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제56 화 막간(??) 1 암운(?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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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은과 강성우 두 사람이 이코노클라스트(우상파괴)로의 여정을 떠났을 때였다.
두 사람이 이 땅에서 지워버리고자 하는 우상.
즉, 지상에 일렁이고 있는 여신의 그림자이자 이 별의 여인인 신혜민.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넓은 대기실에 홀로 있었다. 대기실 내부에는 이렇다 할 만한 장식이 아예 없어서 무척이나 간소했는데 이는 그녀의 명성을 생각해봤을 때 쉽게 떠올리기 힘든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그녀는 그저 한쪽 구석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편한 자세로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무대를 앞에 두면 아무리 숙련자라도 누구나 긴장이 되고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중요한 무대일수록 그 성향은 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톱스타들의 경우에는 종종 큰 무대를 앞에 두었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더 평소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대기실과 관련해 무척이나 기상천외한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기실 커튼을 아이스 블루 색깔의 시폰 계열 천 중에서도 블루 혹은 블랙을 겹쳐달라는…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게 무슨 소린지 감도 잡히지 않을 커튼을 요구하며 실내온도는 반드시 23.8도를 유지해달라는 정도는 뭐, 애교 중의 애교였다.
동물을 애호하는 스타는 의상이나 의자 등에 있어 모피나 가죽이 들어간 제품은 절대 안 된다며 음식도 고기를 들이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 스타가 떠난 뒤에 다른 스타는 대기실을 맨발로 다닐 경우를 대비해 카펫을 깔아야 한다고 했는데, 반드시 치타와 표범 같은 동물무늬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어느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주최 측으로서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많았지만…그래도 이 정도는 허용범위 안이었다.
정말 심한 경우 공연에 참가하는 자신의 스태프 200여 명이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커다란 대기실을 요구해서 주최 측의 골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신혜민 그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장식은 자제해달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왜냐하면…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그녀 안에 전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서준 이외의 모든 것은 그녀에겐 쓸데없는 불순물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은 중요한 자선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공연과 관련 상품의 수익 전부를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 기부하기에 그녀에게 돌아오는 직접적인 이득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그녀에겐 이런 자선공연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무대였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는 후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악수회도 잡혀있는 둥 이래저래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이 잡혀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연 때까지 시간이 꽤 남아있어서 상당히 한가했다.
마지막 리허설 까지 순조롭게 끝낸 지금 더는 공연과 관련해서 준비할 것도 없었기에 의식을 자기 자신 안으로 침전시켜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둔다.
그녀에겐 활동 중에 몇 안 되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다양한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특히 그녀의 주의를 끈 것은 앞으로 그녀의 행보에 관해서였다.
‘아마도…곧 있으면 은퇴해야겠지.’
그다지 간절히 원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과 서준이 은혜를 입었던 시설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신을 곧바로 쓸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방법뿐이었으니까.
그래도…이런 자신을 좋아 해주고 응원해주며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비록 덜한 편이지만 사람들이 어떠한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아이돌을 보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나쁘다고 폄훼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들의 후원에 힘입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이상 아이돌로서 혹은 가수로서 활동하는 중에는 그들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서준과 이어지고 나면 더는 그럴 수도 없겠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것들을 전부 내려놓는 데에 아쉬움 따윈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친 이상 서준과 함께 있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마음의 빚을 청산하고 서준과 편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한가지 미련이 있다면……
으음…
아무것도 없는 어둠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심상의 세계에서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그동안 그녀가 쭉 걸어왔던 길이 펼쳐졌다.
거기에는 그녀의 노래로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 안에 없었다.
그렇다면…마지막 정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녀가 그렇게 다짐한 순간 세계가 반전했다.
어두운 하늘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따스한 봄 햇살이 비친다. 그녀를 중심으로 햇살과 함께 꽃들이 만개하며 퍼져나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운다.
생의 멜로디가 그녀 주위를 감싼다.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노래.
그건 그녀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곡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다정한 노래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범인이 평생을 바쳐도 만들 수 있을지 의심되는 기적의 곡이 순식간에 그녀의 안에서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 유독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무척이나 꺼림칙한 두 개의 나무 같은 게 나타난 것은.
