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제53 화 닫힌 세계의 두 사람 (14)
* * *
내 눈물을 핥아준 사장은 다시 한번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손에 내 손을 포갠 뒤에 한동안 애완동물처럼 그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의지가 되는 남자에게 애교부리고 귀여움받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란 생각을 하며 사장의 크고 따스한 손길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사장이 느긋하게 등을 나무에 깊숙이 기대며 편한 자세로 앉았다. 나 역시 곧바로 그를 따라 몸을 움직인다.
그에게 시중을 들 듯이 바로 곁에 착 달라붙어 앉는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주인의 무릎에 앉아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사장의 무릎 위에 엎어진 뒤 그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사장은 그런 내 머리와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나는 그녀를 뒤따라 곧바로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두각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
“나는 철저할 정도로 그녀의 조연이었지만 거기에 불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즐거운 한때였으면 모를까.”
“후후…그녀는 상당히 제멋대로라서 말이지, 청소하기 엄청 싫어하면서도 우리가 지금 묵고 있는 레코딩 하우스의 주인아저씨께 떼를 써서 매일 청소하는 조건으로 방과 후에 레코딩 하우스를 짧은 시간이지만 빌릴 수 있게 허락을 맡았지.”
“그때 아저씨가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라는 의미가 담긴 눈으로 날 쳐다보던 게 생생히 떠오르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언제나 청소는 내 전부 내 몫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 뒹굴뒹굴 거리면서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거나 혹은 청소가 끝날 때까지 만화책만 보고 있었지.”
사장의 얘기를 들으며 당시 사장의 모습을 상상한다. 장난기 많은 소녀에게 휘둘리는 나날. 조금은 어처구니없거나 난처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이런 건 반한 쪽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는 걸 기분 좋게 여기는…
사장이 열심히 청소하다가 그녀를 힐끗 쳐다봤을 땐 그녀가 뒹굴거리며 딴짓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는 거 같았겠지만, 아마 사장이 청소에 집중하느라 그녀를 안 보고 있을 때는 그녀가 사장이 자신을 위해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장담해도 좋았다.
이건 같은 여자로서의 감이니까.
그건 무척이나 따스하고 부드러운 일상이었겠지.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전에 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사장에게 말했다.
“즐거우셨겠네요.”
“그래, 정말이지 더없이 즐거운 나날이었다.”
“특히나 그때까진 자기 객관화가 안 되던 시절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것도 크게 작용했었지.”
“적어도 그녀의 곁에 있는 게 허락될 정도의 재능은 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작은 마을에 갇혀 지냈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고양감으로 온몸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건…남들보다 조금 빨리 태양같이 빛나는 그녀를 해바라기처럼 줄곧 뒤쫓은 덕분이었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준비해서 앞서있을 뿐이었건만……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마냥 즐겁고 충실한 나날이 이어지리라 믿었었다.”
“지금 와서 곰곰이 떠올려보면 ‘정말 내가 그녀 곁에 있어도 되는 걸까?’라며 이따금 엄습하는 불안을 애써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하다만.”
“뭐, 어쨌든 아니나 다를까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역시나 거기서도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만 어째서인지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그녀가 차츰 멀게 느껴지더군.”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 얘기가 아니었다. 이건 근본적으론 나와도 같은 얘기였다. 나는 절로 숙연해져 사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런 내게 사장이 말했다.
“이번에 네 가사에 붙은 곡은…그때의 내가 끝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박혀있던 가시였다.”
“평생 완성하지 못한 채 이대로 그 미련함이 새겨넣은 상처에 좀먹힐 거라 생각했지만……”
“그날 밤 네 방에서 네 마음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던 구겨진 메모를 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어째서 끝끝내 그 곡의 다음을 쓰지 못했는지를…….”
나는 어느새 그의 무릎을 베고 있던 얼굴을 돌려 다시금 밑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을 위로 뻗어 그의 얼굴을 무척 사랑스럽다는 듯이 매만진다.
