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49화 (49/136)

〈 49화 〉 제48 화 닫힌 세계의 두 사람 (9)

* * *

그다음 나와 사장이 이동한 곳은 유치원에서부터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였다.

오는 동안 몇몇 사람인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사장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우리를 므흣한 시선으로 봤지만…

그 시선은 뭐랄까……

요즘 보기 드물 정도로 사이좋은 부녀를 보는 흐뭇한 시선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사장과 내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내연녀로 여겨져 뒤에서 수군거리며 손가락질받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만…

하다못해 백번 양보해서 오누이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뭐……사실 상관없지만.

단순히 나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고.

애초에 그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장의 손을 잡았을 때 그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행동하겠노라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됐나 보다.

우리가 초등학교 정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느 학교나 으레 그렇듯이 이 학교도 마찬가지로 교문 정면에 있는 본관 위쪽에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시계가 달려있었다.

시곗바늘은 12시 20분을 막 지나고 있는 참이었다.

운동장에는 급식을 재빨리 먹고 밖으로 나온 몇몇 아이들만이 공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 구석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간다.

“여기도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 나무만은 그대로군.”

초등학교에 그렇게까지 변할 게 있나 싶단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장에게 묻는다.

“그 말씀은?”

“페인트칠도 내가 다닐 때와는 딴판으로 알록달록하게 해놨고, 전에는 없던 새로운 건물들이 몇몇 생긴 탓도 있겠지만……단순히 그런 것만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곳에 온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라는 생소함이 제일 많이 드는군.”

“그래, 당시에는 그렇게나 크게 느껴졌었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아주 조금뿐이었지만 사장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거겠지.

내가 너무 감성에 젖어 깊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내 손과 맞닿아있는 사장의 손끝이 파르르 잘게 떨리는 걸 보면 크게 벗어나진 않았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사장은 그녀를 떠나보낸 이후부터 자신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겠지만……

세월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고 냉정하게 흘러가 버렸다.

사장의 마음은 언제나 그 시절에 갇혀있는데 매정하게 시간은 흘러가 몸만 나이를 먹어버렸다.

지금처럼 그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난 뒤라…

주위를 둘러보았을 땐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두가 젊은 시절이라는 격동으로 가득 찬 첫 번째 삶을 완성하고 중년에 접어든 참이었다.

가정을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가족들을 위한 두 번째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완경(完?)에 접어들어 앞으로 나아간 그들과 홀로 쭉 멈춰섰던 자신을 비교해보며 자신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 진즉에 죽어있었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하여…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다.

‘지금 당신 곁에는 제가 있잖아요.’

무심코 사장을 위로하기 위해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하지만…끝내 사장에게 소리 내어 전하지 못하고 입안으로 다시 삼켰다.

내겐 그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무엇보다도 사장이 내게 그런 말을 들어도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그 말을 듣고 싶은 여자는 따로 있었으니까…….

그리고…사장에게 있어 유일한 의미를 갖는 여자는 지금 사장이 아닌 다른 남자의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건 사장의 얘기기도 했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내 얘기이기도 했다. 지금 구원받지 못한 사장의 모습은 그대로 미래의 내 모습이기도 하기에.

위로해주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내가 안고 있는 상처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사람은 어둠 속을 헤매더라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망가질지언정 패배하도록 창조되지는 않았다는 말이 이토록 증오스럽게 느껴질 줄이야.

하지만…

아아…

그 말대로다.

나는 결코 지지 않겠어.

나는…

사장과는 다른 미래를 손에 넣고 말겠어!

내가 속으로 조용히 칠흑으로 물든 증오를 불태울 때였다. 사장이 그런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 너는 나처럼 되지 말거라.”

읏…!

나는 사장의 말에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사장은 그런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한없이 다정한 눈으로 나는 보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먼저 피하고 만 것은 나였다.

그런가…

사장은 내게 이걸 알려주려고…!

나는 사장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사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독백하듯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무척 단순한 이유였다.”

“내 서툰 피아노 연주를 그녀가 지루한 기색 한번 없이 언제나 진심으로 즐거운 얼굴로 들어줬으니까……”

“연주가 끝난 뒤에는 언제나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줬으니까……”

“그녀가…칭찬해줬으니까, 그녀의 그런 꾸밈없는 미소가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결국엔 그녀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을 구실을 만들기 위한 내 나름의 계산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바로 곁에서 점점 아름다워져 가는 그녀를 보면서……”

사장은 거기까지 말하곤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무척 또렷한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강조하며 내게 말했다.

“어느새 그녀는 내 우상(아이돌)이 되었다.”

한번 토해내기 시작한 본심은 더 이상 스스로는 주체할 수 없는 폭류가 되었다. 사장의 말이 점점 빨라진다.

“그녀의 꿈이 내 꿈이 되었다. 그녀의 꿈을 이루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걸 진지하게 꿈꾸었다.”

“하지만…그건 내게 허락되지 않은 장소였다.”

“…”

“…”

그 말을 끝으로 사장은 다시 침묵했다.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장이나 나나 둘 다 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을 그다지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침묵이 부담스러웠다.

정확히는 이 장소가 부담스러웠다. 사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장이 먼저 발을 떼고 나 역시 곧바로 그를 따라 움직인다.

이때…

아주 조금이지만 아까 전보다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이 더 들어갔다.

사장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그 뒤로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었다.

초등학교 정문에서부터 한동안 직진. 다음 신호등이 나오는 데까지만 거의 10분 이상이 걸렸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 다시 온 만큼을 또 똑바로 걷고 나서 눈앞에 보이는 첫 번째 모퉁이에서 방향을 꺾어 들어간다.

초등학교에서 약 20분이 넘는 먼 거리.

중학교는 초등학교로부터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또 바로 앞에 붙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중고등학교가 마주 보고 있고 초등학교만 뚝 떨어져 있을 바에는 그냥 한곳에 전부 몰아놓는 게 편리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잠깐 해본다.

하지만 어른들은 바보가 아니다.

내가 금방 떠올린 걸 그들이 못했을 리가 없다.

아마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 외에 또 눈에 들어오는 점이라면 주위가 나무로 빽빽하단 점이려나.

초등학교의 통학로에도 가로수가 심어져 있긴 했다. 허나 여긴 그 몇 배는 되는 양이었다. 아마 이 부근은 단순히 통학로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산책코스도 겸하도록 만들어진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는 노골적인 츄리닝 차림에 산보를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래서일까…

사장 역시 굳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부지 내로 들어가지 않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포장된 도로를 걸으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전부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그녀와 함께 지냈던 날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사장을 이해하기 위한…

아니,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한 막바지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은 이 여행의 끝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사장을 향해 사근사근 미소짓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나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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