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제39 화 메조 포르테(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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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용 코너에서 볼일을 끝낸 나는 안쪽에 있는 여성용 코너로 들어왔다.
여성용 코너는 남성용 코너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다양한 품목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제일 앞쪽에 전시되어있는 것은 역시 남성용과 마찬가지로 장난감들이었다.
남성용이나 여성용이나 이쪽의 수요가 상당하단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딜도나 로터 쪽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빠르게 지나치려 했지만……
‘저런 게 정말 안으로 들어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뭉툭하고 커다란 딜도들이 나열되어 있다 보니 호기심에 살짝 걸음이 느려졌다.
딱히 내가 쓸 생각은 없다만……
저런 거로 신혜민 그녀를 엉망이 될 때까지 망가뜨리는 건 꽤나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지를 묶어둔 다음에 안대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몇 날 며칠 동안 로터와 딜도로 그녀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미래를 그려본다.
…
그 정도로 그녀의 정신이 무너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육체에 묶여있는 이상 의지만으로는 육신에 갖춰져 있는 원색적인 본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그녀가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서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강제로 절정에 달하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상당히 볼만한 구경거리이리라.
계속 음란한 것들을 접하다 보니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유두가 살짝 서고 음부가 조금 젖었다.
어쨌든 아직은 이곳엔 볼일이 없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다시 무언가 살만한 게 없나 찾아보며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그다음에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수한 콘돔과 로션들이었다.
로션이야 그렇다 쳐도…
왜 이런 이상하게 생긴 콘돔이 여성용 코너에 있는 거지? 작은 의문이 들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여성 쪽이 얻는 쾌감이 크다는 거겠지. 얼핏 봐서는 돌기가 달려있으니 남자와 여자 둘 모두가 똑같은 자극을 받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남자에겐 콘돔의 두께가 얇냐 두꺼우냐 말고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돌기형 콘돔이라니…대체 어떤 느낌일까…
사장의 손가락이 내 안을 헤집을 때를 떠올린다. 특히 군데군데 박혀있는 굳은살이 내 안을 자극할 때의 오싹했던 감촉을 떠올리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딜도는 무리였지만 이거라면…조금 괜찮지 않을까……
…
얼굴을 붉히며 한 상자 집어 든다. 물론 옆에 있는 로션도 잊지 않았다. 끈적끈적하게 봉사할 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몸으로 마사지하면 분명 기뻐하겠지……
그리고 나도 조금은 기분 좋을지도…
역시 이런 건 기왕이면 같이 기분 좋아졌으면 한다.
마지막은 여러 특수한 직업 의상과 그보다 더욱 특수한 속옷이 진열된 구역이었다.
내가 오늘 그렇게 찾아 헤매던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속옷들이었다.
음모가 비치는 건 기본에 처음부터 밑이 파여있어서 이게 팬티가 맞는 건가 싶은 것들 투성이었다.
속옷이 아니라 남자의 정욕을 돋우어 유혹하기 위한 장신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찌익 소리를 내며 곧바로 찢어질 것만 같은 얇은 망사스타킹과 아랫부분이 훤히 뚫려있는 가터벨트를 집어 든다.
추가로 음모가 훤히 비치는 누드 T팬티와 밑이 트여있어 언제든지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끈팬티도 구매한다. 자궁 문신을 연상케 하는 게 하나같이 디자인이 선정적이었다.
구슬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들도 여럿 보였는데 이건 무슨 의도인지를 몰라서 구매하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상 쪽을 둘러본다.
겨드랑이와 배꼽 그리고 부끄러운 곳이 푹 파여있는 가죽 타이즈, 간호사복, 바니걸 등등 다양한 의상이 있었지만 전부 너무 작위적인 티가 나서 내 관심 밖이었다.
다만 걔 중에 단 하나 내 흥미를 사로잡은 의상이 있었다. 목 아래로 등이 전부 드러나 있고 가슴 아래로 배가 다 드러나는 무척이나 노출이 심한 메이드복이었다.
사장과 같이 지낼 동안 철저하게 그에게 순종하고 봉사할 예정이었기에 이보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구매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재빠르게 마저 싸던 짐을 챙긴 후 저녁때까지 침대에 누워 한숨 자기로 했다.
어젯밤부터 조금씩 몸에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깬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조금 늑장을 부리려다가 바깥이 어두워진 걸 확인한다. 지금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한 사람뿐인 걸 깨닫자 잠이 확 달아났다.
“네, 지금 나가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연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이 와 있었다.
“준비하고 나오도록.”
내 모습을 본 사장이 슬쩍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자면서 뒤척이는 동안 가슴팍이 칠칠치 못하게 풀어 헤쳐져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살짝 옷매무새를 여미며 사장에게 묻는다.
“네, 안에 들어와 계실래요?”
사장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괜찮다. 천천히 하고 오도록. 느긋하게 담배라도 피고 있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자신이 방안에 들어와 있으면 내가 긴장할까 봐 배려해주는 게 느껴졌다. 사장이 난간에 기대어 창틀에 한쪽 팔을 얹고 저녁 바람을 쐬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확인한 뒤 방안으로 들어와 준비를 끝마친다.
뭐, 잠들기 전에 짐은 다 싸놨기 때문에 몸가짐만 조금 단장하면 되는 정도였다.
살짝 화장을 고치고 옷만 좀 갈아입은 다음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내가 캐리어를 손에서 내려놓고 문을 잠그고 있는 사이…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너무도 자연스레 내 짐을 자신이 들어주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가볍게 발돋움하여 그의 뺨에 쪽! 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그가 조금 쑥스러워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외로 이런 거에 약한 거 같다.
그가 머쓱함을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내게 말했다.
“가지.”
“네.”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답한 뒤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팔짱을 낀 다음 그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
그가 고개를 내려 물끄러미 날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지?”
내가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말하려 했을 때였다. 그가 먼저 내 말을 막으며 말했다.
“아니, 재미없는 것을 물어봤군.”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팔을 살짝 풀었다. 그다음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나 역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 조금 전보다도 훨씬 밀착된 상태였다. 그 상태로 우리는 사장의 차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어딘가 나와 사장의 그런 모습은…
내가 낮에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던 사이좋은 커플들을 떠올리게 했다.
…
그 뒤로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서 한 외딴 마을로 왔다.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사장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걸 그의 바로 곁에 있는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 오는 마을이었지만…
나는 이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왠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아니, 분명 사장이 태어나 자란 마을이다. 수도권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건만, 상당히 낙후된 지역이었다.
거리도 전체적으로 깜깜하고 그러다 보니 밤에 사람도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게 마치 시골을 연상케 했다.
지금 사장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히 의외였다.
얼핏 봐선 분명 무척이나 세련된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거라 보이건만……
마을에 들어서자 사장은 익숙하게 차를 몰아 마을 뒤쪽으로 향했다.
마을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곳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2층짜리 낡은 레코딩 하우스 앞에 우리는 내렸다.
차에서 내린 뒤 그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동안 아련한 눈길로 눈앞에 있는 주택에 가까운 건물을 응시했다.
…
많은 사연이 있는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지금 사장은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서준과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나날을 떠올릴 때와 똑같은 아련한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그의 곁에 가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 * *