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47화 (47/136)

〈 47화 〉 제46 화 닫힌 세계의 두 사람 (7)

* * *

황홀했다.

어휘력이 부족한 내게는 그 말 외에는 다른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빠르게 돌며 온몸에 야릇한 전류가 흐르고 사장과 맞닿아있는 피부의 모든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남은 콘돔마저 다 쓴 사장이 내 안에서 그의 물건을 빼내려 했을 때 나는 오히려 그의 몸을 꽉 끌어안으며 그에게 계속 이대로 안아달라고 보챘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성을 끈을 내려놓고 한 마리 수컷과 암컷으로 전락한 사장과 나는 짐승처럼 야만적으로 서로의 몸을 탐했다.

무아지경으로 본능에 맡겨 비명에 가까운 신음성을 서로 조금도 억누르지 않고 몸을 섞었다.

그래도 처음 한동안에는 콘돔을 다 쓴 걸 나름 신경 썼다. 그래서 내 얼굴이나 입에 정액을 토해냈지만, 중간부터는 가슴이나 배 겨드랑이처럼 내 몸 구석구석에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사정했다.

뭐 그것도 새벽 무렵 온몸이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후각이 무뎌졌을 때 즈음에는 서로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내 안에 전부 쏟아냈지만.

움찔…

움찔…

하반신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경련이 가라앉질 않는다. 사장의 몸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그를 내 안에 받아들인다.

과음한 것처럼 머리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기분 좋은 게 더 컸다. 술이 아닌 남자에 취한 것처럼 의식이 몽롱해지고 이 세상에 나와 사장 둘만 남은 것만 같았다.

그의 뜨거운 씨가 내 안에 끊임없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토해진다. 그때마다 몸 안쪽에서부터 따스함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건 너무나도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 있는 쾌락이어서……

스스로가 이대로 계속 이 남자의 씨받이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에 빠져들 정도였다.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이 남자의 아이를 가져도 아마 나는 평생 후회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사장에게 매달릴 생각은 없다. 그를 거추장스럽게 할 마음 따위 조금도 없다. 아마 내가 사장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사장에게서도 서준에게서도 떠나 혼자 조용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겠지.

그건 그것대로 나름 나에게 어울리는 인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음…

새벽부터 계속 같은 자세로 누워 잠에 빠졌었기 때문에 이른 오전에 몸을 뒤척이려다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잠시 눈이 떠졌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축 늘어진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든 것이었다. 부스스 눈을 뜨고 싶어도 눈꺼풀이 무거운 게 당연했다. 그래도 살짝 눈을 뜨자 안개가 낀 것 같은 흐릿한 시야에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 곤히 자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날 놓치기 싫은 듯 나보다 훨씬 크고 어른인 그가 어린아이처럼 내 몸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읏…

무거워…

하지만…

따스해…….

나는 내 위에서 내 몸을 끌어안은 채 기분 좋게 자고 있는 사장의 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후우…

계속 이렇게 이어진 상태였던 건가.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사장의 남근이었다. 나는 의식을 잃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장의 물건을 안에 넣은 그대로 그에게 안겨있었다.

사장이 내게서 떨어지기 싫어서 이대로인 건지…

그게 아니면…내가 그에게서 떨어지기 싫어서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그를 내 곁에 붙잡아둔 것인지……

의외로 내가 질내사정을 재촉하며 그가 허리를 빼지 못하게 두 다리로 그의 몸을 꽉 끌어안은 기분도 들어서 뭐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됐든 사장이 됐든 간에…

지금 우리는 내 안에 흘러들어온 정액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 위한 마개 대신으로 그의 물건으로 내 음부를 꽉 틀어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건 마치…

신혼 티를 벗어나 막 임신활동을 시작한 젊은 부부와도 같은 잠자리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러한 남녀의 관계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내 기분은…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그래, 자상한 아버지에게 안겨 보호받고 있는 어린 딸과 같은 안도감에 가깝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여자가 남자에게 안긴다는 게 이런 걸지도……

어쨌든 확실한 건 무척이나 이렇게 안겨있는 게 기분 좋다는 것이었다. 좀더 이대로 있고 싶다, 아니 계속 이대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사장의 팔을 껴안으며 좀 더 눈을 붙였다.