그것은…별의 은총으로 충만한 그녀의 내면 세계에 유일하게 안개가 낀 듯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에게 불길한 느낌을 들게 했다.
이대로 무시할까도 했지만…
중요한 무대를 앞둔 순간이었다.
‘마음속에 미혹이 꼈다면 외면할 게 아니라 가능하다면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
‘적어도…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뒤숭숭하게 만드는지는 확인해야 할 터였다.’
천천히…
하주 천천히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읏…!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지고 시체처럼 차가운 손에 심장을 잡힌 것만 같은 서늘한 감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등 뒤에서 사갈이 숨을 죽이고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이 감각은…
분명 전에도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이었다면 우연이나 자신의 착각으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두 번은 웃으면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표층 의식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무의식중에 무언가 내 몸에 미칠 위험을 감지하고 이렇게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딱히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원망을 살 일을 한 기억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일 뿐.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데에는 사실 그다지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 사실을 부정할 정도로 세상의 더러움에 무지하진 않았다.
자신의 그런 심란한 마음이 반영되었는지 검은 하늘을 몰아내고 빛으로 충만했던 세계에 다시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로 했던 불길한 나무의 형태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그 가까이에 왔을 때 너무도 놀라 그 자리서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삼키고 말았다.
멀리서 두 그루의 재액의 나무라고 보였던 그것은……
한 그루의 나무에 시체가 목을 매달고 있던 것이었다.
두근…!
두근…!
너무도 생생한 모습에 등 뒤로 소름이 돋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떨리는 손길로……
시체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치우고 얼굴을 확인하자……
히익!!!!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눈을 크게 부릅뜨고 대기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자신이 본 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체는 구더기에게 파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이 퀭하니 파여있었고 그렇게 파인 눈과 입에서 꿀렁꿀렁 거무죽죽한 죽은 피를 흘리고 있어서 언뜻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건 분명 그녀의 얼굴이었다.
대낮인데도 한밤중에 홀로 귀신을 본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느껴져 사람을 부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금방 진정을 되찾고 그만두었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머리를 맑게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해본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거나 그게 아니면 그에 준하는 위험이 자신을 덮치리란 걸 자신의 무의식이 경고해준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노린다라…”
그녀는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며 거기서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나는 무대 위에서였다.
자신에게도 분명 한가지 약점은 있었다.
하지만…그 단 하나뿐인 약점은 조금 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
자신의 시체의 형태로 나타난 불길함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단 하나뿐인 약점이 사라진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 선택이 그렇다면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싶진 않았다.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이쪽도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 십만의 군세보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한 자루 화살이 때론 더욱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던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 외에는…역시 날 직접 노리는 거겠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이쪽은 경비를 강화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좀 더 매사에 경계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불확실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자 마음에 여유를 되찾았다.
시계를 바라보자 아직까진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기분전환 할 겸 한 바퀴 걷고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대기실을 나와 한동안 걷고 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한 청년이 자신을 발견하고는 움찔하고 몸을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몸을 돌리고는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게 보였다.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기에…
그의 등 뒤로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인사한다.
“혹시 현민이니? 현민이 맞지? 항상 공연에 와줘서 고마워!!!”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길을 재빨리 달리며 되돌아가고 있는 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그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아주 살짝 고개를 이쪽을 바라보며 꾸벅하고 고개를 숙인 것만 같았다.
후후…!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자신의 오랜 팬 중 하나인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을 봐서 그런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중충했던 기분이 확실히 나아진 것 같았다.
‘한 바퀴 돌러 나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일지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든 것을 떨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금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몰랐다.
이 만남이…
그녀의 별거 아닌 친절이…
불화의 씨앗이 되어 재앙의 나무로 자라나리란 것을.
그녀와 비교하면 너무도 하찮은 재능을 가진 송나은의 폭군 같은 오기와 열등감이 신혜민 그녀조차 쉽게 벗어나기 힘든 거스를 수 없는 자연력으로까지 이 시점에 이미 이르렀다는 것을……
신혜민 그녀가 알 도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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