보다 현민을 생각하는 자신이 이 동아리에선 이질적이었다.
이렇게 신혜민의 공연을 코앞에 둔 지금 그들 머릿속은 온통 신혜민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 따위 안중에도 없겠지.
아마 같은 동료인 현민과 모여서 같이 신혜민을 찬양하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근질근질했을 것이다.
자신이 옆에서 볼 땐 맨날 했던 똑같은 얘길 또 하고 또 하는 거 같은데, 그들은 아닌 거 같았다.
자신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질려 죽겠는데, 그들은 매번 눈을 반짝이며 열성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얘길 했다.
뭐, 애초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의 배려 덕에 조금이나마 선배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니까……, 내가 이렇게 투덜거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긴 하지.
‘나중에 선배가 안 보는 곳에서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할까.’
그렇게…
현민과 다솜은 괜스레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 마치 죄인처럼 고개조차 똑바로 들지 못하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라고 연신 사과하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의심해봐야 했다. 먼저 온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녀와 현민이 도착한 걸 알아챌 수 있었는지를──.
그들이 이렇게나 현민과 다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를 그녀는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신혜민의 공연에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작은 모험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어느 때든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인파를 뚫고 다솜과 현민이 일행에게 합류했을 때였다.
먼저 온 두 사람이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었다. 둘 다 무척이나 동그랗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썼지만, 한 명은 키가 크고 홀쭉했고, 다른 한 명은 대조적으로 작고 통통했다.
“후후후, 오셨구료.”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솜의 살짝 젖어있는 눈가와 아직 두 뺨에서 사라지지 않은 옅은 홍조를 예리하게 캐치하고는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 그녀가 불길한 느낌에 움찔하고 몸을 떨며 그들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처럼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녀의 팔을 양쪽에서 덥석 붙잡았다.
그녀의 등뒤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들은 그녀를, 그들의 미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물어서 함정에 빠져버린 무척이나 귀여운 후배를 실시간으로 놀리기 위해서 언제 오나 계속 그들이 오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곧바로 무척이나 짓궂은 장난기 가득한 연극조로 만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보게 왓슨, 자네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거이거, 홈즈, 아무래도 자네 생각대로 잘풀린 것 같네만.”
““크크크””
그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기분 나쁘게 웃는 두 사람.
“역시 오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연애 혁명이 일어났는지 꼭 들어야겠는걸”
“저…정말이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얼굴을 홍당무처럼 뻘겋게 물들이고 부들부들 떨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그렇게 빽! 하고 소리 질렀다.
“자아, 두 사람도 그쯤 해둬. 후배가 아무리 귀엽더라도 너무 괴롭히지 마.”
옆에서 보고 있던 현민이 천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어째선지 다른 세 명이 동시에 현민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건 마치 다솜을 제일 괴롭히고 있는 네가 할 소리냐? 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 같았다.
‘어……어라? 나 혹시 그녀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나?’
자신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세 사람의 그런 일관된 시선에 아무리 둔한 현민이라도 뭔가 이상하단 낌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잠시 당황했지만……, 역시 짚이는 게 없기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자, 줄곧 서 있느라 힘들었지? 오는 길에 신제품이 나왔길래 사 왔어. 이거라도 마시면서 목 좀 축이고 있어 줘.”
현민에게 음료수를 건네받은 두 사람은 눈을 빛내며 곧바로 품평회를 열기 시작했다.
“오옷?! 우리 여신님께선 또 언제 이런 모델을? 소위는 알고 있었소?”
“전혀 몰랐다오.”
“아직 그 어디에도 비공개인 거라니──, 이건 귀한 거구료. 감사히 먹겠소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현민에게 받은 음료수를 마치 사전에 짜 맞추기라도 한 행동처럼 둘이서 동시에 절도 있는 포즈로 뚜껑을 땄다.
그런 다음 단번에 벌컥벌컥 마시더니──,
뜬금없이 처억! 하고 다솜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번갈아 가며 외쳤다.
“아니! 이 맛은──!”
“거짓말하는 맛이로군──.”
“자아…귀여운 후배군. 빨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편해지게나.”
“저…정말이지. 무섭게 왜 이러는 거야! 아…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의미를 모르겠네……. 잠깐 애초에 끝난 게 아니라 이거 계속하는 거였어?!”
다솜이 부끄러움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두 사람에게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본인은 몰랐겠지만, 보는 사람이 어딘가 무척이나 후련해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넷이서 오순도순 잡담을 나누며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현민이 안절부절못하길래 계속 현민만을 힐끔힐끔 훔쳐보던 다솜이 그의 이변을 재빨리 알아차리고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 왜 그래?”
다솜의 질문에 현민이 조금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흐…흐음……! 자…자의식 과잉 아니야? 누누누누누…누가 선배따윌 몰래 훔쳐본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속으로 무척이나 뜨끔했다.
‘아뿔싸! 아까부터 손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선배의 옆모습을 계속해서 몰래몰래 쳐다보던 게 들킨 걸까.’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괜히 찔려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험악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정말이지 이러려던 게 아닌데…….
“그런가……? 응. 그렇겠지. 아마 내 착각인가 봐. 뭐,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자신을 걱정해주는 후배에게 현민은 이 이상 걱정을 끼치게 하지 않기 위해 일단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 화제를 일단락 짓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역시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게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어서……역시 자신의 착각인 거로 치부해야 하나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 이제 들어가도 되나 봐. 얼른 안으로 가자.”
줄곧 현민을 보아왔던 다솜이었다. 그가 현민의 그런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현민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조금 과장된 억양으로 마침 문이 열렸기에 얼른 들어가자고 했다.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진 그녀를 보며……,
현민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다솜도 신혜민의 콘서트가 정말 기대되나 보구나……라고 좋을 대로 해석하며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그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공연장 안으로 사라지고 나자……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 안내 요원이 조용히 그들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발걸음은 하나의 총성이었다.
정현민과 권다솜.
두 사람의 지금까지의 일상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커다란 비극의 시발점이 될 악의로 점철된 일그러진 변혁의 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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