손끝에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면도 자국이 간지러우면서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무심코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의 희미한 수염 자국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나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어째서였죠?”
“그녀가 내게서 멀어진 게 아니라 내 연약한 마음이 그녀로부터 멀어졌던 거였지.”
“…”
나는…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장이 그렇게 느낀 데에는 그럴만한 무언가가 있을 테지.
그걸 내가 부정할 순 없었다.
대신 나는 아무 말 없이 상체를 일으킨 다음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그가 오른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내 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말했다.
“얼마 전 꿈을 꾸었다.”
“꿈이요?”
“그래…한 여자를 보았지. 뒷모습뿐이었지만…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녀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단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였지.”
“그래서 어떻게 했죠?”
내 질문에 그는 처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딱히…”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너무나도 반가워서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알고 싶었고, 내친김에 연락처도 교환하고 싶단 마음뿐이었지.”
“하지만…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그제야 이게 꿈이란 걸 깨닫고는 이젠 꿈에서조차 그녀에게 한마디도 걸지 못하게 된 자신의 한심함에 절망하며 깨어났다.”
“…”
그 말을 끝으로 사장은 내 가슴을 주물럭거리던 걸 멈추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다음 다시 후욱 하고 깊게 내뱉는다.
“정말이지…꼴사나운 이야기지.”
“…”
굉장히 씁쓸한 표정.
나는 사장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그다음 한 손으로 사장이 손에 들고 있는 담배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빼내었다.
그다음 사장이 피던 담배를 입에 물고 조금 전 사장이 했던 것처럼 깊게 들이마신 다음 숨을 뱉어낸다. 처음 펴보는 거라 기침이 콜록콜록 나올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아무렇지 않은 척 참으며 바닥에 꾹 하고 문지르며 불을 끄는데에 성공했다.
그다음 조금 상쾌한 목소리로 사장에게 말했다.
“네. 하지만…저도 그러는걸요.”
내가 수줍은 듯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사장 역시 가볍게 훗 하고 미소지으며 내게 답했다.
“그런가…자네도 그랬던 건가.”
“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사장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잠시 마주 보는 상태로 앉은 우리는 한동안 지그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입맞춤했다.
쪽…
쪽…
하움…
웅…
하아…
하아…
다시 한번 사장과 이어지고 싶다.
천천히…그리고 차분하게 사장과 서로의 혀를 휘감으며 입맞춤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왼쪽 팔로 그의 몸을 껴안고 왼손으로 그의 등을 다독이며 오른손으로 주섬주섬 다시 사장의 벨트를 끌고 그의 물건을 꺼내었다.
몇번이고 사정을 해서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잠시 쉬는 동안 체력을 회복해서였을까 아니면 사장도 나와 같은 마음 때문일까 무척이나 뜨겁고 기운차게 서 있었다.
사장에게 미소지으며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려 그를 다시 한번 내 안에 받아들인다.
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상당한 양의 정액이 그대로 밖으로 흘러내렸었다. 그럼에도 밖으로 배출된 만큼의 정액이 여전히 내 음부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이 애액 역할을 대신한다.
사장의 물건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수월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하…윽……!
움…
응…
쪽…
쪼옥…
그렇게 서로 이어진 상태로 서로의 몸을 꼬옥 껴안고 계속해서 천천히 입술을 맞추며 교감을 나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아찔 했지만 하반신을 천천히 문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응…
음…
하움……
결코 격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서로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느낄 수 있는 감미로운 섹스는 질 안에 있는 주름 하나하나가 내 안에 있는 사장을 감싸고 있는 게 느껴져서 이건 이거대로 무척이나 황홀하게 느껴졌다.
응…
움찔…움찔…
허리가 저릿해지며 조금씩 하반신이 다시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성감이 고조되어 애액도 슬며시 분비되기 시작하며 나는 가벼운 절정에 이르렀다.
동시에…
사장 역시 내 안에 기분 좋게 꿀렁꿀렁 사정했다.
하아…
하아…
우리는 그 상태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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