그 뒤…

내가 눈을 뜬 것은 오후가 다 되어서였다. 약간 허전한 감각에 아쉬움을 느끼며 잠에서 완전히 깨자 아니나 다를까 방안에 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나 혼자 침대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시계를 보자 11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사장님은 먼저 일어나서 씻고 있는 걸까…깨워줘서 같이 욕실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무심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떠올린 생각에 얼굴을 살짝 붉힌다.

잠기운이 다 날아갔다. 아직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조금 여유를 갖게 되었다.

시야가 트이며 그제야 방안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뿐 아니라 바닥에까지 여기저기 다 쓴 콘돔들이 아무렇게나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다 쓴 콘돔에서 흘러내려 바닥을 더럽히고 있는 정액들이 어젯밤의 정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흔적들을 보자 어젯밤 사장에게 안기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사장에게 안겨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의 배 밑에 깔려 그의 물건을 받아들일 때의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반신이 욱신거린다.

고작…

고작 이곳에 와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도 이 정도다.

남은 기간 동안 몸이 버텨낼 수 있을까…….

‘정말이지…사장님도 참…굉장하단 말이지.’

어제는 내가 기분 좋게 해주려고 했는데…잔뜩 위로해주려고 했는데……

오늘 밤은 안 재울 테니 각오하라며 그렇게나 호언장담을 해놨는데 먼저 실신해서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고 지금까지 잠들어 버린 건 나였다.

사장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까.

그의 상처를 내가 치유해줄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사장에게 아무리 연민을 느끼고 그를 보듬어줘도…

나에게 사장이 서준을 대신할 수 없듯이 나 역시 사장이 줄곧 마음에 품고 있는 소녀를 대신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다가 문득 아침에 잠깐 눈을 떴을 때 내 위에서 기분 좋은 얼굴로 자고 있던 사장의 얼굴을 떠올린다.

뭐, 나도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닐지도……

잠시라도 서로가 서로를 통해 다른 모든 걸 잊고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바지런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일어났군.”

“네.”

사장이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 살짝 젖어있는 앞머리와 물기가 묻어있는 탄탄한 가슴이 묘하게 섹시하다.

“깨워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워낙 기분 좋게 자고 있길래…깨우기 미안해지더군.”

읏…!

자는 얼굴을 본 건가.

뭐…더욱 적나라한 모습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 사이긴 하다. 실제로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도 나와 사장은 알몸이고.

무방비하게 자는 얼굴 정도를 보여준 건 아무것도 아닐 텐데도…

왠지 사장이 내 얼굴 가까이서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자 묘하게 쑥스러웠다.

후우…

얼굴이 타는 것 같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정신이 바싹 마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분위기도 환기할 겸 화제를 돌리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며 무난한 얘길 꺼낸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아아…”

“그러고 보니 어디 나가시는 건가요?”

창문을 열고 나서 고개를 돌려 사장의 모습을 바라보자 사장은 옷을 입고 있었다. 평소 자주 입는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뿐이면 외출할 거란 생각까진 들지 않았을 텐데 위로 얇은 코트를 걸치는 모습을 보자 그가 실내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 모처럼 오랜만에 왔으니 한 바퀴 둘러볼까 생각하던 참이다.”

어딘가 사장이 조금 음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애써 외면하고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마주한다는 건 그런 거겠지.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사장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람에겐 때론 어둠과 휴식이 필요하다.

태양을 향하면서도 그늘을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이 참견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오기와 열등감에 물들은 나였기에 그러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장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가 자란 곳을 같이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그의 과거를 알고 싶었다.

그게 이번에 나와 그가 둘이서 만들 곡에도 무척 중요하단 확신에 가까운 예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내가 속으로 잠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워낙 변변찮은 곳이라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같이 가주겠는가?”

사장이 먼저 내게 그런 제안을 해왔다. 말투를 보니 사장은 사장대로 나에게 지루한 곳에 같이 돌아보자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 게 느껴졌다.

나는 밝게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네, 금방 씻고 준비할게요.”

“아아…급한 건 아니니 너무 서두르지 말도록.”

“아래서 기다리고 있지.”

“네.”

그렇게… 사장이 먼저 방을 나선 뒤 나 역시 경쾌한 발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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