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56화 (56/136)

〈 56화 〉 제55 화 닫힌 세계의 두 사람 (16)

* * *

처음에는…

내가 착각인 줄 알았다.

아니, 내가 착각해서 잘못 들었다고 믿고 싶었다.

사장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온 너무도 무거운 이름.

나오지 말아야 할 이름이, 어지간해선 나올 일이 없는 이름이 사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긴장으로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 가능한 한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을 때였다.

“훗…그 얼굴을 보아하니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어서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로군.”

사장이 딱딱해진 공기를 풀려는 듯이 그답지 않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조금 짓궂게 씨익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아뇨, 딱히 그런 건.”

내 입에서 무의식중에 얼버무리려는 말이 나왔지만, 그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듯이 사장이 곧바로 끊었다.

“굳이 답을 말하자면 처음부터다.”

“네?”

나는 사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바보처럼 되물었다.

“뭐, 자네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하네.”

“왜냐하면…정확히는 자네가 아니라 신혜민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괴물을 처음 봤을 때였으니까…….”

“그…그게 대체 무슨……….”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바보처럼 그저 같은 의문을 반복한다.

사장은…

그가 신혜민을 처음 본 순간 내가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걸 눈치챘다고 지금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반대로 그 전까지는 몰랐다는 의미였다.

“후후…자네가 그렇게 진심으로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군. 이게 그대의 맨얼굴이라는 걸까. 이편이 자네에겐 더 어울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말일세.”

“감사합니다…….”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무난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거였다.

한 명이 알아차렸다면 다른 사람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계획의 근간이 무너지는 거였다.

이것이 사장 혼자만 알아차린 것인지 사장에게서 그 과정을 상세하게 들어서 정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내가 조급한 마음으로 사장에게 질문을 재촉하려 할 때였다.

사장이 애가 타는 내 속과는 반대로 느긋하게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내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말도록. 어차피 지금부터 할 얘기는 이번 앨범을 작업함에 매우 큰 영향이 있는 이야기니까 말일세.”

“네…, 경청하겠습니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밑에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사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사장은 내 대답이 무척이나 흡족했는지 그렇게 기분 좋게 말하며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자네는 이 연예계에 발을 담그려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사장의 선문답과도 같은 뜬금없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역시나 이번에도 말끝을 흐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사장이 만족할만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내 보려고 두뇌를 풀 가동했다.

하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류의 문답은 대게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답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제시한 답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에 달려있었다.

내 안에서…

무수한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곧바로 다시 떠나갔다. 그것들을 꽉 붙잡을 수 있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장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이 남자에겐 칭찬받고 싶다.

그런 마음들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며 한줄기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답하지 못하는군.”

사장이 조금 음울한 목소리로 그런 내게 말했다.

“그…그런…”

나는 무언가 변명하려다가 급하게 말을 끊고 사장에게 면목없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딱히 자네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정답이었으니까. 자네의 안에 없는 걸 말하라고 해도 무리한 주문인 거겠지.”

“대체…그게……?”

“이 업계에 스스로 찾아오는 모든 자들이 하나같이 가지고 있지만, 자네에겐 결여되어 있는 것…그것은 에고다.”

“자아 말씀입니까?”

내가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어조로 사장에게 되물었다.

신혜민을 끄집어내리고 서준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를 준비가 되어있는 극단으로 치우친 나만큼 에고로 점철되어있기도 힘들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그렇고말고. 너에겐 에고가 없다.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일절 없다.”

“오히려…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뿐이지.”

나는…사장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얌전하게 이어지는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흔히들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3가지 큰 욕구라 하면 식욕, 성욕, 수면욕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게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들에 비견되는, 혹은 때와 사람에 따라서는 저 세 가지 욕구를 한꺼번에 아득히 뛰어넘는 욕망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리고…이 갈 곳을 잃은 욕망을 스스로는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서 그것들을 발산할 장소를 원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게 바로 연예계라는 이름의 복마전이지.”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남들에게 인정받길 원한다.”

“그들에게도 물론 평소 동경하고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단 거지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진정으로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인정받는 거니까. 자신을 버리면서 타인이 되어서야 본말전도다.”

그렇게 말한 뒤에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금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쉰 다음 마찬가지로 깊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혹시 과거를 회상하기라도 하는 걸까. 조금 아련한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너는 달랐다.”

“네가 처음 내게 왔을 때…너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싫어서…자기 자신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을 연기하려 하고 있었지.”

“다만 네가 연기하고자 하는 인물이 너무도 몽환적이어서…누구를 연기하려는 건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인지를 초월한 너무도 고결한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따라 하려고 헛된 몸부림을 치는 것만 같았으니까.”

과연…

과연 그랬던 건가.

나는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신혜민 그녀를 처음 보신 순간 제가 누구를 피해서 도망쳐 왔고 그럼에도 그녀처럼 되길 소망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셨던 거군요.”

그런 맹점이 있었을 줄이야.

나 따위가 아무리 그녀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녀를 따라 해 봤자 그녀의 신성을 발톱의 떼만큼도 본받을 수 없다는 걸 나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내 간절한 원망을 눈치채지 못하리라며 마음 어디선가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알아차린 사람이 나왔다.

사장은 무척이나 정확하게 나를 간파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문이었다.

그때 사장이 날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아아…그 점은 걱정하지 말도록.

이건 자네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나였기에…

자네와 마찬가지로 자기애로 가득 찬 이 업계에서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이물질인 나이기에 알 수 있었던 거니까.”

“…”

“그런 건가요. 솔직히 조금 안심했습니다.”

“그리고…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네만. 그것과 더 이상 엮이는 것은 그만두어라. 사람의 업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장은 ‘그녀’를 ‘그것’이라고 의도적으로 강조해서 불렀다.

사장의 안에서 이미 그녀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 된 거겠지.

“…라고 해도 네겐 소용없는 말이겠지.”

나는 살짝 고개를 끄적이며 사장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래. 결단코 포기할 수 없다면 기왕 독하게 마음먹은 거 그녀를 이기는 걸 목표로 하도록.”

나는 사장의 말에 너무도 놀라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제가…그녀를 이길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분명 낮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이번에 널 위해 준비한 곡은 그걸 위해 존재하는 노래다.”

!!!

“다만…그러기 위해서는…우선 네가 네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이건 너의 노래.”

“서툴러도 좋으니 너 자신이 네 목소리로 부르는 것에 의미가 있다.”

사장은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꽉 붙잡자 그가 말했다.

“그럼…가볼까.”

“여신을 죽이고. 그 그림자마저 이 땅에서 지우기 위한 여행을…….”

그렇게…

나와 사장이 신혜민이라는 이 별의 축복을 한몸에 받은 여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무모한 의욕으로 가득 차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레코딩 하우스로 서둘러 돌아가던 길이었다.

털썩…!

누군가 저 앞에서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 소리에 놀라 무슨 일인가 싶어 무심코 그녀에게 힐끗 시선을 주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눈물점이 자극적인 무척이나 요염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본 사람처럼…

몹시도 놀란 눈으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그 자리서 사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결국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사장을 향해 중얼거렸다.

“혹시…성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사장의 이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사장의 발걸음이 뚝 하고 그 자리에서 멎었다. 그리고 사장 역시 그녀를 향해 조금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